동대문, 세계적 패션 도시 뉴욕·밀라노처럼 되려면?
[김경민의 도시이야기]<9> 대한민국 패션 1번지, 동대문
동대문, 세계적 패션 도시 뉴욕·밀라노처럼 되려면?
<도시 이야기>를 통해 그간 8차례에 걸쳐서 익선동, 낙원동, 북촌 일대의 요모조모를 짚었다. 이번 주부터는 동대문과 창신동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한다.

필자는 상업용 부동산에 관한 연구를 주로 한다. 아시아 주요 도시의 오피스 가격을 비교하거나 쇼핑몰 가치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보는 것이다. 쇼핑몰 연구 과정에서 동대문 시장을 다루게 되었는데, 연구를 진행하면서 동대문 패션 시장의 가치에 대한 의문이 차츰 커졌다.

대표적인 패스트 패션 SPA 상품인 자라(ZARA), 유니클로(UNIQLO)와 한국의 패스트 패션 메카 동대문을 비교해보자. 유니클로 창업자인 야나이 다다시는 부친이 운영하던 동네 양장점을 이어받았다. 부유한 가문 출신이 아니다. 자라 창업자 역시 매우 짧은 시간에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다. 이제 이들은 스페인과 일본 제일의 갑부다.

반면 50여 년 전부터 형성돼 온 동대문 시장에서는 유니클로와 자라 창업자만큼 부유해진 사람은 없다. 왜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다 보니, 점차 '쇼핑몰이라는 부동산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나'에 대한 관심은 작아졌다. 대신 패션 디자인과 제조 그리고 판매라는 패션 산업의 가치 사슬(Value Chain)과 유기적 프로세스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리고 이의 연장 선상에서 뉴욕, 파리, 밀라노, 런던 등 세계적 패션 도시와 동대문 패션 타운 간의 비교 연구를 하게 되었다.

세계적 패션 도시와 동대문 패션 타운의 차이점은 극명했다. 패션 디자인과 제조 그리고 판매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글로벌 패션 도시와 달리 한국은 단순히 거대한 유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편협함에 디자인과 패션 제조업의 가치가 도외시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필자 주>

▲ 두산타워 · 밀리오레(오른쪽)와 아트프라자(왼쪽)의 야경. ⓒ연합뉴스

압도적 규모 자랑하는 동대문의 네 얼굴


대한민국 패션 1번지, 동대문 시장은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동대문패션관광특구 누리집을 보면, 특구 전체 토지면적만 31만 제곱미터에 이른다. 건물 연면적은 81만 제곱미터로 63시티 연면적의 4.5배에 달한다. 의류 원단을 취급하거나 도소매 기능을 하는 건물이 30여 채나 있고, 그 안에는 3만 여 개 상점이 성업 중이다. 이는 서울시 전체 의류 사업체의 25퍼센트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동대문 시장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소매와 도매가 공존하는 이곳에선 쉬지 않고 경제 활동이 일어난다. 그래서 '서울의 밤'을 느끼고 싶은 외국인들은 동대문을 찾는다. 동대문은 서울시 관광객 가운데 절반 이상이 다녀가는 대표적 관광 명소다.

동대문에는 대기업 브랜드 의류 매장보다 중소 규모 자영업 점포가 훨씬 많다. 이들 소매점은 동대문 패션타운 안에 있는 도매업체와 연계돼 있어, 다른 곳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상품을 판매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동대문 시장은 기능에 따라 크게 네 부분으로 구분돼 있다. 가장 중요한 재료인 원단을 판매 시장이 있고, 남서 블록에는 소매를 전문으로 하는 점포들이 있다. 두산타워와 밀리오레 등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건설된 고층 쇼핑몰들이다.

청계천 주변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실질적으로 동대문 시장 성장을 이끌었던 전통 도매시장들이 있다. 전태일 열사가 일했던 '평화시장(1961년 개장)'과 '신평화패션타운(1971'), '제일평화시장(1981)' 등이 여기에 속한다.

한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있는 구역에는 '아트프라자(1990)' 등 약 12개 신흥 도매 상가들이 모여있다. 이 신흥 도매 상가들은 1990년대 '패션 디자인'이란 개념을 획기적으로 도입하고, 야간 영업을 하는 등 동대문 시장에 새 반향을 일으킨 곳이다.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 <동대문 시장: 불이 꺼지지 않는 패션 아이콘>, 2011, 서울역사박물관, pp. 95-96, p. 107.)

ⓒ김경민

이처럼 동대문 시장은 크게 도매와 소매 시장으로 구분되지만, 실제로는 매우 유연하게 운영된다. 소비자들은 신흥 도매 시장에서도 소매 물건을 살 수 있고, 신흥 소매 상가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신흥 도매 상가에서 더 싸게 구입할 수도 있다.

전통 도매 상가, 신흥 도매 상가, 신흥 소매 상가들은 서로 물건을 사고파는 협력을 하지만, 때로는 소비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 경쟁하는 관계이기도 한 것이다. 일종의 '협력형 경쟁 관계(Coopetition)'다. 마치 애플과 삼성이 스마트폰이라는 시장에서는 경쟁을 하나, 삼성의 메모리와 같은 부품을 애플이 사용하는 측면에서는 협력을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거대 쇼핑 시설 뒤에 가려진 패션 제조업체들

도소매란 판매 시장 뒤엔 눈에 잘 띄지 않는 숨겨진 하부 구조가 있다. 바로 상품을 판매하기 전 생산하는 제조업 시장이다. 제조 업체들은 주로 창신동, 순인동, 이화동, 신당동, 장충동 일대에 걸쳐 있다. 흥인지문(동대문) 주변을 지나다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을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는 이들 지역에서 생산한 의류 제품을 동대문 시장으로 배달하는 모습이다. 도소매 시장은 동대문 시장의 단편적 모습에 불과하다.

ⓒ김경민 (자료(우측 다이어그램): 홍병숙·이은진(2007), 동대문 패션시장의 구조적 특성 분석을 통한 유통 활성화 정책 연구(p. 159), 재구성)

이들 생산지 중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창신동이다. 동대문 시장 북쪽에 위치한 창신동엔 약 3000여 개의 봉제 공장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창신동 봉제 공장이 대부분 부부가 운영하는 가내 수공업 형태고, 세금과 보험 가입 등을 피하기 위해 사업체 등록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정확한 수는 알기 어렵다.

지금과 달리, 과거엔 의류 생산이 동대문 시장 안에 있는 봉제 공장에 이루어졌다. 전태일 열사가 일했던 1960년대 중후반부터 1970년대엔 전통 도매 시장 건물 1층은 상점으로, 2층과 3층은 봉제 공장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동대문 패션 타운 vs. 뉴욕 패션 지구

빠른 속도로 상품이 기획, 생산, 판매되는 동대문 패션 타운. 3만 여 개 점포가 있고 연간 25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이 명소는 그러나 뉴욕, 파리, 밀라노와 같은 '글로벌 패션'을 선도하는 도시 그룹에 끼지 못한다.

뉴욕 내 패션 중심지는 맨해튼 서부 5가와 9가 사이에 있는 '뉴욕 패션 지구(Garment District)'다. 약 2700개의 의류 상점이 있으며 이 중에 동대문 소매 상점과 비슷한 규모의 소형 상점은 300여 개의 불과하다. 동대문 쇼핑 타운에 비하면 훨씬 적은 수의 상점이 뉴욕 패션 중심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뉴욕 패션 지구를 거닐다 보면, '여기가 뉴욕 패션 중심지가 맞나?'란 의문이 들 정도다.

3만여 개 상점을 지닌 동대문과 고작 300여 개의 상점이 있는 뉴욕 패션 지구. 이 엄청난 규모차이에도, 그러나 세계의 이목은 뉴욕 패션 지구에 쏠린다.

패션산업, 창조산업으로 만드는 열쇠는 '디자인'과 고기능 '제조' 부문

왜일까. 한 의류 상품이 판매되기까지는, 기획과 디자인, 제품 생산이란 단계를 밟는다. 이 가운데 '생산' 과정은 다시 옷의 본을 떠는 '패턴', 옷감을 자르는 '재단', 재단된 옷감을 붙여 의류를 만드는 '재봉' 등 다양한 직능으로 세분된다.

기획, 디자인, 패턴, 재단, 재봉. 이 중 재봉처럼 단순 반복 작업이 주를 이르는 부분을 제외하면 대부분 과정은 고부가 가치 산업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제조업은 금융이나 IT산업과 달리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패턴이나 재단, 샘플 제작 작업은 다르다. 이들은 형식적으로는 제조업에 속하긴 하나,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영역으로 취급된다. 휴고 보스와 알렉산더 맥퀸 등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들은 재단사 출신이었다. 또 돌체앤가바나의 도미니코 돌체는 재단사 집안 출신이다. 이런 점들은 패션 제조업이 고부가 가치 제조업으로서 기능할 수 있단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예컨대 패션 산업을 '창조 산업'으로 다루는 영국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패턴과 재단, 샘플 제작 등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Department of culture, Media & Sport, U.K., , 2001). 패션이라는 한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단순한 판매 영역만을 고려하기보다, 디자인 등 일련의 과정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동대문 패션 타운을 거대 의류판매상권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패션 산업의 고부가가치 영역인 디자인과 패턴, 재단, 샘플 제작 등 제조업의 가치를 도외시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뉴욕 패션 지구는 패션 산업의 중요 3 기능인 디자인과 제조, 판매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중에서도 뉴욕 패션 지구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의미 있다고 보는 부분은 판매업이 아닌 제조업이다.

"뉴욕 패션 지구의 역사는 미국 패션의 역사임과 동시에, 도시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던 노동자와 이민자가 도시에서 그들의 장소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였던 역사다." - 뉴욕 패션 센터 경제활성화지구(BID) 소개 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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