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세척 못한 내시경, "병균 옮길 수 있는데…"
[공공부문 비정규직·④] '1년 364일' 만에 계약 종료되는 이들
2013.10.15 07:38:00
제대로 세척 못한 내시경, "병균 옮길 수 있는데…"
입속으로, 항문로 들어갔다 나온 내시경엔 보기 흉한 것들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마음 같아선 철 수세미로 박박 닦아내고 싶었지만, 자칫하면 비싼 렌즈가 깨질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 몸속에 들어가는 기기인 만큼 소독은 섬세하고 철저해야 했다. 깨끗이 세척되지 않은 내시경은 다음 검사자 몸에 나쁜 균을 옮길 수도 있는 일.

경북대병원 칠곡 분원(이하 칠곡 병원)에서 6개월짜리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김용주(가명·48) 씨. 그는 그래서 "내시경 따위를 세척하는 데 비정규직을 써선 안 된다"고 단언한다. 김 씨는 고가의 예민한 내시경 기기를 익숙하게 다루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제야 내시경 부분 부분을 이해하고, 능숙하게 소독을 해낼 수 있었다고 김 씨는 말한다.

직접 일을 해보기 전엔, 병원 곳곳에 그렇게나 많은 비정규직이 있는 줄 몰랐다. 김 씨가 교육부 산하 칠곡 병원에서 일하던 때엔 수술 도구를 준비하고 세척하는 일 역시 '언제 잘려나갈지 알 수 없는' 비정규직의 몫이었다. 피가 엉긴 도구들을 세척하고 분류하기 위해선, 각종 의학 용어도 숙지하고 있어야 했다. 몇 달이 지나면 그런 용어를 하나도 모르는 '새 비정규직'이 들어올 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세척하는 건데 누가 한들 어떠냐고 말해요. 하지만 내시경 소독이 제대로 안 돼서 감염 환자가 생겼다는 뉴스가 종종 언론에 나오잖아요. 간단한 일이 결코 아니에요. 사람 건강을 챙기는 일인데, 비정규직을 돌려써도 된다는 발상 자체가…."

ⓒ연합뉴스

6개월마다 날아오는 봉투, "이번에도 계약이 연장될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김 씨는 "가족밖에 모르는 무식한 아줌마"였다고 했다. 그러다 남편이 외환위기로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된 후, "아이들 공부라도 시켜야겠다"는 마음으로 일거리를 찾아 나서게 됐다.

칠곡 병원 이전엔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간호보조원으로 일했다. 간호조무사나 간호사 어깨너머로 이런저런 의학 상식을 배우며, "계속 병원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2010년 말, 때마침 집에서 가까운 곳에 새 병원이 생겼단 소식을 들었다. 어려운 살림에 학원까지 다니며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고, 칠곡 병원에 이력서를 냈다.

병원은 그러나 김 씨를 비롯한 진료 보조 인력을 6개월 임시직으로 채용했다. 정부의 공공기관 정규직원 정원제에 묶여 정규직 정원이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다. 김 씨와 비정규직 동료들의 근로 계약은 6개월에 한 번씩 갱신됐다. "때마다 엄청나게 신경 쓰였어요. 이번엔 나한테 어떤 봉투가 올지. 계약을 연장하자는 봉투일지, 종료한다는 봉투일지…."

초기 월급은 100만 원을 왔다갔다하는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김 씨는 개의치 않고 열심히 일했다. 한참 돈이 많이 들어가는 고등학교 1학년 쌍둥이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다. 내시경 검사실 직속상관이었던 간호사도 김 씨는 좋아했다고 했다. 김 씨는 "시키지 않은 일도 찾아서 했다. 나한테 그 일자리는 그만큼 절실했다"고 말했다.

1년 364일째 되던 날 계약 종료…"비정규직보호법 악용"

김 씨는 세 번째 계약 연장 봉투를 받던 날을 기억한다. 그는 "그때 6개월만 일하면 (고용된 지) 2년이었다. 비정규직을 2년 쓰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게 법이니까 '이제 정규직이 되는구나'하고 얼마나 좋았는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칠곡 병원은 그를 고용하고 1년 364일이 되던 날로 김 씨와의 근로 계약을 종료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내건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가 결승점을 통과하기 5일 전이었다. 김 씨와 함께 꽃겨난 6명 자리는 곧바로 새 비정규직들로 채워졌다.

"상상도 못 했어요. 세 번째 재계약서 쓰기 전에 의료 기관을 평가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중요한 일에도 한몫을 했으니 '우리는 다 정규직이 되겠구나'란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막상 정규직 전환 시기가 오니, 이력서를 새로 내라고 하더라고요. 무기계약직 신규 채용을 한다면서요. 병원서 일하던 비정규직 40명이 이력서를 냈는데 34명만 붙었어요. 병원에선 신규 채용 절차에서 탈락한 거니 '해고'가 아니라고 하는데, 이게 해고가 아니면 뭐래요. 비정규직 보호법을 악랄하게 사용한 거예요."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비정규직 많으면 의료의 질 떨어질 수밖에"

김 씨는 해고 아닌 해고를 당한 후부터 지금까지 복직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천막 농성도 벌였다. 수입이 없어졌지만 "너무 억울해서 싸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올해 12월이 되면 김 씨가 복직 투쟁을 한 지 1년이 된다.

이제는 환자들이 김 씨를 먼저 알아본다고 했다. 병원 로비에서 억울한 사연이 담긴 유인물을 뿌린 지 오래인 결과다. 김 씨는 "어떤 환자분은 '아직도 해결이 안 됐느냐. 더 세게 부딪혀야 안 되겠느냐'고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도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해결하라고 했는데, 병원은 되레 '불온 세력'이라고 나를 부른다. 칠곡 병원에서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대구지부 우성훈 지부장은 "병원은 숙련된 사람들이 많이 필요한 사업장"이라며 "이런 곳에서 비정규직을 돌려쓰면 의료의 질이 떨어지고 환자들은 그만큼 불안하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연속 보도
<1> 경찰서 무기계약직 주무관 : "경찰서에서 경찰 업무 보는 저보고 '미스 리'래요"
<2> 인천공항 서비스 직원 : "추석 해외 여행, 누구한테 공항 서비스 받으셨나요?"
<3> 도로보수원·과적단속원 : 공무원 죽으면 국가유공자인데, 이들은 '개죽음'

칠곡 병원 "상시·지속 업무에 정규직 사용해야 하는 게 맞지만..."

칠곡 병원 측도 "상시·지속 업무라면 진료 보조 영역에도 정규직을 사용해야 한다는 데 생각을 같이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육부와 기획재정부로부터 정규직 정원을 통제받는 국립대 병원인 이상, 정부에서 정원을 늘려주지 않으면 정규직 정원을 늘릴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또 "세척 업무를 습득하는 데는 통상 약 2달 정도가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김용주 씨를 비롯해 2012년) 근로계약이 만료된 6명은 2년 근로기간 중 받은 근무평가 점수를 바탕으로 엄격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업무지원직(무기계약직) 채용에서 탈락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칠곡 병원은 정부의 무기계약직 전환 지침에 앞서 업무지원직 규정을 신설해 비정규직 근로조건 향상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그간 비정규직 12명을 정규 기능직으로 전환하고, 76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 전환 비율이 91%에 달하는 것은 공공기관으로서 모범이 되는 사례"라고 자부했다.

그러면서 "이후에도 근로계약 2년이 도래하는 임시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무기계약직 (신규) 채용을 실시하여 업무지원직으로 전환할 예정이며, 지속해서 정부에 정원 증원을 신청해 최대한 많은 정규직 전환을 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 경찰서, 공항, 병원, 학교 등 공공기관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르지만, 우리가 받는 공공 서비스의 상당 부분이 이들의 손을 거친 것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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