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원은 4급이상 공무원에게만 인사하면 돼요"
[지방의회 돋보기]'공룡당'의 관행, 그리고 권위의식
2006.07.06 10:07:00
"시의원은 4급이상 공무원에게만 인사하면 돼요"
프레시안은 7월부터 <지방의회 돋보기>라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민선 4기 지방자치 시대'라는 역사에 걸맞게 이제는 지방의회 및 행정에도 감시의 눈이 더욱 필요한 때라는 판단에서입니다.
  
  그동안 기초, 광역 등 지방의회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행태는 사람들의 관심이 되지 못했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말은 하지만, 우리 생활과 직결된 각종 정책이 어떻게 입안되고 결정되는지, 그 과정은 충분히 민주적인지 등의 문제를 짚어보는 데에 우리 모두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광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6명의 필자들에게 '돋보기'를 들어보도록 초대했습니다. 모두 이번 5.31 지방선거를 통해 새로 진출한 민주노동당 소속의 초선 의원들입니다. 좌충우돌 할 것 같습니다. 시행착오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초짜' 의원들의 건강함과 의욕에 가중치를 뒀습니다.
  
  첫 테이프는 서울시의회 광역비례 의원으로 당선된 이수정 의원이 끊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인 학습지 교사 생활을 하던 35세의 젊은 의원입니다. 이 의원은 글에서 요즘 각 지역 의회에서 말썽이 되고 있는, 서울시의회도 피해가지 못한 '교황식 의장 선출방식' 관행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시의원들의 권위주의에도 일침을 가했습니다. <편집자>

  
  교황식 의장 선출법을 아십니까?
  
  서울시의회의 의장 및 부의장은 일명 '교황식'으로 뽑는다. 무기명 투표로 선출하되 이름을 직접 적는 방식이다. 회의 진행자가 "이제부터 의장 선출을 시작하겠습니다. 투표용지에 이름을 적어주십시오"라며 의사봉을 두드리면 각자 알아서 이름을 적어내는 '인기투표'라는 것이다.
  
  당연히 이 과정에선 상식적으로 갖춰야 할 사항이 누락될 수밖에 없다. 의장 및 부의장 후보의 추천이나, 후보자가 된 사람이 '나를 뽑아주면 앞으로 의회를 이렇게 운영하겠다'는 정견발표와 지지호소조차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다수당 의원들은 자기들끼리 의장을 사전에 내부적으로 정하고 본회의장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내는 어이없는 모습이 연출될 것이 뻔하다. 사전에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한, 아니 혹 신문을 통해 다수당 아무개 의원이 의장후보로 내정됐다는 기사를 봤다 해도 그 사람에 대해 통 알 길이 없는 나 같은 소수당 의원의 의견은 철저하게 무시되는 과정이다.
  
  2002년 지방의회에 처음 진출한 민주노동당 광역비례의원들은 첫걸음도 떼기 전에 마주친 이 어이없는 현실에 "초등학교 반장선거도 이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지만 결국 관행을 바꿔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고 이번에도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었다. 비례대표로 당선된 열린우리당 2명, 민주당 1명, 민주노동당 소속인 필자까지 4명이 마주앉았다. 102명(서울시의회 당선자는 총 106명이다)이나 되는 '공룡' 한나라당을 생각하면 아찔한 현기증이 일지만 최소한의 몸부림이라도 쳐야 했다.
  
  규정을 찾아봤다. <서울특별시의회회의규칙 제6조(의장ㆍ부의장의 선거방법) 1항>에는 '의장과 부의장은 의회에서 무기명 투표로 선거하되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득표로 당선된다'고만 규정돼 있다. 세부적인 규정이 없는 셈이지만 교황식 선출방식 역시 관행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는 <서울특별시의회의 의장 및 부의장은 민주적이고 공개적으로 선출되어야 합니다>라는 편지를 모든 의원에게 보냈다. 물론 한나라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보낸 첫 번째 편지가 아무런 반향을 얻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린 첫 편지에서 한나라당을 제외하고는 교섭단체도 구성할 수 없는 현재 여건에서(의회내 교섭단체를 구성하기 위한 인원은 10명이다) 서울시 행정부-서울시의회-서울시민의 3세력이 서로 잘 어울려야 균형 잡힌 서울시를 만들 수 있다고 호소했다.
  
  우리의 요구는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이었다. 최소한의 견제와 감시를 위해 시의회의 핵심 상임위원회인 운영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는 각 당에서 1인씩 반드시 배치돼야 한다는 요구였다. 그리고 소수당 의원들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우리 4명이 능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상임위에 배정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당부도 했다.
  
  이 요구는 전임 의장을 직접 만나서도 전달했다. 전임 의장은 "시의원 당선자 비율이 일방적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해 달라"는 격려인지 무시인지 모를 말만 우리에게 돌려줬다.
  
  당선된 지 한 달도 안 돼 맞닥뜨린 서울시의회의 이 같은 비정상성의 일차적인 원인은 물론 1당의 독식 때문이다. 2002년에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서울시의원 102명 중 한나라당 의원이 87명이라는 사실을 듣고 너무 독주한다고 했었는데, 2006년의 상황은 뭐라 입도 떼기 어려운 결과다. 이유야 어쨌건 이젠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돼버렸지만, '독식' 뒤에 따른 '오만'은 앞으로 4년을 갈 것 같다.
  
  그 '오만'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아무도 모른다. 의회 내에서 필자의 역할은 아마도 한껏 부풀어 오른 오만에 작은 바람구멍이라도 내는 것이리라 믿는다. 또 한가지. 거대당의 독식구조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제도를 농락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당선 뒤 한 달 동안 필자가 가장 충격적으로 느낀 시의원들의 '권위의식'도 바꿔보고 싶다.
  
  의장과 만난 뒤 오찬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음식 가격이 제법 만만치 않은 호텔식당으로 안내받은 것도 낯선 경험이었지만, 음식을 가져다주는 종업원들에게 "밥 가져와!", "물 가져와!"하면서 명령조의 반말을 다반사로 쓰는 한 3선 의원의 모습을 보며 같이 자리에 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몸에 밴 그 권위적 모습에 충격 받은 필자에게 쐐기를 박은 일도 있었다. 또 다른 3선 의원은 딴에는 조언을 한다고 귀엣말로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서울시의원)는 4급 공무원 수준이니까 그 이상의 공무원에게만 인사하면 돼요. 하급 공무원들한테는 인사 안 해도 됩니다."
  
  선거운동 기간에 만난 어느 서울시민의 말씀이 겹쳤다. 그 분은 학습지 교사 출신인 필자에게 "학습지 선생하다 시의원 되면 너무 출세하는 거 아니야?"라고 했다. 여전히 시민들은 국회의원이건 시의원이건 배지를 단 정치인들을 출세와 권위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정치할 사람은 따로 있다는 생각, 돈도 좀 있고 나이도 좀 있는 지역 유지 정도는 돼야 구의원, 시의원을 해도 격에 맞다고 보는 시각이다.
  
  이런 시각은 의원들이 만들었다고 본다. 물론 경험과 연륜은 존경받아 마땅한 가치라고 믿지만, 필자가 몇 번 경험한 권위주의가 시의원에게 필요한 덕목은 아니지 않을까. 스스로가 쌓아올린 '권위주의의 벽', 시민들과 시의원이 괴리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존재가치를 느끼고 흡족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필자는 시쳇말로 돈도 없고 빽도 없다. 나이도 많지 않다. 하지만 학습지교사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경험은 든든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시민들 가운데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처럼 소외받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하루도 어김없이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서울시민들에게는 의원 배지를 단 거드름보다는 겸손과 낮은 자세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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