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표, 45년 세월로도 모자란단 말이요?"
<기고>정수장학회 인사들의 '뻔뻔한' 인터뷰를 보고
"박근혜 대표, 45년 세월로도 모자란단 말이요?"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 진실화해위)가 지난 5월29일 1962년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에 대해 "당시 중앙정보부 부산지부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승인에 따라 강제 헌납하도록 했다"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것은 과거사의 한 매듭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이같은 결정을 두고 이런저런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이 장학회의 국가 헌납 이후 운영주체가 된 정수장학회 측이 "부일장학회의 재산권 및 김지태의 재산권을 침해한 점을 사과하고 재산을 반환하는 한편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화해를 위한 조치를 하라"는 진실화해위의 권고에 대해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우선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지낸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도 지난달 3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며 진실화해위 결정을 반박했다. 최필립 현 이사장도 지난달 31일 <조선일보>에 실린 인터뷰에서 "당시 부일장학회는 설립인가를 받은 사실도 없다"며 "이름뿐인 장학재단이었는데 무엇을 빼앗아 갔단 말이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같은 정수장학회 관계자들의 주장에 대해 부일장학회 이사장이었던 고 김지태 씨의 차남 김영우(한생산업 회장) 씨가 반박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역사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전문 그대로 소개한다. <편집자>


"부실재단 인수해 잘 키웠더니…무엇을 뺏었단 말이냐." <조선일보> 지난달 31일자 최필립 정수장학재단 이사장의 인터뷰 기사 제목은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증인도 증거도 있다니, 선친이 옥중에서 쇠고랑 찬 손으로 날인한 '재산포기각서'를 증거라고 말하는 것일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랴마는, 세상 떠나시기 전 병석에서도 "내가 생전에 못 찾으면 너희들이 나서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선친의 모습이 눈에 선해 유족으로서 그냥 참아 넘기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장학재단을 함께 운영할 수 있다는 우리의 제의를 놓고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는 대목은 유족으로서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다. 우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난날의 과오를 양가의 후손들이 대승적으로 극복하고 사회적 분란 없이 장학사업을 이어가자는 선의에서 그들을 배려했던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그 선의를 교묘하게 이용한 악의의 부메랑만 되돌아온 것이다.

우선 부일장학회는 최 이사장이 말하듯 "이름뿐인 장학재단"이 아니었다. 1958년 11월 부일장학회의 창설에서부터 1962년 5월 강탈당하기까지 3년동안, 부일장학회는 부산ㆍ경남 지역의 초중고 대학생 1만2364명에게 모두 1억7300여만 환을 지급했다. 지금의 경제규모에 비추어서도 놀랄 만한 초대형 장학회였던 것이다.

선친은 장학기금을 사재로 출연하면서도 장학회 명칭을 '부산일보'를 줄여 '부일'장학회라 짓고 신문사 안에 장학사업 파트를 따로 두어 직접 관리하게 했다. 굳이 장학재단을 따로 설립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최 이사장이 "당시 부일장학회는 설립인가를 받은 사실도 없다"고 말한 것도 일부러 이런 엄연한 사실에 눈감고 그들이 빼앗은 '장물'이 하찮은 것임을 강조하려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

최 이사장은 또 선친이 소유하고 있던 부산일보사와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을 "장학회 운영에 도움이 안되는 회사들"이라고 매도하고, 그런 회사를 "강제로 헌납받을 이유가 없었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이 시기 부산일보는 "창간 이래 가장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면서 독자들로부터 열렬한 갈채와 사랑을 받았다"고 <부산일보 50년사>는 기록하고 있다. 한국신문연구소가 발간한 <한국신문 100년>도 부산일보가 "국내 최초의 사설 무선국과 전광 뉴스판 설치 등 시설 확충에 진력하는 한편 부일장학회를 설립, 가난한 영재들의 육성에 힘썼다"고 기록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부산문화방송과 한국문화방송을 한 묶음으로 매도한 것도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민간상업방송 시대를 열어 오늘의 방송문화를 꽃피운 선구적인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사업은 당시로서는 먼 장래를 내다보는 선친의 식견과 결단, 그리고 재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선뜻 나서기 어려운 일이었다. 정수장학회가 이들 하찮은 신문ㆍ방송사로부터, 그러니까 문화방송으로부터는 연 20억 원을, 부산일보로부터는 연 8억 원의 기부금을 받았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선친은 박정희의 집권 초기부터 '강제 헌납'당한 신문 방송과 부일장학회 기본재산 10만 평의 땅을 반환해 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1971년 7월에는 5.16장학회 김현철 이사장에게 당시 매각설이 파다하던 부산일보와 부산문화방송을 인수하겠다는 편지를 두 차례에 걸쳐 보내기도 했다. 이때 첨부한 자필 경위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962년 당시 중앙정보부 부산지부장 박용기 씨에 의하여 본인이 부산형무소에 투옥되어 군재의 공판이 진행되던 중 동년 6월 20일 계엄사령부 법무관실에서 고원중 씨가 미리 작성한 양도 서류를 지참하여, 날인을 강요당하고, 쇠고랑을 찬 손으로 본의 아닌 날인을 하게 되었다."

강탈한 재산을 차마 원주인에게 돈을 받고 되팔 수는 없었던지 끝내 답장은 없었지만 박용기 씨는 후일 자신의 어리석음을 사죄하는 참회의 서신을 선친에게 보내왔다.

이제 진실화해위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전 이사장은 정수장학회는 "공익법인이기 때문에 이미 사회에 환원된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남의 장학재단을 빼앗아 자기들 마음대로 운영하고, 거기에 기대어 10년 동안이나 월급 명목으로 적지않은 돈을 타 쓰고, 이제 와서 사회에 환원된 공익재단이라고? 아무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겨도 결코 말이 될 수 없다는 뻔한 진리를 깨닫는 데 45년도 모자란단 말인가.
다음은 <조선일보>에 실린 최필립 이사장 인터뷰 전문

"부실재단 인수해 잘 키웠더니… 무엇을 뺏었단 말이냐"
"시나리오를 만들어놓고 거기에 따라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 아닌가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 이하 진실화해위원회)'가 지난 29일 "1962년 부일장학회(현 정수장학회) 재산의 국가 헌납은 공권력에 의해 강요된 것"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과 관련,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전 뉴질랜드 대사)은 30일 "관계자를 조사하지도 않고 내린 결정은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최 이사장은 이날 본지와 인터뷰에서 "당시 부일장학회는 설립인가를 받은 사실도 없다"며 "이름뿐인 장학재단이었는데 무엇을 빼앗아 갔단 말이냐"고 반문했다.

최 이사장은 "당시 (헌납 받은) 부산일보사의 부채는 자산의 거의 2배였고, 한국문화방송과 부산문화방송은 각각 자본금이 1000만 원, 500만 원이었다"면서 "장학회 운영에 도움이 안 되는 회사들을 강제로 헌납 받을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8월 "정수장학회는 국가권력의 강탈로 만들어진 것으로 성격상 장물(贓物·훔친 물건)로 볼 수 있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서도 최 이사장은 "노 대통령이 특정인(박정희 전 대통령)을 겨냥해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한 국가의 지도자가 어떻게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강탈하는 짓을 하겠느냐"라고 되묻고는, "전(前) 대통령을 장물아비로 취급해 비하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부일장학회 설립자인 고(故) 김지태 씨의 차남 영우 씨가 재단을 함께 운영하고 싶다고 제의한 것에 대해선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부실한 재산을 장학회가 인수해 잘 키워 왔는데, 이제 와서 공동으로 운영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최 이사장은 "정수장학회는 45년간 어려운 환경에 처한 우수한 학생들을 도와 그들을 국가에 유용한 인재로 키워 왔다"면서 "정수장학회는 공익재단으로 시작했고 지금도 개인 재산이 아닌 사회의 재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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