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그 이후…이쯤되면 '조직폭력'
[정희준의 어퍼컷⑨] 묵묵부답 우리은행, 무책임한 WKBL
성추행 그 이후…이쯤되면 '조직폭력'
박명수 우리은행 농구단 전 감독의 사건이 터진 이후의 전개과정은 이제까지 보아오던 성폭력 진행과정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가해자는 애꿎은 술에 책임을 떠넘기고 기억이 없다 한다. 주변인들이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왕따' 놓는다.

조사과정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이뤄진다. 남자 조사관이 '신체 특정 부위 봤느냐,' '특징이 뭐냐,' '재연해 봐라' 묻는다. 사건이 벌어진 기관과 그 감독기관 모두 은폐하기 급급하다. 피해자는 신경정신과 치료까지 받지만 결국 직장에 복귀할 엄두가 안 난다.

소속 선수 성추행으로 구속된 박 전 감독은 재판에서 술에 만취했고 감기약까지 먹었기 때문에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했다면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최연희 의원' 부류와 똑 같다.

그는 구속 전 부모와 합의를 시도하며 썼던 사과문에도 자신의 죄를 인정치 않았다. '본인의 뜻하지 않은 실수'로 인해 부모님께 '송구스럽다'며 시작한 사과문은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끝을 맺는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는 커녕 '잘못했습니다'도 '죄송합니다'도 아니고 죄송스럽게 '생각'한단다. 이쯤 되면 외교문서 뺨치는 언어구사다.

익숙한 폭력, 친근한 폭력
▲ 지난해 3월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열린 2006 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 우리은행 통합 챔피언 기념 리셉션에서 김원길 한국여자농구연맹 총재(왼쪽 두번째), 박명수 감독(오른쪽)을 비롯한 내빈들이 케이크 컷팅을 하고 있다. ⓒ뉴시스

그는 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까. 아니 오히려 억울하다 생각할 것이다. 그에게 소속선수들에 대한 성희롱과 성추행은 밥 먹는 것 만큼이나 일상적인 것이었으니까. 한 기자가 그와 식사하며 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의 귀를 의심케 한다. "전 '룸싸롱' 안 가요."

현재 피해 선수의 동료 중 절반 정도는 피해 선수를 못마땅해 한단다. "왜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들었냐", "너 때문에 우리 감독님이 감옥 가게 생겼다"면서. 이를 듣고 어떤 이는 어이없다 한다. 그러나 나는 달리 표현하고 싶다. '안타깝다'. 폭력에 대한 무시무시한 자발적 동의다. 그들은 오랫동안 행해진 폭력에 스스로 순응한 것이다. 그래서 피해 선수는 팀에 합류하지 못하고 현재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이는 박명수 전 감독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체육계에 만연한 문제다. 물론 여자 팀 지도자 중엔 선수들을 정말 딸처럼 여기고 (박명수 전 감독처럼 입으로만이 아니라) 그들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훌륭한 참된 지도자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개념을 완전 상실한 상당수 몰지각한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 선수들을 폭행하기도 한다. 그래 놓고 기자를 앞에 두고 버젓이 하는 이야기가 가관이다. "운동만 가르치나. '밤일'도 가르쳐야지." 고등학생도 여기에 포함된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은 차라리 그냥 잊으시라.

가해자 보호하고 피해자 방치한 우리은행

몇 년 전 친한 기자가 "여자 선수들 너무 불쌍해"라고 이야기 할 때 나는 그냥 못 돼 먹은 몇몇 감독의 경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여자선수들은 그들을 둘러싼 '구조' 안에서 '조직적'으로 당한다. 그 구조와 조직은 이번에 드러났듯 소속팀과 연맹이다.

우리은행은 4월 26일 박명수 전 감독의 사퇴를 발표하며 '일신상의 이유'라 둘러대며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특히 우리은행은 가해자인 감독은 해고도 징계도 않고 퇴직금까지 챙겨서 내보내고 피해 선수는 사건 무마를 위해 회유하고 압박했다. 가해자를 보호하고 피해자를 궁지로 몬 것이다.

이번 사건은 엄연한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이다. 따라서 우리은행은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를 징계하고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우리은행은 사건 발생 이후 피해선수에 대한 보호 조치는 물론 입장 표명조차 취하지 않고 있다. 굳세게 버티고 있을 뿐이다. 이번 사건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방관하는 우리은행 노조에 대해서도 유감스러울 뿐이다. 하여튼 독자 여러분! 앞으로 우리은행이 고객 위한다고 나서면 다 거짓말인 줄 아시라.

WKBL 핫라인? '쇼'를 해라
▲ WKBL 홈페이지에 공지돼 있는 'WKBL HOT LINE' ⓒ프레시안

이번 사건에 대응하는 여자프로농구연맹(WKBL)의 행태는 참으로 한심하다. 우선 입장표명도 없다. 당연히 열렸어야 할 징계위원회도 열리지 않았다. 징계의 최저선은 당연히 영구제명이다. 그러나 연맹은 무슨 눈치를 보는지 징계위원회를 소집하지 않고 자신의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 박 전 감독의 코트 복귀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말처럼 들리는 이유가 괜한 데 있는 게 아니다. 그가 감옥에서 나오면 다시 쓰겠다는 의미인가?

리그에서 성폭력을 추방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내놔야 하지만 그런 이야긴 코빼기도 안 보인다. 총재가 '국회의원'이라 그런가? 역시 성폭력엔 관대한가 보다. 이번 사건 이후 움직임을 보였다는 게 전화선 하나 개설한 거다. 이름하야 '핫라인.'

그러나 이도 알고 보니 기존 선수고충처리 전화상담의 이름만 바꾼 것이었다. 호기심에 전화를 해봤다. 선수들이 전화를 한다면 아마도 훈련이 끝나고 전화를 하겠지 하는 생각에 오후 6시쯤 전화를 하니 핫라인을 담당한 협회 임원이 전화를 받는다. 핸드폰으로 자동 연결 되는 듯하다. 그런데 지금 전화 받기 곤란하니 8시 넘어 전화하란다. 한 방송사 PD가 한 말이 생각났다. "거기 전화 했더니 지금 바쁘다고 나중에 전화 하라고 그러데요." 8시 넘어 전화 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10시쯤 전화 했다. 연결됐다. 접수한 후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제가 판단해서 총재님께 보고할 필요가 있으면 보고하죠"라고 대답한다. 그럼 총재는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총재님이 조사할 필요가 있으면 조사하시겠죠" 그런다. 총재가 직접 조사할 리는 없을 테고 누구에게 시키냐고 물어보니 "어…" 한참을 기다리다 답답해진 내가 먼저 물어봤다. "이를 대비한 무슨 위원회 같은 것은 없나요?" 없단다. 연맹 안에 이러저러한 위원회들이 있으니 그런 걸 활용하지 않겠냐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또 물어봤다. 선수의 신분과 프라이버시는 철저하게 보장된다고 기사에서도 봤고 홈페이지에서도 봤는데 그런 식으로 하면 과연 비밀 보장이 되겠냐고. "아니 그게요, 일을 하다 보면 시행착오도 있고… 하여튼 그런 전화는 안 와야 되지 않겠어요?"

여자 프로농구선수들, 고민이 있어도 이쪽으로는 전화하지 않길 바란다.

스포츠 하는 여성은 '버린 자식'인가

여성계가 끈질긴 싸움을 하며 스스로의 권리를 찾아 가는 지금의 '현대사회'에서도 버려진 여성들이 있다. 바로 스포츠 하는 여성들이다. 이들은 경기장에서 그들의 운동기량으로 많은 이들을 즐겁게 하고 조국에 메달을 바치며 칭송을 받기도 하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어둠 속에 있다. 과거 검투사들의 '현대판 버전'이라면 과장일까.

여자의 경우는 프로선수들조차 합숙을 해야 한다. 남자 프로선수들은 출퇴근을 하는데 결혼한 여자 선수조차 합숙을 해야 한다. 일거수 일투족을 감독, 코치, 매니저, 구단 직원, 협회 사람들에게 감시 당한다. 주말엔 외출, 외박을 나간다. 군인처럼. 팀 선택이나 트레이드, 방출의 경우 어느 정도 인정 받는 선수라도 본인의 의향은 철저하게 무시된다. 연봉 협상? 그런 거 없다.

선수생활을 마치면? 아무 것도 없다. 그나마 몇 안 되는 감독, 코치 자리까지 모두 남성들에게 뺏긴 상황이라 자신의 운동경력을 지도자로 연결시킬 방법은 없다. 여자 프로농구와 프로배구의 감독, 코치 수는 현재 총 23명인데 그 중 여자는 우리은행 농구팀의 코치 단 한명이다.

약진하는 여성계, 암흑의 여성스포츠계

이들이 선수생활 은퇴 후 사회에 나가서 가질 수 있는 직업은 찾기 힘들다. 결국 상당수 여성 선수들에게 은퇴란 사실상 빈곤층으로의 추락을 의미한다. 그래서 해체가 결정된 어느 지자체 소속 비인기 종목 팀의 감독은 선수들을 앞에 두고 눈물 겨운 한 마디를 한 것이다. "내가 어떻게든 노력해 볼 테니 너희들 제발 술집만은 가지 말아라."

사회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진보하고 있고 또 여성계는 힘찬 진군을 거듭하고 있지만 여성스포츠만큼은 높은 철조망에 둘러싸인 채 잊혀진 땅, 버려진 땅이 됐다. 사실상 '왕따'였다. 그래서 여성계의 진보가 화려한 만큼 씁쓸하고 또 그 만큼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체육계는 자정능력을 상실했다.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조차 포기했단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지 도대체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절대 포기하지 않기 바란다. 제발.

평창 동계올림픽? 그놈의 금메달을 향한 과정에서 또 얼마나 많고도 다양한 폭력이 벌어질까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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