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전엔 <경향> <한겨레>…오늘은 <한겨레>뿐
[기자의 눈] 비정규직의 목숨 외면하는 언론
2007.11.01 10:40:00
닷새 전엔 <경향> <한겨레>…오늘은 <한겨레>뿐
한 사람의 비정규직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세상을 떠난 데 이어 불과 닷새 만에 또 한 명의 노동자가 분신했지만 역시 언론은 조용했다.
  
  1일 신문지면에 가득한 뉴스는 김경준 전 BBK 대표가 이르면 11월 중순 경 귀국한다는 소식과 이로 인한 대선 판도 변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에 몰려 있는 시선들 뿐이었다.
  
  비록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다고는 하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서울우유의 유제품 운반기사 고철환 씨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올해 들어 세 번째 분신이었다. 지난 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라며 분신한 허세욱 씨, 불과 닷새 전 "인천 전기원 파업은 정당하다"며 몸에 불을 붙인 정해진 씨, 그리고 또 한 명의 노동자가 몸에 불을 붙였다. 얼마 전 무자비한 단속에 지쳐 스스로 목을 멘 노점상 이근재 씨까지 포함하면 한 해 동안 네 명이나 사회의 외면 속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관련 기사 : 20년 전기공 故 정해진 씨가 분신하기까지…, "노조 인정해 달라" 서울우유 운전기사 분신)
  
  닷새 전엔 <경향>·<한겨레>만, 이번에는 <한겨레> 뿐
  
▲ 한 사람의 비정규직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세상을 떠난 데 이어 불과 닷새 만에 또 한 명의 노동자가 분신했지만 역시 언론은 조용했다. 사진은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에 마련된 정해진 씨의 빈소 모습.ⓒ프레시안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고철환 씨가 분신한 지난달 31일, 정해진 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영등포 한강성심병원을 찾아 "이명박은 하루에도 스무 번 씩 실어주는 언론이 노동자의 절규는 외면하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냐"고 질타했다. 취재 중인 기자들을 향해 "카메라 들고 다닐 자신이 있냐"고도 물었었다. (☞관련 기사 : 이소선 "이명박은 하루 스무 번 씩 실어주면서…)
  
  정해진 씨의 죽음을 전한 것은 일간지 가운데 오직 두 곳, <경향신문>과 <한겨레> 뿐이었다. "언론이 더 나쁘다"는 이소선 여사의 비판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소선 여사의 질타 역시 귀 기울이는 언론은 없었다. 화물연대 서울경기지부 서울우유지회에서 두 명의 노동자가 분신을 시도하고 한 명의 노동자가 3도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이 소식을 전한 것은 오직 <한겨레> 뿐이었다.
  
  "합법적으로 하면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안 가져주니까…"
  
  병원에서 치료 중인 고 씨의 동료들은 모두가 잠든 새벽 1시 조용히 자신의 차에서 행한 고 씨의 행동에 대해 "합법적인 틀 안에서 뭔가 해보려 하면 아무도 관심을 안 가져주니까 분신을 하려 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10월 15일부터 전면 파업을 벌이고 있는 화물연대 서울우유지회의 핵심 요구는 "화물연대 인정"이다. 화물차 운전기사들은 노동자로 인정을 받지 못해 노조 설립 자체가 가로막혀 있는 소위 '특수고용 노동자'이기 때문. 법원은 이들을 노동자가 아닌 개인 사업주라고 보고 있지만 이들은 스스로가 노동자라고 주장한다.
  
  서울우유 뿐 아니다. 전국의 곳곳에서 화물차 운전기사들이 스스로의 노동권을 인정받기 위해 크고 작은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세상은 이들에 대해 무관심하다.
  
  故 정해진 씨가 소속돼 있던 건설노조 전기원분과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나 당연한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130일이 넘도록 파업을 벌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의 싸움을 알지조차 못했다.
  
  현대차의 파업에는 노조 게시판까지 들춰내던 언론이…
  
  결국 세상의 외면이 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삶을 단절하려하는 선택으로 내몰게 한 것이다. 사회의 무관심과 외면의 1차적 책임이 언론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날 아침 신문들을 들여다보며 현대차노조의 파업 때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단위 사업장의 임금협상에는 노조의 자유게시판까지 들춰내며 1면부터 사설까지 할애해주던 언론들이 한 생명이 목숨을 내놓고 외치는 목소리에는 고작 200자 단신도 내놓지 않고 있는 현실이 비정상적으로 느껴진 것은 지나친 감상일까?
  
  정해진 씨의 죽음에 박대규 건설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솔직히 말하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죽는 일이라는데 그 결심으로 끝까지 싸웠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쉽지 않다는 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자기 손으로 하는 사람들의 절규를 외면하는 사회, 누가 이들의 선택에 대해 극단적이라 평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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