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서 발뒤꿈치 들고 서 있다"
[인터뷰] K대체대 비리 고발한 강사 김대성 씨
2008.03.26 11:22:00
"벼랑 끝에서 발뒤꿈치 들고 서 있다"
지난 24일 수원지방검찰청은 수사 결과 하나를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불거졌던 K대 체육대 비리에 관한 수사 내용이었다. 수사 결과는 '무혐의'. 그러나 이 같은 사실에 주목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이런 검찰 수사 결과를 누구보다 분개하면서 지켜본 이가 있었다. 바로 이번 사건을 검찰에 고발했던 이 대학 전직 시간강사 김대성 씨. 당시 그는 박사 과정 합격 대가 금품 요구, 논문 대필, 입학 부정, 공금 횡령, 강의 관련 스키장 리베이트 등 총체적 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교수 및 졸업생 등 20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 관련 기사: "체대 논문 통과 60만 원, 박사 입학 250만 원" )

지난해 12월 그가 체육계 최고의 명문대로 꼽히는 이 대학의 비리를 폭로할 당시 그는 '체육계 최초 내부 고발자'라는 수식어와 함께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때 뿐, 언론과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검찰의 수사는 수개월간 맥없이 이어졌다.

결국 '무혐의'로 가닥을 잡은 검찰의 결과 방향이 지난 10일부터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소식을 접한 김대성 씨는 "말도 안 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검찰의 수사 과정을 지켜봤던 그는 "한마디로 부실 수사"라고 말했다. 대체 어떤 이유에서일까? 검찰 수사가 진행중이던 지난 19일 서울 강남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국제 전화는 돈이 들어 힘들다'고 해놓고서…"
▲ K대 체대의 비리를 고발한 김대성 씨. ⓒ프레시안

지난 24일 검찰은 '무혐의' 결과와 함께 "고발인의 주장만 있을 뿐, 고발인이 핵심 증인으로 제시한 전 대학원생이 외국에 체류하면서 조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핵심 증인'이 협조를 하지 않아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김대성 씨의 주장은 전혀 달랐다.

"수사가 처음부터 제대로 되지 않았다. 수사관은 전화비 얘기를 하며 주저했다. '국제 전화는 돈도 들고 해서 힘들다'고 하더라. 수사를 하려면 증인이 필요하고, 증거가 필요한 거 아니냐고 했다. 그래도 곤란하다고 해서 이메일 주소를 알려줬다. 그런데 확인을 해보니 아무런 메일도 안 왔다더라."

김대성 씨는 또 검찰이 지목한 '핵심 증인'에 대한 조사가 어려웠다고 하더라도 그가 연루된 사건 이외의 의혹은 검찰이 충분히 수사할 수 있는 여건이었다고 지적했다. 그가 적시한 5가지 의혹 중 나머지 사건은 '비싼 국제 전화'를 이용하지 않고도 수사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정작 수사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증인이 아니라 검찰이었다.

"처음 고발인 조사를 받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어디에 가서 어떻게 수색을 하면 증거가 나올 거라며 방법까지 세세하게 알려줬다. 그런데 수사관은 '(수색하러) 갔다가 증거가 안 나오면 어떡하죠'라며 걱정부터 하더라. 심지어 자기들이 찾아야할 증거를 나보고 갖고 오라고, 아니면 증거를 줄 사람을 섭외해 달라고 했다. 누워서 떡먹기 식으로 수사하겠다는 얘기였다. 그러고선 그 증인 때문에 모든 게 되지 않다고 하다니…."

당시 약 6시간에 걸친 조사를 받으면서 그는 '이건 아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심지어 언제든지 수사에 협조할 의향이 있었던 그에게도 한 차례 고발인 조사 이후 검찰 측에서 별다른 연락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추가로 알려줄 수 있는 증거까지 확보돼 있다고 밝혔는데도 연락은 역시 오지 않았다.

"검찰로부터 연락이 없었다. 현재 전화비를 못 내 핸드폰도 끊긴 상태다. 제대로 수사를 한다면 충분히 이메일로도 연락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고발을 하고서도 혼자 바보가 된 것 같다"

검찰은 또 "다른 증인들도 모두 고발된 내용에 대해 모른다고 진술했다"면서 "피고발인을 포함, 관련자 5~6명에 대해 소환 및 전화 조사했으나 전면적인 수사를 벌일만한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서도 김대성 씨는 수사가 제대로 된 것이 아니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증거 수집조차 팩스로 넣어달라고 한 게 전부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수사관에게 전화를 했더니 인정하는 얘기를 했다. 또 자료가 굳이 없어도 수사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내가 소설가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고 그 많은 양의 고발장을 어떻게 꾸며서 썼겠나? 실명까지 거론하면서…."

또 그는 방대한 양의 고발 내용을 놓고 단 한 명의 수사관이 수사를 맡은 것도 이해되지 않는 점이라고 말했다.

"증거를 찾아서 그 많은 양의 자료를 갖고 왔다고 해도 어떻게 수사관 혼자서 그걸 하나. 기자들조차도 수사관이 기본적으로 두세 명은 붙어야 하는 사건인데 왜 조사과 소속 수사관이 혼자 이 사건을 맡았는지 의아해하더라."

그는 "길가는 사람들에게 내 고발장을 보여주고, 수사관 한 명이 부실하게 수사하고 덮을 사안이냐고 물어보면 모두 아니라고 할 것"이라며 "봐주기식 수사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낸 고발장에는 자세하게 사람과 정황을 상세하게 적었다. 또 조사 받는 과정에서도 조사를 해야 하는 장소와 계좌까지 다 얘기했다. 정황도 명확하다.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 같은 경우 졸업에 필요한 과목에서 F 학점을 받았는데도 졸업했다. 제대로 파면 다 나오게 돼 있다. 고발을 해놓고서도 나 혼자 바보가 된 것 같다. 짜고 치는 고스톱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고발당한 교수들이 오히려 보직을 맡았다"

사실 국내 대학원 입학 부정과 논문 대필 등은 이미 널리 알려진 고질적 병폐다. 김대성 씨는 당시 실명과 구체적인 정황을 언급하며 고발한 사건도 학계 관계자는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라며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왜 검찰은 이렇게 고발인이 보기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사를 한 것일까?

김대성 씨는 같은 지역에 있는 학교와 검찰 사이에서 서로 돕자는 움직임이 있지 않았겠냐고 지적했다.

김 씨가 지난해 12월 고발한 내용 가운데에는 이 대학 총장을 역임했던 세계태권도연맹 총재에 관한 횡령 의혹이 포함돼 있었다. 그는 고발장에서 "2003~2004년도 전국체전을 위해 총 3~4억 원 정도를 출전비로 경기도체육회에서 수령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K대에 지급된 출전비는 당시 체육부장인 J교수의 측근 통장에 입금돼 모 스포츠연맹 선거 자금으로 유입됐다"고 밝혔었다. 현직 이사장의 아들이자 스포츠계의 거물을 고발했으니 학교 측에서 수사를 막으려 애를 쓰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그는 고발을 전후한 학교 측 대응을 목격하며 이 같은 심증을 더욱 굳혔다. 그가 20여 명의 교수와 대학원생을 고발했지만 학교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오히려 고발장에 명시된 교수들은 이후 체육대 내 주요 보직을 맡았고 논문 대필 의혹을 받고 있는 대학원생도 이번 학기 강의를 맡았다. 심지어 비리 의혹과 연루된 교수의 제자인 한 대학원생은 아직 석사 과정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강의를 맡았다고 했다.

"거명된 교수들은 '김대성을 가만둬선 안 된다', '체육계에 발을 못 딛도록 해야 한다'고 사석에서, 또 공석에서 말했다고 한다. 떳떳하다면서 왜 제대로 된 반론을 펴거나 고소고발을 하지 않나? 떳떳하면 당신들이 그렇게라도 대응하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하면 사건은 더 커진다. 나는 잃을 게 없다. 10년 넘게 해왔던 일 다 접을 생각 하고 시작한 일이다."

"이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나란 존재는 있을 수 없게 된다"
▲ "내 꿈이 사라진 게 현실인데, 이 사회가 변하지 않는 이상 나 같은 이는 존재할 수 없는 사회가 된다." ⓒ프레시안

김대성 씨는 "벼랑 끝에서 발뒤꿈치를 들고 있는 기분"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는 지난해 고발을 준비하면서부터 지난 10년간 맡았던 시간강사직을 관둬야 했다. 그나마 박봉이었던 일자리조차 잃게 된 것이다. 앞으로의 진로 역시 막막하다. 그는 현재 휴대전화 통화료를 못 내서 신용불량자가 된 상황이라고 했다.

학내에서 소문이 퍼지면서 그와 친했던 이들조차 캠퍼스 내에서 그를 만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그가 폭로한 비리를 알고 있는 이는 학내에서 그 혼자만이 아니었지만 막상 그를 돕겠다고 선뜻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대학 내 비리에 관심이 있거나, 그가 찾아갈 만한 사회단체도 없었다. 그는 "시민단체의 간부들도 대부분 교수이고, 함부로 나서서 같은 교수에게 비리를 저질렀다고 손가락질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철 변호사처럼 지원 세력이라도 있으면 좀 더 쉬울 것이다. 정신적으로 내 편이 있고, 같이 일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문제는 훨씬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고발 당시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 '사제단을 찾아가보라'는 글이 있었다. 실제로 교단 관계자에게도 물어봤다. 그렇지만 대답은 회의적이었다. 삼성 때문에 정신이 없기도 하지만, 이쪽 일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나도 개인적으로 도움을 받고 싶고, 어디에 기대고 싶다. 1년 넘게 혼자서 싸우고 있는데 정말 답답하다. 하지만…."


고발을 결심한 뒤 그는 현재 지인들의 신세를 지면서 부모님과는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교수하겠다는 아들을 10년 넘게 공부시켰는데 내부 고발자가 되어서 뛰쳐나오고, 당연히 걱정하시지 않겠나"라며 "물론 부모님이 해주시는 밥 먹으면서 몸은 편하게 있을 수 있겠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로운 정도가 아니다. 내 꿈이 사라진 게 현실인데, 이 사회가 변하지 않는 이상 나 같은 이는 존재할 수 없는 사회가 된다. 이제 내가 잘 산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해당 문제점을 완전히 도려내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 다시 들어가서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이제 이 바닥에서 내동댕이 쳐진 상황이다. 나 하나 살겠다고 이러는 게 아니다."

"거짓이라면 꿈 다 저버리고 이럴 수 있겠나"

외로운 싸움, 게다가 검찰의 수사까지 무혐의로 발표가 된 상황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 번 검찰에 제대로 된 수사를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뻔할 거라는 생각은 든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게 될까. 알면서도 계속 그러는 이유는 고쳐져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돌아가신 분 소식을 접하면서 생각도 많이 했고, 청와대 앞 일인시위도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선 꼼짝하지 않는다.

좀 더 많이 알려져야만 사람들이 이 사회가 그래도 조금씩 고쳐져 나가고 있다는 걸 인식할 것이다. 그래야 저 같은 사람이 더 많이 생길 수가 있다. 고발한 내용이 거짓이었다면 나도 이렇게 안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꿈을 다 저버리고 이러고 있겠나. 확실하니까 이렇게 나섰고, 또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다."
김대성 씨의 이런 주장을 놓고, 수원지검 측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며칠 전 보도는) 공식 발표가 아니었다"며 "따라서 사건에 대한 어떤 입장도 공식적으로 밝힐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이 관계자는 "결재가 끝난 뒤 (사건을 맡았던) 부장검사의 인사 이동이 있었고 현재 이에 대한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책임자가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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