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여성'과 '보수 남성'의 상징적 대결
[우리 미래에 표를 던지자 ⑥] 심상정 대 손범규
'진보 여성'과 '보수 남성'의 상징적 대결
<프레시안>과 <진보와개혁을위한의제27>('의제27', 공동대표: 정해구, 홍종학, 김호기)은 오는 4월 9일 총선을 맞이해 공동기획 '우리 미래에 표를 던지자'를 준비했습니다. 이 기획은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을 결합하는 '아카저널리즘'의 시각에서 이번 총선을 다양한 각도에서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그 네 번째로 한나라당 손범규 후보와 진보신당 심상정 후보가 맞서는 경기 고양 덕양갑 지역구에 대한 오유석 교수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오는 4월 9일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한 후보등록이 3월 26일 마감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는 17개 정당이 참여해 모두 1309명의 후보가 등록했으며 이 중 여성후보는 216명으로 지난 17대 총선 156명에 비해 다소 증가한 수치이지만 여전히 전체 후보의 16.5%에 불과하다. 지역에 출마하는 선출직의 경우, 전체 1119명 중 여성후보는 132명으로 11.79%에 그쳐 지역 출마자간 남녀불균형은 더욱 심각하다.
  
  그나마 지난해 정당 최초로 선출직 30% 여성 공천을 의무화한 민주노동당의 경우, 전체 선출직 후보의 44.6%인 46명의 여성 후보가 출마했고, 새로 창당한 진보신당 역시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26.4%인 9명의 여성이 출마함으로써 '진보'가 역시 '여성'와 함께 가고 있음을 보여줬다(아래의 <표>를 볼 것).
  
▲ 프레시안

  진보신당 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여성후보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후보는 경기 고양 덕양갑에 출마한 심상정 전 의원이다. 지난해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을 통해 부각된 심상정 후보는 오랜 동안 학생출신 여성노동운동가라는 남성적 진보투사로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여성지도자'의 이미지를 내걸고 지역민들의 표심을 모으고 있다.
  
  3월 27일 보도된 동아일보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이 22.5%를 기록했는데 이 지지율은 19일 발표된 중앙일보 여론조사 지지율 14.3%와 25일 발표된 한겨레 여론조사 지지율 15%에서 약 8%포인트 가량 증가한 수치로 심 후보의 상승세가 무섭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과 결별하고 지난 3월 2일 새롭게 창당한 정당임을 감안한다면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상승하고 있는 심상정 후보 지지율은 한국총선 정치의 대표적인 '인물론'이 고양갑 선거에서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프레시안

  심상정 후보와 접전을 벌이고 있는 상대는 한나라당 변호사 출신 손범규 후보다. 심상정 후보가 여의도출신 중앙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갖고 있다면, 손범규 후보는 출마지역에서 2년 동안 한나라당협위원장으로 활동해 왔고 지역주민들과 서민들을 위해 3000여 건의 무료상담 서비스를 진행하며 지역을 다져 온 지역정치인이다.
  
  따라서 손 후보가 선거 초판에 얻은 지지율, 예를 들어 3월 19일 중앙일보 여론조사 지지율 31.9%, 3월 23일 한겨레 여론조사 지지율 28.6%는 비교적 지역주민에게 일찍부터 알려져 있었던 후보라는 점과 현 집권정당후보라는 여당의 프리미엄이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덕양갑 선거에는 심 후보와 손 후보 외에도 통합민주당 한평석 후보, 무소속 김태경 후보, 15대 국회의원을 지낸 자유선진당의 이국헌 후보, 평화통일가정당의 김현수 후보 등 6명의 후보자들이 출사표를 던졌지만, 현재의 판세는 지역기반이 거의 없던 인물인 심상정 후보와 한나라당 프리미엄을 안고 있는 손범규 후보의 대결로 압축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 덕양갑에서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다. 일각에서 예견하는 한나라당 의석 200석의 파괴력에 대한 견제심리가 고양지역 여론 주도층에게도 영향을 미치면서 지난 3월 25일 고양지역 시민사회지도자 33인은 거여 한나라당에 맞서 심상정 후보와 한평석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 ⓒ프레시안

  이런 상황은 출범한 지 한 달여밖에 지나지 않은 이명박 정부에 걸었던 기대가 급강하면서 2008년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와 위험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고, 그에 대한 대안이 명백히 '정당' 중심으로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지역 서민들의 입장을 대변할 의원을 '한 명'이라도 더 국회로 보내야겠다는 유권자들의 심리를 반영하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오늘 보도된 바에 따르면 단일화 성사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한다.
  
  남성과 여성, 보수와 진보, 정당과 인물의 중층적 대결
  
  하지만 나는 덕양갑에서 또 하나의 잠재된 선거정치를 읽고 싶다. 그것은 진보 여성과 보수 남성의 대결구도다.
  
  고양시는 17대 국회에서도 2명의 여성 국회의원을 배출한 곳이다. 현 통합민주당의 한명숙 후보(일산 동), 한나라당의 김영선 후보(일산 서)가 그들이다. 또 이번 총선에서는 17대 비례대표 의원인 김현미 의원이 일산 서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과 함께 나란히 덕양갑에서 심상정 후보가 '여성' 후보로 뛰고 있다. 일산구보다 좀 늦었지만 덕양구 역시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 선 곳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중산층 베드타운이다. 이러한 특성은 고양지역 유권자의 학력, 직업, 계층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현재 손 후보와 심 후보는 이 지역 주민들의 '표심'을 흔드는 필수조건으로 교육공약을 핵심 정책으로 내놓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맞벌이 혹은 전업 주부 중산층 밀집지역의 대단히 높은 교육열이라는 그럴만한 지역 배경을 고려한 것이다.
  
  손 후보가 덕양구를 전국 최고 학군의 '교육특별구'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있다면, 심 후보는 '공교육 혁신특구'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손 후보의 전략은 외국대학 분교와 자립형사립고, 과학고 유치에 힘을 쏟겠다는 것이고, 심 후보의 전략은 자율형 공립학교를 근간으로 한 일반계 고교 혁신을 위한 교육 환경 및 프로그램 개선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교육문제를 둘러싸고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양 후보 간 보수와 진보의 차이 외에도 여기에는 남성과 여성이 각기 바라보는 교육의 특성이 담겨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자녀 교육의 일선 담당자는 30~40대 여성이다. 학교급식 먹거리로부터 안전한 통학과 퇴폐향락 환경으로부터 청소년보호, 그리고 탈선 및 학교폭력으로부터 청소년들을 지켜내는 이른바 '생활밀착형' 정치를 해나가고 있는 주체는 바로 여성들이다.
  
  고양시의 여성들은 누구보다도 이런 생활정치 실현에 앞장서 왔다. 다른 지역의 여성 유권자들은 '여성후보'가 없기 때문에 뽑아주고 싶어도 뽑을 수가 없었지만 고양시는 예외였다. 17대에도 고양시 여성들은 여성을 더 많이 뽑아 국회로 보냈고 이번에 그 가능성은 더 커진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여성이 여성을 뽑아야한다는 생물학적 투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진보'가 무엇을 말해야 하며, 그 진보를 담을 그릇은 누가되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 덕양갑이 갖는 상징성은 결코 작지 않다. 막강한 조직 동원이 가능한 여당 남성 후보와 정당의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신생 정당의 여성후보가 벌이는 대결은 이 땅의 진보주의와 페미니즘의 새로운 정치적 시험대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해, 덕양갑은 진보와 보수, 여성과 남성, 인물과 정당이라는 가장 극명한 대립축이 불순물 없이 선명히 경쟁을 펼치는 현장인 셈이다.
  
  이 점에서 덕양갑은 그 득표결과와 무관하게 지금까지 우리 선거정치에서 여성후보와 여성유권자들에 대한 잘못된 편견들에 종지부를 찍을 역사적인 '중대선거' 현장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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