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성폭력 사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망각과 충격, 그리고 진부한 해법
2008.07.15 08:38:00
대구 성폭력 사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4월 대구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은 충격이었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10대였고 집단적으로 수개월에 걸쳐 성폭력과 성희롱이 저질러져 왔다는 점에서 그랬다. 2004년 밀양 사건이 잊혀질 만한 때 다시금 터진 끔찍한 아동·청소년 성폭력 사건이다.

그러나 학교와 교육청은 이 사건을 감추기에 급급했고 정부 역시 '그 나이 또래의 충동적 행위' 정도로 이해하는 데 그쳤다. 피해자들이 진술을 번복하고 피해자가 더 이상 나서지 않으면서 이 사건은 세간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다.

하지만 사건을 가까이서 지켜본 대구 지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달랐다. 이들에게 이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서 이들은 아동·청소년 성폭력 사건에 대처하기 위한 대구시민사회공동대책위를 꾸렸고, 아직 문제해결의 끈을 놓지 않았다. 지난 2004년 밀양 사건 이래 또 한 번의 충격적인 아동·청소년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지만, 여전히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판단에 공감하는 이들이 서울에서 모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7개 단체는 14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10대 집단 성폭력 특성과 대책 논의를 위한 토론회"를 열고 우리 사회 청소년 성폭력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왜 너만 당했냐"

밀양 사건과 대구 성폭력 사건의 공통적인 특징은 성폭력 가해자가 10대 초등학생과 중학생이라는 점, 성폭력이 집단적(대구 사건의 가해자, 피해자는 71명)이고 상습적(1년 이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 등이다. 또 성폭력이 학교폭력과 연계됐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가해자의 저연령화는 그것이 단순히 심각한 문제라거나 놀랍고 믿을 수 없는 일이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어린 가해자들이 다수의 남성이 다수의 여성에게 가하는 성적 폭력의 양태를 배워 성폭력을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미경 소장은 "울산 지검 특별수사팀이 밀양 사건 피해자에 대해 '성폭력을 당하면서도 밀양에 계속 간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 똑같이 밀양에 가서 친구는 당하지 않았는데 너는 왜 당했는지' 등처럼 피해자자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투로 심문했다고 알려져 있다"며 "여성 피해자에게는 비난이, 남성 가해자에게는 옹호와 관용이 취해지는 공식이 이들에게도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폭력은 '위계' 속에서 용인된다?

또 이 소장은 성폭력이 집단 내 위계와 폭력의 구조와 맞물려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대구 사건에서 상급생이 하급생에게 폭력을 행하고 그 하급생으로 하여금 다른 가해를 하도록 했고 이에 저항하는 사람에게는 집단 따돌림을 가했다"며 "또 학교의 '짱'과 6학년이 이 사건에 연루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성폭력에 대해 남부교육청은 남자청소년 간에 발생한 것은 성폭력이 아니며, 학교폭력은 더더욱 아니고, '자기들끼리 좋아서 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이 소장은 "이 같은 인식은 얼마 전 대법원이 상관이 부하병사의 젖꼭지를 비틀고 성기를 손등으로 때린 것이 추행이 아니라고 판결한 뉴스를 떠올리게 한다"며 "집단 내 위계와 폭력의 구조에 민감해지지 않으면 또 다른 가해자가 됨으로써 피해를 극복하는 방식을 우리는 성장이라고 일컫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폭력이 집단적이고 상습적으로 이뤄졌다는 점도 한 특징이다. 어린 아이들의 '단순한 호기심'이나 '충동' 등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대구 성폭력 사건에서 학교장은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을 교장실로 불러 '위인전'을 읽혀 훈육하는 데 그쳤다. 학교 당국과 주위 어른들이 이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임혜경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소장은 "10대 성폭력 가해자의 경우, 수가 많다는 것이 성인 가해자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이다"라며 "다수를 구성해 과감해지고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제압할 수 있는 과정에서의 쾌감, 남성성을 과시하는 경험, 영웅심을 갖는 과정으로 성폭력을 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판에 박힌 대책은 이제 그만"

이 같은 청소년 성폭력에 대한 처벌은 대책이 될 수 없다. 아예 처벌 자체가 불가능하다. 청소년 성폭력 가해자의 연령이 낮아지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12~14세 촉법소년(형벌 법규에 걸리는 행동을 한 청소년)은 보호처분만 가능하며 12세 이하 촉법소년은 보호처분도 불가능해 '지도'와 '훈계'만 가능하다. 2007년에 법무부는 범죄연령이 낮아지고 있다며 보호처분이 가능한 촉법소년 나이를 10살로 낮추자고 제안하기도 했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유광진 한국여성의전화연합 가정폭력추방팀장은 체계적이고 실효성 있는 폭력예방교육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유광진 팀장은 "2001년부터 학교별로 연간 10시간 이상 성교육을 실시하도록 되어 있지만 이번 대구 사건의 경우에도 3년 간 제대로 된 성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정부와 교육청 차원에서 성폭력예방교육 전담 기구를 만들고 실행예산과 훈련된 교사를 확보해 연간 일정 시간을 성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음란물 공급처인 인터넷의 사용 제한, 학교 내 CCTV 설치, 학생 눈높이에 맞는 성폭력 예방 서비스, 인권존중 및 건전한 성 가치관 형성을 위한 인성교육 등과 같은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이미경 소장은 "이 같은 정부의 '급(急)'대책들 사이를 일관성 있게 묶어주는 '지향'을 찾아보기 힘들다"며 "십대의 성적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을 무성적(無性的)인 존재로 전제한다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미성년들은 이미 성적(性的)인 존재로서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인정하고 실천하고 있다"며 "십대의 보편적인 사회적 권리가 인정되지 않고 보호 시스템마저 부실한 상황에서 권리와 책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성인의 행동을 무비판적으로 모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라며 "진부한 대책을 뛰어넘는 과감한 실천이 필요할 때다"라고 지적했다.
▲ 대구 성폭력 사건은 이미 세간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지만 이 사건을 가까이서 지켜본 대구 지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달랐다. 이들에게 이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서 이들은 아동·청소년 성폭력 사건에 대처하기 위한 대구시민사회공동대책위를 꾸렸고, 아직 문제해결의 끈을 놓지 않았다. 지난 2004년 밀양 사건 이래 또 한 번의 충격적인 아동·청소년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지만, 여전히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판단에서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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