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한 세상을 가로 지르는 마지막 여정을 위하여
[북시네마] 코맥 맥카시 소설 [로드]에 대한 뒤늦은 리뷰
2008.08.20 16:09:00
황폐한 세상을 가로 지르는 마지막 여정을 위하여
아무래도 코엔 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여파 덕이다. 적어도 한국에선 그렇다. 일부 작가에 대한 심각한 편향이 존재하던 국내에서 폴 오스터를 제외하면 현대 미국작가가 이토록 주목을 끈 적이 거의 없다. 국내엔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있던 코맥 맥카시의 작품 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소설이 영화 개봉과 함께 출간된 후, 퓰리처상 수상작이기도 한 2006년작 [로드]가 출간됐다. 출간 직후부터 현재 인터넷서점 알라딘이나 교보문고 종합집계에서도 외국문학 부문 베스트셀러 상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통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 덕에 책이 떴다고 말하기엔 작가에게 너무 미안해진다. 코맥 맥카시는 그저 '영화 덕을 본 작가'가 아니라, 오히려 '영화에 영감을 준 뛰어난 작가'라 불리어야 하기 때문이다. [로드]가 단숨에 읽기에 결코 쉽지 않은 책인 건 사실이다.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가 결국 중간에 책장을 덮고 말았다는 독자들도 적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길을 걷는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모습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남쪽의 바닷가 어딘가를 향해 사람의 눈을 피해가며 길을 걷는 이들은 숲에서 추위에 떨며 잠이 들고 몇 날 몇 일을 굶은 채, 혹은 과일 통조림 하나로 겨우 끼니를 떼운 채 여행을 계속한다. 책에서 묘사되는 그들의 주변 풍경 역시 온통 잿빛이다. 하늘도 강도 길도, 심지어 방금 내려 쌓인 눈도 잿빛. 물론 이들이 입고 있는 옷도 오랫동안 먼지와 때를 뒤집어쓴 잿빛이고, 이들의 '떡진 머리'와 거의 목욕을 하지 못하는 몸 역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잿빛이다. 건물들은 버려져 있고 길은 폐허가 돼 있다. 곳곳에 역시 잿빛으로 변한 사람의 해골들이 늘어서 있다. 혹시나 다른 살아있는 사람의 흔적을 만나면 반가워하는 게 아니라 경계부터 하며 몸을 숨긴다. 아버지는 손에 권총을 단단히 쥔 채 아들을 다른 팔로 감싼다. 이 소설에서 색깔이 언급되는 장면은 부자가 어쩌다 코카콜라를 발견하는 장면, 그리고 아버지의 꿈에 대한 묘사 장면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거리는 이토록 황량하고 이들은 이토록 고통스럽게 여행을 계속하는 걸까. 아버지와 아들의 시점을 오가는 이 소설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직설법으로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아버지의 꿈에 대한 묘사를 통해, 그리고 부자간의 대화를 통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어떤 종류가 됐건 대재앙이 지구를 휩쓸고 간 자리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빈 집에 남은 감춰진 통조림을 챙기거나 심지어 사람을 잡아먹으며 살고있다. 문명이 사라진지는 오래됐다. 이들은 문명의 흔적만을 뒤쫓고 추억할 뿐이다. 편안한 수면과 풍족한 식사마저 그저 과거의 추억이 돼 버린 세상. 미래에 대한 꿈도 희망도 없이, 오늘 이렇게 끈질기게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와 목적도, 동기도 사라진 세상. 사람을 발견하면 일단 죽이거나 도망치고 봐야 내가 죽지 않는다는 공포가 당연한 세상. 끊임없이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라 말하지만, 정작 내가 죽지 않기 위해 우연히 마주친 어린아이가 굶어 죽어가는 것을, 혹은 간난아이가 다른 어른들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방치할 수밖에 없고, 이것을 '생존 기술'로 소년에게 가르쳐야 하는 세상. 남자의 아내는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오래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자에게 남은 유일한 삶의 목적은 어린 아들이다. 그렇기에 만약 자신이, 혹은 아들이 죽게 될 상황을 대비해 둘이 함께 죽을 수 있도록 마지막 총알을 권총에 남겨둔 상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면이 고스란히 펼쳐지고 있는 소설 속 세상은 그저 '절망'이라는 말로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코맥 맥카시는 이런 절망의 풍경을 두 사람이 여정 중 겪게 되는 일들과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려낸다. 일상적으로 쓰이는 '절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묵직한 말이었는지, 아니, 일상에서 우리가 이 무시무시한 '절망'이란 단어를 얼마나 남용하고 있는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고작 두 사람이 길을 걷는 게 내용의 전부인데도, 소설을 읽어나가는 동안 긴장과 숨가쁜 호흡, 그리고 심장의 두근거림이 계속된다. 아마도 단문으로 툭툭 끊어지는 건조한 문장들 덕이기도 할 것이다. 마치 눈앞에 그들의 모습이 당장에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묘사가 생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고 모텐센 주연의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그 생생함이 더할 것이다.) 결정적으로는, 이 잿빛 세상 속에서 그래도 오늘의 삶을 끈질기게 계속하는 두 사람의 서로의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의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낭비되는 말이 없는 지극히 간결한 토막 대화들 속에서, 우리는 부자관계를 넘어서서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동지이자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이 상대에게 얼마나 절박하게 의지하고 있는지 새삼 확인한다. 코코아 한 잔을 상대에게 챙겨주는 사소한 행위가 이 소설 안에서는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장면이 된다. 소설 속 세상은 다른 이에게 코코아 한 잔을 권하거나, 상대를 위해 통조림의 과일 한 조각을 남겨두는 것은 불가능한 곳이기 때문이다. 책의 광고가 강조하고 있는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의 정체는 다 읽고 보면 별 것 아닐 수 있다. 실제로 그 광고문구 때문에 마지막 장면을 기대하고 있다가 '겨우...?'라고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난데없이 뺨을 흐르는 이 눈물은 무엇이며, 시간이 지나도록 가슴을 먹먹하게, 눈을 뜨겁게 만드는 이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저 초라한 장면이 이토록 깊고 촉촉한 잔향을 남기는 이유는. 평소라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그것이, 너무나 깊은 절망 끝에 비로소 찾아온 것이기 때문일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 시대에 새로운 걸작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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