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엽기적인 '표절 의혹'에 왜 침묵하는가"
[기고] '주이란·조경란 표절 공방 사건'을 보면서
2008.10.06 11:14:00
"이 엽기적인 '표절 의혹'에 왜 침묵하는가"
신인 작가 주이란 씨가 자신의 첫 소설집 <혀>와 <프레시안>을 통해 공개리에 기성 소설가 조경란 씨의 표절 의혹을 제기한 지 열흘이 지났다. 주이란 씨는 지난 2007년 발행된 조 씨의 장편 소설 <혀>(문학동네 펴냄)를 놓고 자신의 단편 소설 '혀'를 베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관련 기사 : "저는 '영혼'을 도둑 맞았습니다" )

이런 주이란 씨의 의혹 제기를 놓고 조경란 씨와 문학동네 측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정작 주 씨의 공개적인 의혹 제기에는 소극적인 대응이다.

대다수 '표절 의혹 사건'처럼 이번 주이란 씨의 문제제기도 그냥 이대로 묻힐 분위기다. 그러나 정작 문단 안팎에서는 이 사건을 놓고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설가 김곰치 씨가 이런 상황을 놓고 문제의 핵심에 놓인 두 <혀>를 읽고 독후감을 보내왔다.

김곰치 씨가 표절 의혹의 실체를 가리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김 씨는 이 글에서 소설가의 시각으로 두 소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맛 보고, 사랑하고, 거짓말하는 혀"라는 문제의식과 그것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혀'라는 제목을 누가 더 잘 작품으로 구현했는지 짚으며 결론적으로 주이란 씨의 손을 든다.

문단 안의 아웃사이더의 시선으로 이번 공방에 대한 의견을 솔직하게 쓴 김곰치 씨의 기고 전문을 싣는다. <프레시안>은 앞으로도 이번 공방과 관련해 조경란 씨나 문학동네 측, 또 다른 제3의 의견을 가감 없이 지면에 소개할 예정이다. <편집자>

한국 문단에 거의 처음인 듯한 엽기적인 '표절 의혹 사건'이 발생했다. 현재까지 과정을 보자면, '조경란 주이란 표절 공방 사건'이 정확한 사건명이 될 것이다. 몇 언론에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특히 작가 주이란의 주장에 따르면, 일부 문장이나 문단을 표절한 것보다 더 심각한 범죄 행위를 조경란 씨가 저지른 것이 된다.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하는 것이다. 아이디어란 무엇인가. 사실상 작품의 원석(原石) 또는 씨종자가 아닌가.

신춘문예 심사위원의 자리에 앉았다가 남의 씨종자를 훔친 짓. '십 리에 사람 하나 볼 듯 말 듯한 흉년에도 지킨다'는 그 귀한 씨종자. (물론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 또는 씨종자라 할지라도 작품 전체를 장악하는 주제의식 상태로 키워가는 일은 작가의 또 다른 눈물겨운 노력을 필요로 한다.)

영광도서에 가서 주이란의 단편집 <혀>, 조경란의 장편소설 <혀>를 샀다. 집에 와 주이란의 책부터 읽기 시작한다.
▲ <혀>, (주이란 지음, 글의꿈 펴냄) ⓒ프레시안

'혀'와 '촛불 소녀'를 읽었다. 읽기의 순서를 밝혀야 할 것 같은데, '촛불 소녀'가 먼저였다. 신춘문예 심사 위원에게 응모작의 중요 내용을 표절당한 이의 억울한 사연을 다룬 소설이다. 총 9편의 단편이 실린 주 씨의 책에서 '촛불 소녀'는 229쪽부터 시작된다. 232쪽에 이르렀을 때, 그러니까 4쪽 읽은 뒤 나는 A평론가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근질거리는 입을 참을 수 없어서다. 선생님, 이 젊은 작가가요, 문단 나누는 것이 아주 비범해요!

전화를 끊고 계속 읽는다. 괜히 떠들었나? 후회가 된다. '촛불 소녀'의 화자는 중3짜리 소설가. 다른 친구들에 비해 생리가 늦었던 '나'의 첫 생리가 터지는 도입부는 흡인력이 굉장했다. 그런데 소설이 전개될수록 화자가 중3이라는 사실을 독자는 깜박깜박 잊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작가가 직접 등장해 말하는 듯하다. 중3짜리 화자를 상기시키는 한두 줄 문장만 중간중간 넣어줘도 해결되는 문젠데.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치명적인 흠은 아니랄 수 있다. 그래도 흠은 흠….

아쉽다는 느낌인데, 아, 소설의 마무리가 아쉬움을 일거에 날려버렸다. 맨 마지막의 짧은 한 문장이 이렇게 힘차고 비장하게 찍힌 소설이 근래에 있었던가. '촛불 소녀'는 작가 주이란의 출사표라고 할 만하다. 감동적이고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 참석한 사람이거나 지지한 사람이라면 내 말에 거의 동의할 것이다.

이어 '혀'. 단번에 읽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나는 또다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아, 비범하다. 비범하다.

이 소설은 줄거리를 소개해도 된다.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의 감상을 약간은 훼손할지 모르지만 줄거리를 알아도 소설을 즐기는 데 지장이 없다고 판단하는 때문이다. 줄거리 차원으로 절대 환원할 수 없는 작가의 뛰어난 문장 조직화 능력이 소설에 스릴을 부여하고 있는 때문이다.

주이란의 첫 번째 '혀'는 먹어치우는 혀다. 고기와 육즙에 대한 묘사가 끈적끈적거린다. 화자처럼 게걸스럽게 육고기를 먹어보고 싶어지고, 두툼한 살점의 회를 아무런 양념 없이 먹고 싶어진다. 읽다보면 누구나 그렇게 된다. (극단적인 채식주의자 빼고.)

두 번째 혀는 사랑하는 혀. 그런데 화자의 혀가 제일 좋아하는 빨 것, 핥을 것은 남자아이의 성기다. 소설은 아이의 성기를 빨아 보인다. 아이가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로 눈 깜짝할 사이에.

가장 충격적인 것은 말하는 또는 거짓말하는 혀의 이야기다. 화자는 산 생명의 육고기를 먹어치운 자기 혀의 전력을 괴로워한다. 또 아이들의 성기를 빨았던 일도 후회한다. 아이한테 남았을지도 모르는 내면의 상처를 걱정한다. '혀'의 결말은 놀랍다. 작가는 자기 처벌을 한다. 혀를 잘라 프라이팬에 던져버리는 것이다.

'자기 처벌'로 명명할 수 있는 소설의 마무리에서 성철스님의 임종게가 다 떠올랐다. 세 치 혀로 쌓은 평생의 거짓말이 수미산을 이루고 남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임종게란 생전에 충분히 구상된 것. 또 스님의 표현이 너무도 근사해 '혀'의 이상한 비장감에 못 미친다. 차라리 육박하는 것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이다. 남자는 낚싯바늘로 구순을 뽑아버리고 여자는 음순을 뽑아버린다. 현대를 사는 죄 많은 인간의 상징적인 자기희생으로 그 장면을 보았다. 성철의 임종게와 영화 <섬>의 한 빼어난 장면을 호출할 정도로 '혀'의 마무리가 실로 강렬했던 것이다.

먹어치우고 사랑하는 혀의 제시로 독자를 불안에 빠뜨리며 거침없이 선보인 그 지독한 혀놀림을 극단적으로 반성해 보이는 이 균형감각. 이 젊은 작가는 윤리 감각도 튼튼하게 있다! 왜 이 작품이 신춘문예에서 낙선되었지? 하긴 언제부턴가 온갖 대학 문예창작과 출신들의 성실하기만 한 지루한 소설들이 신춘문예에 판을 치고 있지. 소설의 첫 문단도 수나롭게 읽어주기가 힘든….
▲ <혀>(조경란 지음, 문학동네 펴냄) ⓒ프레시안

자, 이제 조경란의 <혀>를 읽어본다. 사흘 걸려 완독했다.

간단하게 정리한다. 소설의 3분의 2 정도까지 볼 때, 이 소설의 제목은 '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요리' 또는 '요리사'라는 단어를 사용하든지 같은 의미의 다른 단어를 사용하든지. 소설 후반부에 '혀'가 꽤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듯 싶기는 하다. 조경란의 소설도 어쨌거나 제목의 '혀'를 향하여 달려가기는 한다.

서울 강남의 이탈리아 음식 전문 레스토랑을 주된 배경으로 수없이 많은 요리가 등장하지만, 하, 음식 냄새가 안 난다. 신경숙의 어떤 소설에 한두 문단 정도 요리 장면이 나오는데, 몇 년 전 그걸 읽었을 때 바로 군침이 돌았고 책을 덮고 라면이라도 파 썰어 넣고 끓여먹어야지, 했는데….

조경란의 <혀>를 읽으면서 나는 탄식했다. 조경란 정도의 솜씨로 주이란의 비범함을 베낄 수가 없다! 책 뒤에 17권의 요리와 음식에 관한 책이 '참고 도서'로 나와 있고 그 책들에서 추출한 것들이 <혀>의 본문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음식 냄새가 안 나는 게 당연하다! 낚시꾼들도 조과는 형편없으면서 입만 살아 있는 놈들을 '책 낚시'라고 해서 경멸하지 않는가. 조경란의 <혀>도 거의 '책소설'이다.

조경란 말고도 자기 소설의 내용을 독서에서 얻는 서재형 작가가 요즘 한국 문단에 한둘이 아니다. 지식의 나열이 승해 조경란의 소설은 어쩔 수 없이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

뒷 표지에 '사랑하는, 맛보는, 거짓말하는 혀!'라고 적혀 있지만, 실감나지 않고, 현직 요리사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했다고도 하지만, 구상과 퇴고 모두 부족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고 작가가 항변한다면, 재능의 한계를 탓해야 할까. 재능의 한계를 뼈저리게 드러내는, 그러니까 갈 데까지 간 작품은 이상한 감동을 주기 마련인데….

구절과 문단을 표절했다느니 아이디어를 도절했다느니 밖으로는 이렇게 알려졌지만, 사건의 주인공인 책들을 읽어보니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지점이 보인다. 조경란은 <혀> 이후 발간된 단편집으로 올해 동인문학상 수상작가로 선정되지 않았는가! '혀'라는 동일 제목, 비슷한 사건 흐름을 바탕으로 조경란은 장편을 썼고 주이란은 단편을 썼다.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주이란이 뛰어나다. 그런데 그녀의 단편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낙선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1월 1일자 신문에 실리기에 불가능한 작품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작품이 낙선되었을 것인가. 고시 공부하듯이 수십 차례 퇴고를 거듭한 성실하기만 한 작품으로 얼마나 많은 당선자들이 나왔는가. 이번 사건의 비극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소설가 방현석은 주이란이 나름대로 억울한 사연을 가지고 찾아왔을 때, 그녀의 '혀'를 읽고 이런 창의적인 작품이 신춘문예에서 낙선하는 것이 한국 문단의 오래된 비극이라고 통분부터 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도 '소설가 방현석'이 아니라 '중앙대 문창과 교수 방재석'으로 사건에 임한 듯이 보인다.

요 몇 해 들어 가장 요란하게 데뷔한 작가라고 할 주이란에게 말한다. 단편 '혀'와 '촛불 소녀'를 출산한 작가로서 자부심을 가지기 바란다. 조경란 말고 다른 누구라도 당신의 작품을 베낄래야 베낄 수가 없다. 베낄 실력들이 되지 않는다. 엇비슷한 혀 절단, 요리 설정이 있지만, 훗날 당신의 장편 <혀>가 출간되었을 때, 그 내용을 기사로 미리 다룰 신문 기자의 요약 수준으로 중첩되어 있을 뿐이다.

당신의 '사랑하는, 맛보는, 거짓말하는 혀'의 장편은 줄거리나 아이디어 수준으로 다른 누가 쓸 수 있는 것이 못 된다. 오직 당신만이 쓸 수 있는, 세계에 단 하나뿐인 작품일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미래작을 벌써부터 너무 사랑하고 있는 상태로 보인다. 그 사랑도 큰 재능이지만, 그러나 당신을 일종의 인지협착 상태로 빠뜨리고 있는 듯하다. 두 소설을 읽어보건대 도절당했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겠는데, 만약 도절되었다면 조경란 같은 작가가 도절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길 바란다.

퇴고와 구상이 불충분한 상태의 소설을 발간한 출판사 '문학동네'의 반성을 촉구한다. 완성도 높은 작품을 생산해내도록 작가에게 퇴고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출판사라고 할 때, 거의 직무유기라고 할 것이다. 그 아까운 작품, 김영하의 <빛의 제국>도 퇴고 불충분의 상태로 출판해버린 출판사라서 하는 말이다. 주이란의 '혀' 같은 비범한 작품을 놓쳐버린 신춘문예 운영 신문사와 예심 심사위원들의 반성을 촉구한다. 나는 한국문단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킬 주이란 씨의 문학적 열정과 용기를 한 선배 작가로서 축복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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