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권해효를 만나다
[신기주의 이야기 속으로] 연극 <아트>, 아홉번째로 무대에 오른 이유
배우 권해효를 만나다
배우 권해효가 연극 <아트>를 다시 무대에 올렸다. 지난 4일 시작돼 다음달인 11월 30일까지 대학로 SM아트홀에서 계속된다. <아트>가 무대에 오른 건 이번으로만 아홉 번째다. 권해효로서는 두번째다. 이번 무대는 초창기 멤버인 정보석, 이남희, 정원중 팀과 4년전 팀인 권해효, 조희봉, 이대연이 더블 캐스팅으로 함께 공연한다. <아트>는 올릴 때마다 관객들을 모은다. 아홉 번 공연으로 모은 관객 수만 12만명이다. 비교적 지식인 관객들을 겨냥하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는 작품임에도 늘 객석은 관객들로 그득하다. 왜 그럴까. 배우 권해효를 신기주 기자가 만났다. - 편집자
. - 4년 만인가. 왜 다시 <아트>인가? 배우한테 <아트>는 언제나 자극적인 작품이다. 어느 나이와 어느 시기에 누구와 함께 연기하느냐에 따라 연기와 이야기가 전혀 다르게 전달된다. 4년 전에 했던 <아트>와 4년 전에 공연했던 권해효와 지금의 <아트>와 지금의 권해효가 다 다르다. 좀 아쉬운 게 있다면, 이번엔 조희봉 씨나 이대연 씨하고 역할을 좀 바꿔서 해볼까 했는데 연습할 시간이 부족해서 그렇게 못한 거다. 규태 역도 좋아하지만 수현 역할도 해보고 싶거든.
- <아트>는 빠리에서만 쓰여질 수 있었던 극작인 거 같다. 현대 예술에 대한 조롱이면서 예술을 접하는 사람들의 허위와 친구들끼리의 질투가 겹친다. 빠리에서 예술은 늘 화두니까. 극을 쓴 야스미나 레자는 원래 헝가리 출신이라더라. 빠리에 와서 연극 무대에 섰지만 좋은 역할을 맡아본 적이 없고. 창녀 역할을 주로 했다던가. 프랑스 사회와 빠리 예술계에서 늘 주변인이었던 거지. 주변인의 시선에서 그녀가 바라본 예술과 예술을 접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아트>에 배어있다. 그리고 실제로 야스미나 레자가 친구와 그림 한 점을 놓고 나눴던 대화가 연극의 모티브가 됐다. 우정과 취향은 어떻게 공존하는가, 우리는 각자의 취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를 레자는 연극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론 야스미나 레자야 말로 한국의 창작극이 달성하지 못한 부분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 어떤 거? 한국 사회는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지 못한다. 타인의 취향을 존중할 줄 모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직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연극 시나리오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고 대사의 현실감도 적다. 연극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관객들도 서로에 대한 이해가 적다 보니까 연극의 세심한 부분까지 납득시키려면 한국적인 각색이 필요했따. <아트>는 연극 연출가인 황재현 씨가 번역과 각색을 했는데, 백지에 줄 한 줄 그어져 있는 2억 8천만 원짜리 그림을 사 온 수현을 강남 피부과 의사로, 그 그림을 보면서 비웃는 규태를 지방대 교수로 설정했다. 사실 프랑스 사회에선 교수와 의사의 지위는 한국과는 정반대다. 교수는 지성의 상징이고 의사는 교수를 시샘하지. 한국에서 어디 그러나. 돈 잘 버는 의사가 최고지. 그 관계를 미묘하게 각색하고 연기하는 게 <아트>의 어려운 점이다. - 4년 전이 비하면 한국에서도 미술 시장이 꽤 활황이다. 정말 선 몇 개 그려 넣은 그림이 몇 억 원이다. 예전엔 친구들끼리의 우정과 이해로만 연극을 받아들였던 관객들도 이번엔 예술 자체에 대한 희화화로 연극을 읽을 수도 있겠다 싶다. 세 친구의 출신 성분은 고스란히 현대 예술을 이해하는 각각의 서로 다른 틀을 상징한다. <아트>는 기본적으론 남자 셋의 이야기다. 남자 셋이 서로 싸우고 속사포처럼 쏘아대면서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관객들도 정말 다양하다. 친구들을 불러서 함께 연극을 보는 관객들도 많이 봤다. 나도 예전에 공연을 할 때 그런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사소한 일로 다툰 다음에 오래 말도 안 하고 지냈던 친구였다. 그 날 내 연극을 보고 저녁에 함께 술을 마셨다. 울면서 화해했던 기억이 난다. <아트>는 말씀하신데로 예술과 취향에 관한 연극이면서, 우정과 사람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 이번에 공연하게 되는 SM아트홀은 좀 비좁다. 좀 불만이다. 대학로가 참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특구라고 얘기를 했으면 최소한의 상식적인 배려가 있어야 할텐데. 상업적인 간판이 연극 극장의 간판보다 크지 못하게 한다던가. 4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자면 대학로가 무엇을 하는 공간인지 잘 모르겠다. 조례 하나만 정해도 많은 것이 달라질텐데. SM아트홀은 연극 하기에 적합한 공간이 아니다. 뮤지컬이나 콘서트 위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 배우가 발성을 하면 소리가 자꾸 먹는다. 먹먹하다. 배우는 힘들지. 배우 대기실로 너무 좁고 심지어 현관 홀조차 없다. 4년 전에 공연했던 학전 소극장만 해도 관객과 배우의 거리가 아주 가까웠다. 지금 대학로의 풍경을 단적으로 보여준달까. - 공연과 뮤지컬은 요즘 돈벌이가 된다고 하지. 연극은 늘 돈이 안 된다. 새로 지어지는 공연장 역시 연극 보단 뮤지컬 위주로 설계되니까. 요즘은 아는 영화사에서도 뮤지컬을 해보면 어떠냐는 문의 전화를 받을 때가 많다. 요즘 추세인 거지. 연극은 언제나 손해를 보기 쉬우니까. 적은 자본으로 대관료 내고 나면 남는 게 없기 일수다. 뮤지컬은 1년에 150편도 넘게 만들어지니까. 어쩌면 이대로 가다간 몇 년 있으면 정말 연극계가 힘들어지겠다 싶다. - 그런데도 계속 연극을 하는 까닭이 뭔가. 내가 대학로라는 공간에 흘러 들어온 게 20년 째다. 그 시절 <연우무대>에선 이제 30대 초반이었던 김민기 선배 같은 분들이 연극을 주도했다. 그 때 그들은 참 커 보였다. 그런데 이젠 내 나이도 그 때 선배들 나이보다도 많아졌다. 하지만 요즘 그 나이인 후배 세대가 무언가를 하고있냐면 그렇지가 못하다. 시대가 사람을 애로 만드는 거 같다. 연극을 이끌어갈 젊은 세대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린 나이가 들어가지. 계속 연극을 할 수 밖에 없다. - 어쩌면 연극이야 말로 영화와 드라마의 근원이다. 진짜 힘은 거기에서 비롯된다. 예전에 싸이더스FNH의 차승재 대표가 그랬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영화계를 먹여 살려온 건 연극이다." 대중문화의 진짜 저력은 연극 같은 공연 예술에서 나온다. 요즘 한국 영화계의 침체 원인을 연극에서 찾아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 반면에 요즘 청담동이나 압구정동에 가면 매니저들이 신인 배우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한다. 다들 이미 무슨 무슨 기획사에 소속돼 있어서. 예전엔 연기를 시작하려면 무조건 대학로에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다르다. 연극을 통해 기본을 다지기 보단 기획사를 먼저 찾는다. 스스로 말이다. 그런데도 대학로는 겉으로는 화려해졌다. 온갖 가게가 즐비하다. 참 아이러니하다. - 연극을 하자고 주변 배우들을 꼬셔 본 적이 있나. 꼬셔 본 적 있지. 배우들은 그런 게 있다. 나도 아마 그래서 연극을 하는 걸 거다. 드라마에서 밥 먹었냐 뭐 이런 대사만 하다가 무대에 서서 컨템퍼러리 아트에 관한 긴 대사를 치면 즐거울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연극에 맛을 들이게 된다. 정보석 씨도 내가 꼬신 거다. 하지만 대학로에서 몇 달 동안 정기적으로 무대에 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꼼짝없이 매어있게 되니까. 다들 하고 싶다고 하다가도 막상 하자고 하면 주저들 한다. - 자주 영화 안 찍냐고 묻지? 그러면 난 왜 연극 안 하냐고 되묻는다. 정확하게 2001년 <선물>이 내가 찍은 마지막 영화다. 그 뒤론 카메오 말고는 영화를 찍은 적이 없다. 아무래도 난 캐스팅에서 멀어진 거 같다. 하지만 사실 송강호 씨나 안성기 씨한테 왜 연극 안 하냐고 묻지는 않잖아. 내가 영화나 드라마에 안 보이면, 가끔 만나는 사람들은 꼭 묻는다. 요즘 드라마 안 해요? 난 늘 연기를 하고 있다. 그건, 예술에 계급성을 두는 질문이다.
- 연극의 일회성이 힘들지 않나. 복제가 되는 예술의 시대에 복제가 안 되는 예술을 하고 있잖아. 아무리 멋진 연기를 해도 소수의 관객이 보고 그것조차 기록되지 않는다. 연극은 요즘 시대엔 시대 착오적인 대중문화일 거다. 참 비효율적이지. 영화는 무한 반복되잖아. 한 번 잘 하면 영원히 잘한 거다. 연극은 한 번 잘 해도 다시 잘 해야 한다. 어쩌면 거기에서 매력을 찾는 건지도 모르겠다. 긴장하게 되니까. 영원히 만족할 수 없으니까. 매 번. 내가 무척 잘 한 장면이 지나가지만 또 더 잘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니까. 거꾸로 못했다면 다시 잘 할 수 있으니까. 같은 연기란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연극 무대에 서 있는 순간은 99%가 불편한 순간일 거다. 그 불편함을 즐긴다면 이상한 얘기일까. - <아트>처럼 다시 무대에 서고 재해석을 거듭하면 조금은 편해지지 않나? 익숙하니까. 1995년인가. <한 여름밤의 꿈>을 할 때였다. 영국 로얄 세익스피어 극단에서 온 사람들이 우리 연극을 보더니 그러더라. 세익스피어를 더 갈가리 찢어라. 그래도 세익스피어는 죽지 않는다. 좋은 연극 작품은 늘 새로운 해석거리를 주고 늘 배우를 긴장하게 만든다. - 권해효는 할 말을 하는 사람이다. 촛불 시위에도 앞장을 서고, 여러 단체의 홍보 대사도 하고, 정치적인 발언도 소신 있게 한다. 내가 원래 묻고 따지는 걸 좋아한다. 그게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나를 설득시켜 봐라. 이런 거지. 정치 사회적인 관심도 많다. 하지만 내가 촛불 시위에서 무대에 오르거나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를 통해서 제일 조선인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결국 참여다. 그런 일이 있으면 함께 해야 한다고 느끼는 거다. 난 그 일에 참여해서 내가 할 일을 한다. 내가 뭐가 대단해서 무대에 올라서 마이크를 잡는 게 아니다. 나 역시 참여할 수 있어서 좋다. 30만 개의 촛불들 앞에서 무언가 말을 건낼 수 있다는 건 나한테도 정말 가슴 뭉클한 경험이다. 난 우리 겨레 하나되기 운동본부와 한국여성단체와 청소년 단체의 홍보대사다. 하지만 내가 하는 게 무슨 홍본가. 힘들지. 소주 한잔 사 줄께. 내가 하는 건 기쁨조다.

- 왜 자신이 그 일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나? 우린 늘 교육과 정치를 고민한다. 하지만 고민에서 그쳐선 안 된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한테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했었단 얘기를 들려줘야 하는 거다. 난 대학 시절에 학생 운동에 참여한 적도 없다. 군대 다녀온 걸 제외하면 배우라는 직업 덕분에 수직적인 사고보단 수평적인 사고에 더 익숙하다. 그래서인지 보수화가 안 됐다. 사람이 보수화된다는 건 더 이상 매사에 연민을 하지 않게 된다는 거 같다. 손수레를 끌고 지나가는 할아버지를 봐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게 보수적이 된다는 거다. 그래서 난 스스로를 자꾸 불편하게 만들려고 애쓴다. 그런 일을 일부러 찾아서 한다. 사실 배우란 존재들은 개인적은 사고에 더 익숙하다. 정치나 사회적인 이슈에 둔감하기 마련이지. 난 안 그러려고 할 뿐이다. <우리 학교> 같은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불편한 진실이 난 좀 좋다. - 맨 처음 무대에 섰던 연극이 어떤 거였나. 배우로선 이근삼 선생의 <유랑극단>이었다. 1985년도였으니까 대학로가 처음 등장했던 때였다. 노랭이 구두쇠 역할이었다. 대학교 3학년 때 브레히트의 <사천의 착한 여자>가 맨 처음 무대에 섰던 거고. - 그렇게 시작해서 1985년부터 20년 넘게 대학로에 있었다. 대학로는 완전히 바뀌었지만 권해효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그 공간이 그 공간인가 싶을 때도 많다. 난다랑이나 오감도 같은 곳들도 다 없어졌다. 이제 학림 정도 남았나. 하지만 <아트>처럼 좋은 연극은 다시 찾아오듯이 좋은 것들은 결국 되돌아오게 돼 있다. 좋은 사람들도 말이다. 난 늘 그 자리에 있으니까. 그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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