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출판사 대표가 돼야 했나"
[기고] 조경란ㆍ문학동네는 답하라
"나는 왜 출판사 대표가 돼야 했나"
저는 소설 <혀>를 쓴 주이란의 남편입니다. 고양이나 강아지를 치료하는 수의사입니다. 출판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생각해보지도 않은 제가 몇 달 전 갑자기 출판사를 차렸습니다.

TV가 없는 저희 가족은 저녁때면 음악을 들으며 담소를 나누거나 산책을 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다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저희는 글을 쓰기도 합니다. 그 글을 읽고 서로 웃어대기도 하고, 심각해지기도 합니다.

입덧이 심해 먹지 못하고 누워만 있던 아내가 글을 썼습니다. 소설이었습니다. 처음 그 글을 보고 저는 그녀를 소설가라 하였고, 그녀는 그 말을 쑥스러워하면서도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게 2003년의 일입니다. '당신의 혈액형'이라는 소설이었습니다.

2005년 어느 날 아내는 또 하나의 소설을 썼습니다. <혀>라는 소설이었습니다. 두꺼운 노트에 쓰인 그 소설을 읽고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는 당시 아기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만 2년째 모유수유를 하고 있었고, 천기저귀를 직접 빨아서 썼습니다. 그래서 하루 서너 시간 정도 자투리 잠밖에 자지 못하였습니다.

저희 부부는 신혼 때부터 TV, 신용카드 그리고 자동차 없이 살아왔습니다. 아내는 미식가입니다. 고기 맛의 미세한 차이도 선별했습니다. 그런 아내와 저는 어느 날 채식주의자로 살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달걀과 우유까지도 먹지 않는 완전 채식주의자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욕망과 생명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런 속에서 <혀>는 태어났습니다. 한 손으로는 아기를 안아 젖먹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볼펜으로 공책에 한 자, 한 자, 새겨 넣었습니다. 컴퓨터 자판으로 쓸 시간도 두드릴 힘도 아내에게는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 시절 아내에게는 글쓰기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였는지도 모릅니다.

언젠가부터 신춘문예에 응모도 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11월부터는 아내는 글에 빠져 살았습니다. 12월에는 신문사에 응모를 하고 1월 1일까지는 '혹시 내가 당선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에 붕 떠있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신춘병'이라고 하였습니다. 2006년 12월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도 응모를 했습니다.

▲ <혀>(조경란 지음, 문학동네 펴냄). ⓒ프레시안
그러나 몇 개월 후 그 때 심사위원이었던 소설가가 아내의 응모작과 똑같은 제목의 소설을 출간하였습니다. 저희는 심사위원의 소설을 단숨에 읽었습니다. 저희는 더 이상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내가 왜 신춘문예에 응모했을까"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목은 물론 내용까지 그대로 가져간 것이었습니다. 제 아내의 <혀>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지켜본 저는 아내의 눈물에 가슴으로 울어야 했습니다. 울다 지친 아내와 저는 이런 일은 당연히 문제제기하고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해 12월부터 여러 출판사들을 만나 이 일을 알리고 상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알려봐야 알아주는 이도 없고, 아내만 글쓰기 힘들어질 거라고 했습니다. 아내와 같은 입장일 거라고 생각한 기성문인들조차 위로하면서도 참으라고만 했습니다. 오히려 그럴 시간에 더 좋은 작품을 쓰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비윤리적인 행위를 질책하지는 못할망정 그냥 덮어두라는 그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의 글이 탄생하기까지의 뼈저림을 그 누구보다 잘 알 만한 사람들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들이 터져 나올 때 절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을 듣고 이런 일을 그냥 덮어버린다면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저희 주위에는 이 일을 알려주려는 작가도, 교수도, 평론가도, 출판사도, 기자도 없었습니다. 지난 6월 광화문 사거리의 거대한 컨테이너처럼 느껴졌습니다. 촛불 집회를 지나면서 이 일은 결국 독자들이 알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내와 제가 상처를 입겠지만, 진실을 알려야만 다시는 제 아내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음을 그들을 보면서 느끼게 되었습니다.

▲ <혀>(주이란 지음, 글의꿈 펴냄). ⓒ프레시안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출판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제가 출판사를 차리게 되었습니다. 표지와 작가의 말에 표절 사건 전말을 알리는 글을 담은 책을 출간하고, 저작권위원회에 분쟁조정신청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학동네 강태형(본명 강병선)대표와 조경란 씨는 저작권위원회의 1, 2차 조정에도 참석하지 않고 불성실하고 솔직하지 못한 답변들만 내놓고 있습니다. 많은 독자와 시민들은 이번 표절사건의 심각성과 문단의 폐해에 대해 지적을 하고 공감하고 있는 반면 문단에서는 김곰치 소설가, 김영현 소설가(실천문학사 대표),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평론가), 정문순 평론가, 이명원 평론가, 조영일 평론가 등 일부 문필가를 제외하고는 계속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런 논란의 와중에도 조경란 씨는 아무런 문제없이 조선일보사가 주관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200여명의 문인들과 출판인들은 그런 조 씨를 축하해주었습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보면서 한국 문단, 출판계는 표절에 대한 뚜렷한 기준도 없고, 표절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 출판계의 자성을 촉구하고, 국제적인 수준의 표절에 대한 관점을 촉구하기 위해 세계출판인포럼 진행 중에 연단에 뛰어올라 영문으로 시위하게 되었습니다.

문학동네는 지난 14일 젊은 평론가들에 대한 언급에서 "<한겨레> 최재봉 기자가 저희에게 전한 자신의 결론은, "주이란 씨가 착각한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11월 17일 최재봉 기자는 "'주이란 씨가 착각한 것 같다'는 결론의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분명하게 우리 부부에게 밝혀왔습니다. 문학동네는 사실만을 말하기를 바랍니다.

문학동네는 아직도 "저작권 형성 시점은 (원칙적으로) 발표된 시점일 것입니다"라며 저작권 형성 시점을 모르고 있습니다. 제 아내의 글에서 언급했듯이 저작권 형성 시점은 작품의 창작 시점입니다. 문학동네의 주장대로라면 이 출판사는 지금까지 발표되기 전의 모든 원고에 대해 저작권의 보호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저작권법 10조 2항에는 "저작권은 저작물을 창작한 때부터 발생하며 어떠한 절차나 형식의 이행을 필요로 하지 아니한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유명 출판사인 문학동네가 이 정도의 개념도 모르고 책을 만들어왔다는 게 참 의아스럽습니다.

문학동네는 "2003년~2006년 사이 한동안 조경란 씨와 만나질 못해 대화를 못 나눈 것이지, 잊고 있지도 않았고"라고 말하는데, 조경란 씨는 2004년에 문학동네에서 책을 출간했습니다. 문학동네는 조경란 씨가 '집필 시점'을 번복했다는 근거를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이란의 기고문을 읽으면 나옵니다. 문학동네는 정독을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표절에 대한 문제는 사회적인 논의를 통해 해결해야할 공적인 문제입니다. 문학동네와 조경란 씨는 책임있는 답변과 논의를 하기 바랍니다.

저는 이번 표절 논쟁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문단, 출판계의 표절에 대한 의식수준보다 독자와 시민들의 수준이 더 높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독자들의 수준과 기대에 걸맞게 책을 쓰고 만드는 과정이 윤리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이번 표절 문제제기를 통해서 한국 문단, 출판계가 윤리적으로 한층 성숙해지고, 그래서 제 아내와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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