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의사가 삼성에게 하고픈 말
[삼성반도체와 백혈병] <3>"여기 젊은 노동자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한 의사가 삼성에게 하고픈 말
1년이 지났습니다. 삼성전자 기흥공장 반도체 공정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백혈병'이라는 같은 병으로 죽거나,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 벌써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어린 딸을 잃었던 황유미 씨의 아버지가 작은 몸뚱이로 거대한 삼성과 세상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 이후 하나 둘씩 피해자는 늘어갔습니다. 그럼에도 삼성은 여전히 '직업상 재해가 아니다'는 입장만 되풀이합니다. 고 황유미 씨의 유족이 신청한 산업재해 인정 요구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가 조만간 나올 예정입니다.

과연 백혈병과 삼성반도체 공정 사이의 인과관계가 드러날까요? 역학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과 <프레시안>은 다섯 번에 걸쳐 '삼성 반도체 백혈병 노동자들,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도 여전히 삼성반도체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가진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내과를 전공하는 의사다. 고(故) 황유미 씨도, 고(故) 이숙영 씨도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응급실에서 혹은 밤 당직을 서면서 몇 번은 고인들의 삶과 인연을 맺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외에도 많은 환자들이 처음으로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하고, 이식을 받고, 퇴원하거나, 중환자실에서 사망하는 순간들을 함께 해 왔다. 그러나 단 한번도 그들의 직업력을 물어본 기억이 없다.

백혈병 환자들은 골수 이식으로 새 생명을 찾는다 하더라도 면역 저하에 따른 이차적 감염의 기회가 많아 불량한 예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시술을 안 아프게 잘 한다며 척수강 내로 항암 치료를 할 때 마다 나를 찾던 한 여성 환자에게도, 밖에 나가 담배를 태우다가 매번 나에게 들켜 멋적게 웃던 중년의 아저씨에게도 무슨 일 하고 사셨는지 물어보지 못한 채 그들을 다 보냈다.

우연한 기회에 삼성 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접하게 되었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 가족의 일원으로서, 한 사람의 의사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백혈병 환자들이 대부분 어린 아이들이거나 20-30대 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백혈병은 유전적 요인에 의해 어려서 걸리는 병이라는 인식이 많다. 그러나 실제 백혈병은 나이에 따라 유병율이 증가하는 병으로 중년이나 노인 환자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바꾸어 말하면, 후천적인 변이가 발병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의사라면 누구나,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을만한 권위 있는 내과학 교과서에 따르면,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일년에 인구 10만 명 당 3.7명의 유병율이 있으며, 원인은 유전성(hereditary), 방사선(radiation), 화학물질(chemical), 그 외 직업성 노출 (other occupational exposure), 약물 (drug)로 분명히 정의하고 있다. 한 공정에서 같은 작업을 하던 두 명의 노동자가 비슷한 시기에 같은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는 것은 의학적 관점에서도 쉽게 우연으로 치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고, 골수 이식 후 투병 중인 박지연 씨도 고교 졸업 후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삼성 반도체에 입사하였고, 작업 중에 제대로 된 보호장비와 교육 없이 방사선과 화공약품에 노출되어 왔다. 3년 만에 백혈병을 진단 받고, 현재 충청도에서 서울까지 긴 거리를 오가며 투병 중으로,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정신적·육체적·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다.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모토를 건 그녀의 회사는 발병의 원인을 우연으로 치부한 채 산재 신청 이후 아무런 연락도, 도움도 없이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방치하고 있다.

▲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모토를 건 그녀의 회사는 발병의 원인을 우연으로 치부한 채 산재 신청 이후 아무런 연락도, 도움도 없이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방치하고 있다.ⓒ프레시안
아직 세상이 뭔지도 모를 스무살 초반 박지연 씨의 삶이 너무나 무겁게 다가오는 것은 그녀가 앞으로 겪어야 할 험난한 치료의 과정 뿐 아니라, 어린 그녀가 고민하고 있을 생과 사에 대한 준비되지 않은 고통, 정작 책임져야 할 주체는 빠져버린 채, 경제적 문제로 인해 서로가 서로에게 죄의식을 지고 있을 그녀와 가족들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이 세상이 그녀에게 준 생채기들은 병을 회복한 후에도 그녀의 삶을 의식, 무의식적으로 규정하게 될 것이고, 평생 이 상처들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들은 가족들의 정서적 지지가 많은 젊은 층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적극적인 치료에 따른 경제적인 문제를 겪게 된다. 그리고 생계를 위해 어린 자식 혹은, 남편을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게 했다는 가족들의 심리적 스트레스와 죄책감은 경제적 압박감과 더불어 남은 이들의 삶마저 심하게 왜곡 시키고 있다. 상식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더라도 인과 관계의 필연성이 의심되는 상태에서, 위해 환경에 대한 객관적인 역학 조사와 노동 조건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은 국가의 묵인과 거대 기업의 힘 앞에 무력하기만 하다. 반도체 산업이 국가 경제의 중추적 토대라면, 무엇보다도 그 틀을 형성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에 대한 존중도 수반되어야 한다. 인간의 생명이 결부된 문제이기 때문에 아무리 은폐 하려 해도 결국은 드러나게 될 것이고, 국가와 회사에 더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한 인간의 존재는 사회적 위치를 점하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은 비단 당사자 스스로만의 문제는 아니다. 누구의 아들과 딸이고, 아내이자 남편, 아버지 혹은 어머니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건강은 생계의 문제이며, 한 가족이 안정적인 사회활동을 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따라서 노동자 건강은 사회적 테두리에서 보장되어야 하며, 이윤보다 앞서야 할 중요한 가치로 평가 받아야 한다.

삼성 반도체 피해자들과 가족들이 이 아픔을 딪고, 다시 이 사회를 신뢰하는 구성원으로 자리 매김할 수 있도록, 위해 환경에 대한 객관적인 조사와 산재 인정, 그리고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투병중인 박지연 씨는 지난 4월 말 골수이식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통원 치료 중에 있습니다. 골수이식수술 이후에 두차례의 응급상황이 발생했지만 다행히도 무사히 넘기고 현재는 집과 병원을 오가며 통원 치료 중입니다. 거액의 치료비에 큰 보탬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대책위에서 모금함을 돌리거나 후원하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 치료비에 보탬을 드렸습니다. 그것이 지연 씨와 지연 씨 가족의 외로움을 덜어드리는데 힘이 되었기를 희망합니다.

삼성은 지연 씨가 산재 신청을 하지 않으면 치료비는 물론, 집까지 고쳐주겠다고 하더니 산재 신청을 하니까 "더 이상 지원은 없다, 법대로 하시라"고만 하고 있습니다.

백혈병은 하루 아침에 낫는 병이 아니라 앞으로 값비싼 치료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헌혈증을 가지고 계신분이나 후원을 통해 지연씨를 응원하실 분을 기다립니다. 이윤보다, 사람이 따뜻하다는 것을 지연씨에게,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 후원계좌 : 국민은행 489701-01-472635 예금주 김재천(삼성반도체대책위)
# 헌혈증 보내주실 곳 :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 185-13 다산인권센터(031-213-2105)
#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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