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 한국영화가 망할 수밖에…"
[해설] 허술한 영진위 통합전산망, 멀티플렉스만 살찌운다
2009.01.28 16:53:00
"이러니 한국영화가 망할 수밖에…"
영화관이 '비자금 생산 공장'으로 쓰였던 시절이 있다. 1950년대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정치깡패 임화수(본명 권중각)는 영화 관람권 발행수를 조작해 비자금을 만들곤 했다. 주로 자유당 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임화수의 시대는 길지 않았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아버지라 부르곤 했던 그는 1960년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면서 함께 몰락했다. 이듬해 5·16쿠데타로 집권한 군사 정부 역시 그를 봐주지 않았다. 1961년 12월 21일, 서울형무소 형장에서 그는 처형됐다.

CJ CGV, 관객 수 축소 의혹

깡패 임화수가 간 지 48년째 되는 지금, 다시 영화관이 비자금이라는 단어와 맞물렸다. 이번에도 영화 관람권 발행 수가 문제다.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극장 운영업체인 CJ CGV가 영화 관람권 발행 수를 축소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런 의혹대로라면, CGV 측은 조직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탈세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영화 제작사 등 다른 영화업자에게 돌아가야 할 수익을 CGV 측이 빼돌렸다는 뜻도 된다. 이번에 제기된 의혹에 영화계의 관심이 뜨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의혹을 처음 제기한 것은 김해 CGV에 건물을 빌려준 임대업자였다. 건물주인 임대업자는 CGV 관람객 수에 따라 임대료를 받게 돼 있다. 그런데 CGV 측이 통보한 관람객 수가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한 관람객 수보다 적었다. 건물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CGV측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CGV측 해명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결국 검찰이 수사에 나서게 됐다. (☞관련 기사: CGV, 관객 수 축소해 탈세 의혹…검찰 수사 착수)

"영진위 자료, CGV 자료 모두 이상하다"

이번 의혹의 핵심 열쇠는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쥐고 있다. CGV의 발권 정보는 CJ그룹 계열사인 CJ시스템즈를 거쳐 영진위 통합전산망이 집계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합전산망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건물주는 지난해 3월 영진위로부터 발권정보 자료를 넘겨받았다. 그리고 이 자료에 담긴 발권정보는 CGV측으로부터 통보받은 것과 크게 달랐다.

김해GCV가 문을 연 2005년 3월, 영진위 자료에 기록된 관객 수는 4만 8684명이다. 반면, CGV측이 통보한 관객 수는 3만 7456명이다. 1만 1228명 차이가 생긴 셈이다. 이런 차이는 2007년 7월까지 매달 발생했다.

특이한 점은 영화 성수기인 여름과 겨울철에 유독 이 차이가 크다는 것. 2005년 12월의 경우, 영진위 자료에 기록된 관객 수는 12만 6179명이다. 또, CGV측이 통보한 관객 수는 11만 7154명이다. 9025명 차이가 난다. 그런데 한 달 전인 2005년 11월 발생한 차이는 2252명이었다. 관객 수는 전달보다 두 배 못 미치게 늘었는데, 차이는 네 배 가까이 늘었다. 영화 성수기에 맞춰 적극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일 수 있다.

▲ 지난해 5월 영진위가 건물주에게 보낸 공문. ⓒ프레시안
건물주가 이런 의혹을 공세적으로 제기하자, 두 달 뒤 영진위가 입장을 바꿨다.

영진위는 건물주에게 공문을 보내 "(앞서 전달된 관람객 정보는) 유출돼서는 안 되는 것이 비정상적으로 전달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영진위는 건물주에게 앞서 전달된 자료는 "무료 관람객이 포함된 착오 자료"라고 설명했다.

이어 영진위는 건물주에게 가격이 '0원'이라고 표시돼 있는 발권정보 자료를 보냈다.

이에 대해 건물주는 "다른 지역에 있는 CGV 상영관에서는 무료 관람권을 뿌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김해CGV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 김해에는 CGV와 경쟁할 만한 극장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 CGV 측이 건물주에게 보낸 공문. 영진위 집계 자료는 단순 통계자료에 불과하여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프레시안

게다가 CGV 측이 공개한 발권정보 자료에도 '무료 관람객'은 표기돼 있지 않았다. 영진위 자료와 CGV 측 자료가 계속 엇갈리는 셈이다.

CGV측이 공개한 발권정보 자료 역시 신뢰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 자료에는 3000원 이하 가격 입장객에 관한 자료가 아예 없다. 단체 관람, 아침할인, 할인권 이용 등 각종 할인 혜택을 이용해 3000원 이하 가격으로 영화를 본 사람이 전혀 없다는 자료 역시 온전히 신뢰하기는 어렵다.

부정확한 발권정보, 누구 책임인가?

이런 혼란은 신뢰할만한 영화 관람권 발권 정보 자료가 없어서 빚어진 것이다. 하지만 영진위 측은 28일 낸 보도자료에서 CGV 관련 의혹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영진위 측은 이날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이하 통합전산망) 집계자료는 제작자와 배급업자들에게 이익을 분배하는 기준으로 업계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라며 "영진위 입장에선 법적 구속력이 전혀 없고 따라서 기금 징수, 수익 분배 등 공식적 기준으로 법적 효력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무책임해 보인다. 영진위 주장에 따르면, 통합전산망 자료는 제작자와 배급업자들에게 이익을 분배하는 기준으로 쓰이고 있다. 다만 법적 구속력이 없을 따름이다. "'제작자와 배급업자들에게 이익을 분배하는 기준'은 모호해도 된다는 말인가"라는 질문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영진위는 "통합전산망 데이터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송사업자가 영진위의 통합전산망 서버로 전송하는 극장 측의 발권데이터가 정확해야 하나 현재 통합전산망 연동가입은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다"라며 "극장 측의 부정확한 자료 전송 또는 누락 건과 관련해 극장 측 발권 시스템이나 전송사업자의 전송시스템 관리에 대한 책임을 법적으로 묻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발권 정보의 신뢰성 문제에 대해 영진위 뿐 아니라 CGV(극장)와 CJ시스템즈(전송사업자)도 책임이 없다는 주장인 셈이다.

그렇다면 부정확한 발권 정보로 인해 생기는 문제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아직까지 이런 질문에 대답을 내놓은 기관은 없다.

"멀티플렉스와 전송업체를 다 가진 CJ, 통합전산망으로 단속 어렵다"

영진위 통합전산망의 신뢰성 문제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됐었다. 지난해 10월 영진위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천정배 의원은 "영진위가 허술한 통합전산망만 믿고 영화관에 대한 감시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천 의원은 "발권정보 전송사업자가 데이터를 검증하고 보정하는 데 하루 이상 소요되는데, 멀티플렉스 극장은 전송사업자를 겸하고 있다. 감시감독을 소홀히 한다면 얼마든지 자료를 조작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와 전송사업자인 CJ시스템즈가 모두 CJ그룹 계열사인 상황과 맞물린 발언이다.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도 "영진위로부터 제출받은 '통합전산망 실시간 데이터 보정작업 결과'에 따르면, 영화관으로부터 자료를 제출받아 영진위에 보고하는 전송사업자 10개 중 무려 9개 업체에서 지속적인 데이터 오류가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지난 9월22일에는 통합전산망의 박스오피스 1위와 2위의 순서가 바뀌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영진위 통합전산망이 심각한 신뢰성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통합전산망이 허술한 상황에서 영화관과 전송사업자를 모두 소유하고 있는 그룹은 얼마든지 정보를 조작해 매출을 조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영화관이 매출을 조작하면, 일차적인 피해는 제작사, 다른 영화업체가 입는다. 매출에 비례해서 이익이 돌아오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영화관이 이익 쓸어가는 구조…"영화 제작은 누가 하나?"

CGV 관련 의혹을 처음 제기한 건물주는 지난 27일 <프레시안>과 만난 자리에서 "영화관에 건물을 임대해보니, 한국 영화가 망하는 이유를 알겠다"고 말했다. 영화관과 전송업체가 조직적으로 매출을 누락하면, 제작사가 정당한 이윤을 거둘 수 없다. 결국 영화 제작에 뛰어드는 인력이 줄어들게 된다.

실제로 이번 설에 개봉한 한국영화는 단 한 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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