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다시, 케인스인가?
[케인스 혁명①] 역사적 맥락
왜, 지금 다시, 케인스인가?
미국 금융 위기로 시작한 세계 경제의 미래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다만 1970년대 말부터 득세한 시장을 맹신하는 신자유주의가 어떤 식으로든 바뀌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경제학자는 단연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로 꼽히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다.

이런 분위기에서 로버트 스키델스키가 쓴 케인스의 전기가 국내에 소개되는 등 케인스 사상의 현재적 의미를 되묻는 작업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프레시안>은 케인스의 사상에 정통한 국내 경제학자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가 케인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근식 서울시립대 교수의 답변을 먼저 싣는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는 애덤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와 더불어 3대 경제학자이다. 세 사람의 경제학은 모두 시대의 산물이지만 이들의 경제학은 세상을 바꾸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세상은 사상을 낳고, 사상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꿈으로써 세상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이 세 사람에게서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가고 있는 경제 제도와 정책 대부분은 이 사람들의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략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유럽은 최초의 자본주의인 상업자본주의의 시대였다. 당시 유럽에서는 국가 간에 영토 전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각국 왕들은 부국강병을 위하여, 영리 사업의 직접 운영, 사업의 인허가, 무역 규제, 노동력 통제 등의 방법으로 경제를 직접 챙겼다. 부국강병을 위한 이 시대 유럽 국가들의 이러한 경제 개입 사상과 정책을 중상주의라고 한다.

중상주의는 정경유착을 낳았고 정경유착은 대자본 중심의 경제를 만들었다. 수많은 중소기업을 상대로 정부가 정경유착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과거 우리나라의 관치경제는 중상주의와 동일하다. 중상주의는 정경유착으로 특혜를 입은 소수 대상공인들에게는 유리하였으나 정경유착에서 배제된 대다수 중소상공인들(프티 브르주아)에게는 불리하였다. 정부의 경제 규제는 중소상공인들의 영업을 방해하였다. 이 때문에 당시 사회의 새 주도계층으로 부상하던 중소상공인들은 중상주의를 반대하여 정부의 경제 규제 철폐와 경제활동의 자유를 요구하게 되었다. 이런 중소상공인들의 경제적 자유주의를 대변한 것이 스미스였다.

기독교의 자연조화설을 믿었던 스미스는 시장경제도 하느님이 저절로 잘 작동되도록 만든 조화로운 자연적 질서이므로, 정부는 공정한 법질서만 확립하고, 공공시설 건설, 초등교육 제공, 금융 감독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장경제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보았다. 자유로운 시장경제가 확립되면 모두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고 투자하여 경제가 발전하여 모든 빈곤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스미스는 생각하였다. 이러한 낙관적인 세계관은 당시 새로운 사회 주도 계층으로 부상하여 부를 축적하던 중소상공인들의 낙관적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다.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은 19세기 유럽에 경제적 자유주의가 형성되는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스미스의 경제적 자유주의는 오늘날에도 신자유주의로 부활하여 맹위를 떨치고 있다.

스미스의 예측은 반만 맞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스미스가 예측한 대로 자본주의는 19세기 구미에서 사상 유례 없는 놀라운 경제 발전을 실현시켰다. 그러나 빈부 격차의 확대, 대규모의 불황과 실업이라는, 스미스가 보지 못한 시장의 실패가 19세기 자본주의 경제에 나타났다. 경제 발전에도 불구하고 빈부 격차로 인하여 대다수 인구를 점하는 노동자들은 비참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주기적 불황은 이들의 빈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이를 비판하고 등장한 사상이 마르크스로 대표되는 사회주의였다. 마르크스는 계급 혁명으로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여야만 노동자들의 빈곤과 인간성 황폐화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의 주장은 많은 노동자들과 양심적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어서 러시아, 중국, 베트남 및 쿠바 등 여러 나라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이 건설되는 결과를 낳았다.

구미 선진국들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수정자본주의(자본주의 경제를 그냥 살려두면서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여 시장의 실패를 치유하거나 완화하는 혼합경제체제)를 통하여 자본주의의 병폐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 방법의 확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람이 케인스이다. 19세기 자유방임주의 시대에 구미 선진국들의 경제는 크게 발전하였고 그 덕분에 노동자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자본주의경제에 대한 신뢰가 유지될 수 있었다. 이를 배경으로 스미스 이래의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불황과 실업은 일시적이고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보았다. 불황이 발생하면 상품가격과 임금이 하락하여 수요와 고용을 다시 증대시켜서 불황과 실업은 저절로 해소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초의 불황이 1825년에 발생한 이래로 약 10년을 주기로 불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1870년경부터 시작된 세계적 대불황은 무려 20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 장기 대불황은 제국주의와 독과점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장기 대불황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유지되었다. 이의 한 이유는 공황과 대량실업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라 생각된다. 자기가 배운 이론과 현실이 다를 때,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 틀렸다고 우기는 것은 경제학자들의 버릇이다.

▲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 ⓒ프레시안
아직 숨이 붙어 있던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를 끊은 것이 1930년대의 대공황이었다. 대공황의 한 가운데인 1936년에 출판된 케인스의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일반이론>)은 불황과 실업이 예외적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설명하는 전혀 새로운 거시경제학을 제시하였다. 이 덕분에 대부분 경제학자들은 고전학파 경제학의 미몽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불황과 실업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1920년대부터 케인스는, 개인의 사익 추구가 시장을 통하여 경제 전체의 이익으로 연결된다는 자유방임주의의 주장이 현실과 다르다고 비판하고 공익에 입각한 정부의 합리적 경제 개입의 필요성을 주장하였었다. <일반이론>은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독창적이며 전혀 새로운 거시경제학을 제시하였다.

이 책에는 불황을 설명하는 몇 가지의 서로 다른 이론들이 뒤섞여 있어서 아직까지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이 책의 핵심이론은 유효수요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고전학파의 생각은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라고 케인스가 요약한 '세이의 법칙'으로 표현된다. 화폐를 매개로 하지만 시장에서 교환되는 것은 상품과 상품이므로 모든 상품은 다른 상품에 대한 궁극적 구매력이다. 따라서 어떤 상품의 생산은 그 자체가 다른 상품에 대한 수요의 창출이므로 기본적으로 총수요의 부족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세이의 법칙이었다. 이는, 세계 제일의 경쟁력과 식민지를 갖고서 만들기만 하면 팔 수 있었던 전성시대의 영국 경제의 압도적 자신감을 반영한 이론이다. 반면에 수요가 공급을 결정한다는 케인스의 유효수요 이론은 과잉생산단계에 접어들어 대불황에 빠진 자본주의경제를 반영하였다고 볼 수 있다. 유효수요 이론에 입각하여 케인스는 정부가 통화 발행으로 조달한 재원으로 공공사업을 확대하는 총수요 확대 정책을 불황 대책으로 제시하였다.

케인스의 <일반이론>은 스미스 이래의 150년간 신봉되어 오던 자유방임주의를 추방하고 정부의 개입주의 시대를 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케인스의 개입주의를 추종하는 영미 케인스주의자들은 불황과 실업만이 아니라 빈부 격차, 독과점, 환경 파괴 등과 같은 시장의 실패 전체를 치유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 경제 개입을 이론적으로 뒷바침하는 신고전학파종합이라는 현대경제학을 만들었다. 시장의 실패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 경제 개입이 가미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선진국 자본주의경제를 복지국가형 수정자본주의경제라고 부를 수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 개입 덕분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한 세대 동안 대부분 선진국들은, 극심한 공황이나 빈곤 없이, 일찍이 보지 못한 장기번영의 태평성대를 구가하였다. 그러나 모든 인간사가 그러하듯이 개입주의 정책은 장점과 더불어 정부의 실패라는 문제점도 갖고 있었다. 불황을 막기 위한 정부의 지속적인 총수요 확대 정책은 인플레 기대심리를 낳아 점차 효력을 상실하여 실업은 별로 치유하지 못하고 인플레만 초래하는 결과가 되었다. 또한 관료와 정치인들의 무능과 부패가 빈번해지고 비대해진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서 세금이 크게 증대하여 왔다. 이로 인해 부유층만이 아니라 중산층들도 비대한 정부에 반감을 갖게 되었다. 이를 배경으로 1978년에 영국의 대처 수상이, 1980년에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케인스주의자의 개입주의를 비난하고 자유방임주의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가 지난 30년 동안 전세계를 지배하여 왔다.

신자유주의 덕분에 자유방임의 시장경제가 부활되어 정부의 실패는 줄어들었으나 동시에 시장의 실패라는 자유방임 시장경제의 고질적 병폐가 다시 등장하였다. 시장의 실패 중에서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빈부 격차 확대와 투기적 금융시장의 확대라고 생각된다. 미국의 경우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그 간의 높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중산층의 실질소득은 오히려 감소하였고 절대빈곤층의 인구는 크게 증가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미국의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반란 덕분이라고 생각된다. 1920년대에 이미 케인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현대 금융시장은 투기판이고 투기판은 본질적으로 극히 불안정하고 사기성이 농후하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금융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결과로 금융시장의 투기성과 불안정성이 크게 확대되어 폭발한 것이 현재 세계 경제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는 미국발 세계금융위기와 세계 대공황이다.

하이에크나 뷰캐넌 같은 신자유주의자들은 케인스가 자본주의 경제를 망쳤다고 비난하지만 병들어 죽어가던 자본주의 경제를 치료하여 살린 사람이 케인스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자본주의를 죽도록 방치하자는 사람들이다. 자유방임의 자본주의 경제를 그대로 방치하면 빈부 격차와 불황과 실업이 계속 악화되어 중남미처럼 법질서가 파괴되고 범죄가 만연하는 끔찍한 사회가 될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 이런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고 생각된다.

원래 자본주의는 천민자본주의이다. 19세기 구미의 자본주의를 보면, 돈과 자기밖에 모르고 돈 벌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천박한 자본가들의 모습이 가관이었다. 살인과 폭력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어린 어린이들이 잠이 부족하여 공장에서 졸면서 일하다가 죽거나 다치는 일이 예사였다. 돈이 돈을 벌고, 돈이 없으며 살 수가 없고, 혼자 힘으로 각자 알아서 살아가야 하는 자본주의 경제는 인간성과 윤리를 황폐하게 만드는 강력한 성향이 있다. 이것을 어느 정도 억제하던 것이 정부 규제와 염치를 알게 하는 건강한 사회 분위기였다. 신자유주의는 이런 정부 규제와 건강한 사회 분위기를 추방하고 돈밖에 모르는 천민자본주의를 다시 부활시켰다. 수많은 서민들이 돈이 없어 고생하는 한편에서 부자들은 염치를 모르고 돈으로 별 짓을 다하고 있다. 돈 밖에 모르는 천민들이 선망 받고 존경 받는 세상이 되었다.

현재의 세계 공황에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스미스나 마르크스가 아니라 케인스이다.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는 현재의 문제를 방치하자는 것이고,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는 답이 아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실제로 나타난 것은 평등과 우애와 풍요의 세상이 아니라, 대중의 빈곤, 권력을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빈부격차, 개인 자유의 박탈이었다. 탐욕과 시기심을 벗어날 수 없는 우리 인간들에게는 케인스가 제시한 복지국가형 수정자본주의가 해답일 것이다.

확대 재정금융 정책이라는, 공황에 대한 케인스의 해법은 현 상황에서도 여전히 필요하다. 세계적 금융공황과 실물공황 속에서 세계경제가 현재 이 정도라도 버티고 있는 것은 각국 정부들이 긴급 구제금융 제공과 재정지출의 확대라는 케인스의 대책을 실시하고 있는 덕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케인스식의 단기 대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대책을 찾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케인스가 지적한 불확실성과 투기성이라는 현대 자본주의 경제의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생산의 효율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빈곤을 추방할 수 있는 합리적인 공공복지제도를 확립하고, 투기자본의 국제 이동과 거대 금융기관들과 다국적 기업들의 불공정 행위를 방지하는 세계적 차원의 규제가 필요할 것이다. 정부의 실패를 예방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이 모두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투명성의 확보일 것이다. 정부도, 대기업도, 은행도 공개적으로는 부끄러운 짓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끄러움과 염치를 알고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건강한 사회 분위기를 다시 조성하고 사람들의 윤리의식 수준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 <존 메이너드 케인스>(전2권, 로버트 스키델스키 지음, 고세훈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프레시안
최근 국내에 출판된 <존 메이너드 케인스>(후마니타스 펴냄)는, 워릭대학 역사학 교수인 로버트 스키델스키가 1970년부터 30년간 집필하여 2003년에 출판한 것을 고세훈 교수가 4년간 심혈을 기울여 번역한 명저이다. 1권과 2권 합해서 모두 1600쪽이 넘는 대작인 이 책은 케인스의 경제학만이 아니라 케인스의 경제학이 나오게 된 시대적 배경, 집안 내력, 교육, 학문적 업적, 사회적 활동, 결혼, 동성애 행각, 거만한 성격 등 케인스의 모든 것을 매우 자세히 공정한 시각에서 보여준다.

그는 상아탑에 안주한 백면서생이 아니라 현실 문제 해결에 평생 적극 참여한 실천하는 지성이었다. 그는 두 번의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재무부의 핵심 간부로 영국의 경제 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직접 참여하였다. 또한 현안 문제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신문과 잡지에 수시로 기고하였고, 자기의 글을 실은 팜플렛도 여러 권 출판하였으며, 일반인들을 위한 수준 높은 잡지를 직접 만들어 경영하기도 하였다. 30대 중반부터 죽는 날까지 그는 항상 영국의 여론과 정책을 이끌어 갔다.

특히 그는 멸사봉공의 '공인정신'(public spirits)에 투철하여, 그의 전 생애가 사회와 조국과 인류를 위한 봉사의 실천이었다. 그의 공인정신은 그의 생애 마지막 기간이었던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에 가장 극명하게 발휘되었다. 그는 원래 병약하였으며 과로로 인하여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져서 제2차 세계 대전 발발시에 이미 병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재무부일을 맡아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헌신적으로 매진하였다.

그의 마지막 봉사는 종전후 미국으로부터 원조와 차관을 얻기 위해 협상대표로 미국에 가서 미국과 협상한 것이었다. 당시 새로 집권한 영국 노동당 정부와 미국 정부는 서로를 불신하여 케인스를 매우 힘들게 하였다. 특히 영국 노동당 정부는 케인스의 합리적인 타협안을 끝까지 계속 거부하여 케인스를 괴롭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협상 대표직을 사임하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건강을 완전히 상하여 미국에서 귀국한지 한 달 만인 1946년 4월 21일에 지병인 심장발작으로 사망하였으니 말 그대로 목숨을 바쳐서 조국에 봉사하였다.

하늘이 내린 그의 재능은 흉내낼 수 없지만, 그의 실천적 지성의 모습과 투철한 공인정신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tyio@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