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경력'이 훈장인가? 희망 없는 프로야구
[정희준의 '어퍼컷'] 비리 총장 맞이할 한국 야구
'비리 경력'이 훈장인가? 희망 없는 프로야구
프로야구가 심상치 않다. 4월말 이후 프로야구계는 살벌한 분위기로 돌변했다. 지난 4월 30일 KBO 이사회는 점차 불거지고 있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노조 설립 움직임에 대해 시기상조라는 데 뜻을 함께 하고 선수협의회와 적극적인 대화로 쟁점들을 풀어가기로 했다고 한다.

이날 이사회는 또 하일성 사무총장의 후임으로 이상국 전 사무총장을 선임했다. 그러자 시즌 중임에도 불구하고 선수협회는 지난 4일 노동조합설립추진위원회 회의를 열고 조합결성 강행을 선언했다.

그런데 선수협회가 요구하는 쟁점 중 특이한 게 있다. 선수들은 무승부를 패배로 간주하는 제도를 시정해 줄 것, 주말 경기가 우천으로 순연될 경우 월요일에 경기를 하는 규정을 없앨 것 등 매우 '선수스러운' 요구를 하다가 "특히 이상국 신임 사무총장의 임명을 철회해 달라"는 요구를 강조한 것이다.

▲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특히 이상국 신임 사무총장의 임명을 철회해 달라"는 요구를 강조했다. ⓒ뉴시스

'주고' '받다' 구속된 KBO 사무총장

이상국, 그는 누구인가. 광주 살레시오고와 성균관대 출신인 그는 원래 육상 선수 출신으로 해태타이거스에 구단 직원으로 들어가면서 야구와 인연을 맺는다. 이후 해태 단장, KBO 총재특보를 거쳐 1999년 12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약 6년간 KBO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그런 그가 야구 아닌 일로 유명세(?)를 타게 된다.

2005년 2월 그는 그냥 체포도 아니고 '긴급 체포'된다. 광고업체로부터 잠실야구장 펜스광고물 설치 수의계약 대가로 8900만 원을 받은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당시 그는 KBO의 사업을 총괄하는 KBOP의 대표이사도 겸하고 있었는데 광고업자는 KBO로부터 네 차례에 걸쳐 받은 2억3300만 원의 광고비 중 10~33%를 그에게 바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결국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배임수죄는 무죄가 됐지만 법원은 그가 부정한 청탁과 금품을 받은 사실은 인정했다.

또 이 전 총장은 그 광고업자가 문화관광위원장을 맡고 있던 열린우리당 배기선 전 의원에게 뇌물 5000만 원을 제공하는 데 개입했을 뿐 아니라 자신도 배 전 의원에게 3000만 원의 불법 정치 자금을 제공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구속돼 벌금형 500만 원을 받았다. 배기선 전 의원은 지난 2월 대법원으로부터 추징금 8000만 원, 징역 3년6개월을 확정 받았다.

사실 이 전 총장은 과거 재임 시절 돈 문제 등 불투명한 행정으로 말이 많았고 독단적 행정으로 인해 선수들은 물론 야구계 안팎에서 불만이 많았다. 특히 그는 프로야구 행정에서 야구인들을 철저하게 배제했던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래서 2005년 뇌물수수로 사표를 썼던 그가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으며 복귀할 조짐을 보이자 선수협회 소속 선수들의 95%가 그의 복귀를 반대하기도 했던 것이다.

KBO는 전과가 훈장인가

KBO 이사회가 선수들과 대화하겠다고 하면서 이상국 전 총장을 다시 총장에 앉히겠다는 것은 사실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선수협회 측도 이를 '말장난'이라 치부하면서 2000년 선수협 출범 당시 구단주들의 방해 공작을 진두지휘했던 인물을 임명하는 것은 선수협회에 대한 탄압에 다름 아니라면서 그와의 대화를 거부키로 했다.

그러나 뇌물로 구속됐던 그가 2005년 일부 무죄판결을 받자마자 다시 사무총장에 복귀할 당시, 8개 구단 사장들이 그의 복귀를 눈감아 준 것처럼 이번에 8개 구단 사장들은 또 그를 사무총장에 앉혔다. 하긴 그가 모셨던 박용오 총재는 비자금 조성과 분식회계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그리고 벌금은 80억 원을 추징당한 적이 했으니 그에 비하면 이 전 총장의 비리는 '애들 장난'이었으리라. 어쨌든 KBO는 이렇게 해서 과거로 퇴보하고 있다. KBO에게 뇌물수수 구속 경력은 훈장인가. 구단들도 다 재벌기업들이라 그런지 뇌물수수조차 능력의 척도로 보는 것 아닌가.

사실 이상국 전 총장은 현 유영구 KBO총재가 총재 후보로 등장하면서부터 그 배후로 지목됐었고 유영구 총재가 등극하면서 총장 재발탁이 유력시 됐었다. 이 전 총장이 구단주들 사이를 오가며 거간꾼 노릇을 했다는 사실은 야구계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유영구 총재는 누구나 문제인물이라고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사람들 중 '그 때 그 사람' 이 전 총장을 낙점했다.

500만 관중에 시청자가 수천만 명이다. 한국 프로야구는 이런 식으로 막 가도 되는 것인가. 한국 프로야구의 실무책임자로서 정치인에게 불법 정치자금 주다가 범죄자가 된 인물을 그 자리에 또 앉히는 게 도대체 상식에 맞는 일인가. KBO는 도대체 낯짝도 없는가. 야구도 운동이라고 '운동권' 티내나. 전과도 훈장인양 자랑할 건가.

KBO는 이상국 내정자에 대한 지명 철회 요구에 대해 "KBO의 인사권은 선수협에서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다"고 했다는데 그럼 KBO 인사권은 비리인사 뽑는 권리인가. 일본 프로야구는 벌금형만 받아도 퇴출이다. 국회의원이나 공직자들도 벌금 100만 원이면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는가.

KBO 사무총장은 구단주의 '부하 직원'

▲ 이상국 전 KBO 사무총장. ⓒ연합뉴스
이상국 전 총장은 한국 프로야구의 실질적 책임자로서 선수와 팬을 섬겨야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오직 구단의 편에 섰다. 그는 한국 프로야구의 발전보다는 구단주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이다. 2000년 구단과 함께 그걸 가장 앞장서서 실천한 사람이 바로 이 전 총장이다.

2000년 선수협의회 파동이 일었을 때의 일이다. 모 구단 선수들이 식당에서 모이기로 했다. 이를 알게 된 구단 사장이 식당으로 쳐들어갔다. 그런데 선수들은 안쪽 방에 있었고 홀에는 구단 서포터즈들이 지키고 있다가 사장 일행이 들이닥치자 맞서서 더 이상의 진입을 막았다. 물리력으로 서포터즈들의 방어막을 뚫지 못하자 사장은 열이 올라 카메라가 있는 것도 개의치 않고 말한다. "지들 월급 주는 게 누군데."

그들이 선수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망언이다. 그럼 자기 월급은 어디서 나올까. 선수들이 없었다면 '지'는 월급 받고 살 수 있을까. 밥이나 먹고 살까.

그 구단의 구단주는 바로 박용오 당시 KBO 총재였다. 두산의 회장이었던 그는 형제들과 경영권을 놓고 싸우다가 결국 인연을 끊고 작년 2월 새로운 기업을 인수했다. 바로 성지건설. 그는 첫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경영권 강화를 위해 측근들을 이사에 선임해 문제가 됐다. 그런데 박 전 총재의 두 아들과 함께 이사진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바로 이상국 전 총장이다. 측근 이사진 선임에 반대했던 일명 '장하성 펀드' 측은 이 전 총장을 지목하며 '박용오 전 총재의 부하 직원으로 독립성을 기대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는 KBO 사무총장으로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야구계가 작별해야 할 인물들

확실히 그는 20세기형 사무총장이다. 그는 구단 사장들에게 골프 접대를 자주 했고 거마비도 꼭 챙겨줬으며 퇴임하면 큼직한 돈을 전별금으로 줬다고 한다. KBO예산이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었다. 기자들에겐 촌지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축구계에 '정몽준 장학생'이 있다면 야구계엔 '이상국 장학생'이 있다. 최근 그의 복귀를 알리는 신문기사들을 보라. (특히 과거 그와 절친했던 종이신문들 말이다) 나는 이런 인물평을 본 적이 없다. 거의 용비어천가다.

'추진력 있는 일 처리와 행정 장악력,' '뛰어난 행정 능력과 수완을 발휘,' '적임자,' '실무형 총장 등장,' '탁월한 능력,' '각종 현안 해법 기대,' '야구행정가로서 탁월한 능력' 등의 눈꼴 시린 찬사를 보다가 'KBO 행정력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 '역대 사무총장 가운데 추진력과 실적에서 가장 낫다는 평가,' '역대 총장 중 최고 실무형으로 꼽히는 행정가'라는 부분에 이르면 내 낯이 뜨거워진다.

이들 기사는 보도자료를 보고 썼는지 불러주는 대로 썼는지 '탁월한 능력 발휘…SK와 KIA의 창단 주도…타이틀 스폰서 유치와 중계권료 인상'이라는 쌍둥이 같은 표현이 꼭 박혀 있다. 특히 이 기사들은 한결같이, 정말 하나 같이 이 전 총장의 금품수수, 구속, 벌금형 등 비리 문제는 언급도 없다. 그 때 다들 특파원으로 나가 있었나. 한 기사는 그의 약점이 '과거 인사'라는 점이란다. 참 신기한 기자다. 그가 역대 사무총장 가운데 최고 비리 총장이었고 최고로 야구인 무시하는 총장이었다는 사실은 왜 안 쓰나. 현재 선수협의 노조결성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기사들은 앵무새처럼 '시기상조'만 되뇌면서 선수들 이간질 시키는데 열심이다.

한국프로야구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유영구 총재. 지난 3월 WBC가 열리는 미국으로 건너가 야구장 보다는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프로야구의 수장. 미국과 일본의 커미셔너들은 기자실을 직원처럼 뻔질나게 드나드는데 샌디에이고 관광에 바빠 KBO 직원들도 어디에 계신지 파악이 되지 않았던 총재. 이제와서 보니 야구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총재. 이사장으로 있는 명지의료원은 재정적 위기에 처했고 그래서 가지고 있는 학교도 내놨다는데 KBO 총재는 왜 하시는지 궁금하기만 한 분. 그래서 혹 잿밥에 더 관심이 많으신 것 아닌가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 분. 그래서 그는 더욱 이 전 총장 같은 사람을 필요로 했나.

걱정된다, 한국 야구

그가 이 전 총장을 신임 사무총장으로 지목하자 구단 사장들은 한두 명 빼곤 내키지 않았지만 반대를 못했다고 한다. 유 총재도 정권과 무슨 연줄이 있다는 세간의 소문 때문에 나서지 않기로 한 것 같다. 전임 신상우 총재처럼 구단들은 유 총재도 정치인으로 보기 시작한 것 아닌가. 그래서 도대체 이루어진 게 뭐 있나.

신상우 전 총재와 하일성 사무총장. 유영구 현 총재와 이상국 사무총장. 한숨만 나온다. 정말 걱정된다. 이상국 같은 사람이 KBO 사무총장에 앉는 순간, 한국 프로야구의 격은 거기에 맞춰지게 된다. 그의 세 번째 총장 취임은 한국 야구에 대한 도전이다. 그리고 제발 앞으로 KBO 사무총장은 '주량'으로 뽑지 말았으면 한다.

한국 야구는 위기다. 최근 초·중·고·대학 팀은 팀 숫자, 선수 숫자 모두 줄고 있다. 초등학교팀 대부분은 한 팀 선수가 15명 이내다. 9명인 팀도 있다. 프로야구는 불안한 8개 구단 체제가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는데 관중들은 정말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는 경기장에서 목숨 걸고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야구인들, 이제까지 정치인들에게만 매달리더니 참 꼴좋게 됐다. 며칠 후인 15일까지 신임 사무총장이 결정되면 모든 게 결판난다. 한국 야구의 미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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