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고 의대가 '김일성대학'이 아닌 이유는?"
[의학사 산책] 북한의 의학 교육
"북한 최고 의대가 '김일성대학'이 아닌 이유는?"
보건 일꾼이란?

남한에서 의료인을 북한에서는 '보건 일꾼'이라고 부른다. 보건 일꾼에는 의사 이외에도 구강의사, 고려치료의사, 위생의사, 약사, 준의사, 간호원, 방법사(의료 보조원 및 의료기사) 등의 다양한 직종이 포함된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의사'란 용어를 상당히 포괄적으로 사용한다. 우선 남한의 치과의사를 구강의사라고 부른다. 한의사는 고려치료의사로 부른다. 북한에서는 한의학을 애초 동의학이라 불렀다, 최근에 고려의학이라고 부르는 것을 반영한 것이다.

위생의사는 위생학부를 졸업한 자로 산업 보건이나 방역 관계의 업무를 보며 환자 진료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남한으로 치면 예방의학 분야의 전공자에 해당한다.

준의사는 명칭에 의사가 들어가기에 남한에서와 같은 의사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준의사는 4년 과정의 의학전문학교 혹은 의학고등전문학교를 졸업한 자로 의사와 간호원의 중간 단계에 해당한다. 남한의 보건학과나 보건전문학교 졸업생에 해당된다.

이외에 의사와 준의사의 중간 정도인 4~5년 과정의 의학단과대학을 끝내면 좁은 의미로 외과 영역의 진료만을 할 수 있는 '외과의사'도 있다.

해방 직후 북한의 의료 상태

1945년 11월 19일 북한 최초의 행정기구인 5도행정국이 설치될 때, 10국 중의 하나로 보건국이 설치되었다. 1946년 2월 8일에는 5도행정국과 지방인민위원회를 통합한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이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는 1946년 11월 선거를 거쳐 1947년 2월 북조선 인민위원회로 발전하였다. 1948년 9월 수립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보건상에는 남로당 출신의 이병남이 선출되었다.

해방 직후 북한의 의료는 설비나 인력 면에서 열악한 상태였다. 설비 면에서 보면 병원은 42개로 그 수가 절대적으로 모자랐고 그나마 대부분 개인 소유로 1946년 현재 개인 병원과 국가 병원의 비율은 16:1이었다.

북한 정권은 1946년 3월 20일 발표한 20개 정강에서 "(20) 국가 병원 수를 확대하고 전염병을 근절하며 빈민들을 무료로 치료할 것"을 명시하고, 개인 개업의 제도에 기초한 일제 식민지 보건의 잔재 청산과 인민의 건강을 국가가 책임지는 국가적인 보건 사업 체계 정립을 중요한 과업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사립 의료기관을 없애고 국유화를 달성하려던 북한 당국의 노력은 안팎 정세의 급격한 변동과 의사들의 비협조 등으로 난관에 부딪혔다. 이에 1947년 4월 8일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는 제30차 회의에서 '평양특별시 제1인민병원 당단체 사업 정형에 관하여'란 결정을 채택하고 일부 의사, 간호원 속에 남아 있는 낡은 사상 잔재를 청산하고 애국주의 사상과 사회 발전 법칙에 대한 교양을 강화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많은 개업의들이 반강제적으로 국가에 의료 시설과 설비를 기증하였고, 이 시설과 설비를 이용해 인민병원을 설립하였다. 동시에 치료비 규정을 제정하여 개업의들의 활동을 제한했는데, 치료비를 일률적으로 정하고 누진적 세금 제도를 실시하였으며, 개업의들은 국가에서 지정하는 일정한 지역에서만 개업 활동을 하도록 제한하였다. 이에 반해 국가가 운영하는 병원의 의료 수가는 대폭 낮추었다.

이에 따라 개인 병원이 대폭 감소해 1949년 상반기에는 국가 병원과 개인 병원의 비율이 100 : 17로 되었다.

평양과 함흥 : 북한 의학 교육의 양대 산맥

▲ 평양의학대학 학장 정두현의 자필 이력서(1947). ⓒ동은의학박물관
북한은 1947년 8월 29일 제정된 규정에 의해 의학대학을 졸업하고 보건부에 등록하면 의사의 자격을 얻을 수 있게 했고 새로운 면허증을 교부해주었다. 또 의학대학은 남한과 달리 5년제로 정하고 의사 국가 시험 대신 졸업 시험으로 대신했는데, 평양의과대학의 경우 1949년의 첫 졸업생부터 졸업장과 졸업 성적표로 면허증을 대신하였다.

1946년 7월 8일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는 '북조선에 대학을 설치하는 결의'를 담은 법령 제40호를 발표하고 북한의 최고 학부로서 김일성종합대학의 창설을 결정하였다. 이 법령의 제2조에 따라 평양의학전문학교는 대학으로 승격되어 1946년 9월 1일 창설된 김일성종합대학의 의학부로 편입되었다.

또 제4조에 따라 의학전문학교의 3학년 학생은 의학부의 제1학년생이 될 자격을 부여받았다. 김일성대학 의학부는 의학과, 약학과, 구강학과로 구성되었고, 의학부장으로는 정두현이 임명되었다.

그런데 북조선 인민위원회는 1948년 7월 7일 제69차 회의에서 결정 157호 '북조선 고등 교육 사업 개선에 관한 결정'을 통과시켜, 9월 1일부터 의학부를 의학과, 약학과, 위생학과를 갖는 평양의학대학으로 독립시켰다. 의학대학의 학장에는 다시 정두현이 임명되었다. 1948년 평양의학대학은 150명의 신입생을 모집하였고, 1949년 현재 639명의 학생이 있었다.

▲ 평양의학대학 제1회 졸업 앨범(1949). ⓒ프레시안
현재 평양의학대학은 6개의 학부와 1개의 학과로 이루어져 있다. 6개의 학부는 기초의학부, 임상의학부, 동의학부, 구강학부, 약학부, 위생학부이며, 1개 학과는 기초학과이다. 기초의학부는 1970년대 중반 기초의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지만 모든 강의 및 실습 내용이 임상의학부와 동일하며, 졸업 후에도 임상의사가 될 수 있다. 기초학과는 외국어, 수학, 물리, 화학 등의 기초학문을 담당한다.

해방 직전인 1944년에 개교한 함흥의학전문학교는 졸업생을 내지 못하고 해방을 맞았다. 1946년 9월 1일 함흥의학전문학교의 건물과 시설을 이어받은 함흥의과대학이 의학과만을 가진 채 개교하였고, 최명학이 학장에 임명되었다. 함흥의과대학은 1948년 150명의 학생을 뽑았고, 1949년 현재 630명의 학생이 있었다.

현재 함흥의학대학에는 의학과, 동의학과, 위생학과 및 약학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평양의학대학 졸업장(조기화, 1949) . ⓒ동은의학박물관

각 도에 설치된 의과대학

한편, 1948년 2월 6일 김일성은 한 연설에서 청진에 의과대학을 설립할 것을 제안하여 그해 9월 1일에 의학과만을 갖는 청진의과대학이 개교하였다. 학장은 양진홍이 맡았다. 청진의학대학은 1948년 90명의 신입생을 뽑았고, 1949년 현재 145명의 학생이 있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6년 후인 1959년에는 네 번째 의과대학인 해주의과대학이 신설되었다.

이후 1968년에는 신의주의과대학과 강계의과대학이 설치되었고, 1969년에는 원산의과대학, 사리원의과대학, 남포에 위치한 평남의과대학 등이, 1970년에는 혜산의과대학 및 개성의과대학이 창립되어 각 도에 의과대학 1개씩 모두 11개가 설치되었다.

현재 이들 의과대학은 의학과, 약학과, 동의학과가 공통적으로 설치되어 있고, 학교에 따라 위생학과나 임상학과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0년 대 중반에는 평성의학대학이 설립되었다.

의과대학의 이름을 바꾸다

▲ 평양의학대학 외과 교수 안경림이 받은 엽서. ⓒ동은의학박물관
1990년에는 평양의학대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의과대학들의 이름이 바뀌었는데, 평성의과대학은 봉화의과대학, 신의주의과대학은 광제의과대학, 강계의과대학은 인풍의과대학, 해주의과대학은 장수산의과대학, 사리원의과대학은 강건의과대학, 원산의과대학은 송도원의과대학, 함흥의과대학은 정성의과대학, 청진의과대학은 경성의과대학, 혜산의과대학은 가림천의과대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현재 이들 의학대학의 학생 수는 평양의학대학이 2480명, 함흥의학대학이 1040명, 청진의학대학이 720명, 해주의학대학이 720명이고, 신의주, 강계, 원산, 사리원 및 평남의학대학이 400명, 혜산 및 개성의학대학이 320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북한의 의학 서적(1960년대). ⓒ동은의학박물관

전쟁 중 설립된 과학원

북한은 1952년 12월 과학원을 개원하였다. 과학원 산하에 설치된 의학연구소는 실험의학연구실, 임상의학연구실, 위생학연구실, 생약학연구실, 제약학연구실, 군진내과의학연구실, 군진외과의학연구실 등의 연구실이 있었다. 의학연구소는 1958년 의학과학연구원으로 확대되었고, 1963년 11월 조선의학과학원으로 개편되었다.

▲ 현재의 평양의학대학의 배치도(왼쪽)와 현재 구강학부가 사용하고 있는 일제 시기의 평양의학전문학교 교사. ⓒ동은의학박물관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tyio@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