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5000원으로 '간병비 부담' 줄인다고?
시민단체 "'졸속'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 지방선거용이냐"
2010.03.16 16:03:00
고작 5000원으로 '간병비 부담' 줄인다고?
환자가 따로 돈을 들여 간병인을 두지 않아도 되는 병원, 일명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을 위해 44억 원의 예산을 따낸 주인공인 시민단체들이 16일 "시범 사업을 당장 중단하라"는 입장을 밝혔다.

전날 나온 보건복지부의 '간병서비스 제도화 시범사업 참여병원 공고'에 대해 반대 입장을 낸 것. 지난해 말 복잡했던 예산 정국에서 이 사업의 예산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한국백혈병환우회 등 8개 단체가 왜 갑자기 입장을 바꿨을까?

답은 보건복지부의 사업 계획을 들여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시범사업의 실패를 바라고 세운 계획 같다"는 것. '보호자 없는 병원 실현을 위한 연석회의'는 복지부의 시범사업 추진계획안에 대해 "간병서비스의 사회화라는 사업의 목적을 실현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민혈세 44억 원을 지자체 선거용 선심성 사업에 쓰는 것일 뿐"이라고 혹평했다.이어 이들 단체는 사업 계획의 전면 재수정을 요구했다.

환자 부담 간병료, 2007년 한양대의 시범사업과 비교해도 2배

▲ 보건복지부는 지난 15일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를 통해 '보호자 없는 시범사업' 참여 병원 모집 공고를 냈다. ⓒ프레시안(여정민)
보건복지부는 지난 15일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를 통해 '보호자 없는 시범사업' 참여 병원 모집 공고를 냈다. 공고일인 15일부터 오는 26일까지 사업 참여 병원의 신청을 받아 12개 기관 내외를 선정한 뒤, 4월부터 12월까지 8개월 동안 시범사업을 벌이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에 대해 연석회의는 "아무리 봐도 민간의료보험사의 일을 정부가 대신해주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며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의 그림자를 드리운 계획안"이라고 평가했다.

당장 환자의 간병료 부담이 현재와 비교해 고작 5000원 정도 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계획안에 제시된 간병료는 4인실에 입원한 중증환자를 기준으로 1일 5만5250원이다. 환자가 개인적으로 간병인을 고용하는 경우, 24시간 간병료는 6만 원 수준이다. 6인실 경증 환자도 1인당 부담해야 하는 간병료는 2만9000원이다.

연석회의는 "5000원 더 주고 개인간병을 이용하면 24시간 환자 1명만 간병해주는데, 어떤 환자가 하루에 5만5000원이나 내고 1명의 간병인이 4명의 환자를 돌보는 공동간병을 이용하겠냐"고 따져물었다. 지난 2007년 노동부 주관으로 한 차례 시범사업을 벌였던 한양대병원의 사례를 보면, 당시 간병료는 1인당 1만5000원에서 2만 원 수준이었다. 2007년 사업과 비교하면 최소 2배가 넘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심지어 복지부는 건강보험료 납부마저 면제받는 의료급여수급권자에게도 간병료의 50%를 부담하도록 했다. 연석회의는 "정부로부터 생활비를 보조받아 생계비를 이어가는 이들에게 간병서비스의 대가로 하루에 1만4500원~2만7600원, 한 달에 43만5000원~82만8000원을 내라는 발상을 어떻게 복지부가 할 수 있냐"고 비판했다.

"환자의 높은 간병비 부담을 사회적으로 해결해 의료비 부담을 좀 줄여주자"는 애초 사업 취지를 생각했다면 이런 발상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 연석회의의 입장이다.

"의료서비스 질 하락을 정부가 주도하는 셈"

이 사업의 또 하나의 목적이라 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 질 향상과 양질의 사회복지 일자리 창출"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복지부의 사업계획안은 "엉망진창"이다. 일단 복지부는 시범사업 참여 병원 기준조차 제대로 정하지 않았다. 즉, 간호사 1인당 환자수가 20~30명을 초과하는 간호등급 7등급 병원도 참여할 수 있다.

이주호 연석회의 정책위원장은 "이런 병원에서 시범사업을 벌이면 간호사가 해야 할 업무를 간병인에게 떠맡기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간호사의 업무를 간병인이 맡아서 하면, 전문적 교육을 받지 않은 간병인이 의료 서비스까지 책임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한양대병원의 시범사업에서는 해당 병동의 간호인력을 간호사 1인당 환자 12~15명 수준인 2등급으로 맞춰 사업을 벌였었다.

더 큰 문제는 장기적인 영향에 있다.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목표로 한 이 사업에 중소병원을 무작위로 참여시키면, 중소병원은 앞으로 점점 더 전문 인력인 간호사 대신 값 싼 간병인을 고용하는 경향이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석회의는 "이번 사업에 중소병원들이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보이는 것은 '간병서비스 제도화'가 자신들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목표로 한 이 사업에 중소병원을 무작위로 참여시키면, 중소병원은 앞으로 점점 더 전문 인력인 간호사 대신 값 싼 간병인을 고용하는 경향이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뉴시스

"말이 좋아 간병서비스 제도화지…"

현재 전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간병노동자의 근로조건 역시 현 계획으로는 전혀 개선될 여지가 없다.

복지부는 '간병인 직접고용과 1일 3교대 근무'를 원칙이라고 내세우고 있지만 "불가피한 경우"라는 예외를 모두 인정하고 있다. 즉, 병원의 사정이 되지 않으면 파견 노동자를 사용할 수도 있고, 12시간 맞교대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주호 정책위원장은 "이런 예외조항이 있는데 어떤 병원이 비용 부담이 더 큰 간병인 직접고용과 3교대를 지키겠냐"고 말했다.

간병인의 임금 역시 최저임금을 보장했던 한양대병원의 시범사업과 달리, 복지부는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연석회의는 "정부의 시범사업이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8개월에 불과한 한시적, 저임금의 일자리를 만드는 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시범사업인만큼 양보다는 질을 높여야하는데 현재 복지부는 양에만 치중해 있다는 것이다. 연석회의는 "말이 좋아 '간병서비스의 제도화'이지 실제 내용을 보면 간병서비스 표준가격을 산출하는 게 이 사업의 전부"라며 "지자체 선거 전에 '그림'을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사업 추진을 전면 중단하고 다시 계획을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지부 거부하면 '보이콧' 벌일 것"

연석회의는 대안도 함께 내놓았다. 정 예산이 부족하다면, 대상병원을 현재 12개에서 대폭 줄이고 사업 기간도 8개월에서 6개월로 줄여서 추진하면 되지 않냐는 것이다. 대신, 환자부담 비중을 더 줄이고 간병노동자의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보장해야 한다고 이들은 강조했다. 또 대상 병원도 간호등급 2등급 병원으로 한정하자고 덧붙였다.

이주호 정책위원장은 "시범사업인만큼 양보다 질이 담보되어야 향후 본사업을 위한 평가도 가능한데 시범사업부터 날림공사를 하는 것은 정부의 홍보용으로 쓰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들 단체는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면담을 공식 요청했다. 또 "관련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보호자 없는 병원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계획을 다시 짜자"고 덧붙였다. 연석회의는 "복지부가 우리 제안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시범사업 보이콧 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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