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관세 인하, 문제와 답이 모두 틀렸다
['설탕 담합' 반론 ②] 관세 인하, 소비자에게 도움 안 돼
설탕 관세 인하, 문제와 답이 모두 틀렸다
9월 말부터 <프레시안>에 박창기 (주)엔오푸스 대표의 기고가 게재됐습니다. 과거에 제당업계에서 일했던 박 대표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설탕 담합의 실태를 드러낸 글들입니다. 글이 게재된 후, 제당업계에서 두 편의 반론문을 보내왔습니다. <프레시안>은 반론권 보장 차원에서 제당업계의 목소리를 담은 두 글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설탕 담합 이야기
① 맷 데이먼 주연 'CJ-대상 담합' 영화를 아시나요?
② 바람피우던 클린턴도 이 전화는 못 끊었다
③ 난 이병철이 직접 서명한 담합 비밀합의문을 봤다
④ 한미FTA 쇠고기 양보는 설탕 때문?

최근 수년간 우리나라 통상의 기본 축으로 삼아온 FTA 협정에 있어, 국가 간 무역 장벽을 낮추고 상호 이익이 되도록 협정을 통해 시장을 개방하는 자유경제체제는 필자의 연구분야다.

개방 기조 하에서도 특수한 사정이 작용하거나 국가 간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는 민감품목들의 경우에는 모두 예외를 둔다. 예를 들어 한미 FTA에서 미국은 선박과 섬유에 대해, 우리나라는 쌀을 포함한 농산물이 민감품목이었다. FTA건 다자무역체제 하의 무역 자유화 논의에서건 국가 간 보호무역이 적용되어 온 대표적인 품목은 설탕이다. 얼핏 생각하면 설탕은 가공식품이고 무역 개방 대상이 될 것 같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FTA란 국가 간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무역 장벽을 제거하는 협정을 말한다. 자유무역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국가 간에 자유롭게 거래가 될 수 있도록 정상적인 시장기능을 가진 품목들이어야 한다.

설탕은 세계 시장의 이중구조와 국가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로 인해 FTA에서 항상 대표적인 민감품목으로 논의되어 왔다. 물가 인상의 높은 파고 속에서 우리나라 정부가 최근 몇 년간 물가 안정 카드로 관세 인하 압박을 해 오고 있지만, 우리나라보다 몇 배나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논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매년 설탕 관세 인하가 주장되고 있다. 특별히 관심을 가질 만한 품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갖는 이유와 관련해,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왜곡되어왔던 문제들을 풀어가는 하나의 방법으로 설탕 관세 인하를 거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설탕의 관세 인하를 독과점 시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대기업들의 독점적 지위를 낮출 수 있고, 시장이 더 민주적으로 변화해 소비자에게 더 혜택이 되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탕 관세 인하는 그러한 낙관적 미래를 약속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설탕이 국제시장에서 일반 상품과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대형 마트에서 한 고객이 설탕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설탕 관세 인하하면 무역 협상 카드 잃게 돼

최근 한 기고문에서 설탕 관세 인하를 주장한 것을 보았다. 국내 설탕업계가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구시대적 행위와, 그를 통해 확보한 독점적 시장지위, 그리고 그를 기반으로 취해온 폭리에 대해 언급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설탕 관세 인하를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독과점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면 답은 국내 공정거래 관련 정책이나 기타 다른 경제 정책에서 찾아야 한다.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올바른 답을 구하기 힘들다.

국제 시장 및 통상 관점에서 판단해야 할 관세 인하 문제가 물가 안정이나 독점시장 구조 붕괴를 위해서만 거론되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왜 설탕 관세 문제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인지에 대해 몇 가지 설명이 필요하다.

첫 번째, 세계 설탕 시장은 정상가격으로 유통되는 자국 내 시장 가격과, 덤핑 가격으로 유통되는 수출가격이라는 이중구조를 갖고 있다. 대량으로 원료를 구매해 가동률을 높이는 장치산업의 특성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세계 설탕 시장은 대표적인 덤핑 시장이 되었다. 지난 2004년 EU의 설탕보조금 지급에 대한 WTO의 불공정 무역 판정 이후 EU가 수출량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덤핑 구조가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아직도 100만 톤이 넘는 물량이 수출되고 있으며 정상화까지는 꽤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설탕의 이러한 특성이 오랫동안 유지되면서 전통적으로 대부분의 국가들이 매우 높은 관세-비관세의 무역 장벽을 갖고 있다. 세계 최대 수출국인 브라질도 16%의 수입관세를 부과하고 있고 한국처럼 농업기반 없이 원당을 수입하여 정제하는 나라(말레이시아, 캐나다, 알제리)들도 수입 허가제를 실시하거나 한국보다 높은 관세를 부과하여 수입을 억제하고 있다. 일본 314%, EU 261%, 캐나다 150% 등 그 보호무역 장벽의 높이는 엄청나다. 자국의 과잉 생산물을 덤핑 처리하고 국내로 재반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반 상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의 높은 관세를 적용하고 있고, 어떤 형태의 무역협정에서도 이들 관세는 유지되고 있다. 즉 설탕은 자유무역협상에서 가공식품 중 유일한 민감품목이다.

세 번째,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무역협상에서 자국 경쟁력이 있는 생산품목 외에 사용할 수 있는 협상카드의 하나로 설탕을 보유하고 있다.

한미 FTA에서 설탕은 "양허코드2"(발효 후 15년까지 관세율 30%를 유지한 후 16년째 나머지 관세율 30% 일시 철폐)로 규정됐다. 그런데 급작스럽게 국내 독과점 시장이라는 이유로 설탕 관세를 인하하게 되면 한미FTA 협상 결과는 의미를 잃게 된다. 향후 협상이 추진될 중국, 일본, 브라질, 말레이시아, 태국 등은 우리나라 설탕 내수시장 진출에 관심이 높은 국가들인데 갑자기 우리나라만 설탕 관세를 인하해버리면 상대 국가와 협상할 때 쓸 중요한 카드 하나를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내수시장의 한계로 인해 수출 의존도가 높고 무역 거래량이 많은 우리나라로서는 주요 교역국가와 FTA 협상을 추진하는 것이 앞으로도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국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설탕 관세를 스스로 철폐할 이유가 없다. 설탕은 지금까지의 FTA 협상에서는 물론 향후 FTA 협상에서도 쟁점이 될 수 있는 사안이므로, FTA를 통한 개방 기조를 감안하여 기본 관세율이 검토되어야 한다.

네 번째, 관세 인하는 소비자 후생을 증진시킨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나, 시장이나 산업구조가 왜곡되어 있는 경우에는 정반대의 결과가 가능하다. 지금까지 몇 년간 지속적으로 설탕 관세를 인하해왔으나 소비자 후생이 개선되기보다 물가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은 그 상관관계가 이미 의미가 없음을 방증한다. 이는 왜곡된 국제 설탕 시장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고, 설탕이 이미 소비생활에서 차지하는 규모가 크지 않으므로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문제보다는 간접적으로 물가 불안 영향을 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국내 업계의 독점적 지위 해소를 위해 무작정 설탕 관세를 인하해야 한다는 것은 산업의 특성에 따른 이해나 고려가 부족한 주장이다. 시장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관세 인하는 결국 국가의 무역 협상력, 국내산업 경쟁력 등에 긍정적이지 못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소비자 후생 증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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