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일미군 철수 검토했다. 왜?
[정욱식 칼럼] 희한한 일본, 더 희한한 한국
미국, 주일미군 철수 검토했다. 왜?

일본에서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2월 9일 도쿄도지사 보궐선거를 앞두고 ‘반아베 연합전선’이 형성되고 있는데, 이 전선에는 출마를 선언한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전 총리를 비롯해 아베의 ‘정치적 스승’이자 ‘우경화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민주당 출신인 간 나오토(菅直人)와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 등이 대거 합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정파와 이념을 초월해 거물급 정치인들이 모이고 있는 이유를 두고 고이즈미 전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원전 없이도 일본이 발전할 수 있다는 집단과 원전 없이는 안 된다는 집단 사이의 싸움이다.” 그런데 고이즈미를 비롯한 ‘반아베-탈핵 연합’을 주도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원전 전도사’를 자칭한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참사 이전까지는 말이다.

 

▲ 호소카와 모리히로(왼쪽) 전 총리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와 '탈 원전' 연대를 기치로 도쿄도 도지사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사진은 지난 14일 도쿄도 내에서 회동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이들에게 3.11 참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사고 당시 총리였던 간 나오토가 “일본이라는 나라의 존재 자체가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원전의 존속 여부는 국가의 존망이 걸린 사안으로 비춰졌다. 나라가 망할 수도 있었던 엄청난 사태를 경험하고도 원전 질주를 멈추지 않는 아베 정권을 멈춰 세우기 위해서는 이념을 초월해 뭉치는 길밖에 없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원전에 대한 문제 제기를 좌파의 궤변쯤으로 취급하는 한국의 현실과 너무나도 대비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주일미군 철수도 검토했다!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후쿠시마 참사 당시에 이런 일도 있었다.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주일미군의 철수까지 검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었던 제프리 베이더의 회고록 <오바마와 중국의 부상(Obama and China's Rise)>에 따르면, 일본 본토의 핵심적인 주일미군 기지인 요코다(橫田)와 요코스카(橫須賀) 주둔 미군과 가족의 철수 문제는 당시 미·일 동맹의 최대 난제였다. 미국인의 안전과 철수 시 미·일 동맹에 미칠 파장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는 것이다.

 

베이더에 따르면, 미국 내 정부에서는 이 문제를 놓고 격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미국인의 안전을 위해 철수를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그럴 경우 미·일 동맹은 사실상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반론도 있었다. 방사능 오염 추정치도 기관마다 달랐다. 이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는 도쿄 거주 미국 민간인에게는 자발적인 철수를 권고하는 한편, 주일미군 철수에 관한 비상 계획도 마련했다. 방사능 오염도가 높아질 경우 주일미군 철수를 단행키로 한 것이다.

 

당시 미국과 일본 정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대상은 후쿠시마 원전 4호기의 운명이었다. 연료 교체를 위해 가동 중단에 있었던, 그러나 다량의 사용 후 연료봉을 임시 수조에 저장하고 있었던 4호기마저 폭발하면 ‘저팬 아마겟돈’을 피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일본 정부는 추가적인 상황 악화 시 3천만 명에 달하는 도교도 주민을 대비시킨다는 계획이었고, 미국 정부는 요코다와 요코스카 주둔 미군을 철수한다는 비상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지나친 진단이 아니었다.

 

다행히 4호기는 2호기 폭발로 손상을 입었지만, 폭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야말로 하늘이 도운 셈이다. 그리고 일본의 전직 총리들이 손을 잡고 ‘탈원전 전도사’를 자임하고 나선 데에는 핵발전과 일본의 미래는 양립할 수 없다는 뼈저린 각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한국에 브레이크는 없는가? 

 

그러나 한국의 지도자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일본의 위기를 한국이 원전을 수출할 수 있는 기회로 인식하는 ‘원전 상업주의’가 팽배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미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도를 갖고 있는 한국에 핵발전소를 추가로 대거 지을 계획까지 내놓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1월 14일 국무회의에서 확정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보면, 정부는 전력 수요가 2035년에 2011년 대비 80% 증가할 것으로 보고, 핵발전소 5~7기를 추가로 건설키로 했다. 이렇게 되면 현재 보유하고 있는 23기, 현재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11기에 더해 총 40기 안팎의 원전이 들어서게 된다.

 

미국 스리마일, 소련 체르노빌, 일본 후쿠시마로 이어져 온 원전 사고는 하나같이 원전 강대국을 자임하는 나라들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이를 대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는 ‘우리의 원전은 안전하다’는 오만의 증폭으로 귀결되고 있다. 이처럼 핵이라는 절멸의 위험과 인간의 오만이 만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장 위협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는 좁은 영토에 5천만 명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와 같은 참사가 발생하면 나라의 존망까지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비관적으로 보는 게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은 어떨까? ‘향후 10년 이내에 원전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1%라면?’ 이건 높은 것인가, 낮은 것인가?

 

한국은 일본에 비해 지리적으로는 나은 위치에 있다. 그렇다고 한국도 대규모 지진이나 해일의 안전지대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기후변화의 양상도 인간의 예측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더 중대한 문제는 지리군사적으로 한국은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이 다짜고짜 남한의 원전을 공격할 일은 없다고 하더라도, 한반도 유사시 북한이 원전 공격을 시도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핵 못지않게 남한의 핵발전소도 ‘코리아 아마겟돈’의 위험성을 잉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원전은 국가안보상에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인간의 실수나 광기에 의해서든, 기계의 오작동에 의해서든, 자연재해에 의해서든, 전쟁 시 피격에 의해서든 원전이 폭발하는 순간, 대한민국의 미래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핵발전이 이러한 엄청난 위험을 상쇄할 만큼의 경제성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이 원전 폐기 비용, 핵폐기물 처리 비용, 사고 시 복구 비용 등 ‘총비용’을 고려하면 원전의 경제성은 크게 떨어진다는 분석을 내놓은 지 이미 오래다. 또한 점진적인 탈원전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정부가 흥청망청 전기를 쓰게끔 조장하는 에너지 정책을 바꿔 수요 관리에 집중하고 재생 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 ‘원전 없는 대한민국’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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