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에게 받고 싶은 건, 돈 아닌 사과였어요"
[인터뷰] 1년 8개월 만에 가수 싸이와 합의한 한남동 카페 '드로잉'
2016.04.07 09:54:59
"싸이에게 받고 싶은 건, 돈 아닌 사과였어요"
지난 넉 달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언제 강제집행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휴대전화를 비롯해 모든 신용카드가 끊겼다. 미납세금과 각종 공과금들이 수북이 쌓여 있단다. 그렇게 쌓인 공과금보다 더 많은 빚이 자신들을 옥죄고 있다고 했다. 건물주 싸이와 오랜 시간 분쟁을 겪어온 한남동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 운영진 최소연, 최지안, 송현애 씨의 이야기다. 

이들은 지난 6일 싸이와 원만한 합의를 이뤄냈다. 카페 드로잉 측은 8월 31일까지 영업한 뒤, 자진해서 나가기로 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무척이나 쉬운 합의인 듯하다. 하지만 그 과정은 지난했다. 

그간 몇 차례 합의 국면이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양현석 YG 대표가 나서기도 했지만 합의안 도출은 쉽지 않았다. 

이번 합의가 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당사자인 건물주 싸이가 직접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싸이가 그간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 관련, '드로잉' 운영진들에게 사과를 한 이후 교섭은 급물살을 탔다. 

이후 약 두 달간 교섭 기간을 거친 뒤 지난 4월 6일 양측이 최종합의안에 사인했다. 가수 싸이는 한남동 카페 '드로잉'을 직접 방문, 합의서에 사인하기도 했다. 이로써 약 1년 8개월 동안 분쟁을 겪어왔던 가수 싸이와 카페 '드로잉' 논란은 모두 해소됐다.

▲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 ⓒ프레시안(허환주)

   
"잘못된 부분은 잘못됐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만족스러운 결과라고 생각해요. 싸이에게 받고 싶었던 게 사과였어요. 단순히 상황에 몰려서 하는 합의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합의 이후에도 살아가야 하는 거잖아요. 잘못된 부분은 잘못됐다고 이야기하고 그에 따른 사과를 받고 싶었어요. 그래야만 앞으로도 그런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살 수 있을 거 같았거든요."

합의서 사인을 하루 앞둔 5일 한남동 카페 드로잉에서 만난 최지안 씨는 이렇게 말했다. 드로잉 측은 지난 1년여 동안의 분쟁 과정에서 있었던 폭행 사건, 언론 플레이 등에 대한 당사자의 사과를 요구했고 가수 싸이는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과정에 발생한 일이었다면서 이를 받아들였다. 

주변 사람들은 '그깟 사과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적당히 하고 합의하라'고 종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돈보다는 가치를 먼저 생각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걸 버려야만 우리가 산다고 주변에서 이야기하더라고요. 그간 1년여 동안 드로잉이라는 문화공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싸웠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러 가치들이 훼손됐어요. 연대했던 예술인들이 고소를 당하기도 했고, 폭력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어요. 이런 것들에 대한 사과, 그리고 원상복구가 없이는 합의를 할 수가 없었어요."

송현애 씨는 "그런 가치를 버리라고 하는 것에 대해 인정이 안 됐다"며 "그걸 인정하는 순간 앞으로 신념이나 가치를 지키며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돈 더 뜯어내려 시위한다'는 냉소가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내상도 입었다. 무엇보다도 대중의 냉소가 견디기 힘들었다. '을의 횡포', '돈 더 뜯어내려 시위한다' 식의 이야기들이 이들을 괴롭혔다. 안 좋은 소문은 더 빠르게 돈다고 했든가. 1년여 동안의 분쟁 기간에 상당수 손님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매출이 급감했다. 이들의 신용카드가 중단되고 각종 공과금이 쌓인 이유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생겼어요. 일련의 사태를 두고 일일이 사람들을 만나 해명할 수도 없었죠. 기사 댓글이나 SNS 등에서 우리를 비난하는 분들은 제대로 사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피상적인 주장을 사실로 믿었죠. 그런 것들이 반복되니깐 화를 넘어 사람들에게 두려움까지 느끼게 됐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사람을 처음 만나면 무서워요. '저 사람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저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송현애 씨는 이는 앞으로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숙제라고 표현했다. 

합의안에는 카페 드로잉을 8월 31일까지 운영하기로 했다. 이후는 자진 철수하기로 했다. 최지안 씨는 약 4개월 동안의 시간을 "우리 스스로 복구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강제집행으로 전시가 중단됐어요. 다시 전시를 재개할 계획이에요. 그리고 그간 드로잉을 찾은 단골손님들에게도 전후 상황을 알려 드려야죠. 우리와 관계 맺은 예술가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다시 관계를 회복해야 하니깐요. 

지난 1년여 동안 드로잉이라는 이미지가 많이 훼손됐어요.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죠. 그들에게 우리의 상황을 알리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시간을 8월 말까지로 잡은 셈이에요."

ⓒ프레시안(허환주)


"이전에도 있어왔던 세상, 제가 보지 않으려 했던 거죠"

하지만 8월 이후의 계획은 아직 없다. 최지안 씨는 이제부터 천천히 생각해보겠단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거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 1년여 동안 여러 가지 일을 겪었어요. 그전에는 생각도 못한 상황들이었죠. 그 기간에 세상을 제대로 알았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듯해요. 제가 눈을 떴다고 해야 할까요? 이전에도 있어왔던 세상이었지만 제가 보지 않으려 했던 거죠."  

송현애 씨도 마찬가지였다. 

"제가 겪은 일들이 어쩌면 과거의 제가 누군가에게 행했던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회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서 또 누군가가 들어오고, 또 누군가가 밀려나고…. 그 과정에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지만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다' 이러면서 나 역시도 덮으려고 한 건 아니었는지 모르겠어요."

최소연 씨는 마음속으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조금은 다른 세상, 그리고 다른 계기를 만들어보고 싶단다. 카페 '드로잉' 운영진들에게는 합의가 끝이 아니라 시작인 듯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밀려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요. 상인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영화, 연극, 음악 등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자신들의 활동공간에서 계속해서 밀려나고 있어요. 우리 사태가 일정 부분 마무리됐지만, 그런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서만 밀려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신체권, 자유권, 문화권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는 밀려나는 듯해요. 이를 저지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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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기자 kakiru@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