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향한 문재인의 적은, 바로 문재인 지지자?
[정희준의 어퍼컷] 선거 승리를 위해 필요한 말
대권 향한 문재인의 적은, 바로 문재인 지지자?
팬이든 서포터든, 인기인에겐 참 난감하다. 유명인을 향한 애정을 내세워 막무가내 행동을 하고 다니면 이처럼 난감한 경우가 또 없다. 스토킹을 하고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 팬은 스타가 경호원을 고용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광팬이 집단을 이루면 폭력이 발생하기도 한다. 과거 아이돌 팬클럽 간 직접적인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아이돌 팬클럽도 하지 않는 짓을 하는 팬이 있다. 바로 정치인 팬이다. 그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이 바로 문재인 지지자들, 이른바 '문빠'들이다.

사실 나는 '문빠'라고 해서 다른 정치인 지지자와 다르게 보지는 않는다. 원래부터 이른바 진보 정당 열혈 지지자들에게서 익히 보아오던 행태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문재인 지지자들이 가장 많기 때문에 당연히 두드러져 보일 뿐이다. 이재명이나 안철수 지지자라고 해서 얌전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최근 문재인 지지자들의 행태를 보면 어안이 벙벙해질 뿐이다.

정치훌리건: 책임지지 않는 권력의 등장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과 18원 후원금 문제가 커지자 6일 문재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지들에게 절박한 마음으로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나는 다른 것보다 '절박'에 눈이 갔다. '간절'한 게 아니고 절박하단다. 찾아봤다. '간절하다'는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하다는 뜻이다. '절박하다'는 몹시 급하다는 뜻이다. 그렇다. 문재인은 지금 절박하다.

'문빠'들의 행패에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러니까 패권주의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이러니까 외연이 확장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니까 반감이 늘고 고립되는 것"이라며 문재인을 비판했다. 그리고 자기가 더 확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훌리건 때문에 문재인은 대선을 코앞에 둔 지금 곤경에 처했다. '문빠'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저 비난하고 공격할 뿐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누가 만들었나

지난 대선에서 국민은 특전사 출신 인권변호사를 외면하고 친일파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아무리 '기울어진 운동장'이라지만 어떻게 이런 황당한 결과가 가능했을까. 많은 사람은 북한의 위협이 보수적 투표를 유도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북한은 이제 과거처럼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야당은 이명박 정부 이후 질 수 없다던 선거에서 계속 졌다. 이쯤 되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

얼마 전 동창들과의 저녁자리에서 한 친구는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면서 세월호 참사를 꺼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시청 앞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에 갔는데, 들어가면 눈물이 날 것 같아 못 들어갔다는 그는 세월호 참사 수습을 외면한 현 정부를 격하게 성토했다. 술잔이 오가다가 호기심에 지난 대선 때 누굴 찍었냐고 물었다. 내 귀를 의심했다. "박근혜"였다.

자신의 정치성향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도이거나 정치 무관심층이다. 이들은 노무현을 찍었다가 이명박을 찍었고, 김대중 찍었는데 박근혜 찍은 사람들이다. 진보 진영 인사들 중엔 지지자 결집이 중요하다면서 집토끼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들이 꽤 있는데,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다. 중도는 언제나 진보보다 많았다. 선거운동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겠는가.

유권자는 지지자를 보고 판단한다

그런데 중도나 이른바 '합리적 보수'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이들이 정말 싫어하는 자는 야권 정치인이 아니라 그 지지자다. 많은 이들이 지지자를 보고 그 정치인을 판단한다. 노무현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왜 싫어하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답을 못하는 이유도 실상은 노무현이 아니라, 노사모나 친노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과거엔 지지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인터넷이 보이지 않던 지지자의 모습을 확연하게 드러냈다. 공교롭게도 극성스러운 열혈 지지자를 우리가 직접 목격하게 된 것도, 지금의 더불어민주당 내 '빠'와 '까' 논쟁이 본격화된 것도 인터넷이 일상이 된 이후다. 

문제는 지지자다. 유권자는 지지자를 보고 판단한다. 과거 종이신문이나 9시 뉴스를 통해 정치인을 판단하던 시절에도 지지자의 행태는 중요했고, 때로 치명적이었다. 1987년 대선 때 노태우 후보 전주 유세에서의 폭력사태나 1991년 한국외국어대생들의 정원식 총리 테러 등 열혈 지지자가 결국 진보진영에 궤멸적 타격을 가한 사례는 과거에도 많았다. 그런데 소셜 미디어가 일상이 되면서 우리는 이러한 과격 지지자를 아침저녁으로 목격하게 된다. 요즘 맞는 말 했는데도 '페절' 당하시는 분들은 상대를 욕하지 마시고 문제는 자기에게 있음을 깨달으시기 바란다. 

▲ 모두가 뉴스에 몰입할 순 없다. 보통 사람들은 지지자를 통해 후보를 판단하기도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맞는 말'보다 '하는 말'이 중요하다

진보의 희망으로 여겨지는 팟캐스트 방송을 보자. 이 공간은 압도적으로 진보 성향이다. 진행자의 '말빨'도 대단하지만 이들은 팩트만 가지고도 두 시간도 넘게 신나게 권력자를 조롱한다. 청취자들은 이에 맞장구하며 그들의 조롱을 확산한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평범한 유권자들은 이들이 설파하는 '맞는 말' 보다는 오히려 이들이 '하는 말'에 더 예민하다. 유권자들은 이들 정치훌리건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구사하는 비방과 모욕과 멸시와 욕설 가득한 언사에 등을 돌린다. 입진보, 욕진보, 조롱진보의 탄생이다. 이들이 바로 보수가 그토록 싫어하고 중도가 가까이 하기를 꺼려하는 이른바 '운동권'이다. 

한때 "저렇게 옳은 말을 저렇게 싸가지 없이 하나"는 말이 회자됐는데, 이들의 행태는 말이 싸가지 없는 수준 그 이상이다. 기사 댓글에서, 온라인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소셜 미디어에서 수준을 의심케 하는 말을 남발하고 패싸움을 주저 않는다. 이들은 '맞는 말'을 하지만 많은 사람은 이들의 행태에 넌덜머리를 내고 돌아선다. 그럼에도 이들은 "그걸 왜 모르냐"며 가르치려 들고 조롱한다. 

보수는 물론이고 대다수 유권자들은 떠들지 않는다. 페북, 트위터에서 욕하며 싸우지도 않는다. 이들은 카톡이나 밴드로 정보만 공유한다. 그리고 조용히 투표한다. 생각해보라. 아무리 못난 부모, 자식이고 아무리 원수 같은 부부여도 누가 욕하면 우리는 사생결단으로 싸우지 않나. 맞는 말도 자꾸 들으면 지겨워지기 마련 아닌가. 하물며 멸시적 조롱이나 욕설은 오죽하겠는가. 

과거엔 분단현실이 보수정당에 표를 가져다 줬지만, 인터넷 시대엔 진보를 외치는 이들 입진보, 정치훌리건을 보며 유권자들은 보수정당에 투표한다. 결국 진보 역시 기울어진 운동장에 일조했다. 어느새 이 말은 진보정당의 무능을 합리화하는 수사로 쓰일 정도가 돼 버렸다. 

항상 작용에는 반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요즘 미러링이 트렌드다. 네가 하면 나도 한다는 것이다. 정치훌리건의 과격하고 집요한 언사에 반작용으로 탄생한 게 바로 일베고 어버이연합이다. 진보가 국가를 이야기하니 이들은 애국보수를 외쳤고, 인권을 말하니 북한 인권으로 맞섰으며, 쥐새끼, 닭×이라 조롱하니 홍어×, 노알라라고 맞조롱하더니, 세월호 정권심판 주장에 유가족 앞 폭식투쟁으로 대항했다. 

이번엔 진보 지지자들의 문자폭탄을 보고 배웠는지 정유라를 구금하고 있는 덴마크 경찰 당국에 "한국 언론 믿지 마라, 정유라는 누명을 쓰고 있다"는 문자폭탄에 이메일, 전화 세례까지 퍼붓는다고 한다. 일베의 행태를 잘 보면, 대부분 극성 진보 지지자들의 행태를 그대로 뒤쫓고 있다. 

질 수 없는 선거를 이기는 법

진보 집권을 원하는 지지자들은 동료 국민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자기가 지지하는 대권주자의 경쟁자들을 비방하지 말아야 한다. 미리 검증받아야 한다며 정치인의 과거를 뒤져 까발리는 저급한 행동도 삼가야 한다. 특히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비판했다고 해서 보복하지 말아야 한다. 보복은 사적 응징으로 당연히 이 사회에서 퇴출되어야 한다. 이들 '운동권' 지지자들 때문에 합리적 보수와 중도는 그것이 맞는 말임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버린다. 

소셜 미디어에서든 집회에서든, 자신의 의견을 얼마든지 단호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방식이 멸시적 조롱이나 욕설일 필요는 없다. 그것은 한마디로 철없는 짓일 뿐이다. 인간에의 예의가 없는 자들이 환영받을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훌리건은 원래 영국의 프로축구 팬에서 유래된 단어다. 팬(fan)이 광신자(fanatic)에서 유래했듯, 팀에의 충성을 내세워 원정경기까지 쫓아가 난동을 부리는 이들 광팬은 영국축구의 골칫거리였다. 1970~80년대 영국경제가 침체기에 빠지면서 양산된 도시의 젊은 남성 실직자들과 노동자들이 축구에 몰입해 팬들 간 충돌 끝에 유혈사태까지 벌였다. 결국 중산층이 외면하게 됐고, 영국 프로축구는 한때 유럽에서도 3류 리그로 전락했다. 

그런데 영국 프로축구가 최고의 명품 '프리미어리그'로 새롭게 태어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영국 정부가 훌리건을 대대적으로 소탕해서 이들이 완전히 사라진 후 중산층이 다시 경기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