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 멸종위기!
[프레시안 books] <보통 사람들의 전쟁>
2019.01.25 09:28:03
보통사람 멸종위기!
"2017년은 '소매업의 종말'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시작된 해로 기록될 것이다. 2016년 10월에서 2017년 5월 사이에 (미국의) 백화점에서 일하던 근로자 10만 명이 실직했다. 이는 미국에서 석탄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근로자를 다 합한 수보다 많은 숫자다. (...)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은 소매 업종 전체를 투자 불가 종목으로 보고 있다. (...) 크레딧스위스는 2017년에 역사상 가장 많은 8640개의 주요 소매 매장이 문을 닫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 쇼핑몰 하나가 문을 닫으면 약 1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직원 1인당 평균 소득을 2만2000달러로 보았을 때 지역 공동체 전체로는 2200만 달러의 임금이 날아가는 셈이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지자체의 세금 수입이 감소한다. 일자리가 사라지니 사람은 떠나간다. 다시 지자체의 체력이 약해진다. 도시는 점차 황폐화한다. 사람의 네트워크가 끊어지면서 문화가 붕괴한다. 우울한 분위기가 유령처럼 퍼져나가고, 범죄가 발생한다. 사람들은 점차 내침하고, 극우화한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건 필연이다. 기술 발달 때문이다. 최근 폭발하는 스타트업 중 대규모 일자리를 만드는 신규 사업체는 없다. 아마존이 백화점을 대체하고, 우버가 택시 노동자를 대체한다. 한국에서도, 아니 지구적으로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오늘날 정치인이나 언론이 마치 신줏단지처럼 거론하는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의 본모습은 노동 없는 성장이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금융 자본만 살찌우고 노동자를 빈곤층으로 떨어뜨리는 시대였다면, 기술 혁신 시대는 로봇이 사람의 남은 일자리마저 빼앗는 성장의 시대다. 

그럴듯한 대안으로 거론되는 건 결국 노동자 재교육 강화 정도다. 이게 정말 가능하다고, 현실성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 이가 있을까. 전산 로봇의 발전으로 인해 나이 쉰에 보험사에서 책상을 빼게 된 사무 노동자를 가정해 보자. 이미 한 세대 전의 퇴직 노동자가 그 나이에 무슨 교육을 받아 다시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일자리는 예전보다 더 줄어들었고, 그 줄어든 일자리마저 얻지 못하는 (값싼 노동력의) 청년이 비명을 지르는 게 현실인데 말이다. 

대안은 없다. 지금의 아이디어로는. 

<보통 사람들의 전쟁>(앤드루 양 지음, 장용원 옮김, 흐름출판 펴냄)은 신규 벤처 기업 운영을 지원하는 비영리기업 '벤처 포 아메리카'의 창업자인 대만계 미국인 앤드루 양의 저서다. 이 책은 풍부한 통계 자료를 인용해 현실을 냉정히 바라보는 데서 시작한다. 모든 비즈니스의 로봇 의존도는 더 커진다. 일자리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사람의 임금도 더 줄어든다. '보통 사람', 즉 평범한 소득, 평범한 학력(이 평범함은 대졸 학사를 포함한다)의 사람은 변화를 거스를 수 없다. 똑똑한 사람이라고 얼마나 다를까. 금융업, 의료업 등 최고로 꼽히는 직업군 역시 자동화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 모든 사람은 평생 의자 빼앗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쏟아야만 하는 비참한 현실에 내몰리고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교육 수준도 높은 가정의 자녀들 사이에서도 불안과 우울 수준은 높다. 의사 처방을 받고 약을 복용하는 대학생 비율은 사상 최고 수준이며, 상담실 이용 비율도 역대 가장 높아 관계자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 명문 사립학교인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상담실 대기자 명부에 따르면 긴급하지 않은 학생의 경우 6~8주가 밀려 있다. (...) 결핍은 정신적 여유를 없애 사람을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으로 만든다. (...) 기술이 발달하면 모든 사람이 그전보다 더 풍요로운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반대로 대부분의 사람이 경제적 불안감을 느낀다는 것이 자동화의 가장 큰 역설이다."

이역만리 땅에서는 좀처럼 알 수 없는 각종 중요한 데이터가 쏟아진다. 저자는 통계자료에 함몰되지 않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자기 이야기를 섞어 망해가는 현대 미국 사회의 실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책에 묘사된 세계 최강 대국의 현실은 처참하다. 자살률이 처음으로 자동차 사고 사망률을 앞질렀다. 미국인의 무려 75%는 통장에 단 400달러도 없는 불안한 생활을 한다. 일자리가 사라짐에 따라 사람들은 결혼을 기피한다. 편모 가정 자녀가 급증한다. 한때 제조업으로 번영했던 도시는 모조리 쇠락해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이른바 극점 도시만 활황세를 보인다. 교육 수준이 낮은 백인 남성의 기대수명이 이제 흑인 남성과 비슷해졌다. 빈곤과 불안함과 분노가 사람들을 좀먹어 극우적 사고가 사람들을 좀먹고 있다. 사회가 무너지고 있다. 정확히 오늘날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과 일치한다. 

"터친 교수는 혁명의 전제 조건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엘리트의 공급 과잉과 분열이다. 둘째, 생활수준 하락으로 나타나는 대중의 빈곤이다. 셋째, 재정 위기 상태다. (...) '미국의 현재 상황은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850년대와 유사하며, 더 놀라운 점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프랑스와 유사하다."

저자는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자본주의와 자동화를 꼽는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자본주의가 기술 발달과 손잡아 더 적은 고용으로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려는 사회를 이끌었다. 이 흐름에 부응하지 못한 절대 다수 사람이 절망의 늪에 빠졌다. 

책은 이 변화를 사실로 인정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기본적으로 혁명은 원하지 않는, 자본주의의 개선을 바라는 이인 저자의 대안은 '인간적 자본주의'다. 구체적으로는 보편적 기본소득제다. 토머스 페인, 마틴 루서 킹, 리처드 닉슨, 워런 버핏, 마크 저커버그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미국 역사에서 기본소득 개념을 제안한 다양한 사람들을 언급하며 모든 미국인이 최소한의 소득(현재 미국의 빈곤선인 1만1770달러)을 무조건 받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에서는 드물게 희망을 주는 데이터도 제시된다. 

"루스벨트연구소는 성인 1인당 연간 1만2000달러를 지급하는 (...) 안이 채택된다면 경제는 해마다 12.56~13.10퍼센트 성장할 것이고, 노동 인구는 450~470만 명 늘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 손에 돈을 쥐어주는 것만으로도 일자리와 경제가 계속 성장한다는 것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기존 체제 유지를 고민하는 성공한 자본가의 고민 수준 한계도 살짝 엿보인다. 저자는 제시된 기본소득 유지를 위한 운영 경비에 연간 1조3000억 달러 정도가 추가되어야 하며, 해당 재원으로 부가가치세를 이용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는 상대적으로 고소득층이 더 혜택을 볼 수 있는 세금이다. 직접세 세원을 늘리자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실제 여러 나라에서 실험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기존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체제는 결국 붕괴하리라는 전망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노동의 아래층에서부터 일자리를 파괴해 결국은 고소득 전문 직업 종사자의 상당수도 설자리를 잃게 만들 사회가 붕괴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이 위기감이 저자와 같은 양심적 벤처 혁신가마저 사회 붕괴를 염려하는 지경에 이르게 한 게 오늘날 지구적 위기의 현실이다. 

이 책은 미국인을 상대로 미국의 민낯을 보여주기 위해 쓰여졌으나, 그 배경이 한국이라손 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현실을 담았다. 성장 정체와 일자리 급감은 오늘날 지구적 위기의 근본 배경이다. 전 세계가 2008년 금융 자본주의의 종말을 지켜보았으나, 10년째 나오지 않은 대안에서 신음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기업에 호소하는 억지 일자리 늘리기가 통하겠는가. 일회성 정부발 일자리 만들기가 먹히겠는가. 심지어는, 기존 방식의 대기업 지원 정책이 먹히겠는가. 혁명적 전환이 필요한 때다. 책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편안한 문장으로 쓰여졌지만 동반된 통계는 날카롭고 꽉꽉 담긴 실제 사례는 생생하다. 여전히 기존의 노동자 쥐어짜기에 의존하는 한국의 기업가들에게까지 이 책에 나온 사고의 전환을 바라는 건 무리겠지만, 적어도 정책 담당자나 정치인, 학자들은 저자만큼의 용기라도 내주길 바란다. 

▲ <보통 사람들의 전쟁>(앤드루 양 지음, 장용원 옮김) ⓒ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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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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