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식' 찾기보다 '건강한 기준'을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평시(平時)와 전시(戰時)
'건강식' 찾기보다 '건강한 기준'을
"저는 ○○인 이라 밥에 메밀을 놔서 먹는데, 남편은 △△인이라 현미와 콩을 먹어야 한다고 해요. 때마다 따로 밥을 지어야 하는 것이 너무 번거롭고, 어디 모임이라도 갈라치면 식단을 지키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그래도 이렇게 한 후로 이전 보다 건강이 좋아져서 지키려고는 하는데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싶기도 해요."

"체질식을 하시면서 이전 보다 무엇을 먹을까에 대해서 관심이 더 커지셨죠? 자연히 좀 더 건강한 식재료를 구하고 규칙적이고 절제된 식생활을 하셨을 거예요. 저는 구체적인 음식의 종류보다는 그런 관심과 음식 자체의 건강함, 그리고 어떻게 먹을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일단 이 같은 태도를 전제로 하고 개별적인 음식에 대해서는 좀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어요. 밀이 체질에 맞다고 해도 정제된 밀가루 음식만 많이 먹어서 좋을 리가 없지요."

환자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참으로 많은 건강법과 건강식품에 대한 사람들의 굳건한 믿음을 확인하곤 합니다. 최근에는 몸에 좋은 것의 범주가 신토불이를 넘어 글로벌화 되어서 저 또한 문헌이나 논문을 검색해야 답을 해줄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디서 그런 것들을 알고 구해서 먹는지, 가끔은 신기하단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상담을 하면서 환자들이 철석같이 믿는 이러한 방법들이 왠지 위태해 보인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마치 수학을 공부하는데 구구단은 건너뛰고 미적분을 푸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요? 기본은 무시한 채 비법 한 가지로 어려운 문제를 단박에 해결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가끔 이 방식이 통하기도 한다는 것이죠. 황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자세히 분석해 보면 이런 요행에도 다 이유가 있고 시간이 지나면 득보다 실이 많기도 하지만, 정신없이 바쁜 시대에 한가하게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세상이 좋다고 하고 내 옆에 사람이 좋다고 하면 그걸로 충분하고, 한 가지가 유행하고 나면 곧 다른 유행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건강에 대한 이런 접근을 전시(戰時)의 방법이라고 여깁니다. 전쟁 때에는 당장 내 눈앞에 닥친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합니다. 시시각각 닥쳐오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는 방법을 쓰게 됩니다. 장기전으로 돌입하면 그 전략이 달라져야 하지만, 일단 평상시에는 선택하지 않았을 무모한 방법들도 써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을 넘겨야만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러한 전시의 전략을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건강을 돌보는 일이 계속된 전쟁이라면 결국은 폐허만 남을 것이고, 평화가 찾아온 후에도 전쟁처럼 산다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사회의 많은 매체들이 쏟아 내는 정보가 사람들을 불안한 전쟁의 상태로 몰아간다는 생각을 합니다. 평화의 시기에도 위기를 이야기하고, 느긋하게 가만히 생각하고 판단할 틈을 주질 않습니다. 누가 더 건강한가를 경쟁하게 만들고, ISO인증처럼 표준화된 건강을 강요하고, 끊임없이 점검하고 뭔가 뾰족한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곧 병에 걸려서 삶이 파국을 맞이하게 될 것처럼 말합니다. 드러내 놓고 때론 걱정스런 표정과 말투로 '너 이대로 괜찮겠어?'라고 이야기 합니다.

물론 병에 걸렸다면 일단은 병을 치료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이 중병환자처럼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평시(平時)에는 평시에 맞는 방법을 쓰면 충분합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기준일 것입니다. 이 기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평시의 전략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먹는 일에 있어서는 음식 자체의 건강함과 과하지 않는 것이 기준이 될 것이고, 몸을 씀에 있어서는 어느 한 곳 빠지지 않고 고루 움직이는 것이 좋은 기준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정은 억누르고 감추고 왜곡하기보다는 솔직하게 표현하고 인정하는 것이 더 낫고, 생각은 쉼 없이 새로운 경지를 추구하면 이상적이겠지요.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면 좋겠지만 한 쪽으로 고꾸라지지 않을 정도의 균형감을 유지하면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합니다. 

몸과 마음의 완벽한 균형 속에서 사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요? 어쩌면 한 사람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적당한 범위 안에서 균형과 불균형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 것이 사람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로운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화와 우울에 빠질 수도 있고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있거나 불면의 밤을 지새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계점을 벗어날 정도로 과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우리가 사는 모습이고, 그 또한 건강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꽤 오래 전 일이지만 한 환자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부모님이 암으로 돌아가셔서 성인이 된 후로는 술, 담배, 커피 일절 하지 않고, 유기농으로 체질에 맞는 음식만을 먹었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충분히 자려고 노력했어요. 돈은 적게 벌어도 하는 일 또한 스트레스 덜 받는 쪽으로 조절하면서 살아왔어요. 정기검진 또한 빼 놓지 않고 받았고요. 그런데 왜 내가 암에 걸려야 하나요?"

운명론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제 생각 또한 수많은 경영학 이론처럼 결과론에 불과하겠지만, 어쩌면 그 환자의 삶은 암에 대한 공포와의 끝없는 전쟁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 날 환자에게도 같은 말을 했지만, 만약 좀 더 느슨하게 일상을 영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잠재적 환자로 사는 것도, 병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그것은 일상의 잔잔한 평화를 잃지 않는 것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 무엇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windfarmer@hanmail.net 다른 글 보기
▶ 필자 소개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