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다운 봄을 맞는 법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춘래불사춘
봄다운 봄을 맞는 법
"아무것도 안했는데 왜 아픈지 모르겠어요."

"안하시긴요. 한 살 더 드셨잖아요. 그게 얼마나 큰일인데요."

날씨가 풀리니 어떤 무리한 일도 하지 않았는데 몸에 힘이 빠지고 아픈 곳이 생겼다는 환자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절반 정도는 노인분들이지고, 나머지 중장년층과 2~30대 청년들, 그리고 10대 학생들의 비율은 비슷합니다. 힘겹게 봄을 맞는 환자들을 보면 '우리 사회가 참 피곤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요.

한의학의 고전 <내경>에서는 봄철 석 달을 발진(發陳)이라 부릅니다. 자연에서는 생기가 일어나고 만물은 다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표현입니다. 추운 겨울 내내 '이 놈의 겨울, 네가 언제까지 가나 두고 보자'며 웅크리고 견뎌내다 드디어 따뜻한 계절을 맞아 떨쳐 일어난다는 뜻이지요. 로켓이 발진 후 일정한 높이에 오르기 위해서는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하고, 이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는 충분한 연료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 몸도 봄의 궤도에 안착하기 위해 힘을 필요로 합니다. 

이 힘은 지난 겨울에 축적했어야 하지요. <내경>의 같은 장은 겨울에 축적이 부족하면 '신장이 상하고 봄에 손발에 힘이 없고 차가워지는 병에 걸리며 새롭게 소생하는 힘이 약해진다'고 했는데, 앞서 말한 환자들의 증상과 일치합니다.

그럼 무엇이 이 축적을 방해했을까요? 저마다 말할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 있겠지만 먹고 자고 움직이는 일상에서 그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 먼저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겨울에도 많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해가 짧아졌다고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주는 직장이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대체로 현대인들은 계절에 상관없는 생활패턴을 유지합니다. 겨울은 하루로 치면 밤과 같은 시간인데 일 년이란 시간 단위에서 쉼 없이 활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만큼 자연의 리듬과는 멀어진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만성질환 환자들에게는 겨울이 되면 잠을 1시간 정도 더 잘 것을 말씀드리지만, 경험상 이것을 실천하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많은 활동과 부족한 수면시간 만큼이나 수면의 질이 나쁜 것도 몸의 회복에 영향을 줍니다. 
특히 노인들의 경우 아파서, 혹은 소변 때문에 수면이 조각나기 쉬운데, 이는 또 다시 불편함을 유발하고 염증과 노화를 촉진합니다. 젊은 층이나 학생들은 잠들기 직전까지 일이나 공부를 합니다. 이러한 자극들로 흥분 상태에 빠진 뇌는 이 정보들을 처리하는데 바빠 쉽게 휴식의 상태로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고 일어나면 몸이 개운치 않은 느낌을 갖게 되지요. 여기에 최근에는 스마트폰이란 강력한 무기가 나타나 쉬고 싶은 신경계에 무차별 폭격을 쏟아 붓습니다. 지치고 예민한 사람들이 자꾸 늘어가는 것은 어쩌면 스마트폰으로 대별되는 현대 문명의 과도한 자극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와 함께 현대인의 친구인 부족한 신체 활동과 감정적인 스트레스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는 인체 순환의 가장 기본이 되는 폐와 아랫뱃심(단전)이라는 두 개의 펌프 기능에 영향을 줍니다. 부족한 신체활동은 펌프의 출력 자체를 떨어뜨리고, 감정적 스트레스로 인한 긴장은 강한 저항을 걸어 효과적으로 힘이 이동하고 전신을 순환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이렇게 되면 같은 휴식을 취하더라도 충전과 축적의 효율이 떨어지게 됩니다. 이런 상태로 겨울을 났다면 모아 놓은 것이 적으니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몸살을 앓게 되지요.

물론 생의 주기 또한 큰 영향을 줍니다. 아이와 청소년이 봄이라면 노인은 겨울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노인의 때는 양적으로 왕성한 활동보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효율적이고 지혜롭게 활동해야 할 시기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것을 온전히 잘 보존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게 됩니다. 인생의 리듬이 겨울인데 새로운 생명으로 도약하는 또 한 번의 봄이 좋으면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간혹 이런 시기에 지병을 앓던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거나, 어르신들의 몸과 마음이 쳐지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인 셈이지요. 게다가 지난 겨울에 병을 앓거나 무리했다면 더욱 그럴 것이고요. 

그렇다고 이 찬란한 봄을 비실비실하며 우울하게 보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최선은 아니더라도 늘 차선책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선 봄을 내 안으로 맞을 준비를 합니다. 앞서 말한 봄에 대한 <내경>의 정의 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이어집니다.

'아침에 일어나 뜰을 여유롭게 거닐고 머리는 꽉 묶지 말고 느슨하게 풀며 몸을 이완하여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모든 것을 살리는 데 힘써 죽이지 말고, 주되 빼앗지 않으며, 상은 줘도 벌하지는 말아야 한다.'

봄의 생기가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그래서 변화의 바람을 탈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얘기입니다. 늦었다고 후회하는 것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충실하게 하는 것은 언제나 정답입니다. 그런 후에는 잠을 조금 더 일찍 자서 부족해진 부분을 보충하고, 위장에 부담이 되지 않는 담박한 음식과 봄에 새로 나는 음식으로 몸을 영양합니다. 그래도 부족하면 치료로 몸을 조정하고 보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춘래불사춘, 봄이 왔는데 봄 같지 않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쓰는 이 말은 한나라 때 흉노의 선우에게 보내지게 된 궁녀인 왕소군을 기리며 당나라 시인인 동방규가 지은 '소군원'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라고 합니다.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흉노 땅에는 꽃과 풀이 없어서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저절로 허리띠가 헐거워진 것이지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일부러 허리를 줄인 것은 아니네

시는 중국의 4대 미녀로 꼽힐 만큼 출중한 미모를 지녔음에도 초상화가에게 줄 돈이 없어 황제의 간택을 받지 못하고 오랑캐의 땅으로 간 비련의 주인공으로 왕소군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 보면 답답하고 곤궁한 현실과 궁중의 암투에서 벗어나 호방한 땅으로 가게 되었고, 그곳 또한 사람이 사는 곳이니, 마음을 과거에만 두지 않고 그곳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으려 했다면 흉노의 땅은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봄이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왕소군이 겨울에 살고 있었던 것이지요. 

봄이 왔는데도 몸과 마음이 아프고 괴롭고 봄이 하나도 좋지 않다면, 지난겨울을 제대로 살지 못했거나 스스로가 과거에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부족했던 부분을 보충해 준다면 봄다운 봄을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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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