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장갑 끼고 아이 시신을 직접 묻었어요"
[프레시안 books] 선감학원 피해자 증언집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2019.04.21 16:58:56
"고무장갑 끼고 아이 시신을 직접 묻었어요"

경기도 안산시 선감도라는 섬에 있었던 선감학원은 일제의 부랑아 단속 및 수용 조치의 일환으로 1942년 설립됐다. 명확한 근거 없이 소위 '사회 정화'라는 명분으로 거리의 아동들을 마구 잡아다가 불법 감금하고 강제 노역을 시킨 역사는 일제 때부터 시작해 1980년대까지 계속 됐다. 선감학원, 형제복지원 등 소위 '부랑인 시설'은 1987년 형제복지원의 끔직한 실상이 외부로 알려지기 전까지 사실상 정권의 비호 아래 운영됐다. 이제 이들 시설은 폐쇄됐지만, 그 피해자들은 인생이 송두리째 빼앗겼을 뿐 아니라 시설 수용 당시 경험한 폭력, 감금, 강제노역 등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을 기록한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하금철·홍은전·강혜민·김유미 지음, 오월의봄 펴냄)는 "용케 살아남은 소수가 국가에 던지는 고발장이자, 국가와 한편이 되어 이들을 멸시.천대하고, 이들의 고통을 못들은 체했던 우리 모두에 대한 고발장"(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추천사)이다. 이 책은 <비마이너>의 기획연재 "소년, 섬에 갇히다-선감학원 피해자의 이야기"(☞ 바로 보기)를 재구성했다. 


길 잃은 미아까지 강제로 납치해 시설에 수감

▲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하금철·홍은전·강혜민·김유미 지음, 오월의봄 펴냄. ⓒ 오월의 봄.

형제복지원 등 다른 시설에 수용된 아동들의 상당수, 더 나아가 해외로 입양된 아동들의 상당수가 고아나 부랑아가 아니라 단순히 길을 잃은 미아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감학원에 수용된 아동들의 상당수가 길 잃은 아동이었다.

"박정희 정권 때 어린 나이에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일명 양아치 차라는 차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멀쩡히 어머니가 있고, 여동생이 있는데도 또한 어린 간난아이 동생도 있었는데, 전 길거리에 돌아다닌다는 이유로 고아가 된 것입니다."(오광석)

이처럼 인적 사항에 대해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은 채 경찰의 손에 끌려가 선감학원에 수용된 아이들은 인적사항에 완전히 조작되어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선감학원은 모든 원생들의 생일을 선감학원 개원 기념일인 5월 29일로 날조하기도 했다고 한다. 혹여 부모들이 '실종 신고'를 해도 찾을 수 없었던 이유다.

폭력, 학대, 굶주림, 강제노동, 시신 암매장까지

선감학원에 수용된 아동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과 학대, 굶주림,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소를 키웠어요. 20마리, 30마리 키웠어요. 소들이 겨울에 먹을 게 있어야 되잖아요. 억새풀을 잘게 썰어서 큰 통에다가 재워놔요. 그걸 하는 게 다 우리 같은 어린애들이에요. 낫도 안 줘요. 손으로 하던가, 우리가 돌로 만들어요. 돌 두 개를 갖고 다니면서 억새풀을 꺾어서 짓이겨서 하루에 40킬로씩 해야 돼요."(이00)

"농사에 관한 건, 웬만한 건 다 했어요. 보리밭이 되게 넓은 게 있었어요. 추운데 양말도 없이 고무신 하나 신고, 바람도 엄청 차가워요. 그 넓은 데를 어린애들이 매야 하죠."(한일영)

"거기서는 항상 배가 고팠어요. 반찬도 맨날 새우젓하고 무 같은 걸 심어서 짠지를 만들어줬어요. 새우젓도 구더기가 끓어서 도저히 못 먹어요. 호박도 큼직하게 잘라서 익지도 않은 걸 주고. 그래서 내가 사회 나와서도 젓갈 종류랑 호박을 잘 안먹어요. 생식도 엄청 많이 먹었어요. 논에 가면 벼가 있잖아요. 벼를 손으로 훑어다가 바닥에다 놓고 신발로 막 비비면 껍질이 까져요. 그럼 그걸 손에다 놓고 호호 불어서 입에 털어 넣는다구요. 생쌀을." (이대준)

"어떤 아이는 배가 고파서 사무실에 들어가 콜라병 같은 게 있길래 그걸 마셨대요. 근데 그게 사실은 농약이었던 거예요. 어처구니없게, 농약을 먹고 죽은 거죠."(현정선)

"일렬로 원생들을 엎드려뻗쳐 시킨 뒤 원생이 원생을 때리는 '줄빠다'라는 게 있었다. 원생 열명이 누워 있으면 맨 앞 원생이 일어나 아홉 명의 원생을 때린 뒤 맨 뒤로 가서 엎드린다. 그다음 원생이 일어나 또 아홉 명의 원생을 때린 뒤 맨 뒤로 가서 엎드린다. 맨 첫 번째로 때린 사람의 순서가 되면 줄빠다는 끝난다."(오광석)

이런 끔찍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탈출을 시도하는 원생들도 있었다. 감시 때문에 배를 탈 수 없었던 소년들은 헤엄쳐 바다를 건너는 모험을 감당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상당수가 사망했다. 선감학원은 이들의 시신을 원생들을 시켜 야산에 암매장했다고 한다. 

"도망가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은 퉁퉁 불어가지고 소라, 낙지 이런 게 다 붙어 있어요. 거기다 빨간 소독약을 그냥 뿌리는 거예요. 냄새난다고. 한번은 장마가 크게 온 뒤에 뽕 따러 올라가다 보니까 시체가 다 드러나 있는 거예요. 아이들 시신을 얼마나 아무렇게나 내버렸는지. 그런 아이들을 내가 직접 묻기도 했어요. 선생이 준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이대준)


수용된 원생들의 시신을 암매장했다는 증언은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에게도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시설에 수용된 이들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상황에 있었는지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선감학원에 수용됐던 아이들은 성인이 되고 나면 형제복지원, 삼청교육대 등으로 보내지는 등 평생 시설을 전전하기도 했다. 또 학교에 다니는 등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전혀 교육받지도, 경험해보지도 못한 이들이 성인이 되어 시설 밖의 삶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국가 권력에 의해 삶이 송두리째 뒤바뀐 이들의 존재를 한국 사회는 아직도 외면하고 있다. 형제복지원, 선감학원의 피해생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진상 규명과 공식적인 사과 등 보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어느 하나 해결된 것은 없다. 작년 11월 검찰총장이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에게 사과하며 검찰이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하는 진전이 있었을 뿐이다.

이런 우리의 무관심과 무감각 때문에 어린 시절 "누구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던(김성환) 선감학원 피해자들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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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기자 onscar@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1년 프레시안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정치, 사회, 경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13년부터 4년 동안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프레시안 기자들과 함께 취재한 내용을 묶어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등을 책으로 냈습니다. 원래도 계획에 맞춰 사는 삶이 아니었지만, 초등학생 아이 덕분에 무계획적인 삶을 즐겁게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