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의 시선으로 보는 한국의 양극화
[기고] 영화 <기생충>, 슬픈 자화상
봉준호의 시선으로 보는 한국의 양극화

*이 글에는 영화 <기생충>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집자


누가 나에게 "당신이 본 가장 완벽한 한국영화는 무엇이었느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이다"라고 답할 것이다. 내가 <살인의 추억>이 완벽한 영화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시나리오, 연출, 연기의 삼위일체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시대를 그리며 국가의 역할을 날카롭게 심문하기 때문이다. 이후 봉준호가 만든 영화들은 <살인의 추억>과 비교당하곤 했다. 그리고 이제 <살인의 추억>에 필적할만한 봉준호의 작품이 마침내 등장했다. <기생충>이 바로 그 작품이다.

<기생충>은 '전원 백수'이며 사업 실패로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의 가족이 주인공이다. 기택의 가족 중 사수생이자 장남인 기우(최우식)가 명문대생 친구의 소개로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사장(이선균)네 집 첫째인 고2 다혜(정지소)의 영어과외 선생을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예기치 않은 사건들의 연속과 돌연 찾아오는 비극들이 이 영화의 주된 네러티브다.

<기생충>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악인은 없다. 메인스트림에 속하는 박사장, 박사장의 아내 연교(조여정), 다혜, 막내 다송(정현준)은 부자답게(?) 젠틀하고 착하다. 퍽 가난하지만 기택 가족도 선량하며, 기택 가족에 의해 쫒겨나는 가사도우미 문광(이정은)과 문광 덕에 박사장네 지하에 숨어 살던 문광의 남편도 대체로 착하다. 그렇다고 이들이 선인인 것도 아니다. 박사장 부부 내외의 친절과 선량은 기택에게 나는 냄새를 참을 정도도 되지 못하며, 기택 가족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박사장집의 기사와 가사도우미를 위계를 통해 축출하고 그 자리를 차지할만큼 사악(?)하고, 최약자의 자리에 있다 기택 가족의 비밀을 간파한 후 기택 가족 위에 군림하려는 문광 부부 역시 비루한 대목이 있다.

봉준호는 <기생충> 속 박사장 가족, 기택 가족 그리고 문광 부부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계급과 양극화라는 한국사회의 가장 예민한 문제가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 위계를 부여하고,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설정하며, 결정적으로 파국을 초래하는지 너무나 리얼하게 보여준다. 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선악 양면이 있는 실존적 개인들이 계급과 부 앞에 얼마나 추레해지고, 잔인해지며, 무자비할 수 있는지를 봉준호의 <기생충>만큼 생생히 보여주기도 어렵다.

이 영화에서 계급과 양극화를 극명히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은 단연 박사장의 궁궐 같은 대저택과 기택 가족이 사는 반지하방, 그리고 문광 남편이 은밀하게 기생하는 박사장네 대저택의 은밀한 지하공간이다. 박사장네 가족은 저택 내 정원에 누워 하늘을 볼 수 있는 반면, 기택 가족은 반지하방 창을 통해 지상을 바라보고, 문광의 남편(기택도 문광의 남편과 똑같은 신세가 된다)은 거의 전 시간을 지하에서 보낸다. 공간의 차이가 이처럼 크다 보니 폭우에 대처하는 방식도 상이하다. 박사장네에게 폭우는 캠핑 취소 사유와 근사한 운치 제공에 불과하지만, 기택 가족에겐 보금자리의 소실과 이재민으로의 전락을 의미한다.

영화의 종반부에 펼쳐지는 파국과 비극은 우연들의 집합이 낳은 결과였지만, 그 불행의 씨앗은 화해하기 어려운 계급간의 갈등과 경제적 강자의 간택이 아니면 생존이 어려운 약자들간의 목숨을 건 싸움 속에서 이미 잉태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기생충>이 계급 간의 갈등과 대립만을 다루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공감과 연대와 화해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 자기 때문에 해고된 기사를 걱정하는 기택, 서로에게 좋은 방향으로 해결하자며 문광 부부의 허기를 근심하는 기택의 부인(장혜진)과 딸(박소담), 살해된 문광을 박사장네 정원 나무 아래 수목장한 기택 등이 그 좋은 예다.

한 마디로 봉준호의 <기생충>은 계급 사이에 놓인 심연에 대해, 무산계급에 속한 사람들 간의 생존을 위한 피투성이 싸움에 대해, 그리고 그럼에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 연민과 공감과 존엄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기생충>은 우습지만 한 없이 슬프고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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