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후에서 미·중 대결시대까지...한국정치의 향방은?
[특별기고] 해방 후 한국정치의 밑그림
2019.06.10 07:53:41
해방후에서 미·중 대결시대까지...한국정치의 향방은?
2016년께일 것이다. 우리나라 소설의 대가, <태백산맥>의 조정래 씨가 나를 만나자더니 정치 소설을 쓰는 데 있어서 도움을 구한다. 나는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 

첫째로 김상현 전 국회의원을 연구해보라는 것이다(김 의원은 그 후 별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숨기는 게 많았기에 마치 <춘향전>에서 이 도령을 따라다닌 방자와 같은 김상현 의원을 연구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전남 장성에서 무작정 상경하여 구두닦이 등을 하며 야간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이 닿아 정치에 입문, 마지막에는 미국에 망명 중인 김 전 대통령을 대리해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 대리를 맡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이 미국에 망명 중 국내에서 거둬들인 정치 자금 사용처를 놓고 둘 사이가 멀어지더니, 마지막에는 김 의원이 전당대회에서 김 전 대통령에 맞서 당권에 도전해 둘 사이는 갈라지고 말았다. 김 의원은 "진짜로 김대중 씨를 꺾으려는 것이 아니고, 전당대회에서 당권 경합이 있는 게 민주정당의 면모를 보여주니, 보기에도 좋은 게 아닌가"라고 설명했다. 여하간 김 의원 연구가 한국 정치를 이해하는 데 지름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의 생애를 다룬 한 작가의 전기가 있기는 하나, 아슬아슬한 장면들이 빠진 것 같다. 

두 번째로 나는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추천했다. <동물농장>만큼 정치의 본질을 압축적으로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은 없다할 것이다. 이 소설이 나온 때가 서방 세계와 공산 소련이 나치 독일과의 전쟁에 협동하고 있을 때라 이 소설이 소련을 지나치게 신랄하게 풍자, 공격했다고 해서 국제적으로 물의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어쨌든 <동물농장>만큼 정치의 실상을 고발한 작품은 별로 없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같은 조지 오웰이 쓴 소설 <1984>도 추천했다. <1984>는 정보화·감시 사회의 도래와 그 위험성을 경고한 초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소설이 나왔을 때도 물의가 있었다. 마침 그 때가 영국 노동당이 집권했을 때라, 노동당 정부의 복지정책 확충에 따른 관료제 강화를 풍자·비판한 것 아니냐는 점에서다. 그러나 점차 심화하는 정보화·감시 사회의 현실에 비춰볼 때 <1984>는 중요한 비판적 소설이라 하겠다. 

세 번째로 나는 영국의 정치학자 해롤드 라스키의 <국가론>을 추천했다. 라스키는 지난날의 영국 노동당의 대표적 이론가로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 <국가론>은 그의 대표적 정치이론서다. 

조정래 작가에게 위 세 가지를 권고했지만, 실은 나도 그 세 가지가 제기한 문제들을 탐구는 해야겠는데 아직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 정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위 세 가지를 잣대로 계속 탐구해보려 한다. 

해방 후 한국 정치의 흐름

우리나라 정치는 해방 후만 볼 때 ①정부 수립 이전의 혼란기 ②이승만 대통령 시대 ③4.19 학생 혁명과 장면 정권의 막간극 ④5.16 군사 쿠데타와 박정희 장군의 장기 집권 ⑤박정희 피살 후의 혼란기와 신군부 쿠데타 ⑥그 후 문민정부 집권기 등의 시기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①남한 미군정, 북한 소군정 시기

해방 후 남한에 전승국인 미군이 주둔하고, 북한에는 역시 전승국 소련군이 주둔한 것은 한국 정치를 규정한 현실이다. 따라서 남한에는 미국에서 돌아온, 미국의 지지를 받는 이승만 박사가 집권하고, 북한에는 소련에서 돌아온 김일성이 집권한 것은 역학상 맞았다. 둘에 비해 여운형 선생 등 중간파의 노력이나 김구 선생 등의 남북협상파의 노력은 비록 이상의 추구이기는 하나 비현실적이었다고 할 것이다. 남로당원이었다가 전향해 휴전협정 전 단신 북한으로 넘어가 이승엽을 만나고 온 박진목 씨는 평소 "태평양 전쟁에서 그 막강한 군국주의 일본을 꺾고 남한에 진주한 미군에 대항하려 한 남로당은 참으로 무모했다"고 말했다. 

"今日不可無 崔遲川和戰論 百歲不可無 三學士主戰論." (오늘날에 있어서 지천(최명길의 아호)의 화전론이 없을 수 없고, 긴 세월을 두고 볼 때 삼학사의 주전론이 없을 수 없다.) 병자호란 당시를 둔 대구(對句)다. 해방 후의 현실론자와 이상주의자를 두고도 같은 대구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남북협상을 위해 북으로 떠날 때 백범 김구 선생은 광복군 사령관을 지낸 지청천 장군에게 위 대구를 인용하면서 그의 심정을 토로했다 한다. 내 나름대로 이렇게 풀이해보겠다. "전승국인 미군과 소련군이 남북한을 분할 점령한 마당에 각각에 단독 정부가 수립되는 것은 막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긴 역사적 안목에서 볼 때 민족의 분열을 막고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남북 협상은 지난한 일이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노력임이 분명하다." (이 이야기는 심산 김창숙 선생을 모셨던 이윤기 전 국회의원에게 들었는데,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②건국 초기 대통령

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국가의 초대 대통령은 거의가 장기집권이라는 유혹에 빠졌다. 미국에서 오래 있었던 이승만 박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미국의 명문 대학에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는 등 미국의 정치 문화에 젖었던 이승만 박사의 경우는 매우 실망스럽다 할 것이다. 

신생국에서 새로이 떼를 이루어 정계에 진출한 새내기 정치인들이 마치 일벌이 여왕봉을 중심으로 모이듯 초대 대통령을 중심으로 결집한 결말인 것도 같다. 

③장면 정권은 인테레그눔(interregnum)

4.19 학생 의거는 여하간 혁명적 사태였다. 그런데 장면 정권은 그런 혁명적 사태에 비혁명적 방법으로만 대처하여 혁명의 격랑에 침몰하고 말았다. 그러한 시기를 정치학에서는 interregnum(왕위 공백기)이라고 한다. 장면 정권 시기야말로 권력의 소재가 묘연했다. 그때 혁명의 열기는 각계에 만연한 부정부패의 숙정을 요구했고, 민주화와 경제 발전과 민족 통일의 성취를 위한 노력을 요구했다. 그러나 장면 정권은 그 혁명적 격류를 무시한 채 아주 평상시처럼 모든 것을 서서히 정상적 방법으로만 대응하려 한 것이다. 그러니 권력의 표류가 있게 되고 권력의 소재가 불분명한 가운데 이른바 ‘왕위 공백기’ 시대가 된 것이다. 

④전쟁으로 비대해진 군부의 진출

그러한 interregnum에 6.25 전쟁으로 비대해진 군부가 공백을 메운 것이다. 만주군 출신의 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박정희 장군의 세력이다. 중국에서 보아온 것이 군벌의 사병화 노름이 아닌가. 그리고 일본 관동군의 군벌정치다. 그 세력은 민주화·경제발전·통일을 열망한 학생 혁명의 주장을 경제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받아들여 강력히 집중 추진하여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⑤광화문통에 굴러다닌 권력

박정희 대통령 피살 후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이른바 3김 씨는 권력의 안위는 망각한 채 집권 경쟁에만 열중했다. 최규하 과도 대통령이 맡고 있던 권력은 "광화문통에 굴러다녔다." 최규하 대통령은 어쩌다 대통령 지위에 오른 사무관료일 뿐이었다. 권력을 유지하고 방어하는 정치적 역량이 전혀 결여된 인물이었다. 그때도 왕위 공백기였다. 무주물(無主物)로 굴러다니다시피 한 권력을 주워 삼킨 게 구군부를 모방한 신군부의 쿠데타다. 해방 대한민국에서 민주 교육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 신군부는 일제 하에서 일본의 교육을 받은 구군부보다 별로 낫지 못했다. 6.25 동란 등으로 그들의 민주화 교육 과정이 결여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⑥5년 단임의 문민 대통령들

오랜 군부 통치와 거기에 대항하는 피어린 시민의 항쟁으로 문민 정권이 들어서는 민주화가 이룩되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여 지금의 민주화는 아직 완전히 정착되었다고 하기는 이르다. 그 동안의 문민정부 모두가 참신한 정책 몇 건을 새로 펴려고 노력하는 데 급급했다는 인상이다. 나라의 백년대계를 조용히 구상, 추진하는 노력은 덜 보인 것 같다. 

극우세력과 강대국 외교 

남북 분단이 지속되는 상황 하에서 그 동안 축적된 극우세력이 앞으로 어떠한 움직임을 보일지 걱정되기도 한다. 

극우의 등장은 국제관계의 변화와도 밀접히 관련될 것이다. 조선조 때 광해군은 새로이 등장하는 여진족 세력(나중에 청나라가 된다)에 유념하여 비록 그때는 명나라에 사대 외교를 할 때였지만, 그들에 대하여 충분히 배려하였다. 그러나 뒤이어 등장한 인조는 오로지 명나라에 사대 외교만 할 뿐, 새로 등장하는 여진족 세력을 무시했다. 그래서 겪은 것이 두 번의 이른바 호란이 아닌가. 

우리는 오랫동안 미국의 유일 강대국 체제의 영향 하에 있었다. 그런데 새로이 등장한 중국이 무시 못 할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강대국 외교는 서서히, 그리고 아주 현명하게 조정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조정기가 국내 극우세력이 경우에 따라서 순조로운 전환을 허용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러한 이행을 방해하고 난국으로 이끌 수도 있는 시기인 것이다. 우리나라로서는 기존의 강대국과 새로이 부상하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외교의 시련기를 맞은 것이며,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국내 정치의 난국을 맞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 광해군과 인조 때의 강대국에 대한 외교를 심사숙고해 볼 때가 아닌가 한다. 

권력 구조와 선거제도 개혁

근래 제기된 개헌론에서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제로 하자는 주장이 강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시행되어 온 대통령 5년 단임제도 무방할 것 같다. 5년 단임으로의 개헌 당시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4강의 치열한 경합이 있었기에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여 골고루 기회를 갖자는 일종의 야합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5년이 너무 짧다고 말하고 있지만, 오늘날의 시대는 지난날의 농경 사회, 초기 산업 사회와는 달리 초고속으로 변화하는 후기 산업 사회·정보화 사회가 아닌가. 

권력 구조 문제를 놓고는 대통령 중심제냐, 내각책임제냐 하는 문제를 검토할 시기가 곧 닥쳐오리라고 본다. 남북한 간에 긴장이 대폭 완화되거나, 비록 지난한 일이지만 통일이 이룩될 경우다. 

전 세계적 관점에서 볼 때 내각제가 대세이며 대통령제는 오히려 소수라 할 것이다. 대통령제가 성공한 나라는 미국 하나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은 유럽에서 이민 온 개척자들이 이룩한 신생국가였다. 이들은 모든 국민이 각각 무기를 소지할 수 있는, 무기에 관한 특수한 문화를 갖고 있다. 그리고 각 주의 권한이 강한 연방제 국가이다. 그러한 배경에서 미국의 대통령제는 거의 예외적이라 할 만큼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타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통령제는 십중팔구 준 독재 체제로 흐르지 않았는가. 오늘날 한국에서 대통령제의 비교적인 성공도 전 세계적인 안목에서 보면 예외적이라 할 것이다. 

"다수는 결정의 원리요, 비례는 대표의 원리"라는 금언이 있다. 가령 의견이 60대 40으로 갈려 있다면 그 중 60이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 6대 4의 비율로 대표가 선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례대표의 원리다. 그러나 어떠한 결정이 필요할 때는 우선 다수파와 소수파가 타협을 시도하지만, 타협이 불가능할 때는 최종적으로 다수결에 의할 수밖에 없다. 다수결은 결정의 원리인 것이다.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다른 나라에도 확산되고 있지만, 의회의 선거는 비례대표에 따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례대표에 의한 의회의 구성은 내각책임제와 불가피하게 연관된다. 

우리나라도 국회의원 선출에 있어서 완전 비례대표로 하는 것이 이상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비례대표를 대폭 확장하여야 할 것이다. 근래 국회에서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비례대표의 확대에 합의한 것은 좋은 방향으로의 진척이라고 본다. 

요즈음 우리나라 의회 정치의 수준은 별로 높다고 할 수가 없다. 아니, 다른 선진국에 비하여 오히려 수준이 낮으며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하겠다. 몇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소선거구 종(從)다수에 따른 의원 선거제에 있다고 할 것이다.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의 의회에서는 정책 토론의 수준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소선거구 종다수선거제 국가에서는 선거구의 문제가 전면으로 부상하거나 정책 토론이 뒤로 물러나고, 인기몰이 선동 선전이 앞으로 부상하기가 쉽다. 한국 의회 정치의 질적인 수준 향상을 위해서도 비례대표제의 확충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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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언론인 출신으로 김영삼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다. '비판적 보수주의자'로 불리며 이념을 떠나 보수와 진보 양쪽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원로 지식인이다. 프레시안에 연재한 기고를 바탕으로 <언론·정치 풍속사>를 냈고 이후 대담, 연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