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별세
향년 97세…'김대중의 동지'로 민주화·평화운동에 족적
2019.06.11 00:06:08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별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락을 함께 한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10일 오후 11시 37분 별세했다. 향년 97세.

1922년생으로 서울 출생인 고인은 이화여고·이화여전을 거쳐 해방 후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 미 스캐릿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하며 여성문제연구원, YWCA 등 여성·시민운동을 하던 그는 1962년 전 부인과 사별한 상태였던 김 전 대통령과 결혼했다.

10월 유신과 5공 군사정부를 지나며, 야당 정치인으로 계속 탄압받았던 김 전 대통령을 가족이자 동지로 도왔다. 1977년 '3.1 구국선언문' 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이 구속되자 1년 가까운 석방 투쟁을 이끌었다.

대통령 영부인으로 청와대에 있던 시절에는 결식아동을 위한 '사랑의 친구들' 명예회장을 맡았고, 한국여성재단을 발족시키고 명예추진위원장을 지냈다. 대통령과 동행하지 않는 별도 해외순방 5차레 중 2002년 유엔 아동특별총회에 참석해 의장국으로서 임시회의를 주재하고 기조연설을 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 퇴임 후에도 불우이웃돕기 등 기부 활동과 사회운동에 관심을 보였고,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으로서 남북 화해협력의 길에도 앞장섰다. 박근혜 정부 시기였던 2015년 8월 3박 4일 일정으로 방북했고, 2011년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조문차 방북하기도 했다.

군사정부 시절 옥고를 치르던 남편에게 쓴 편지를 모아 낸 <내일을 위한 기도>(여성신문사 펴냄, 1998)와 자서전 <동행>(웅진지식하우스 펴냄, 2008), 수필집 <나의 사랑 나의 조국>(1992)등 3권의 저서를 남겼다.

고인은 단지 '김대중의 아내'일 뿐만이 아니라 그 스스로가 민주주의와 사회적 약자 옹호, 통일·화해·협력에 대한 굳은 신념을 지닌 이였다. 1971년 김 전 대통령이 신민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을 때 그는 "만약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를 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에 쓴 글에서 "우스갯소리로 나는 늘 '아내에게 버림받을까봐 정치적 지조를 바꿀 수 없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스개가 아니라 나의 진심"이라며 "쿠데타에 가담했던 실력자가 나를 찾아와 온갖 회유와 협박을 했다. 나도 인간인데 그런 유혹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한순간 흔들리던 나의 마음은 아내를 생각하며 올곧게 바로잡혔다. 아내는 결코 나의 배신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기도 했다.

2009년 김 전 대통령 서거 작후 이 이사장은 추도사에서 "남편은 일생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고통을 겪었다. 많은 오해를 받으면서도 오로지 인권과 남북의 화해, 협력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 과정에서 권력의 회유와 압력도 있었으나, 한번도 굴한 일이 없다"며 "화해와 용서의 정신, 평화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하는 양심, 그것이 남편의 유지"라고 했다.

2010년 6월 6.15 10주년 심포지엄에서 "우리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남북 정상이 자주 만나고, 남북이 화해하고 협력하며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라며 당시 천안함 사태 직후 대북 강경론이 득세하던 분위기였음에도 "일부에서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실제 우리에게는 대화를 통한 해결의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며 "더 이상 서로를 자극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북한의 굶주림에 대해 보다 넓은 마음으로 원조를 결정해야 한다. 북한을 적으로 생각하기 이전에 한 민족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2011년 DJ 서거 2주기에는 다소 정치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민주당이 앞으로 더욱 이 나라의 역사에 빛나는 역할을 해주리라 믿고 크게 기대하고 있다"며 "아무쪼록 민주당이 앞으로 집권당이 되어 이 나라를 바로 이끌어 나가고 남북통일을 이루고 아시아에서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해 세계 평화를 이뤄내는 역할까지 책임지고 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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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기자 nowhere@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국제팀에서 '아랍의 봄'과 위키리크스 사태를 겪었고, 후쿠시마 사태 당시 동일본 현지를 다녀왔습니다. 통일부 출입기자 시절 연평도 사태가 터졌고, 김정일이 사망했습니다. 2012년 총선 때부터는 정치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