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대포 꺼낸 홍콩 정부, '우산혁명 10배' 시위에 화들짝
범죄인인도법 심의 일단 연기
2019.06.12 16:50:15
물대포 꺼낸 홍콩 정부, '우산혁명 10배' 시위에 화들짝

지난 9일 홍콩 시민 7명 중 1명꼴인 100만 명이 거리에 쏟아져 나와 반대시위를 벌이는 등의 여파로 홍콩 정부가 강행하겠다던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심의가 12일 전격 연기됐다.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은 중국을 포함해 대만, 마카오 등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사안별로 범죄인들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홍콩 시민사회는 이 법안이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많은 홍콩시민들이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쌓여온 반중 감정을 이 법안을 계기로 폭발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개정안 심의 연기 결정은 전날부터 입법회 주변 등을 점거한 시위대의 기세에 눌린 결과다. 이날 홍콩 의회인 입법회에서 법안이 심의될 예정이었지만,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는 한 입법회 의원들이 의회 건물에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 12일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저지를 위해 거리에 나선 홍콩 시민들이 일제히 우산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


물대포와 최루액을 쏘아대도 더욱 강력해진 시위대에 굴복


결국 홍콩 정부는 성명을 내고 "이날 오전 11시로 예정된 2차 심의 개시가 연기됐으며, 입법회 사무국이 추후 변경된 2차 심의 개시 시간을 의원들에게 통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영국의 BBC는 개정안을 저지하기 위한 시민들이 거리를 점령한 광경에 대해 "2014년 우산혁명을 떠올리게 한다"고 전했다. 우산혁명은 민주적 선거제를 요구하며 10만 여명의 시민이 시위할 때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아대는 경찰의 진압에 우산으로 맞서는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우산혁명은 79일간의 시위에도 불구하고 직선제 등 민주적 선거제를 관철해 내지 못했다.

그러나 우산혁명은 2019년 홍콩 시민들이 '10배의 규모'와 '훨씬 더 조직화된 대응'으로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저지에 나서는 자양분이 되었다.

9일 시위를 주도한 홍콩 재야단체 연합인 '민간인권전선'은 "홍콩의 직장인과 학생들, 기업인들은 일과 학업을 멈추고 법안 저지에 온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며 총파업과 저지시위 동참을 촉구했다.

민간인권전선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입법회 건물 주변에서 시위를 벌이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전날 밤부터 수백 명의 시민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날 홍콩 입법회와 정부청사 건물이 있는 애드머럴티 지역으로 몰려든 시위대의 규모는 갈수록 불어나 수만 명에 달했다. 시위 참가자 대부분은 젊은층인 것도 특징이다. 이들은 정부청사로 몰려들어 주변 도로를 점거한 채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와 최루액까지 발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시위대는 범죄인 인도 법안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완차이에서 센트럴까지 홍콩 도심 도로를 점거하고 무기한 농성에 들어가겠다고 밝혔으며, 입법회 진입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지하철 교통까지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홍콩 시내로 집결한 시위대는 교사, 사회복지사, 예술가, 기업가, 항공사 승무원 등 각계각층을 망라하고 있다. 홍콩 교사 노조는 조합원들이 총파업에 동참해 범죄인 인도 법안 저지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독려했다.

교사 노조는 온라인 청원문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의 철회를 촉구하면서 "교육자로서 학생들이 자유, 평화, 평등,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고등학생들도 법안 저지에 나서 72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날 시위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

홍콩중문대학, 홍콩과기대학, 홍콩이공대학 등 7개 대학 학생회도 동맹휴업을 벌이고 법안 저지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천명했다. 50여 개 사회복지단체의 사회복지사, 상담사, 치료사 등 2천여 명도 이날 시위에 동참하기로 했다.

홍콩 예술가 노조는 화랑 등이 휴업에 나설 것을 촉구했고, 이에 100여 개 화랑과 예술학교, 문화단체 등이 문을 닫고 이날 시위에 동참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시위 참여 의사를 밝힌 기업가들도 적지 않아 홍콩 내 400여 개 기업과 점포 등이 이날 하루 동안 영업을 중단하고 저지시위에 나서기로 했다.


이날 홍콩 정부가 2차 심의를 일단 연기한 것은 공권력까지 동원했음에도 더욱 조직화된 대응을 보인 시위대의 기세에 눌린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 법안 심의를 강행할 경우 5년 전 우산혁명보다 훨씬 폭발력이 큰 혁명적 상황을 초래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이에 따라 홍콩 정부가 시간을 끌면서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처리를 끝내 강행할 것인지 주목된다. 홍콩 입법회 의석은 총 70석으로 지역구 의석 35석, 직능대표 의석 35석으로 구성된다. 현재 직능대표 대다수와 지역구 의석 과반수가 친중파라는 점에서 표결 처리는 무난한 상황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이승선 기자 editor2@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1년 입사해 주로 경제와 국제 분야를 넘나들며 일해왔습니다. 현재 기획1팀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