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민주주의, 뭉쳐야 산다
[시민정치시평] 시장과 정치를 견제할 힘을 어디서 확보할 것인가?
새로운 민주주의, 뭉쳐야 산다

2019년 여름의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기대와 희망이라는 화두보다는 비관과 절망의 이미지가 더 먼저 연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남북미 정상회담이라는 깜짝 사건이 비관적 분위기로 흘러가던 한반도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기대를 되살려내기는 했지만, 딱 거기까지다. 막바지에 온 최저임금 협상 테이블에는 마이너스 인상안이라고 하는 사상 초유의 비상식적인 제안이 올라와 있다. 기대치를 낮추는 전망들로 채워진 정부가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는 경악스럽게도 대기업 투자세액 공제라는 이미 수명을 다한 정책이 처방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갈등과 불신의 표적이 된 국회가 오랜만에 문을 다시 열기는 했지만 산적한 정치사회개혁 안들을 하나라도 제대로 처리할지 여전히 시민들의 믿음 영역 밖에서 비생산적 논쟁을 반복하고 있다.

이처럼 시장권력과 행정권력, 정치권력이 공공연하게 민의로부터 멀어져가면서 시민들의 좌절이 깊어질 때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 현상이 바로 서구에서 우리가 목도할 수 있는 포퓰리즘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심화되어가는 불평등과 삶의 불안정에 대해서, 정치집단을 포함한 기존 엘리트 세력이 진정성 있는 해결의지나 해법을 제시해주지 못하자 시민들과 기존 제도 집단들 사이의 간극은 더 커져갔고, 제도권 밖의 아웃사이더들이 시민들의 불만에 직접 호소하는 식으로 그 틈을 비집고 등장한 것이 바로 포퓰리즘인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서구의 흐름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의 불만과 좌절을 제도권에서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다르지 않다.

기존 제도권 정치 경제 권력 집단들이 시민들의 불만과 분노에 반응하지 않는 그 시점에 포퓰리즘이 들어올 수도 있지만, 시민사회가 활성화되어 그 공백을 해소할 수도 있다. 사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새롭게 변화된 내외적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시민사회의 역할을 다시금 필요로 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인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불평등이나 격차 확대, 청년들의 불만과 좌절, 젠더와 소수자 이슈의 사회적 주목 확대 등의 환경변화야말로 ‘강한 시민사회’의 부상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현재 시민사회는 그 동안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고 성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나 시장에 견주면서 사회의 균형을 잡아줄 만큼 견고한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고 확신하기에는 아직 많이 이르다. 2020년을 눈앞에 보면서 새로운 10년을 준비해야 할 지금,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시민사회가 조직적으로 뻗어나갈 방향은 어디일까? 세 가지 정도 화두를 던져 볼 수 있을 것이다.

직장에서 다시 지역으로?

우선, 사람관계의 구심력으로써 직장이나 직업보다는 주거생활반경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점을 살펴야 한다. 기존 시민사회에게 주거생활 지역은 단체의 소규모 지회를 두는 곳 이상이 아니거나 혹은 마을 만들기 운동과 같이 이제 막 시작되는 초창기 지역 커뮤니티 운동의 실험장 정도였다. 하지만 현대의 복지가 물질적인 시설이나 상품 보다는 '관계'를 필요로 하고, 현대의 일자리가 생활권에서의 관계 밀착형 '사회서비스 일자리'에서 생겨나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그리고 현대의 정치가 점점 더 생활권의 참여를 독려하고 자치를 고무해주면서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더욱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들까지 경쟁하듯이 커뮤니티 기반 케어, 커뮤니티 기반의 지역밀착형 일자리, 커뮤니티 기반의 에너지 대안, 커뮤니티 기반의 생활자치(주민자치회), 커뮤니티 기반의 교육 등처럼 핵심 정책 대상들을 주거생활 거점으로 밀착시키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서울시가 2019년 현재 424개 행정 동에서의 주민자치회 전환을 시도하면서 동네에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제 한국의 도시 주거지가 단지 베드타운이라고 간단히 도외시할 일이 아니라, 주거생활지역 반경의 진정한 커뮤니티 조직화를 시민사회 조직화의 주요 방향으로 삼는 것을 고려할 시점에 온 것 같다. 이제는 시민사회라는 '큰 추상적 전체집합 바구니' 안을 채워줄 유력한 내용물이 거대한 몇 개의 시민단체가 아니라, 로컬 커뮤니티라고 하는 수 없이 다양한 '모임들의 부분집합'들이 유동적으로 어울린 것으로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얘기다. 이렇게 지역과 동네는 ‘마을 활동’ 공간을 넘어 시민사회의 새로운 토대이자 에너지 원천이 될 개연성이 있다.

공론장, 시민사회 조직화의 계기로

둘째로, 시민들이 비상적 시기에 투쟁으로 집결되다가 긴 일상으로 되돌아갔던 과거 시민사회운동 양상과 달리, 최근에는 일상 시기에 공론장에 모여서 토론하고 숙의하는 새로운 흐름들이 만들어지려 하고 있다. 시민들은 조직되기에 앞서 먼저 움직인다. 움직이려는 시민들의 욕구를 잘 조직을 해야 시민조직화가 가능해진다고 보았을 때, 시민들의 ‘전투를 조직화’ 하는 것 이상으로 ‘소통과 토론을 조직화’ 해야 할 필요가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어쩌면 최근의 시민들은 과거와 달리 서로의 관심사와 이해관계가 겹치는 주위의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말 걸고, 소통하며, 서로의 의지나 목표, 행위방식에 대해 조정하고, 합의함으로써 '우리'의 공동행동을 이끄는 과정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민주주의 진화는 개인선호를 단순히 합산하는 '투표중심(vote-centric)'으로부터, 서로의 토론을 통해 각자의 선호를 바꿀 수도 있고 상호 이해를 도모할 수 있는 '토론중심(talk-centric)'으로 가야 한다. 그에 맞춰서 시민사회 역시 투쟁의 조직자에서 토론의 조직자로서 동네 주민총회에서부터 다양한 의제별 공론장의 조직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소통능력과 토론과 합의유도 능력을 발휘하면서 시민들에게 다가서고 시민들과 결합하는 방안을 모색할 기회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분배투쟁과 인정투쟁의 새로운 조합

마지막으로 주목할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평등과 삶의 불안정성이 좀처럼 해소되지 못하자 세계적으로 과거와 다른 차원에서 정체성 이슈가 부각되고 있는 듯하다. 역사의 종말을 선언하여 유명해졌던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지난해 정체성의 정치 시대가 왔다면서 정체성이 세계 정치사회의 변동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될 수 있음을 예시하기도 했다. 사실 세계적 차원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재 한국사회 조차도 미투 운동을 상징으로 하는 젠더 정체성이나 소수자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한 사회적 운동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은 분명하고 그에 따라 시민사회에서 정체성의 조직화가 점점 더 중요한 이슈로 부각될 전망이다.

특히 지금은 분배가 점점 더 악화되어가는 시점에서 정체성 이슈가 오버랩되어 터져 나오는 특수한 국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요점은 분배냐 인정이냐 하는 전통적인 양자 택일 선택 논쟁의 문제를 넘어서, 한계선까지 악화된 분배를 방치하지 않으면서도 높아져가는 시민들의 권리의식과 인정욕구를 더 이상 유보할 수도 없는 복잡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결국 분배와 인정을 어떻게 함께 고려해서 시민들의 어려움과 불만, 분노를 풀어낼 수 있는지에 시민사회 조직화의 방향이 달려있을 수 있다. 한국사회는 분배투쟁과 인정투쟁이 서로 갈등하거나 충돌하기 보다는 아직은 각자 도약을 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향후에 이를 어떻게 통합적으로 조직할지에 따라서 시민사회의 가장 큰 도전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개인은 조직되어야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0년도 넘었고, 21세기가 벌써 20년을 통과하고 있지만 여전히 시장의 힘은 너무 크다. 반면 국가와 행정은 상당히 관성대로 움직이고 있고, 정당들은 더욱 고립된 이너서클처럼 고착되어 가는 경향이 크다. 한편 시민사회는 곳곳의 공간에서 새로운 싹을 틔워가는 것 같지만, 조직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국가나 시장에 견주기에는 여전히 미약하다. 신자유주의 경쟁논리에 익숙해진 시민들이 조직적으로 단결하기 보다는 각자도생하고 있는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진실은 개인은 조직되어야 하고 시민은 조직을 통해 시민사회의 영역을 확장해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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