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동아일보 100살을 축하할 수 없는 까닭
[기고] 빛은 짧고 암흑은 기나긴 오욕의 역사
조선·동아일보 100살을 축하할 수 없는 까닭

조선일보는 1920년 3월 5일, 동아일보는 같은 해 4월 1일에 창간되었으니 '쇠는 나이'로 치면 올해로 꼭 100살이 된다. 두 신문은 진즉부터 '100돌 기념잔치'를 성대하게 치를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조선·동아일보가 지난 한 세기 동안 민족공동체를 위해 이바지한 공적에 비해 파괴적 작용을 한 죄업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이들은 그런 잔치를 마뜩찮게 여길 것이 틀림없다.


조선일보는 태생부터 친일신문이었다. '조일동화주의(朝日同化主義)'를 표방한 친일단체인 대정친목회 대표 예종석을 앞세워 조선총독부의 발행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1933년에 극도의 경영난에 빠진 조선일보를 인수한 방응모는 평안도에서 '노다지'를 발견해 부자가 된 인물로, 태평양전쟁(일제는 '대동아전쟁'이라고 부름) 시기에 일본군에 고가의 고사포를 '기증'한 바 있는 대표적 부일파(附日派)였다. 그의 후손인 방일영, 방우영, 방상훈으로 이어지는 조선일보 발행인들이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에 어떻게 '친위언론' 구실을 했는지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요즈음 조선일보는 촛불혁명의 소산인 문재인 정부를 감정적으로 헐뜯는 기사와 논설을 며칠이 멀다하고 내보내고 있다. 지난해 10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신일철제철(현 신일철주금)이 합당한 배상을 하라고 대법원이 판결한 이후 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면서 노골적으로 경제보복을 가하고 있는데도 조선일보는 편파적 기사와 교묘한 논설로 일본을 두둔함으로써 많은 주권자들과 전문가들의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동아일보는 '국민주주' 형식으로 창간되었는데, '창간 사주'를 자칭한 호남 출신 자본가 김성수는 교묘한 방법으로 그 신문을 사유화한 뒤 일제강점기에 '천황 폐하'에게 거액을 '국방헌금'으로 바치는 등 부일 매국·매족 행위를 일삼았다. 그의 장남 김상만은 1975년 3월 17일 박정희 정권과 야합해서, '자유언론실천운동'을 열심히 하던 동아일보사 기자, 동아방송 기자, 피디, 아나운서, 기술인 등 113명을 강제 해직했다. 그날 오후에 결성된 이래 오늘날까지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해 싸우고 있는 단체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이다. 


1920년대 말, 진보적 민간단체인 신간회가 결성될 때 조선일보 기자 다수가 열성적으로 참여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신문 구성원들이 민족사에 이바지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주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동아일보는 근래에도 창간 기념일만 되면,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경주에서 손기정 선수가 우승해 시상대에 오른 사진에서 가슴의 일장기를 지운 채 보도한 것을 엄청난 업적인 듯이 자랑하지만 그보다 12일 전에, 몽양 여운형 선생이 발행하던 조선중앙일보에 이미 그 사진이 실린 사실은 밝히지 않고 있다. 


동아투위는 지난해 3월 17일, 결성 43주년을 맞아 '한 세기 동안 민족을 속여온 동아일보 차라리 폐간하라'는 경고장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구호는 조선일보에도 해당된다. 특히 조선일보 사주와 간부들의 오만과 후안무치는 도를 넘어선 지 오래이다. 그들이 어떤 불법행위나 부도덕한 짓을 저질러도 '치외법권'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을 지경이다. '빛은 짧고 암흑은 기나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민족공동체의 화합과 우애보다는 분열과 대립을 하도록 교묘하게 '유도'하는 행태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덧붙이자면 중앙일보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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