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부 합숙소의 민낯..."감옥에 있는 듯하다"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 학생선수 기숙사 실태조사 토론회 개최
2019.10.24 21:58:28
운동부 합숙소의 민낯..."감옥에 있는 듯하다"
"탁구를 그만두고 싶은데 무서워서 말을 못하겠어요. 그리고 숙소에 가면 왠지 모르게 주눅 들고, 쉬고 싶고, 자고 싶어도 못 자요. 만약에 잔다고 해도 맘 놓고 편하게는 절대 못 자는 것 같아요" - 초등학교 4학년 탁구부 학생

"운동시간이 너무 길고 쉬는 날이 시합시즌이면 아예 없어요. 운동선수들의 학업병행을 신경 써 주시고 머리를 불합리하게 미는 것에 불만이 많습니다. 운동선수들의 인권을 보호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중학교 3학년 농구부 학생

"훈련 시간이 너무 길어서 훈련하기가 싫어지고 그만 두고 싶어져요. 그리고 학교 동아리 시간에 또 만들어가지고 훈련을 해서 평일에 훈련 6시간 할 때도 있어요. 다음날에 너무 힘이 들고 학교 가기가 싫어집니다. 그래서 훈련시간을 정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중학교 2학년 펜싱부 학생

학교 운동부의 '합숙소'가 인권침해의 장소로 지목받고 있다. 두발과 사복에 제한을 두고 휴대폰 사용과 외출도 제한한다. 점호와 관등성명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학생 선수들은 "군대나 감옥에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곤 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합숙소를 전면 금지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4일 서울 중구 서울YMCA 대강당에서 '합숙소 앞에 멈춘 인권' 토론회가 열렸다.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은 합숙소를 스포츠 인권 침해의 진앙지로 지목했다. ⓒ프레시안(조성은)


시대착오적인 '합숙소'...인권침해의 온상지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하 특조단)의 학생선수 기숙사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4일 서울 중구 서울YWCA 대강당 특조단의 '합숙소 앞에 멈춘 인권'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조사는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7개교와 비수도권 6개 시도에 걸친 9개교를 대상으로 6월부터 10일까지 진행됐다. 그리고 해당 학교의 학생 선수 50명을 선정해 심층면접을 진행했다.

특조단은 올해 초, 한 국가대표 선수의 미투(#MeToo)를 계기로 2월 발족했다. 수년 간 그를 성폭행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 그를 지도한 조재범 코치였다. 그가 자신이 지도하는 학생을 수년 간 지속적으로 폭행·성폭행할 수 있었던 데에는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합숙소 문화'가 꼽히기도 했다.

김현수 특조단 단장은 "실제로 합숙소 생활을 통한 꼼꼼한 지도가 우리나라 스포츠 경쟁력의 인큐베이터로 자리매김한 측면도 있다"면서도 "고립되고 통제된 합숙소 내 가혹한 훈련과 인권침해로 고통받는 선수들이 속출했다. 이들이 인권을 요구하면 정신력과 인성이 부족한 선수로 매도되기 일쑤였다"고 덧붙였다.

합숙소, 인권도 안전도 없는 곳

2003년 3월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에 화재가 발생해 9명의 어린아이들이 사망했다. 이 합숙소는 1993년 10월 건축되어 일반 건물로 등재되어 있다는 이유로 단 한 차례도 소방점검을 받지 않았다. 2002년 11월 학교의 요청으로 점검을 받았으나 '전기시설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화재는 주방의 누전으로 인해 발화됐다. 창문은 방범용 쇠창살이 설치되어 있거나 에어컨과 신발장 등으로 막혀 있어 사실상 어떤 비상구와 탈출구도 없는 상태였다.

특조단의 조사 결과 대부분의 합숙소가 안전에 취약한 구조였다. 김 단장은 "천안초등학교 참사는 스프링클러가 잠겨있었다"며 "다른 학교도 별반 다를 것 없었다"고 밝혔다.

특조단의 조사 결과 소화기, 스프링클러, 비상구, 대피로 등 소방 및 안전시설과 관련 항목 조사에서 조사 대상 16개 학교 중 모든 항목에 걸쳐 설치가 완비된 곳은 7곳에 불과했다. 스프링클러가 없는 곳이 5곳, 비상구가 없는 곳 5곳, 대피로가 없는 곳 5곳, 모두 없는 곳도 2곳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열악한 합숙소의 상태는 인권침해로도 이어졌다. 단체 합숙소는 개인공간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잠자는 공간에 칸막이라도 있으면 좋은 축에 속했다. 사생활 보호도 전혀 되지 않았다. 김 단장은 "통제된 생활, 군대식 체계로 자유권과 사회권이 제약되는 등 합숙소는 '인권의 사각지대'"라고 분석하며 "대부분의 경우 이런 합숙소 생활이 학생들에게 의무로 강요된다"고 지적했다.

김 단장은 또 "군대에서 발생한 폭력의 대물림과 같이 공동체의 서열화가 초래하는 폭력구조가 합숙소 내에서도 쉽게 발생한다"며 "코치가 학생들을, 3학년이 2학년을, 2학년이 1학년을 구타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김 단장이 조사한 사례 중에는 선배 학생들이 후배 학생들을 상대로 단체 기합과 폭행은 물론 '빨래 셔틀'과 마사지까지 강요하는 것도 있었다. 피해 학생들은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 

"다 너희 잘 되라고 하는 거야"...진짜로?

'합숙소'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체육 교육 시스템이다. 선수들이 합숙소에서 단체로 생활하면서 훈련은 물론 '기상'부터 '취침'까지 생활 전반을 담당 교사의 통제를 받는다. 합숙소 생활은 '정신력을 무장'하고 팀 경기의 경우 '팀워크를 향상한다'는 이유에서 정당화됐다. 합숙소 문화는 엘리트 스포츠 중심의 국가 주도 체육활성화 정책으로 한국 특유의 체육 교육 문화로 자리잡게 됐다.

금메달 따고 세계 최고의 선수로 만들어주니까 이 모든 것이 학생 선수들을 위한 것일까. 심층면접에 참여한 한 체육교사는 “학생선수의 착취를 통해 얻은 이득은 교사들에게도 돌아간다"고 덧붙였다.

"엘리트 스포츠 체계 고착은 체육교사들이 일조한 점이 있습니다. 교장은 체육교사 출신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체육교사가 운동부를 담당하면서 해당 운동부가 소년 체전 등에서 입상하면 가산점을 부여받아 진급이 빨라져요. 그래서 학교운동부 지도교사들이 코치 등 지도자와 함께 학생들을 훈련과 경쟁으로 내몰게 되는 구조가 된 것입니다"

전지훈련이나 경기가 있는 경우 합숙소 생활은 '혹사'에 가깝다. 김 단장은 "학생들의 정신과 신체를 착취하는 것"이라며 "학생들은 사회적 고립 속에서 아동·청소년으로서 필수적인 최소한의 휴식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층면접에 참여한 또 다른 체육교사는 "진짜 문제는 합숙소를 나갔을 때 발생한다"라고 말했다. "합숙소 밖 사회의 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합숙소 생활을 하다가 운동을 그만둘 때가 정말 문제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의 절대다수가 ‘일탈’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합숙소 생활을 그만두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 자기 엄마, 아빠랑 지내는 것조차 엄청 어색하게 받아들이고 적응을 하지 못하게 되는 거지요. 합숙소 단체생활을 통한 그들만의 고립된 생활에 젖어 있어서 적응을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가출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합숙소 안에서의 폭력은 어떻게 보면 일부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합숙소의 고립된 생활을 했던 학생들이 일상의 경험과 분리되어 살다가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 이 문제는 정말 심각합니다"

'득'보다 '실'이 큰 합숙소, 없어지는 것이 타당하다

전문가들은 합숙소가 인권침해의 온상지라는 점에 공감하면서 "합숙소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보다는 "합숙소 자체를 전면금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태룡 한국스포츠정책연구원 스포츠정책연구실장은 특조위의 '인권친화적 합숙소'라는 대안에 "불량식품에 캐비어 올리는 격"이라며 회의적인 시각을 보냈다.

한 실장은 "'합숙소 문화'에 더해 체육특기자 제도까지, 우리나라는 제도적으로 학생 선수가 운동만을 하게 몰아붙인다"며 "학생 선수들이 쉽게 '벙커멘탈리티'에 빠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벙커멘탈리티를 '지속적으로 운동만을 강조한 나머지 아이들 스스로 사회에서 탈락한 상태'라고 정의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벙커멘탈리티에 빠진 학생 선수들은 '우린 특수한 존재고, 우리의 고생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라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그는 "우리보다 운동 적게하고 강도가 낮은 나라에서도 벙커멘탈리티의 문제가 나타난다"며 "그보다 네다섯배 많은 시간을 운동하고 합숙까지 하는 우리나라의 학생 선수들은 더욱 심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실장은 "피트니스계에는 '근육은 쉴 때 합성된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며 "운동을 강요하고 운동부 문화에 학생 선수들이 깊이 젖어들게 하는 것보다 휴식을 주고 탄탄한 근력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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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은 기자 pi@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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