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둔황과 막고굴에 대한 최고의 안내서
[최재천의 책갈피] <실크로드 둔황에서 막고굴의 숨은 역사를 보다>
실크로드 둔황과 막고굴에 대한 최고의 안내서
둔황 문화의 흥망성쇠는 실크로드의 번영 및 쇠락과 궤를 같이한다. 한나라 때, 실크로드가 개척되면서 둔황의 번영이 시작됐다. 동양문화와 서양문화가 만나 둔황의 독특한 문화 예술을 형성했다. 하지만 명청 시대에 이르러서는 둔황에서 과거의 번영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이 시기 중국의 주요 수출품은 차와 도자기인데, 항해술의 발달로 항로가 개척되면서 해상 실크로드가 육상 실크로드를 대체한 지 오래였다. 

1524년, 명나라는 가욕관(嘉峪關)을 폐쇄하고 중국과 서역의 통행을 중단했다. 실크로드의 상업세력도 쇠퇴했다. 둔황은 가욕관 바깥에 고립되었다. 막고굴은 훼손되고 감실에 모래만 들어찼다. 둔황의 모든 것이 침체기였다. 과거에 신도들이 운집했던 사원에서는 향 피우는 연기가 오르지 않게 되었다. 막고굴의 벽화와 불상도 나날이 낡고 망가졌다. 

1900년에 장경동이 발견되고 나서 외국의 탐험가들이 연이어 찾아와 대량의 유물의 해외로 빼내갔다. 그 후로 40년 가까이 현지 조사를 하러 온 중국의 학자들은 없었다. 불가사의였다. 1907년 스타인, 1908년 펠리오가 둔황에서 많은 유물을 훔쳐가면서 세상 사람들이 둔황을 주목했지만 중국학자들은 한 사람도 둔황에 가지 않았다. 

그래서 근대의 중국 교육학자인 천인거는 이렇게 탄식했다. "둔황은 중국 학술계에서 상처의 역사다." 나아가 1980년대 어느 외국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둔황은 중국에 있지만, 둔황학은 중국 바깥에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1976년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중국에 개혁개방의 바람이 불었다. 둔황연구소에도 봄이 왔다. 1984년 둔황문물연구소가 확장되어 둔황 연구원으로 승격했다. 더 이상 둔황학은 중국 바깥에 있지 않다.

둔황연구원과 판진스 둔황연구원 명예원장이 편저한 <실크로드 둔황에서 막고굴의 숨은 역사를 보다>는 둔황에 대한 최고의 정사(正史)다. 원재는 <막고굴사화(莫高窟史話)>, 우리말로 풀자면 '막고굴 역사 이야기'쯤 되겠다. 지금까지 출간된 둔황과 막고굴에 대한 최고의 안내서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지난 10월 막고굴 맞은편에 있는 둔황연구원을 찾아 자오성량(趙聲良) 원장과 교류협력을 논의했다. 내년에 서울에서 둔황비천(飛天)전시회를 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둔황연구원 유림굴 송자정(宋子貞) 소장 일행이 서울을 찾았다. 이 책을 펼쳐 놓고 몇 가지 궁금한 점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기쁨이었다.

▲ <실크로드 둔황에서 막고굴의 숨은 역사를 보다>(둔황연구원, 판진스 지음, 강초아 옮김)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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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