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박지연 씨 사망 즈음에야 작업 수칙 바꿔"
[현장] 고 박지연 씨 사망이 남긴 것들
2010.04.01 19:16:00
"삼성, 박지연 씨 사망 즈음에야 작업 수칙 바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스물셋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숨진 고 박지연 씨는 아직도 발병 원인이 '개인 질병'으로 되어 있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산업재해 인정을 위해 싸워온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인권 지킴이 반올림'은 고 박 씨의 장례 이틀째인 1일 기자회견을 갖고 "죽음 앞에서 울음과 슬픔만으로 애도할 수 없다"며 고 박 씨를 비롯한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투쟁을 선포했다.

"삼성, 산재 인정 막기 위해 병원비 등으로 유가족 회유"

기자회견에 참석한 반올림 활동가들은 박 씨의 투병생활부터 장례에 이르기까지 산재 인정 활동을 막으려는 삼성 측의 집요한 노력이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유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공유정옥 전문의는 "고 박 씨가 삼성의 온양공장에서 X선 장비를 다룰 때 작업 속도 때문에 전원을 끄지 않고 장비 덮개를 연 탓에 백혈병에 걸렸는데도 역학조사 과정에서 전문가라는 사람은 '그 기계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라고만 되풀이하더라"며 "하지만 장례식장에 조문을 온 삼성 여성 노동자들은 요새 회사에서 그 장비를 다룰 때 꼭 전원을 끄고 덮개를 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결국 고 박 씨가 백혈병에 걸린 이후에도 같은 방법으로 작업해 오다 (박 씨의 죽음으로) 문제가 다시 제기되자 행여나 현장 조사를 할까봐 삼성 측이 지금 와서 작업 수칙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라며 "직원들은 X선 장비에서 방사능이 나온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한 채 '회사에서 귀찮게 한다'라고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고 박지연 씨의 영정 앞에서 유가족들이 통곡하고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박 씨가 처음 투병을 시작할 땐 삼성이 관심도 주지 않더니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그제야 찾아와 산재 신청을 포기하면 치료비를 대주고 살고 있는 집도 고쳐주겠다며 박 씨 어머니를 회유해왔다"며 "박 씨의 임종이 가까워지자 삼성 측 관리자 2명이 또다시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병원비를 담보로 회유에 들어갔고 3~4명의 삼성 직원들이 병실 근처에서 만화책을 보면서 지키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 씨의 가족들은 연 1억 원에 달하는 백혈병 치료비 때문에 이들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는 또 다른 고통이 있어 왔다. 개인 질병이 아니라는 명예회복을 살아있을 때 했어야 하는데……"라며 말을 마치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고 김경미 씨, 조진희 씨…추가로 드러나는 피해자들

▲ 2001년 삼성 LCD 공장에서 퇴사한 후 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1급 장애를 입은 한혜경 씨가 기자회견장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이들은 박 씨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또다른 피해자가 나타나고 제보도 이어지는 등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도 전했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지난해 11월 스물아홉 살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숨진 고 김경미 씨의 소식이 들어왔고, 고 박 씨와 같이 X선 장비를 다루다 악성림프종에 걸렸었던 조 모 씨가 나타났다(현재 완치).

삼성반도체의 하청업체에서 일해 왔다는 한 제보자는 전화를 걸어 "삼성반도체가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하며 어떤 가스 물질을 사용하는지 밝히지 않는 이유는 이 가스들이 인체 독성을 차치하고라도 대개 대기오염물질이기 때문"이라며 "이런 사실들이 알려지면 수출이나 기업이미지, 이익에 타격이 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반올림은 새로 나타난 피해자들과 제보, 인터넷 공간에서 일고 있는 고 박 씨의 추모 열기를 모아 발인일인 2일 저녁 삼성본관 앞에서 추모 문화제를 열 계획이다.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이 진짜 '위기'"

고 박지연 씨의 사망에 진보진영과 노동계에서도 애도의 뜻을 보냈다. 민주노동당은 1일 논평에서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삼성과 근로복지공단은 적극적 보상과 추가 피해자 발생을 막기 위한 노력은커녕 외면과 무대응으로 일관해 이들의 가슴에 더 큰 생채기를 내고 있다"며 "유해한 작업환경에서 온갖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일하던 젊은 노동자들이 급성 백혈병으로 스러져가고 있음에도 연관성 없음을 운운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처사이며 재벌기업에 대한 특혜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진보신당은 "노동자들의 잇따른 사망은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온 것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며 "최근 이건희 회장이 '지금은 위기'라며 전격 복귀했지만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이야말로 진짜 위기임을 삼성은 깨닫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역시 논평에서 "근로복지공단이 업무기인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충분한 역학조사도 하지 않은 채 납득할만한 근거도 없이 2009년 5월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노동자 5명이 낸 산재신청을 일괄하여 기각한 행태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며 "이번 사건의 직접 당사자라 할 삼성은 국내 최대기업답게 자기회사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일에도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srv@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