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죄송하다' 말하기 그렇게 어렵나?"
[기자의 눈] '생명공학의 중요성' 말하기에 앞서 할 일
2006.06.30 17:51:00
"노 대통령, '죄송하다' 말하기 그렇게 어렵나?"
"기술이 아니라 마술입니다. 동북아 시대, 2만 달러 시대의 가능성과 희망을 확실히 발견했습니다. (…) 감동에 몸이 떨릴 만큼 감전됐습니다." (2003년 12월 10일 황우석 박사 실험실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중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반년 만에'황우석 사태'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노 대통령은 29일 대전에 있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생명공학 산업은 우리 한국에 딱 맞는 경쟁력이 있는 분야"라며 생명공학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면서 황우석 사태를 염두에 둔 듯한 발언도 몇 마디 덧붙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가 다 나서면 잘 될 것 같지만 정부가 나서서 도움이 안 되는 분야도 있다"며 "이 분야는 정부의 절제와 역할이 많이 필요한 분야"라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또 "황우석 사태를 보니 영웅은 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며 실험실의 수직적 위계질서도 언급했다.
  
  정부가 특정 과학자나 특정 분야를 '찍어서'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과학기술 정책의 문제점이나 '실험실 민주화'의 중요성을 노 대통령은 아주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알게 된 모양이다. 뒤늦게나마 교훈을 얻었다고 고백했으니 다행이다. 그러나 지금 노무현 대통령이 황우석 사태에 대해 '교훈'을 언급할 때인가? 조금 철 지난 얘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연초의 기억을 들춰내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긴 '침묵'…핵심 관련자들은 모두 다 '면죄부'
  
  온 나라가 수 개월에 걸쳐 찬·반으로 나뉘어 격렬한 갈등 양상을 보였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폭력 사태가 계속됐고 심지어 한 사람이 분신자살해 생명을 잃기도 했다. 수 년간 지원한 수백억 원의 국민 혈세가 공중으로 날아갔고, '줄기세포 스캔들'은 결국 역사상 유례 없는 '과학 사기극'으로 규정되면서 대한민국은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됐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2005년 12월 5일 "황우석 박사의 연구 성과에 대한 검증 문제는 이 정도에서 정리되기를 바란다"며 사실상 진실 규명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한 후 진실이 상당 부분 밝혀진 지금까지 노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평소 '설화'를 몰고 다니던 노 대통령의 체질을 염두에 두면 기이한 일로 보이기까지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입만 다물고 있었던 게 아니다. 그는 박기영 전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의 경질 여론이 비등할 때도 계속 그를 감싸다 1월 23일에야 박 전 보좌관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때도 청와대는 "박기영 보좌관이 공식 업무 수행에 지장을 느껴 사표를 제출해와 본인의 뜻을 존중해서 처리하게 됐다"며 표면적으로는 '박 전 보좌관이 잘못한 것도 없고 청와대도 책임을 물을 의사가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박 전 보좌관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순천대로 복직했다.
  
  노 대통령은 박 전 보좌관뿐만 아니라 황우석 사태에 책임이 큰 다른 이들에게도 '면죄부'를 줬다. 정부 내의 비공식적인 황우석 박사 지원모임 '황금박쥐'의 핵심 멤버였던 김병준 전 정책실장은 총리 하마평에 오르다 자리에서 물러난 뒤 이제 교육 부총리 임명의 초읽기에 들어간 형국이다. 또 다른 '황금박쥐'의 멤버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섰다 낙선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심지어 1월 사의를 표명한 오명 전 과학기술부 장관에게도 "아주 폭넓은 안목, 강한 비전과 추진력을 가지고 과학 행정을 이끌어주신 오명 장관님께 감사하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명 전 장관이야말로 황 박사 감싸기에 앞장섰으며 검증 안 된 연구에 막대한 자원을 쏟아 부은 당사자인데 도대체 뭐가 감사하다는 말인가?
  
  '황우석'에 감전된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의 이런 행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황우석 사태에 얼마나 큰 책임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피해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황우석 띄우기'에 나섰던 사건의 핵심 당사자다.
  
  노 대통령은 2003년 12월 10일 황우석 박사의 실험실을 처음 방문하면서 "기술이 아니라 마술이라 느꼈다", "동북아 시대, 2만 달러 시대의 가능성과 희망을 확실히 발견했다", "감동에 몸이 떨릴 만큼 감전됐다"는 극찬을 늘어놓으며 황 박사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말 많던 '최고과학자 연구지원 사업'을 만들어 황 박사를 지원하기로 한 것도 바로 그의 아이디어였다. 박기영 전 보좌관은 2005년 4월 25일 청와대 <국정브리핑>에 기고한 글에서 "최고과학자 연구지원 사업은 노 대통령이 처음 제안했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위해 아이디어도 직접 말해 줬다"며 "황 박사의 연구 성과에 대해서 마음속으로 가장 기뻐한 사람은 바로 노 대통령"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2005년 10월 19일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이 준비해 간 연설 원고 내용까지 즉석에서 수정해 "생명윤리에 관한 여러 가지 논란이 훌륭한 과학적 연구와 진보를 가로막지 않도록 잘 '관리'해 나가겠다"고 약속한 것은 압권이었다. 오죽하면 이 발언에 대해 한 원로 생명윤리학자가 "한국이 야만국임을 세계에 알린 망언"이라고 개탄했겠는가?
  
  노 대통령은 더 나아가 진실을 가리려는 움직임이 최고조에 달했던 12월 5일 '이만 덮자'는 식의 진실 은폐를 위한 선동까지 감행했던 셈이다. 이미 한 주일 전인 2005년 11월 28일 <PD수첩>의 취재 내용을 상세히 알고 있던 김형태 변호사가 김병준 전 정책실장을 만나 관련 내용을 전달한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노 대통령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위험한' 발언을 했는지 그 속사정이 궁금할 따름이다.
  
  "죄송합니다", 말하기가 그렇게 어렵나?
  
  노무현 대통령의 '긴 침묵'은 바로 이런 사정에서 비롯됐다. 박기영 전 보좌관, 김병준 전 정책실장, 오명 전 과기부 장관 등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었던 것도, 선뜻 황우석 사태에 대해서 논평을 할 수 없었던 것도 본인의 '원죄'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 스스로 '황우석 띄우기'에 앞장선 마당에 그가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겠는가?
  
  이제 '망각의 마술'이 대한민국을 휩쓸고 지난 지금 노무현 대통령은 드디어 입을 연 것이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듯 황우석 사태의 교훈을 거론하면서 말이다. 다시 한 번 분명이 말하지만 순서가 틀렸다. "죄송합니다" 하는 사죄가 먼저고 그 다음에 교훈을 언급해야 했다.
  
  노 대통령은 틈만 나면 일본 측에 과거사와 관련해 진정한 사과와 그에 합당한 실천을 요구해 왔다. 왜 노 대통령은 일본에게 그토록 당당히 요구해 온 일을 본인은 실천하지 않는 것일까? 평소 역사와 대화를 한 지도자로 기억되고 싶다는 노 대통령이 '무능'한 데에다 '거짓말'에도 능했던 지도자로 기억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노 대통령은 생명공학의 중요성을 언급하기에 앞서 지금 당장 해야 할 발언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수순이 틀리면 모든 것이 잘못되는 법이다. 이것만은 결코 철 지난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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