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집회와 시위가 범죄 되는 세상이 왔다"
[토론회] "경찰, 올해 100곳 집회 신고 중 단 한 곳만 허가"
2009.06.04 19:19:00
시민단체 "집회와 시위가 범죄 되는 세상이 왔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집회와 시위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일까. 아니면 범죄일까.

'민주주의 수호, 공안 탄압 저지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는 4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집시법 적용 실태와 문제점 보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발제자들은 "집회와 시위는 우리 사회에서 권리가 아니라 범죄가 된 지 오래"라고 주장했다.

작년 한 해 집회 금지 통고 149건, 올해 1월~4월까지는 무려 164건 육박

최근 일어난 일련의 상황은 집회·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일단 범법자가 됨을 보여준다.

지난 4월 1일 경찰청은 "방어적 질서 유지에서 적극적 법집행으로 대응 기조를 전환한다"는 골자의 '2009년 집회·시위 관리 지침'을 일선 경찰서에 전달했다. 불법 폭력이 우려될 경우 집회 신고 단계 및 초반부터 강도 높게 대응하고 금지가 통고된 집회를 강행할 경우, 사전에 충분히 병력을 집회 예상 장소에 선점, 집결 무산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이다.

발표 이후 경찰의 집회·시위 관리 양상은 달라졌다.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정치적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회견 참석자들이 경찰에 연행되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집회 시위의 경우 장소를 원천 봉쇄하고 아예 집회 자체를 못하게 하기 일쑤였다.

더 나아가 정부는 지난 5월 20일 서울에서의 대규모 집회는 원천적으로 불허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두고 수많은 시민단체들은 "정권의 비판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는 행위"라고 비난했지만 아직까지도 요지부동이다.

'대규모 집회'가 아니더라도 경찰은 일찍부터 '불허' 처분을 남발하고 있다. 지난 5월 13일부터 6월 22일까지 시민·사회단체들은 서울 시내 주요 장소 100곳에 집회 신고를 냈지만 경찰은 단 한 곳만 허가해주고 나머지는 모두 불허 처분을 내렸다.

통계상으로도 올해의 집회 금지 통고 횟수는 압도적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경찰이 2008년 1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149건의 집회 금지를 통고했다. 그러나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집회 금지통보를 내린 건수가 164건이었다. 전년도에 비해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기간이었지만 금지 횟수는 더 많았던 것이다.

▲4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이명박 집권 이후 집시법 적용실태와 문제점에 대한 보고회가 있었다. ⓒ프레시안

"집시법을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경찰이 문제"

이를 두고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한지연 간사는 "원천적으로 집회가 열리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경찰이 집시법의 제정 목적과 다르게 집시법을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금지 통고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뤄진다"며 "하지만 경찰은 집시법을 자의적으로 이용해 집회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집시법은 '적법한 집회 및 시위를 최대한 보장하고 위법한 시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함으로서 집회 및 시위의 권리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금지 통고 사유 중 '교통 소통 제한(12조 1항)이 2008년 한 해 동안은 28건(18.7%)이었지만 2009년 1월부터 4월까지는 51건(31%)로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한지연 간사는 "이것은 올해 이러한 움직임이 더욱 심해졌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한국진보연대 황순원 민주인권국장은 "결국 대부분의 집회가 불허된 이유는 폭력 시위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경찰의 자의적 판단 때문"이라며 "하지만 아이가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다고 태어나지 말아야 하는지 경찰에게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단체들이 거리에서 집회를 하는 이유는 특권층을 위한 정책을 펼치는 이명박 정권에게 서민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해서이지만 정부는 이러한 목소리를 강압적으로 막고 소통을 거부한 채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 지원금이 정부 비판에 대한 협박용으로 시민사회 길들이기에 쓰인다"

한편, 이날 보고회에서는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2009년도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 사업 선정 과정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발제를 맡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오광진 활동가는 "공익활동 지원금이 정부 비판에 대한 협박용으로 시민사회 길들이기나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사업에 지원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원 사업 선정 과정에 있어 정부는 작년 광우병대책위 1800여개 단체를 불법·폭력시위 관련 단체라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시킨 반면, 공모 마감 직전에 등록된 뉴라이트 계열의 단체들을 대거 선정하는 등 공정성과 형평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행안부에서 지원금이 끊긴 한국여성노동자회는 2007년부터 '3년 다년사업'으로 지정되어 지원금을 받아왔던 '새로 쓰는 여성 노동자 인권 이야기' 사업을 마무리 짓지 못하게 됐다. 한글문화연대의 한국 무늬옷 개발 및 보급 사업도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

강살리기네트워크, 우리말살리기운동본부 등은 지원을 신청했다가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서울시청에 발전 기금을 신청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경우도 4년 만에 처음으로 기금 지원 단체에서 제외됐다.

반면 안보, 국민 의식 선진화나 4대강 저탄소 녹색 성장을 주제로 한 사업을 내건 보수 성향의 뉴라이트 계열 단체들은 대거 등록됐다. 포럼 푸른한국은 4대강 살리기 정책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사업을, 늘푸른희망연대는 저탄소 녹색성장 국가비전 실현을 위한 국민참여 및 전국 순회 행사를 사업으로 제출해 선정됐다.

오광진 활동가는 "공익적 사업을 꾸준히 해 온 단체들까지 지난해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불법 폭력 시위 단체'로 분류하고 공익사업 지원금 대상에서 제외시킨 반면 관변단체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며 "이는 시민단체의 기본적 기능인 정부 비판 능력을 축소시키고 시민단체를 길들여 관변 단체로 만들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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