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만화의 뿌리와 미래를 잘 들여다보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만화의 뿌리와 미래를 잘 들여다보라"

<기고> 성완경, 만화진흥정책의 새로운 변신을 위해

제6회 만화의 날 기념행사가 지난 3일 서울 남산 자유센터에서 열렸다. '만화의 날'은 표현의 자유 수호를 위한 범 만화인 결의대회를 계기로 제정된 것으로 1997년부터 범 만화계 단체들이 공동 주관하여 열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는 '황금펜촉상'과 '공로상' 등 시상식 외에 '창작지원 평가와 기금조성 방안 모색'이라는 주제의 만화 정책 토론회가 열렸고 또 범 만화계가 공동추진 중인 창작만화 사이트 '코믹타운'(www.comictown.co.kr)의 오픈 축하와 시연행사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날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한국만화의 부흥과 성장을 위해 '한국만화진흥협의회(가칭)'라는 기구의 발족이 제안됐다는 점이다. 이 기구의 구상은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올바른 만화진흥은 이제까지의 만화진흥을 위한 노력을 가속화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만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기초로 진흥정책의 축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 매우 긴요하다.

'경제적 마인드'와 '정치적 조급성'이 문화의 발전경로 무시할 때 많아
▲ 성완경 교수. ⓒ프레시안

우리나라에선 만화를 얘기할 때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라는 한 묶음으로 묶어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다같이 '만화산업'이라는 틀로 묶어서 문화산업의 한 영역으로 육성하려는, 그 동안의 정부와 지자체에서의 관습화된 시선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굳이 산업이라는 글자를 붙여 만화를 '만화산업'이라고 불러야 직성이 풀리는 게 관료들이고 이것이 그 동안 만화의 진흥이나 지원 정책의 기본틀이었다.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다. 애니메이션 그 자체보다 그것의 산업적 부가가치 측면(캐릭터, 게임 등)을 들먹거리면서 요란하게 징 치고 북 치면서 몰아가는 게 정부의 정책이었다.

한국에서 만화진흥은 관이 주도하고 만화계가 추수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만화진흥을 위한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을 그 자체로 나무랄 일은 아니다.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그 지원이 항상 '문화산업진흥' 차원에서 '경제 편향'적으로, 그리고 단편적 실적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는 데에 있다. 경제적 마인드와 정치적 조급성이 '장기적 축적과 연속성'이라는 문화예술의 발전 경로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화와 예술 분야는 장기적 축적과 연속성이 중요하다. 폭죽 터트리기와 무지개 그리기가 만화 애니메이션계 발전의 기본이 된다면 이는 너무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이제는 이런 풍토가 달라져야 한다.

"문화산업으로 재탄생한 만화"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만화는 청소년에게 안 좋은 '유해식품'이나 백해무익한 소일거리에 불과한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이제는 이런 단계는 벗어난 것 같다. 그 대신 "만화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라는 인식이 새로 생겨난 것 같다. 만화가 문화적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경제적으로 각광받는 인기직종과 문화산업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것은 만화에 새로운 위상과 혼란을 한꺼번에 갖다 주었다.

물론 산업으로서의 만화의 얼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만화는 출판물의 형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출판산업으로서의 만화의 위상과 흐름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매우 긴요하다. 기존 대형 만화출판사가 봉착해 있는 위기에도 불구하고 만화 시장 전체의 시야에서 보면 한국만화의 장래는 밝은 것으로 보인다. 요즘 불황에 빠진 출판시장의 구원투수로 만화가 새로운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르뽀만화, 지식만화, 교양만화가 요즈음 특히 잘 나가고 있다. 아동만화 시장의 확장 추세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성인만화 시장도 전과는 다른 새로운 조짐들을 조금씩 보이고 있다. 한국만화의 해외시장 수출에도 전에 없던 새로운 현상이 보인다. 금년에 프랑스의 카스테르망 출판사가 <한국>이라는 총서로 한국의 우수 만화들을 번역 소개하기 시작한 것이 그 한 가지 예다. 이것은 문화콘텐츠진흥원이 주력했던 일본만화 아류 풍의 한국 인기만화 번역과는 차원을 달리한 것이어서 더욱 의미 깊다.

"일반 출판시장보다 더 '잘나가는' 만화시장"
▲ 지난 3일 한국 만화계에서 공동으로 제작한 온라인 창작만화 사이트 '코믹타운'(www.comictown.co.kr)'. ⓒ 프레시안

통계숫자로 보면 일반 출판시장이 만화시장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2004년 기준으로 일반출판사에서 500종 이상을 출간한 출판사가 8개 사에 불과한데 만화는 1000종 이상 출간한 출판사가 셋(대원CI가 1366종, 학산문화사가 1147종, 서울문화사가 1063종)이나 된다. 인문, 역사, 과학, 소설 등의 출판에 주력하던 모든 출판사들이 만화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은 그래서 당연해 보인다.

이런 조짐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문학동네의 자회사인 '애니북스', '문학과지성', '북21', '김영사', 민음사의 자회사 ';세미콜론', '휴매니스트' 등에서 만화를 출판하고 있고 이밖에도 더 많은 출판사들이 만화출판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90년대 후반 이후 출간된 많은 역사, 문화, 경제 등 인문서들이 만화로 다시 옷을 바꾸어 입고 출간되고 있는 것도 주목할 현상이다. 얼마 전 <진중권의 미학 오딧세이>가 현태준, 이우일, 김태권 등 세 만화가의 '만화적 번안'으로 새롭게 태어났고 이런 지식교양만화의 사례는 계속 늘어날 추세다. 활자매체의 만화로의 전환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 만화의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콘텐츠화도 주목할 만한 새로운 현상이다. 기존 어린이 만화는 오락 만화와 학습 만화의 개념이 모호하게 섞여있는 상황이었다. 최근에는 어린이 만화가 디지털 에듀테인먼트 콘텐츠라는 새로운 양상 속에서 활황을 모색 중이다. 기존 학습지 출판사들이 만화콘텐츠를 흡수하는 속도도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마법천자문> 같은 몇몇 성공 사례는 다양한 미디어 믹스 사례를 추가로 개발할 것으로 보인다. 인기 게임의 만화화 작업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수출 드라마의 만화버전 역시 마찬가지다.

"나날이 새롭게 변하는 '만화 생태계'의 잠재력"

그러나 이 같은 호황과는 달리 이제까지 만화시장의 중심이었던 대형 만화출판사는 구조조정을 요구받고 있다. 이것은 대여권 도입, 시장 축소 등으로 한계에 이른 대형출판사의 물량 중심 출판이 완벽한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대형출판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업모델 대신 신규 사업을 시행해야 한다. 이런 압박을 통해 새로운 만화시장의 흐름이 생겨날 수 있다.

인터넷 환경과 새로운 컨버전스의 현상도 만화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최근 한국의 인터넷 만화는 괄목할 수준으로 발전했다. 인터넷은 만화가에게 더 이상 단순한 부가가치적 매체가 아니다. 오히려 적극 활용해야 하는 중심 매체로 떠오르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예전에 비해 무척 복잡해지고 나날이 새롭게 변하고 있는 것이 만화의 생태계다.

이것을 제대로 거머쥐는 데에는 정말 새로운 시야와 철학이 필요하다. 요약해서 얘기하자면 그 하나는 만화의 뿌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멀티미디어 컨버전스(융합)를 제대로 보는 일이다. 그리고 아마 그 중간쯤에 출판시장의 현황과 그 활로 개척에서 만화가 주는 잠재력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걸리게 될 것이다.

"예술과 언어로서의 만화, 진흥정책에 반영될 수 있길"

만화는 무엇인가. 만화 고유의 힘은 무엇인가. 또 그것을 어떻게 살려나가는 것이 만화의 진정한 발전의 길이 될 것인가. 이제 그 질문에 새롭게 답해야 될 때가 왔다. 만화는 힘 있는 예술이자 원형의 예술이다. 만화와 미술과 디자인의 컨버전스는 이미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만화와 예술과 디지털 기술, 멀티미디어 서사를 하나의 시야로 꿰뚫는 통찰이 절실하다. 이 점에서 만화는 예술이론의 차원에서도 그리고 국가정책의 차원에서 완전히 새롭게 눈을 씻고 다시 봐야 될 이 시대 최고의 '기초예술'이자 '원형예술'이다.

물론 만화에는 한 장르로서의 속성이 여전히 있다. 팬덤문화의 뿌리나 쌍방소통 등 고유한 장르적 속성이 여전하다. 이것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만화라는 이미지 서사가 문화의 원형으로서 지니고 있는 깊은 본질적 속성이 무엇인지 잘 보아야 한다. 그 본질적 속성이 요즘과 같은 탈활자의 시대, 이미지시대, 멀티미디어 컨버전스의 시대에 더욱 크고 전면적인 스케일로 확대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만화의 뿌리를 잘 보는 것과 그 미래를 잘 보는 것은 꼭 같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만화는 원형의 예술이자 새롭고 잠재력이 큰 미래의 언어 형식이다. 만화는 디지털시대 융합언어의 뿌리로 더욱 놀랍고도 새로운 발전의 궤적을 그려나가게 될 것이다. 새로운 만화진흥정책은 이러한 만화의 본질적 속성과 우리시대의 새로운 기술문화 환경의 본질을 잘 이해하는 가운데 일대 전환을 이뤄내야 할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