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의 진로를 결정할 비상대책위 구성이 여전히 난항이다. 민노당은 7일 대전 가톨릭문화회관에서 전국 시도당위원장단 연석회의를 열어 비대위 구성 등 당 진로를 논의했으나 또다시 정파 간 이견으로 비대위의 권한 문제에 대한 합의를 보지 못했다.
민주노총과 자주파 진영의 일부가 여전히 비대위에 '비례대표 전략공천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완강한 입장을 물리지 않았다고 한다. 체제 정비와 당 진로의 분수령으로 꼽히는 12일 중앙위원회까지는 시간이 없다. 합의된 안이 중앙위에 제출돼 추인되지 못할 경우, 민노당은 급속하게 분당 국면으로 휘말릴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이런 가운데 자주파로 분류되는 김성진 전 최고위원이 '비례대표 전략공천권' 수용을 각 정파에 호소하는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 방안을 제안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종북주의 척결'을 주장하는 강경 평등파와 '전략공천권 부여'에 반대하는 강경자주파를 향한 호소다.
그는 "확대간부회의의 합의안은 보기에 따라 여러모로 부족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최선의 안이며, 이로부터 출로를 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편집자>
비상(非常)한 시기, 비상(飛上)해야 한다.
대선에서의 참패로 민주노동당이 내홍에 빠졌다. 내홍뿐이 아니다.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이라는 사람들이 가세하여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위기에 빠졌다고들 한다. 그리고 희망도 없고 탈출구도 없다고도 한다. 그리고 분당은 필연이라고 점잖은 선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덕분에 민주노동당은 중앙언론에 인기 있는 기사거리가 되고 있다. 지난 대선에 권영길 후보에 보여준 언론의 관심에 비하면 가히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 어쩌면 국내 유일의 진보정당의 분당이라는 선정적 기사거리를 고대하고 있는 듯까지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부채질은 아마도 부질없이 끝을 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난도질로 끝을 맺기에는 민주노동당이 너무도 귀중하기 때문이다. 한국 진보정당운동의 최전선을 지키는 진정한 주인공인 말없는 당원들이며 말없는 지지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들이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주인들이다. 위기라 말하는 비상시기를 날아오르는 비상으로 반전 시킬 주인공들이다.
나는 민주노동당의 전직 최고위원이다. 그것도 금번 대선의 패배를 만들어낸 최고위원이다. 이 글은 나의 반성문이기도 하며 당의 비상을 위한 최소한의 제안이기도 하다.
위기 속에도 반복되는 분열상
이번 대선의 결과는 민주노동당의 존재 이유마저 의심케 하는 참담한 패배이다. 진실로 거듭 태어나지 않으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하는 국민들이 냉엄한 심판인 것이다. 부분적인 실수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전면적으로 이루어진 냉엄한 심판인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부분적 혁신이 아니다. 근본까지 내려가 스스로의 치부를 도려내는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다시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으로 우뚝 서길 바라는 국민들의 바람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엄중한 위기의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당내 논란은 지난 수년간의 과정상의 오류를 동일하게 반복하고 있다. 한 쪽이 포기하지 않으면 서로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는 치킨 게임의 양상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모두 절절한 아픔을 가지고 밤새 토론을 했지만 중앙위원회(12월 29일)는 비상대책위 구성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도 애정을 가지고 민주노동당을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또 다시 절망감을 안겨주고 만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민주노동당이 갈 길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 하나 밖에 남아있지 않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51%의 오만과 49%의 핑계
당내의 역대 선거 결과는 정확히 51%의 다수파와 49%의 소수파라는 양상을 띠어왔다. 51% 안에도, 49% 안에도 다양한 그룹이 존재하지만 선거 결과는 매번 그래왔다. 51%의 독식구조는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었으며 49%의 중요한 문제의식 중의 하나였다. 인정해야 한다. 51%가 오만했음을, 그리고 인정하기 힘들겠지만 무능하기까지 했음을. 또한 인정해야 한다. 49%의 핑계가 있었음을. 갈등 구조 속에서 대안적이고 생산적이기보다는 51%를 자신의 핑계로 삼았음을.
민주노동당이 다른 보수정당과 다른 것은 보스중심의 계파질서가 아니라 다양한 정치이념을 가진 그룹이 당의 강령을 공통분모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진보의 덕목 중에 으뜸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데 있다. 다른 가운데 같은 것을 서로 치열하게 찾아내고 합의하며 여기에 복무하는 것이 바로 진보정당의 운영 원리이다.
당의 공식적 결정이 자신이 속한 의견그룹의 결정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 다수파이기 때문에 결정된 당의 방침을 번복하려 한다면 이는 다수파의 오만이 될 뿐이다. 또한 자신의 견해와 다르기 때문에 당의 뒤에서 팔짱을 끼고 구경꾼인 양 하는 것 또한 진보와는 거리가 멀다. 이렇게 우리 당은 망가져 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식상해져 버린 혁신 혹은 쇄신이라는 말
돌이켜 보면 민주노동당은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고, 그때마다 혁신과 쇄신이라는 말이 화두가 되었다. 그러나 그 많은 위기 속에서 한 번도 제대로 혁신해 본 적이 없고, 그 결과는 대선 참패로 이어졌다. 어쩌면 민주노동당은 혁신이라는 말에 무디어져 있거나 식상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전혀 달라졌다. 그야말로 당의 존망의 위기가 앞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견뎌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혁신 혹은 쇄신이라는 이름으로 동지를 난도질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민주노동당의 문제는 51% 오만만의 문제도 아니며 49% 핑계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오만과 핑계가 합심하여 만들어낸 오류인 것이다. 혁신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손톱만큼이라도 버리지 않고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전략공천에 대한 진실 또는 오해
지난 중앙위원회는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에 대한 아무런 안을 준비하지 못한 채 개최되었다. 정회 도중에 최고위원들과 시도당 위원장이 모인 확대간부회의가 열렸고 안을 마련하기 위한 회의가 지속되었다. 안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비대위 구성에 조건처럼 따라붙은 비례의원 추천권에 대한 문제가 쟁점이 되었다. 수백명의 중앙위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 속에서 장시간 토론 끝에 합의안이 마련되었다. 전략공천을 확대하고 추천 기준과 범위, 선출 방식 등의 안을 비대위에 일임한다는 것이었다. 의견그룹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책임 있는 시도당위원장으로서 내린 용단으로 낳은 옥동자이다.
그러나 이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해석과 오해가 있는 듯하여 확대간부회의안건의 제안자인 필자마저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전략공천은 장애인 할당, 비정규직 할당으로 이미 중앙위에서 결정한 바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취지는 민주노동당이 장애인과 비정규 노동자의 정당으로 대내외에 천명하고, 이들을 통해 민주노동당의 강령을 실현하자는 것이었다. 전략공천의 확대는 바로 이러한 취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이를 통해 당의 외연을 확장하고 혁신의 계기로 삼자는 것이었다. 혹자들이 오해하듯 특정한 세력이나 사람을 배제하거나 또 다른 독식구조를 보장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개인적인 소회이지만 장애인이나 비정규직 비례 할당마저 정파논리가 작동되고 있음을 감지했을 때의 그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정파적 이해를 뛰어 넘는 전략공천을 통한 당 혁신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전략공천 확대를 제안한 사람의 근본 취지였던 것이다. 확대간부회의의 합의안은 보기에 따라 여러모로 부족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최선의 안이며, 이로부터 출로를 열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간곡히 호소를 드린다.
분당 혹은 신당에 대해서
필자 역시 신당론자이다. 작년 2차 중앙위원회는 신자유주의 반대 등 네 가지 조건에 동의하는 모든 진보진영과 함께 낮게는 정책연합에서 통합진보신당에 이르는 진보대연합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 진보대연합의 최고의 수준은 통합진보신당이었으며 비록 무위로 돌아가긴 했지만 대선이후 총선과정에서 통합진보신당 창당을 위해 노력한다는 잠정합의문까지 도출해낸 바가 있었다. 진보대연합, 혹은 통합진보신당은 전체 진보진영을 아우르지 못하는 당의 현실에서 출발하였고, 이를 계기로 한 당의 혁신을 또 다른 축으로 염두에 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되지 못해 많이 아쉽기는 하지만 중앙위 차원에서 통합진보신당을 결정해 낼 수 있었던 당내의 합의 그 자체가 성과였다. 또한 그 정신은 현재 위기에 처해 있는 당에게 여전히 유효하며 절실하게 되살려 내어야 할 불씨이다. 통합진보신당은 크게 하나가 되자는 것이었다.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전체 진보진영을 아우르고 생기발랄한 진보정당으로 거듭 태어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민주노동당은 더 큰 하나가 되기보다 더 작은 둘로 쪼개질 상황에 놓여있다. 공멸이다.
타는 가슴으로 호소 드린다. 마지막 기회는 있는 법이라고. 국민들의 심판에 대하여 일신한 모습으로 나서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단결해도 아직 턱없이 힘이 부족하다. 힘들지만 서로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도록 하자. 서로의 상처를 덧내는 더 큰 아픔으로 고통스러울지라도 마지막 노력으로 함께 해보자고, 단결의 손을 내밀어 보자.
다시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으로
100일도 남지 않은 총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던 지역의 많은 동지들의 결심이 흔들리고 있다. 당선되지는 못하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지역에서 승리를 향한 희망을 쌓아나가려고 했던 참으로 귀중한 우리 동지들의 발걸음이 덫에 걸린 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이번 중앙위(12일 예정)에서 반드시 비대위를 출범시켜야 한다. 단언컨대 지난 확대간부회의의 합의안은 민주노동당을 비상시키기 위한 최초의 조치요 최소한의 조치이다.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이지만 민주노동당을 그 주인인 역사와 민중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의 등불을 다시금 밝혀내야 한다. 그러기에 민주노동당은 기필코 다시금 비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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