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질문을 던지면 상황이 한결 간명해질 것이다. 통합민주당은 왜 총리 인준 표결에 불참하려 하지 않는가?
통합민주당이 한승수 총리 인준을 거부할 요량이라면 이것처럼 확실한 방법은 없다. 그런데도 인준 표결 불참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결론은 나온 것이나 진배없다. 인준안은 가결될 공산이 크다.
총리 인준은 정국 변수 아니다
통합민주당의 의석은 141석이다. 여기에 한승수 총리 후보자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내놓은 민노당의 의석 9석을 더해도 겨우 150석이다. 과반수를 가까스로 넘기는 의석이다.
이 의석을 믿고 인준안 부결을 '강제 당론'으로 정해 밀어붙이는 건 무리다. 그랬다가 한두 명의 의원이 '반란표'를 던지면 통합민주당은 참화를 면치 못한다.
'권고 당론'이나 '자유 투표'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둘 중 어느 것이든 강제성이 없다. 거꾸로 말하면 '반란표'의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얘기이고, 인준안 가결을 감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총리 인준 문제는 더 이상 정국 향배를 좌우하는 관건이 아니다.
통합민주당이 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자와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 청문회를 보이콧하기로 한 점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총리 인준을 묵인 또는 방조하면 바람막이를 확보하게 된다. 극단적 발목잡기라는 역풍을 막아내는 바람막이다.
바람을 차단하면 불을 지피는 데 한결 수월하다. 불을 지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래오래 불놀이를 할 수 있다.
장관은 인준할 수 없다. 인사청문회를 연 다음에 의견을 표명할 수 있을 뿐이다. 장관 후보자의 꼬리표를 뗄지 말지는 전적으로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몫이다. 통합민주당이 두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보이콧하기로 한 건 바로 이 점을 겨냥한 것이다. 화력을 집중하고 지구전을 펴기 위함이다.
남주홍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실시할 통일외교통상위는 통합민주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인사청문회를 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한나라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환경노동위만 나서 박은경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열기도 쉽지 않다. 그 순간 한나라당은 '독주 여당'이 된다. 인사절차도 꼬인다. 박은경 후보자의 꼬리표는 떼주고 남주홍 후보자의 꼬리표는 계속 놔두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
인사청문회 개최를 두고 두 당이 대치전선을 형성하면, 그리고 이 대치전선이 장기화되면 통합민주당에게 득이 된다. 총선에 유리한 소재를 계속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더라도 통합민주당은 밑질 게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선과 독주를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총선용으로 안성맞춤이다. 정반대의 경우, 즉 이명박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두 후보자를 낙마시켜도 문제될 게 없다. 그러면 통합민주당은 사실상 '승리'를 선언하고 정국의 고삐를 쥐게 된다.
민주당은 꽃놀이패 쥐고, 대통령은 폭탄 떠안고
통합민주당은 꽃놀이패를 쥐고 있다. 총리 인준을 버리고 장관 인사청문회 보이콧을 취함으로써 상대가 어떤 패를 꺼내도 느긋할 수 있는 판을 조성한 것이다.
거꾸로 이명박 대통령은 난감하게 됐다. 폭탄을 넘겨받은 상황이다. 어떤 묘수를 짜내도 유탄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어차피 최선책은 없다. 차선책을 택할 수밖에 없다. 국회 대치상황을 지켜보다가 적당한 시점에 발을 빼는 게 그나마 나은 수다. 허송세월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대승적 차원에서 장관 후보자 교체를 단행한다고 포장하는 게 지금 상황에서 강구할 수 있는 차선책이다.
시점은 조율할 필요가 있다. 먼저 나설 필요는 없다. 가급적 늦게, 즉 통합민주당이 두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무산시킨 후에 택일하는 게 좋다. 그래야 통합민주당의 발목잡기에 애간장을 녹이다가 어쩔 수 없이 후퇴하는 모양새를 보일 수 있다. 그래야 후퇴 결정에 '고뇌'의 흔적을 새길 수 있다.
청와대에서 인사 청문회를 본 다음에 두 후보자의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말이 흘러나오는 점을 유념해서 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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