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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반세기, 지체는 있어도 퇴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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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반세기, 지체는 있어도 퇴보는 없다

[4.19 혁명 50주년에 부쳐] <상> 김주열의 시신이 일깨워 준 것

4.19 혁명이 오늘로 50주년을 맞았다. 당시 대학교 3학년생으로 4.19 혁명 유공자의 한 사람인 양성철 전 주미 한국 대사가 지난 50년을 회고하면서 오늘의 한국사회에 4.19가 던지는 의미를 짚어보는 글을 보내왔다. 세 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필자는 정치학자 출신으로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주미 대사를 지냈다. <편집자>

4.19 혁명 50주년을 맞는 올해는 나라 안팎이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뒤숭숭하고 피범벅이다. 국제정치·경제의 큰 틀의 변화 조짐도 보인다.

2008년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세계적 차원의 금융·경제 위기가 아직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선 지난 3월 26일 서해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이 발생했다. 선체와 시신(屍身)은 인양됐지만, 진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3월 29일엔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지하철 루비얀카 역에서 폭탄테러가 발생, 38명이 숨지고 60여명이 부상했다. 그 사건의 전말(顚末)도 불투명하다.

4월 8일 옛 소련 연방공화국의 하나인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에서는 반정부 시위로 80여명이 사망하고, 친미정권의 쿠르만벡 바키예프 대통령이 권좌에서 쫓겨나 고향 집으로 피신하고, 친 러시아 세력이 과도정부를 이끄는 혼란 속에 빠져있다.

태국에서는 탁신 전 총리 지지 세력들의 이른바 '붉은 셔츠' 대규모 반정부 시위대가 진압군과 충돌, 유혈사태로 번지며 거의 한달 째 군부의 지지를 받고 있는 현 아피싯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정국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키르기스스탄과 태국의 민·군 유혈 충돌 사태를 지켜보면서, 그 배경이나 원인은 크게 다르지만 50년 전 4.19 그날이 내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것은 웬일일까?

폴란드에서는 카친스키 대통령 내외, 정부 고위 각료, 의회 의원, 군 수뇌 등을 포함해 96명이 탑승한 비행기가 러시아 서부 도시 스몰렌스크 부근에서 추락, 모두가 사망하는 끔찍한 참사가 발생했다.

1940년 4월 스몰렌스크 인근 카틴 마을 숲 등에서 소련 독재자 스탈린의 명령으로 소련 포로수용소에 갇혀있던 폴란드 정예 장교, 지식인 등 2만 여명을 무자비하게 집단 학살한 현장에 추모하러 가던 비행기가 추락한 참변이다. 이는 인간사의 비극이요, 역사의 아이러니요, 국제정치의 냉혈한 진면목(眞面目)이기도 하다.

한편 워싱턴에서는 4월 12~13일 1945년 2차 대전이 끝난 뒤 최대 규모인 47개국 핵안보 정상회의가 열렸다. 북한과 이란은 불참했다. 제2차 핵안보 정상회의는 2012년 상반기에 우리나라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는 우쭐대고 거드름 피울 일은 아니다. 북한 핵문제도 고스란히 남아있고, 남북한 관계도 지난 냉전시대를 닮아가는 것 같이 어려운 상황이다. 또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OPCON) 이양시기와도 맞물려 있어 안팎의 정치적·군사적·전략적 함의를 지금부터 철저히 보살피고, 우리 나름대로 대처 전략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세계의 주목을 받고 지난 4월 6일 발표한 미 핵태세검토(NPR) 보고서에서 미국이 핵확산 금지조약(NPT) 회원국에 "핵무기 선제적 불사용 약속"("the no-first-use pledge")을 천명하고, 처음으로 이 보고서를 안팎 모두에게 공개한 것도 눈길을 끈다.

하지만 북한과 이란은 미 핵무기 불사용의 예외로 지정한 대목이나, 이 두 나라에 NPT 복귀와 회원국 조약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안팎의 격동, 격변, 격랑 속에서 50년 전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4.19 혁명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 뜻은 무엇이며, 그 역사적 사건이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에게, 대한민국에, 그리고 아직도 분단 상황에 있는 한반도에, 나아가서는 우리 이웃 나라와 전 세계에 던지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한번 나름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 4.19 혁명 당시 시위대의 모습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제공

개인 : 생명, 자유, 밥

4.19 50주년을 맞는 감회는 색다르다. 마치 한 알의 씨앗이 흙을 뚫고 새싹으로 돋아나듯, 필자를 포함해 그 때 젊은 대학생들의 생각들이 나무처럼 크게 자라서 이제 50년이 됐다.

4.19 때는 대학생, 고등학생들이 배움터를 뛰쳐나와 당시 이승만 장기 독재정권 타도를 외쳤고, 시민들도 하던 일을 잠시 접고 거리로 나와 합세했다. 그 며칠 뒤엔 교수들까지 이승만 정권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구체적으로는 3.15 정·부통령 선거의 투·개표 과정에서 드러난 조직적인 조작에 대한 분노가 끓어올라 12년 장기집권으로 인한 온갖 부정, 부패, 비리가 그 비등점을 넘어 폭발한 것이다.

그 직접적인 도화선은 마산 시민들의 3.15 부정 선거 항의 데모와 김주열 사건(올해부터 국가기념일로 지정)이었다. 3월 15일 마산 시민 데모에 참가했다가 자취를 감춘 김주열 군(당시 마산상고 입학, 17세)은 18일 후인 4월 11일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다.

한 생명을 그렇게도 잔인하게 죽인 당시 진압 경찰에 대한 분노가 전 국민의 마음속에서 생명의 존귀함으로 승화해 새 싹이 트기 시작한 셈이다.

그때는 6.25 한국전쟁, 그 '피의 전쟁'이 휴전한 지 7년도 안된 상황. 형제끼리, 친구끼리, 이웃끼리, 마을 사람끼리, 민족끼리 죽고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참전 외국인들마저 죽고 죽이는 시체더미를 마주하며 살아있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에 더 익숙해진 당시 대한민국 국민 마음 속에 다시 생명의 존귀함, 인간 존엄성에 대한 새싹이 트기 시작한 순간이요,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또한 4.19는 한마디로 자유에 대한 절규였다. 한국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삶을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우리는 너무나 너무나 가난했다. 하루 세 끼 밥은커녕 한 끼도 제대로 먹기 힘든 찰가난. 보리 고개. 민둥산. 그땐 폐허가 시(詩)가 아니고 우리 삶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학교를 다녔다. 식목일엔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읽었다. 대학생이 된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알았다. 그리고 당시 한국 정치 현실, 현장에서 우리가 교과서에 읽고 배운 자유와 민주주의와는 동떨어진 이승만 정권의 권위주의 장기독재, 전횡, 부정, 부패에도 어렴풋이나마 눈이 뜨기 시작했다.

"빵만이 인생이 아니다"는 성경 구절을 읽고, "빵마저도 없는 인생" 임을 한탄하면서도, 우리 젊은이는 4.19 그날 자유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빵마저도 없지만 차라리 자유"라도 찾겠다는 함성으로 울부짖었다. 그 함성은 전국으로 메아리 쳤다.

50년이 지난 지금 미국, 유럽 등 서방 선진국에 비하면 인간 존중, 존엄성에 대한 우리의 의식과 인식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이제 우리도 생명의 존귀함, 인간 존엄성에 대한 논쟁을 벌일 정도로 성숙했다. 존엄사(尊嚴死), 안락사(安樂死) 문제, 사형제 존폐론(存廢論)이 정치 쟁점과 사회 담론이 되고 있다.

미국 프리덤하우스의 <2010년 세계 자유 보고서>1)에 의하면, 세계 194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자유로운 나라 숫자가 1979년에는 51개에서 2009년엔 89개국으로 늘어났고, 자유가 없는 나라는 56개에서 47개국으로 줄었다. 대한민국은 다행히 전체 대상국 가운데 자유를 누리는 89개국, 아시아 태평양 39개국 가운데 자유를 누리는 16나라에 낀다.

구체적 보기를 하나 더 들면, '국경 없는 기자회'가 조사한 "언론자유 지표"(Press Freedom Index)2)에 의하면, 조사 대상 174개국 가운데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는 2009년에는 69위로 크게 뒷걸음질 쳤다. 2008년에는 48위, 2007년 40위, 2006년 30위, 2005년 32위, 2004년 46위, 2003년 45위, 2002년 38위였다.

우리 삶은 어떤가? 보리 고개. 한 끼 밥 먹기도 힘들었던,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나라였던 그 시절에 비하면 세계가 놀랄 만큼 큰 성장과 발전을 피와 땀으로 우리 국민은 일구어 냈다.

세계은행(World Bank),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 경제·통화기구들이 우리나라를 "선진, 고소득, 발전된 시장경제"("an advanced, high-income, developed market economy")로 분류할 정도로 우리 경제가 성장했다.

1인당 국민 소득 80달러의 찰가난한 나라가 이제 2만 달러가 되고, 경제 규모도 세계 10위권으로 커졌다. 유엔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3)에서도 한국은 선진 38개국 가운데 2009년엔 26위, 2008년엔 25위, 2007년엔 26위로 선진 경제, 선진 사회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올 11월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를 개최할 만큼 국력도 도약했다.

▲ 필자 양성철 前 주미 대사
3.15 마산의거, 4.18, 그리고 4.19 혁명이 뿌린 인간생명의 존엄성, 개인의 자유와 인권의 존중, 그리고 하루하루 입에 풀칠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조건(크게는 모든 생명체)의 충족이라는 그 작은 씨앗들이 이제 50년이 된 늠름한 나무로 자랐다. 자라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개인의 자유와 인권, 인간 존엄성, 언론 자유보다 국가안보, 정치안정, 사회 안전 쪽에 무게가 더 실리고 자유민주주의가 뒷걸음 치고 있어 안타깝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도도히 흐르는 바닷물처럼, 인류 역사의 자유와 인권, 인간 존엄성의 큰 물결을 거슬러 가기엔 현 정권의 시한이 너무 짧지 않는가? 길게 보면, 역사에 일시적 역류(逆流)는 있어도, 퇴보는 없다.

<註>

1) Freedom in the World 2010: Global Data
2) Press Freedom Index, http://en.wikipedia.org/wiki/press_Freedom_Index
3) Human Development Index

http://en.wikipedia.org/wiki/Human_Development_Index 201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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