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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로 124조 안기면서 입으로만 '대기업 옥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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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고환율'로 124조 안기면서 입으로만 '대기업 옥죄기'?

[기고]외평기금 거품 빼야 중소기업·서민경제 산다

외평기금이 뭐예요?

'외국환 평형기금'이라는 게 있다. 줄여서 '외평기금'이라고 한다. 용어조차 낯선 독자들이 있을 터이니 용어설명부터 하고 시작하자. 외평기금은 정부가 관리하는 63개 기금 가운데 하나이다. 기금의 자산 규모는 92조 원이고 부채 규모는 이보다 14조 원이 더 많은 106조 원에 이른다(2009년 말). 지난해 말의 국가 채무 360조 원 가운데 30%는 외평기금 몫이다. 외평기금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는 얘기다. 부채에 비해 자산이 크게 모자라는 이유는 그 동안 외평기금에서 그만큼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만 해도 외평기금에서 4조 70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외국환거래법에 명시된 바의 기금 설립 목적은 외환시장의 안정을 꾀하는 데 있다. 정부가 제시한 2009년의 기금 정책목표는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에 대응하여 외환시장의 환율 급등락을 조정, 외환시장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기금을 통해 환율이 급하게 떨어질 때는 외환을 사들이고 거꾸로 급하게 오를 때는 외환을 팔았다가 환율이 제자리를 잡으면 반대매매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기금을 통해 환율의 흐름을 매끄럽게 하는 '스무딩 오퍼레이션(smoothing operation)'을 한다는 것인데, 정말로 그렇게만 한다면 기금이 클 필요가 별로 없고 손실이 날 이유도 없다.

외평기금의 규모가 계속 커가고 있고 손실도 누적되고 있다는 사실은 외평기금이 환율의 흐름을 매끄럽게 하는 역할을 넘어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참여정부 이후 외평기금은 주로 환율을 정상적인 수준보다 높게 유지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말할 필요조차 없이 정부가 환율 수준을 끌어올리려고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게 수출업자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외평기금을 통한 환율정책으로 2년간 수출 대기업에 124조 원 보조

참여정부와 현 정부는 모두 환율 수준을 높이려 했다. 차이가 있다면 참여정부는 떨어지는 환율을 멈춰 세우려 안간힘을 썼고 현 정부는 낮은 환율을 끌어올리려 재빠르게 움직였다는 점뿐이다. 현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환율을 끌어올리는데 힘을 모았다. 이를 위해 외환시장을 향해 '구두개입'을 했고 공기업을 동원했다. 외평기금도 2008년에 6조 원, 2009년에 10조 원을 늘렸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외평기금에서 보유하고 있던 달러를 일부 내보내서 치솟던 환율을 안정시키고자 한 적도 있지만 어쨌든 환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정부 목표였고 또 그걸 충분히 달성했다.

2007년의 원달러 평균환율은 929원이었다. 이게 2008년에는 1103원으로 뛰었고 2009년에는 다시 1276원으로 올라갔다. 환율이 오른 데에는 국제 금융시장의 동요와 그에 따른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의 대외 투자손실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외평기금을 통한 정부개입이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달러에 대해 일본 엔화는 강세를, 유로화는 약세를, 다른 대부분의 통화는 약보합세를 보이는데 그쳤다. 원달러 환율만 크게 오를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지난 2년간 큰 경상수지 흑자를 냈던 터다. 그런데도 원달러 환율이 크게 오른 까닭을 정부개입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지난 2년 사이 환율 상승은 수출업자들에게 횡재를 안겨주었다. 좀 지루하지만 이에 대해 수치 계산을 해가면서 살펴보도록 하자. 2009년의 우리나라 수출 총액은 3635억 달러였다. 수출을 하기 위해서는 수출용 원자재 등을 수입을 해야 하는데, 그게 1305억 달러였다. 순수한 수출은 2330억 달러였다는 얘기다. 수출업자들은 2007년에 비해 2009년에 환율이 347원 오르면서 얼추 81조 원의 이득을 얻었다. 이런 식으로 계산했을 때 2008년에 수출업자들이 환율로 얻은 이득은 43조 원이다. 단순계산해서 수출기업들은 지난 2년 동안 124조 원의 환율 이득을 얻은 셈이다.

환율 효과는 대부분 수출 재벌기업에 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기업의 수출의존도는 57.3%로 중소기업 15.6%보다 훨씬 높다. 대기업에 환율효과가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지난 3월 KDI가 상장사들의 2007년, 2008년 실적분석을 한 바에 따르면 환율 상승 혜택은 삼성전자, 현대 기아차 등 16개 수출 대기업에 집중된 것으로 드러났다. 내수업종 중심의 기업들은 환율 상승 때문에 오히려 손실을 봤다. 수출 대기업을 거느린 재벌에 환율효과가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삼성전자만을 보자. 삼성전자의 수출액은 2008년에 59조 원, 2009년에 75조 원이었다. 평균 환율을 적용하여 달러로 환산해보면 2008년 540억 달러, 2009년은 585억 달러 쯤 이다. 전체 수출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8년에는 12.5%, 2009년에는 무려 16%나 된다. 삼성전자가 수출을 위해 수입한 원자재와 부품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보가 없어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 평균수준(수출액 대비 수출용 수입 비율: 2008년 42%, 2009년 36%)을 적용하여 계산하면 순 수출이 2008년은 313억 달러, 2009년은 374억 달러 정도이다.
▲ 대표적인 '환율 주권론자'인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 ⓒ뉴시스

2007년에 비해 환율이 크게 상승함으로써 삼성전자는 2008년에 대략 5.4조 원, 2009년에 13조 원의 환율효과를 누렸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계산한 수치이기는 하지만 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2009년의 삼성전자 당기순이익은 9.6조 원이었는데, 만약 환율효과를 뺀다면 큰 규모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할 수도 있었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언젠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반기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고 하는데 환율 효과와 재정지출 효과를 빼면 창사 이래 최대 적자"라고 말한 바 있는데, 거기에는 정확한 근거가 있었던 셈이다.

환율 정책 비용은 내수 중소기업, 자영업자, 서민의 짐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대기업은 큰 이익을 얻는다. 그러나 이 이익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그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 환율의 변동이 분배효과를 갖는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얘기이다. 수출 대기업의 환율 이득은 내수 중소기업, 국내의 소비자, 자영업자 등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2008년과 2009년의 내수용 수입액은 각각 2516억 달러와 1926억 달러였다. 2007년보다 환율이 상승함으로써 수입업자와 국내소비자들은 2008년에 44조 원, 2009년에 67조 원을 더 지급해야 했다. 이게 물가가 오르고(떨어지지 않고) 실질 소득이 감소하고 내수가 위축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최근 자영업자들이 계속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별 관련이 없을 것 같은 환율 정책이 자영업자들의 발목을 잡는 최대 복병이라고 할 수 있다.

외평기금은 환율 말고 다른 길을 통해서도 서민들에게 짐을 떠안긴다. 외평기금으로 시중의 외환을 사들이면 시중에 돈이 늘어난다. 이를 막기 위해 중앙은행은 전문 용어로 '불태화 개입'을 한다. 한국은행이 통화안정채권이라는 것을 발행해서 시중에 풀린 돈을 흡수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더라도 풀린 돈을 완전히 흡수하지는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지난해 말 통화안정채권의 발행 잔액은 150조 원에 이르는데 최소한 그 이자만큼은 돈이 풀려 나가기 때문이다.

외평기금 규모가 커가고 외환보유고가 늘어나면 시중에 풀린 돈이 많아진다. 이에 따라 자산 가격, 특히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다. 최근 중국의 부동산 가격 상승, 2003년과 2006년의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 상승은 외환보유고의 증가로 설명할 수 있다. 외평기금이 집 없는 서민에게 달가운 존재일 리 없는 까닭이다. 물론 외평기금과 부동산 가격 사이의 관련성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다.

외평기금에서 발생한 14조 원의 누적 손실도 결국은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서민의 짐이다. 보통 환율이 하락하고 있는 시점에서 환율이 하락할 것을 알고도 외환시장에 개입할 때 기금 손실이 발생한다. 따라서 외평기금 손실은 외환시장의 흐름에 정통한 투기세력 호주머니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환율 상승에 따른 수출 증대가 오히려 내수 압박

정부가 환율개입을 통한 수출 기업 지원에 목을 매면서 내세우는 논리는 수출 증가로 수출 대기업의 이윤이 늘어나면 투자와 고용도 함께 늘어나며, 나아가 임금상승, 소득과 소비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출대기업의 이윤은 결국 중소기업, 자영업자, 소비자의 호주머니로 흘러들어간다는 것이다(이른바 spill over effect). 그러나 사태는 그렇게 전개되고 있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수출 대기업들은 초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투자 규모는 늘어나지 않고 있다. 2009년 국내 대기업들의 투자규모는 2008년보다 줄어들었다. 우리나라 전체 설비투자 증가율도 2007년 9.3%, 2008년 마이너스 1.0%, 2009년 마이너스 9.1%를 기록했다. 30대 기업 직원 수도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수출에서 좋은 실적을 내고 있지만 수출 대기업들은 투자에 나서지 않고, 현금성 자산을 쌓아두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이 이어지고 있다.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수출과 설비투자의 상관관계가 마이너스로 전환된 것으로 나타난다. 환율상승으로 수출이 증가하면 오히려 설비투자가 감소한다는 것이다. 환율이 올라 수출이 증대하고 이윤이 커지면 이를 바탕으로 투자를 늘릴 수 있지만 자본재의 수입 가격도 높아지기 때문에 투자가 줄어들 수도 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는 환율상승의 이윤효과보다 비용효과가 커지면서 환율상승이 투자를 위축시키는 쪽으로 확실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일본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관찰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수출과 내수의 선순환 구조가 과거보다 더 약해졌기 때문이다. 수출 기업들은 환율효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지만 그 돈이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에게 흘러가지 않고 있다. 환율 때문에 수입가격은 상승하지만 이게 납품단가에 전혀 반영되지도 않는다. 하청업체 이익 공유 시스템은 온데 간데 없다.

외평기금 대폭 축소하는 게 중소기업, 서민경제 살리는 첫걸음

중소기업, 자영업자,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수출 대기업에게 혜택을 안겨주는 지렛대로 이용되고 있는 외평기금의 규모는 대폭 축소되어야 한다. 그러나 외평기금을 축소하면 정부의 환율 개입 능력이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환율을 시장에 그대로 맡기자는 것인가? 자칭 '환율 주권론자'들이 이렇게 반문한다.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환율은 당연히 국가가 적정하게 관리해야 한다.

환율 관리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국 포트폴리오 자본의 흐름을 통제하는 것이다. 핫머니(투기성 단기 자금)가 너무 쉽게 드나들도록 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8년 국제 금융위기에서도 드러났듯이 핫머니에 너무 큰 유출입의 자유를 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국제 투기자본의 '현금지급기'라는 비아냥도 생겨났다. 자본의 유출입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자본거래에 대해 세금을 매겨야 한다. 자본이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필요하다면 자금의 일부를 중앙은행에 예치시킬 수도 있어야 한다. 그게 환율 주권론의 핵심이다. 만약 우리 정부가 진정한 환율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 외평기금의 필요성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외평기금을 줄이는 것은 수출주도 경제를 내수 주도로 바꿔가는 첫걸음일 수 있다. 수출주도형 경제에서는 국제경쟁력의 유지가 지상 명제가 된다. 여기에서는 임금인하,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노동조합의 해체가 추진된다. 하청기업에 대한 거래조건도 나빠지지 않을 수 없다. 경쟁력이 약한 부문, 예를 들어 농업과 어업, 자영업 등 내수형 산업은 포기를 강요당한다. 이리하여 소비 기반은 더욱 좁아지고 경제는 악순환의 길로 접어든다. 경제 지표는 괜찮지만 중소기업, 서민경제는 여전히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수출만이 살길이라거나 수출이 아니면 뭘 먹고 사느냐는 과거의 이데올로기에 더 이상 얽매여서는 안 된다. 수출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는 시스템은 이제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수출 중심의 경제를 고용과 소득 중심의 내수 경제로 과감히 바꾸고 사회보험 등 정부 최종 소비지출(복지)을 늘려야 한다. 그게 중소기업과 서민을 살리는 길이다. 그런데 외평기금은 수출주도 경제의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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