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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명 넘게 죽인 그곳…박정희·전두환은 책임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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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명 넘게 죽인 그곳…박정희·전두환은 책임 없나?

[26년, 형제복지원] <2> 유신에서 5공까지, 묻혀버린 수용소의 진실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열정 속에서도 우리는 형제복지원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2013년 한국 사회에 여전히 시설은 다양하게 존재하고 여러 권력과 폭력의 구조들이 그곳을 재생성하기도, 은폐하기도 한다.

여덟 살이던 1984년 10월 16일 형제복지원에 입소해 1987년 또 다른 시설로 옮겨진,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이 다시 입을 열어 목소리를 냈다. 이제라도 시설은 어떻게 생겨났고 국가와 사회는 어떻게 개인을 부수어 갔는지 물어야 하는 때이다. 살아남은 자와 다른 사회 구성원이 소리를 들으려 하고 여러 질문들을 곱씹을 때, 답이 아닌 '길'이 보일 것이라 믿는다. 그 소리가 우리 사회에, 우리의 가슴에 퍼지도록 인권오름과 탈(脫)시설 운동을 하는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이 함께 형제복지원 '사건'을 둘러싼 역사적·현재적 쟁점을 짚어보고자 기획 연재한다. <편집자>


26년, 형제복지원
전두환은 왜 531명 죽어 나간 그곳을 칭찬했나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인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 지 올해로 33년이다. 광주항쟁 이후에 사람들은 광주 희생자들의 고통에 동조하여 투쟁에 나서, 5월 광주는 마침내 민주화 운동이라는 정치적 인정을 얻었다. 광주와 관련하여 미해결의 과제도 많겠지만 광주를 진원지로 한 과거 청산 운동은 엄청난 파동을 일으키며 한국 사회를 바꾸었다. 울산보도연맹원 집단 살해 사건에 대한 2011년 대법원의 국가 배상 판결이나 긴급 조치 1, 2, 9호를 위헌이라고 선언한 2013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이 운동의 사법적 정점을 찍었다고 할 만하다.

이제 다시 과거 청산 운동을 성찰케 하는 사건을 만나게 되었다. 운동은 말하자면 소리 없는 것들의 소리 듣기요, 당사자 운동조차 가눌 수 없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기다. 이때 형제복지원에서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의 목소리가 퍼져갔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3월에 세간의 주목을 받을 때까지 무려 12년간 정부 당국의 수용 정책과 시설 운영자들의 경제적 타산이 빚어낸 끔찍한 인권 침해 사건이다. 정부는 1975년 12월 15일 내무부 훈령 410호(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 관리에 관한 사무 처리 지침)에 입각하여 부랑자를 시설에 수용할 권한을 창설하고 거액의 예산도 지원하고, 경찰과 시설 운영자들은 부랑인을 거리에서 사냥하고 강제로 수용하고, 시설 운영자는 노예 노동을 강제하고, 그들의 노동을 착취하고, 철저한 감시망 속에서 수용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열악한 생활 조건과 의료 여건으로 수용자를 학대함으로써 다수를 사망케 하였다.

부산형제복지원은 1987년 당시에 3500여 명을 수용하였으며, 12년간 사망자 수는 500여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부의 덮어버리기 시도 앞에서 사인을 규명하지도 못했고, 그 책임도 추궁하지 못했다. 이 총체적인 인권 침해 사건이 복지원의 시설 운영자 한 개인의 비리로 축소되고 말았다. 살아남은 자들은 그때 무일푼으로 복지원에서 해방되었다.

▲ 1987년 2월 3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형제복지원 사진 ⓒ동아일보 지면 캡처

파시스트적 거버넌스

사회적 주변인이라고 상정된 그룹을 사냥하여 수용하고, 노예 노동을 강제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조치는 당연히 국가 범죄에 해당한다. 복지원 시설을 운영하는 개인이 여기에 가담했다고 해서 국가 범죄성이 결코 희석되지 않는다. 국가의 공격적 프로그램과 시설 운영자 측의 감시 관리 체제가 결합하여 파시스트적 거버넌스를 형성한 것이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처럼 형제복지원에서도 강제 수용과 노동 착취는 뗄 수 없는 현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강제 노동 피해자로서 세계 각지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은 1999년 톰 헤이든의 발의로 도입한 캘리포니아주 '강제징용특별배상법'에 따라 독일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에 독일 정부와 독일 기업은 거액을 출연하여 기억책임미래재단을 발족하고 강제 노동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다. 그 여파로 식민지 시대에 강제 징용된 한국인 피해자들도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계속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의 강제 노동은 전쟁 범죄로도 취급되었다. 물론 형제복지원 사건의 강제 수용과 강제 노동은 전시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므로 전쟁 범죄라고 할 수 없지만 인권의 총체적 침해로서 인도에 반한 범죄(crime against humanity)라고 능히 규정할 만하다.

그와 같이 심각한 인권 범죄임에도 형제복지원 사건은 지난 개혁 정권의 과거 청산 국면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소위 사회의 쓰레기들의 일이었기 때문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던 것이다. 한편 1987년 당시에 시설 운영자 박인근 씨에 대한 떠들썩한 형사 재판이 그의 민사 책임뿐만 아니라 수용, 강제 노동, 사망에 관한 국가 책임도 깔끔하게 묻어버린 것이다. 사회적 골칫거리들은 어차피 어딘가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청결 유토피아가 대중의 의식을 지배했기 때문에 박씨를 욕 한번 하고 잊어줄 일이었다.

만일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들이 2005년에 적절한 조력자들과 결합하였더라면 형제복지원은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를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모든 면에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 제2조 4호가 말하는 "위법 또는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 상해, 실종 사건, 그밖에 중대한 인권 침해 사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아래서 해체되고 말았다.

나치의 노동 혐오 왕국 작전

그렇다면 인권 침해 사건으로서 형제복지원 사건은 앞으로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는가? 이제 피해자들의 권리는 어떻게 구제될까? 형제복지원과 유사한 강제 수용소가 대전, 인천, 해남, 수원, 서울, 동두천, 마산 등 전국 각지에 설치되었다는 점을 볼 때 국가적 차원에서 부랑인들을 예비 범죄자로 취급했다는 사정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수용소, 강제 수용소라면 그 본질은 어디나 똑같다. 강제로 수용하고, 탈출은 불가능하고, 강제 노동을 해야 하고, 죽어가도 상관없는….

형제복지원은 나치 시대에 시행된 서브프롤레타리아의 강제 수용 정책과 동일하다. 나치 독일은 1938년 인종법 시행령에 따라 비록 범죄자는 아니지만 반공동체적 행위를 하는 사람을 반사회적 존재라고 규정하였다. 나치 체제에서 부랑자, 걸인, 매춘부, 집시, 알코올 중독자, 전염병 및 성병 보균자 등이 반사회적 존재로 분류되었다. 경찰은 노동 혐오 왕국(Arbeitsscheu Reich) 작전을 통해 1938년 6월 13일부터 18일 사이에 '반사회적'이라고 분류된 사람들을 2만 명 이상 체포하여 강제 수용소에 입소시켰다. 작센하우젠 수용소에만 약 6000명이 구금되었고, 이들은 수용소에서 반사회적 존재로서 검정색 인식표를 패용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후 1956년에 나치보상법을 제정하여 나치 체제의 희생자들에게 금전적 보상을 시행하였다. 이 보상법은 세계관, 종교, 인종 또는 정치적 이유로 나치의 박해를 받은 사람들, 예컨대 저항 활동가나 유대인 등에게 보상을 제공했다. 탈영병, 병역 거부자, 강제 노동자, 동성애자, 집시(신티족과 로마족), 강제 불임자, 안락사 생존자 등은 오랫동안 희생자 축에 끼지 못했다. 독일 정부는 반사회적 집단에 대한 억압은 나치즘과 무관한 것, 즉 어느 나라에서나 있을 수 있는 정상적 사회 정책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이들이 명예를 회복하고 일정한 생활 지원금을 획득하는 데에 오랜 투쟁이 필요하였다.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삼청교육대 피해자나 형제복지원 강제 수용자들이 이러한 부류에 해당할 것이다.

▲ 전두환 전 대통령 ⓒjtbc 화면 캡처


진실에 대한 권리

유엔은 총회에서 '권력 범죄와 권력 남용의 피해자를 위한 정의의 기본 원칙(1985)'과 '국제 인권법의 중대한 위반 행위와 국제 인도법의 심각한 위반 행위의 피해자의 구제와 배상에 대한 권리에 관한 기본 원칙과 가이드라인(2006)'을 채택하였다. 이러한 원칙들은 국가 범죄를 청산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기준이다. 특히 2006년의 가이드라인은 '피해자의 국제 권리장전'이라 불린다.

이 권리장전 제11조는 피해자의 주요한 권리로서 재판받을 권리(the right to justice), 배상받을 권리(the right to reparation), 진실을 알 권리(the right to know)를 제시하고 있다. 형제복지원의 희생자들과 그 친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을 알 권리 또는 진실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truth)이다. 그것은 그들의 권리 투쟁에 단초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국제 인권법에서 진실에 대한 권리는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권리라는 데까지 법리가 발전하고 있다. 유럽인권법원이나 미주인권법원은 강제 실종 사건에서 유럽인권협약이나 미주인권협약상의 '재판받을 권리'와 '잔인하고 비인도적이고 굴욕적인 처우 금지'로부터 진실에 대한 권리를 이끌어낸다. 한국이 가입한 시민적·정치적 권리 규약도 똑같은 권리 조항을 두고 있으므로 그 해법을 유추할 수 있겠다.

2005년 유엔인권위원회가 채택한 '개정판 불처벌 투쟁 원칙'은 "온갖 법적 절차에 상관없이 피해자와 그 가족은 인권 침해가 발생했던 상황, 그리고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실종된 경우에는 그 피해자의 운명에 관한 진실에 대하여 시효로 소멸하지 않는 알 권리(the imprescriptible right to know the truth)를 가진다"고 선언한다(제4원칙: 피해자의 알 권리).

국가 책임과 관련된 범위 안에서 자행된 실종, 사망, 피해에 대하여 진실 규명을 요구할 권리가 인정된다. 진실에 대한 권리는 모든 과거사에 대한 재론의 출발점이다. 진실에 대한 권리를 우리 법 구조 안에서 행사할 수 있다는 결론은 현행 국가재정법 제96조(금전 채권·채무의 소멸시효)의 반대 해석에 의해서도 나온다. 국가재정법은 금전 지급을 목적으로 하는 채권에 관해서 소멸시효를 규정하지만, 역으로 진실에 대한 권리와 같은 비금전적 권리는 처음부터 시효에 걸리지도 않는다. 따라서 불처벌 투쟁 원칙, 헌법상의 재판 청구권, 국가재정법, 정보공개법에 기초하여 진실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한마디로 진실에 대한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않았지만 경시되어서는 안 되는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진실 규명에서 탈시설까지

유신의 절정기인 1975년 이후 전국적으로 설치된 수용소들의 인권 침해 실태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수용소에 관한 공사의 모든 기록과 자료를 수집하고 백서를 통해 공개해야 한다. 총체적인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법률적 수단으로서 진실에 대한 권리를 활용해야 한다. 이때 누구를 상대로 법률 투쟁을 시작할 것인지 고민스러울 수 있다. 국회, 국가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안전행정부, 보건복지부 등 가능한 모든 국가기관 그리고 수용 시설에 대해 진실에 대한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국가 기구들이 진실에 대한 권리를 충족시킬 정도로 수용소의 인권 침해 실태를 조사하고 공개하는 때에는 공개된 정보에 근거하여 피해자들은 울산보도연맹사건 판결에 나타난 신의칙 법리를 활용할 수 있겠다. 울산보도연맹원 집단 학살 사건에서 대법원은 학살과 피해자들에 관한 정보를 은폐하였던 국가가 이제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한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독일의 강제 노동 사건에서 보듯이, 복지원 사건에서 배상 책임은 인권 침해의 법적 토대를 마련한 국가와, 시설을 통해 부정한 재산을 축적한 시설 운영자가 공동으로 져야 할 것이다. 물론 사법적인 소송 수단 말고도, 조사 결과에 기초하여 적절한 보상법을 제정하는 방식도 있다. 한편, 국가 기구들이 진실 규명 의무를 적절하게 이행하지 않는 때에는 법원과 헌법재판소를 활용하고, 그들이 여전히 불처벌 상황을 방치하는 때에는 자유권규약위원회에 해법을 타진해볼 수도 있겠다. 자유권규약위원회가 미주인권위원회나 인권법원이 전개한 실종에 관한 법리를 원용한다면 긍정적인 결론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공개하지 않고 적절한 배상을 제공하지 않는 행위는 그 자체로 자유권 규약상의 "기타 잔혹하고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처우(제7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시설의 인권 침해는 언제나 시설 운영자에게 형사 책임을 지우면서 마무리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가 되고 있다. 그러나 처벌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마하는 방식에 가깝다. 만일 사회적 문젯거리를 어딘가에 가두자는 데에 동의하고, 누군가는 대신 관리해야 한다는 데에도 동의한다면 잔혹한 인권 침해 사태는 언제나 문 앞에서 기다리는 법이다. 그래서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발견하려는 흐름은 의식의 저변에 자리 잡은 차별적이고 배제적인 '청결 유토피아'를 청산하자는 결의이며, 세금을 몇 푼 더 내 그들을 처리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살자는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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