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은 6일 다시 중집을 열고 지도부 진퇴 여부를 논의했지만 역시 결론은 없었다. 여기에는 "민주노총이 피해자를 회유하고 압박하면서 사건 은폐를 시도했다는 주장은 억울하다"는 민주노총의 분위기가 뒤섞여 있다. 민주노총은 "이 사건을 언론에 유출시킨 간부를 밝혀내 징계하겠다"고 했고, "사건 발생 이후 반인권적이고 성폭력 옹호적인 행보를 반복한 사실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발끈'과 '해명'이 다 지난 6일 오후에야 '대국민 사과문'이 나왔다. 그러나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4명의 부위원장이 사퇴함으로써 사실상 지도부 공백 상태에 들어갔다.
민주노총의 첫 공식 입장은 '비난'이 아니라 '반성'이어야 했다
사태를 일파만파로 키운 것은 민주노총 자신이었다. 겉으로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얘기했지만, 민주노총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피해자가 아니라 자기 조직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현 지도부였다.
사건이 언론에 공개된 직후 민주노총의 공식적인 일성이 언론에 대한 비난이었던 점도 이를 보여준다. 고개부터 숙여도 모자랄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오히려 '남 탓'에 급급했다.
그 자리에 가슴 속 깊이 우러나는 반성과 사죄는 없었다. 오히려 부도덕한 개인이 저지른 잘못을 언론이 민주노총에 뒤집어 씌웠다며 명예 실추를 얘기했다.
다시 한 번 따져보자. 이번 사건은 피해자가 수배 중인 위원장을 돕지 않았다면 일어날 가능성 자체가 없던 일이었다.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가해자의 위치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가운데 민주노총은 빼놓을 수 없는 무게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오직 민주노총만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진정 피해자를 생각한다면 민주노총의 첫 공식 입장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반성'이어야 했다.
뒤늦게 나온 '대국민 사과문'…지난 2개월 간 무엇을 했나?
사과는 6일 오후에야 뒤늦게 나왔다. 사건 발생 꼭 두달이 되는 날이다. 민주노총은 대국민 사과문에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와 실망을 끼쳐드려 고개 숙여 사과 드린다"며 "특히 피해자의 고통과 상처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고 괴롭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또 "앞으로 피해자의 고통을 치유하고 피해에 대한 모든 보상을 다할 것"이라며 "2차 피해가 없도록 조직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민주노총은 가해자에 대해서도 피해자와 조직에 공개 사과문을 제출하고 전문기관에서 실시하는 성평등 및 가해자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게 하며 피해자의 동의 없는 통신과 접촉 시도를 일체 금지한다고 권고했다.
조직적 사과도 조치도 그러나 너무 늦었다. "민주노총의 그 누구도 피해자를 위로하지 않았으며 오직 조직 감싸기에만 급급했다"는 피해자 대리인의 주장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이유다.
▲사태를 일파만파로 키운 것은 민주노총 스스로였다. 겉으로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얘기했지만, 민주노총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피해자가 아니라 자기 조직이었다.ⓒ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에서 싸워야 한다"면 잘못 끼운 단추부터 바로잡아야
피해자 대리인에 따르면 이용식 사무총장 등은 피해자 측에게 "이명박 정부에서 싸워야 하는데 이런 사건이 알려지면 조·중·동에 대서특필돼 조직이 심각한 상처를 받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지도부 총사퇴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도 "이명박 정부에서 지도부가 공백 상태가 되면…"이라 하니 이래저래 이명박 정부가 민주노총의 '이성적 판단'의 걸림돌이 되는 모양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싸워야 하기에" 잘못 끼운 단추는 재빨리 다시 풀어야 한다. 그러자면 지금은 손에 쥔 것에 연연할 때가 아니다. 이미 드러난 치부를 숨길 때도 아니다. '무책임하고 비겁한' 지도부로 각인된 지금 상태로는 조합원과 국민의 신뢰를 등에 업을 수가 없다.
어긋난 옷깃을 그대로 두고 책상 위 논쟁만 하는 동안 사회적 위신은 더 나락으로 추락할 것이 명백하다. 시간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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