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도 마찬가지다. 국가를 상징하는 첫째는 바로 국토이고, 이는 산과 하천, 들이 어우러져 이뤄진 자연의 토대이면서, 인간과의 관계에서 존재적 의미를 갖는 '삶터'이기도 하다. 그 중 하천은 '금수강산'이라고 표현되는 한반도의 대표적인 표상이며, 모든 이들의 고향의 표상이다. 거기엔 한반도의 지형 형성사가 담겨있고, 역사의 숨결이 담겨있는 오랜 물길이기도 하다. 5000여 년의 긴 시공간에서 4대강은 언제나 흘렀고, 때로 넘치거나 부족해도 그 자체로 자연스러움을 간직해왔다.
1960~70년대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청계천 복개 상가와 삼일고가도로를 벗겨내고, 청계천을 복원했던 기본적인 공감대는 서울 도심의 옛 명당수 물길과 인간사의 복원에 있었다. 이는 우리의 삶의 가치를 '경제적 가치'에서 '생태적 가치'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청계천 복원은 기실 자연 하천의 복원이라기보다는, 거대 도시의 인공적인 이벤트성 하천으로 무장소성(placelessness)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렇게 복원된 청계천은 도시민에게 잠깐의 위락 시설은 될 수 있지만, 자연이 살아 숨쉬는 4대강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강은 자연 그대로의 존재성과 고유성을 벗겨버리고 인공적으로 바꿀 대상이 아니다. 한 번 잃어버린 자연 하천의 풍경은, 웬만해선 옛날로 되돌릴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국토강산을 인간에 의해 인공적으로 정비되는 '토목 기술의 전유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미래의 외쿠메네(거주 지역)를 그려내는 공동의 주체자로서 우리의 국토를 바라봐야 한다. 오늘날의 토목 기술이 4대강 사업을 가능하게 하더라도, 미래의 한반도에서 자연 하천을 그리워하고 필요로 하는 생태적 사고의 혁신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우리의 유일한 국토를 개발 대상으로 객체화시켜버리는 국토관이야말로 해체되어야 할 근대성이다.
▲ "우리 국토강산을 인간에 의해 인공적으로 정비되는 '토목 기술의 전유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미래의 외쿠메네(거주 지역)를 그려내는 공동의 주체자로서 우리의 국토를 바라봐야 한다." (사진은 4대강 사업이 진행 중인 경기도 여주군 남한강의 모습.) ⓒ4대강범대위 |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총·균·쇠>의 말미에서 생산성이 미국의 43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독일의 1000여 개의 작은 맥주 회사가 생산성이 높은 미국의 맥주 회사보다 독점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는 보고서를 인용하며, 그 원인을 지역적 성향과 독일 정부의 정책에서 찾았다. 지역 상표에 대해 독일 맥주 회사들이 갖고 있는 긍지와 자부심이, 미약한 생산성과 경제적 비효율성이라는 한계까지 극복한 것이다. 4대강 사업도 '경제적 효율성'이란 미명 아래, 한국인의 삶터에 대한 긍지를 '비효율적'인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한 때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다가 지금 주중 한국대사로 있는 류우익 대사는 원래 지리학자다. 그는 2004년 자신의 저서 <장소의 의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역사가 오랜 땅에 '뿌리의 향기'가 배어나지 않은 곳이 있을까? 정신 나간 사람들이야 벌판에 신도시를 짓고 천도까지 하려 들지만 국토야말로 문화 유산의 총체가 아닌가. 조상의 숨결과 손길이 켜켜이 쌓인 곳에 묵은 아름다움의 깊은 의미가 있다. 길고 긴 도시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급속한 산업화는 도시의 맥박을 빠르게 하였다. 그 '도시의 생기'가 앞으로도 계속 기적을 만들어내길 바라는 만큼, 거칠어진 호흡이 평온해지기를 또한 기대해 본다. 서울을 빠져나가는 엑서더스의 행렬을 보면서…."
이 글이 말해주는 것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천 정비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효율성이나 인공 하천 그 자체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하천이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불도저를 강바닥으로 보내고 있다.
4대강 사업은 지리환경적 측면에서도 향후 파생될 문제가 많다. 수억 년의 지형 형성 작용 속에서 만들어진 4대강과 이에 딸린 샛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크고 작은 지형 교란과 그에 따른 배수 기능의 교란, 지하수 및 생태 교란, 강수의 연변동이 심한 한반도에 닥칠 폭풍우, 그에 따른 엄청난 유량과 유속의 변화, 하상계수의 극심한 변동, 침식과 퇴적 작용에 의한 하폭의 변동, 하상 굴착과 보의 수위에 따른 지하수계의 변동 등, 다양한 문제가 파생될 수 있는 것이다.
하천은 지형 형성 작용의 주체로서, 삶터의 수용자로서, 수원과 경관의 형성자로서, 유역의 물을 빼내는 배수자로서, 육지와 바다 사이의 물질 교환의 매개자로서, 우리의 경관적·문화적·역사적·생태적 기능자로서 '자연의 총체자'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경제적 가치만을 내세우고, 유신 시대의 포스터같이 회화된 홍보물로 이 사업을 치장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 사업에 대한 충분한 공론화 과정과 여론 수렴 과정, 신중한 수리모형실험 과정이 사라지는 동안 '절차적 민주주의'는 바람 앞의 등불이 되고 말았다.
자연은 수천만 년의 시간을 거쳐 우리에게 오늘날의 하천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그 자연과 함께 더불어 우리는 5000여 년의 역사를 살아왔다. 그런데 정부는 단 몇 년 만에 원하는 인공 하천을 만들겠다며 삽질을 멈추지 않고 있다. 많은 고대 문명이 자연 환경의 변형에 따른 파괴로 인해 멸망한 역사적 사실을 아는 듯 모르는 듯…. 한 번 무너진 남대문과 청계천이 본 모습 그대로는 우리에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듯이, 많은 국민들이 정권 차원의 인위적 지형 대격변을 바라지 않는다.
지금의 4대강 사업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살아있는' 강이 아니라, 자칫 강을 인간의 통제에 따른 '하수구'로 전락시키게 될지도 모른다. 당연히 이 국토강산은 이 정부의 것도 아니요, 우리 시대의 전유물도 아니다. 이 국토는 우리 민족이 살아가야 할 지속가능한 삶터로 남아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의 강을 마치 특정 정권의 개발 대상으로 여기는 사유관과 지금의 하천이 경제적 공간으로 별 가치가 없다고 보는 무성(無性)의 경제관으로 한반도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
▲ "자연은 수천만 년의 시간을 거쳐 우리에게 오늘날의 하천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그 자연과 함께 더불어 우리는 5000여 년의 역사를 살아왔다. 그런데 정부는 단 몇 년 만에 원하는 인공 하천을 만들겠다며 삽질을 멈추지 않고 있다. " ⓒ4대강범대위 |
한반도의 강은 아직 살아있다. 한반도는 한반도만의 고유한 자연 환경을 갖고 있다. 4대강 사업의 주창자들이 바라본 유럽의 하천은 우리의 하천과는 너무 다르다. 북서유럽은 연중 강수량은 적지만 계절적으로 고른 강수 현상을 보이고, 강수의 증발량이 상대적으로 적은데다, 빙하가 쓸고 간 너른 평원 등의 자연 조건은 오히려 인위적으로 물길을 내어 배수를 빨리 하는 것이 때로 유리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침수나 홍수를 막고, 무른 땅을 마른 땅으로 바꾸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연과 인간의 상호 작용은 일시에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형성되어 온 자연과 인간의 상생적 관계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지역도 기후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최근 침수가 잦고, 조금만 강수가 집중돼도 배수 기능에 한계가 있어 홍수를 면치 못한다. 반면 우리에겐 그 많은 강수의 집중도 무던히 견디어 줄 만큼 넉넉한 하폭을 가진 강이 존재해왔다. 그래서 우리의 강은 길이가 짧고, 휘돌아 나오고, 유량에 비해 폭이 넓은 하천이 된 것이다. 그게 우리의 하천 경관이고 내 마음의 풍경인 것이다.
4대강은 청계천 복원 때 벗겨내야 할 복개도로나 고가도로와 같은 처지의 강이 되어선 안 된다. 4대강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보우되어야 할 국토의 표상이며 자연유산인 것이다.
4대강 사업과 같은 토목 경기 부양책이 끝나면, 4대강 사업에 투입됐던 수많은 건설 장비와 인력은 또 어디에서 굴착 사업을 찾을 것인가? 한반도 하천의 생태적 변형을 수반하는 토목과 건설 경기만이 시장 경제의 유일한 생존 방식인가? 한반도의 하천이 필요로 하는 것은 경제적 효율성이나 위락의 공간이 아니라, 한반도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이 내재돼 남아있어야 할 아름다운 자연 그 자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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