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면서
우리 고미술에 관한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 경험을 엮어 『고미술의 유혹』(한길아트)을 출간한 것이 2009년 11월이었다. 책을 읽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고미술의 유혹』은 지난 20년 넘게 내가 '고미술'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보낸 시간의 흔적에 약간의 감상을 더해 재구성한 것이다. 행간 곳곳에 언급한 것처럼 내 중년의 열정을 상당 부분 쏟아붓고 몰입하며 그것과 하나 되고자 하였으나, 안목 있는 컬렉터가 되어 시장에 끼어들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아카데미즘과 교류하고 함께 호흡한 것도 아니었다. 고미술에 관한 한 나는 이방인이자 자유인이었던 셈이다.
책이 출간된 이후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주었다. 고미술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경제학도가 쓴 책이라 그렇기도 했겠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다양했고 그들의 사회적 위치나 배경, 관심의 표현 방식도 여러 가지였다. 어떤 분은 내가 고미술의 대가(?)인 줄 알고 이런저런 물건의 감정을 요청하기도 했고, 고맙게도 독후감을 보내준 분들도 있었다. 앞으로 계속 이 분야의 글을 써달라는 주문도 있었다. 고미술에 대해 우리 사회에 잠재된 에너지가 그렇게 표출되는 것이 반가웠고 보람도 느꼈다.
이번 글은 우리 고미술에 대한 관심과 에너지가 어떤 형태로든 분출하도록 단초를 제공하고 싶은 마음이 담긴 이야기다. 그래서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랄까 의도는 그 동안 고미술 컬렉션의 속성과 본질을 화두로 삼아 내가 고심하고 관찰해온 것을 토대로 독자들을 고미술 컬렉션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이다.
어미 닭이 부리로 알껍데기를 쪼아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병아리를 도와주는 것처럼, 이 글이 독자들이 고미술 컬렉션으로 가는 마음을 여는 데 비슷한 도움이 되면 좋겠다.
컬렉션, 아름다움으로 가는 긴 여정
인간은 아름다운 무언가를 찾고 또 소유하려는 욕망이 저 마음 깊은 곳에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그 무엇이 어떤 것이고 또 그 동기가 어디에서 비롯하는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물건의 컬렉션 행위를 두고 인간의 본능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생리적인 성벽(性癖)이라고 한다. 그 행위를 인간의 본능으로 보는 것은 컬렉션의 행태적 속성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거나 통제하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또 성벽이란 굳어진 성격이나 버릇을 의미하는 말이어서, 컬렉션을 생리적인 성벽으로 보는 해석에는 그것이 고질병과 같아 한번 빠지면 떨쳐버리기 힘든 중독성이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행태적 해석과는 약간 다른 관점에서 인간의 컬렉션 행위를 이해한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물건을 수집하는 것은 미술 창작에 반영된 인간의 본성을 찾아내고 또 그것과 하나 되려는 잠재된 욕망이 실제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컬렉션 동기를 자극하는 인간의 심성 밑바닥에는 아름다운 미술작품에 자신의 감정을 교감시켜 하나 되기를 염원하는 '감정이입'(empathy)이 작용하는 것일까?
인간의 미술 창작은 인류 역사와 동시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옛날 고대사회의 미술 창작이 어떤 동기에서 어떤 목적에서 이루어졌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남아 있는 작품이나 자료가 절대적으로 적을뿐더러, 관련 기록이 처음부터 없었거나 설령 있었더라도 대부분 멸실되었기 때문이다. 고고학이나 미술사 쪽의 이야기를 빌리지 않더라도 세상일이 다원화되고 분화되어 굴러가는 현대사회와는 달리, 삶과 신앙, 그리고 미술이 하나였을 그 옛날의 미술 창작 동기나 목적이 오늘날의 그것과는 분명 상당한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또 장르 구분이나 양식, 표현 기법에서도 오늘날의 미술과는 다른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삶과 신앙과 미술이 분리되지 않았던 고대사회에서는 아름다움(美)의 감상을 목적으로 하는 미술품과 생산도구나 살림도구로, 또는 종교와 의례나 제례적 쓰임(用)을 목적으로 하는 기물(器物)의 성격 구분이 분명치 않았을 것이고, 그 분명치 않은 정도는 시대가 올라갈수록 더 심했을 것이다. 아마 최초에는 쓰임 목적이 먼저였을 것이나 시간이 흐르면서 거기에다 아름다움이 더해지는 형태로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과학기술 문명이 발달하지 않아 인간의 삶이 자연환경과 기후조건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제약받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에는 미술 창작도 그러한 환경에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굳이 차이점을 들자면 시대가 오래된 작품일수록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솔직한 생각과 가치관이 훨씬 진하게 다원적으로 투영되어 있다고 할까? 어쨌든 남아 있는 암벽화나 발굴된 무덤의 부장품 등 다양한 유적 유물을 통해 확인되듯,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술 창작의 기본 동기와 속성 그 자체로만 본다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아름다운 그 무엇을 그리거나 새기고 만드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 토우장식장경호(국보 195호). 5-6세기 신라인들의 유희, 동물숭배, 성 의식 등을 나타내는 여러 인물상이 붙어 있는 토기. 주술적이고 해학적인 표현에서 건강하면서도 자연과 함께하는 고대인들의 생사관을 보여준다. ⓒ 한길아트 |
감상 욕구를 충족시키는 미술품, 권력과 부의 상징이기도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부터 미술품을 감상할 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을까?
학자들은 미술 창작 활동과 거의 동시에 컬렉션도 시작되었다고 한다. 다만 동기나 목적이 시대에 따라 달랐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정치권력과 경제력을 하나의 판단 기준으로 삼아 생각해볼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 역사에서 원시공동체 이후 지배―피지배의 권력구조가 뿌리내리고 사적 소유제도가 정착되기 시작한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권력과 부에 대한 소유 욕구는 정치 질서와 사회 변동의 동인이 되어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컬렉션 또는 소유 대상으로 삼아온 미술품은 소장과 감상 욕구를 충족시키는 목적물이기도 했지만, 권력과 부의 상징물이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의미의 미술품 컬렉션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대략 중세의 끝자락에서 근세가 시작되던 무렵이다.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는 부분도 있지만 서구사회에서는 르네상스 시대를 시작점으로 해서 15세기까지의 시대를 근세로 지칭하는데, 이 시대에 미술 창작 활동과 그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근대적 의미의 컬렉션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문치(文治)가 만개했던 북송 시대를 본격적인 태동기로 보고 있다. 이 시대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전기 고려 시대에 해당하는데, 이 시대에 청자 등 도자문화 중심으로 공예미술이 꽃을 피우고 왕족과 귀족 등, 상류층 취향의 화려하고 정치한 미술문화가 발달한 근저에는 소장과 감상을 목적으로 하는 미술품 수요가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 청명상하도(부분). 북송시대 장택단이 그린 풍속도. 만물이 소생하는 청명절, 송나라 수도 변경(지금의 하남성 개봉)의 활기찬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묘사되었다. 중국에서는 본격적인 문치시대인 북송 대에 들어 문화와 예술이 꽃을 피웠고, 화려 섬세한 귀족문화가 발달하면서 근대적 의미의 컬렉션 문화가 태동했다. ⓒ 한길아트 |
근대에 접어들면서 미술품 컬렉션 문화는 한 단계 도약했다. 특히 서양에서는 시민계급의 문화적 소비욕구가 높아진 18세기 말을 거쳐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컬렉션 문화가 성숙하기 시작하는데, 그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경제력이 크게 향상된 시민계급이 중심이 되면서 확산한 활발한 미술품 거래와 컬렉션 수요가 작용하고 있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미술품의 창작과 거래, 컬렉션 문화는 기본적으로 그것이 국가든 개인이든 간에 축적된 자본에서 창출되는 경제적 풍요를 토대로 꽃을 피웠고 발달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높게 평가받는 고급 미술품을 비롯해서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유산들은 대개가 절대 권력의 왕조시대, 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상류층 계층의 후원과 주문으로 만들어지고 보존되어온 결과임을 상기한다면 쉽게 이해되는 사실이다.
근대로 넘어올수록 권력과 경제력이 시민계급으로 분산되면서 컬렉션은 사회 저변으로 확대되지만, 떼려야 뗄 수 없는 부(경제력)와 미술품 컬렉션의 관계는 현대사회에서도 변함이 없다. 미술품 수요는 소득(income)보다는 부(wealth)에 의해 결정되고, 따라서 생산과 소득이 중심 변수가 되어 움직이는 일반 경제 흐름과는 다소 다른 변동 사이클을 보인다는 사실도 그러한 관련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탐욕스런 자본의 도움을 받아 꽃을 피우다
하지만 미술품 컬렉션은 자본 또는 경제력의 논리로만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흔히 자본에는 확장적 운동 속성이 있다고들 이야기한다. 그건 아마도 자본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수사적으로 표현한 것일 것이다. 그 때문인지 누가 내게 자본의 느낌을 묻을 때 합리성, 경제논리, 차가움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 반면 미술은 감성적이고 자유로움 따뜻함으로 다가온다. 이성과 감성을 기준으로 인간의 여러 활동을 좌우로 배열한다면 자본축적 활동은 아마도 맨 좌측에, 미술 창작은 맨 우측에 위치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가장 이성적이고 시장 논리에 충실해야 할 자본이 미술품 컬렉션 앞에서는 비이성적이고 즉흥적인 행동을 마다치 않는다. 그렇기에 차갑고 탐욕스런 자본의 도움으로 미술 창작과 컬렉션 문화는 꽃을 피우고 또 우리는 지친 영혼을 거기에 위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상호 대척점에 있는 자본과 미술 창작이 컬렉션의 장(場)에서 만나 서로 소통하고 화해하는 것도 어쩌면 탐욕스런 자본가의 심성 밑바닥에는 영혼의 자유를 염원하고 따뜻한 인간의 감성을 그리워하는 외로움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이 없다면 컬렉션 그 이면에서 일어나는 많은 내밀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가 없다. 미술품 컬렉션, 그것은 차가운 자본의 논리를 넘어 따뜻한 감성으로 때로는 열정으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기 때문이다.
컬렉션은 아름다운 물건에 대한 어쩌면 일방적인 사랑의 길이다. 그 길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황홀하고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마력으로 둘러싸인 미로다. 그곳에는 영혼을 유혹하는 물건을 두고 이성으로 통제되지 않는 컬렉터의 욕망과 그 충족되지 않은 욕망에서 비롯하는 번뇌가 있고 물건과의 인연 이야기가 있다.
저자 김치호 1954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1977년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통계학 석사(1983), 경제학 박사(1987) 학위를 받은 뒤 20여 년 동안 한국은행, 예금보험공사 등에서 한국의 거시경제, 통화정책, 금융위기를 연구했다. 정리금융공사 사장을 역임했고, 연세대학교, 서강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한국의 거시경제 패러다임』(2000, 한길사) , 『고미술의 유혹』(2009, 한길아트) 등을 저술하고 논문 50여 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했으며, '유망 미술작가 해외진출 후원모임'을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는 등 우리 미술시장 저변 확대를 위한 운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