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엄마들을 위해 범법을 합법화하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엄마들을 위해 범법을 합법화하자?

[해외 입양인, 말 걸기] <33> 입양특례법 재개정 논란에 부쳐 ②

최근 들어 베이비박스 아동 유기 증가가 지난해 8월 시행된 개정 입양특례법 때문이라는 주장과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민주통합당 백재현 의원은 지난달 20일 입양특례법 재개정안, 일명 '코제트 입양법'을 대표 발의하기에 이르렀다. (편집자 - 베이비박스란 지난 2009년 서울 관악 주사랑공동체교회가 불가피하게 키울 수 없는 아이를 놓아두고 갈 수 있도록 교회 건물 앞에 설치한 아기 상자다.)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고이 놓고 떠나야 하는 엄마들이 있단 건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런 점에서 입양특례법을 아동 유기의 범인으로 꼽는 주장과 법 재개정 시도가 아동 유기를 막아보려는 선의라는 점은 불문가지다.

베이비박스와 입양특례법 개정 논란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문제는 아동 출생 등록에 관한 문제다. 현행 입양특례법은 가정법원의 입양 허가를 받기 위해선 아동의 친생모(부)를 명기한 아동 가족관계등록부를 법원에 제출토록 하고 있다. 달리 말해, 아기를 낳은 엄마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출산 사실이 명기된다.

그러나 아기가 입양되고 나면, 출산 기록은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완전히 삭제된다. 따라서 가족관계등록부에 출산 사실이 명기된단 점은 사실 문제가 아니다.

다만 아기가 커서 성년이 된 후 발급받을 수 있는 친양자 입양관계 증명서는 입양인에게 친생모(부) 신원을 일부 제공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사생활 침해 가능성을 거론한다. 또 장애 아동을 기관에 입양 의뢰했음에도 입양되지 않는 경우, 친생모(부)의 가족관계등록부 상에 출산 기록이 계속 남게 된다는 두려움을 미혼모가 가질 거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와 함께, 입양 아동이 파양될 경우, 친생모(부) 가족관계등록부에 아동에 관한 기록이 재생성된다는 문제도 지적된다. 이에 따라 미혼모들이 두려움을 갖게 되고, 곧 아동 유기가 증가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입양특례법을 개정하려는 쪽에서는 미혼모가 데리고 온 아동일지라도, 그 아동을 '유기 아동'으로 간주하고 입양기관 장에게 아동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토록 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허위 출생신고에 해당하는 일종의 범법행위다. 최근 발의된 입양특례법 개정안은 범법을 합법화해주잔 것이다.

미혼모들의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가족관계등록 등에 관한 시행세칙을 세밀하게 손질하면 된다. 친양자 입양관계 증명서 발급을 신청할 때, 친생모(부)의 동의 여부에 따라 정보 접근 여부를 구분함으로써 사생활을 보호하는 방법이 있다.

또 장애를 비롯한 특수 사정으로 아동이 입양되지 못하는 경우, 가족관계등록부 상에서 본인이 요청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사실이 원천적으로 은닉되도록 조치할 수도 있다.

이 모든 대안은, 입양특례법을 개정할 것이 아니라 가족관계등록에 관한 시행령 혹은 시행세칙을 손보는 수준에서 만들 수 있다. 사실상 전면적이고 퇴행적인 입양특례법 개정을 통해서만 아동 유기란 비극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은 지나친 논리다.

▲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사랑공동체의집에 설치된 베이비박스가 '유아 보호'와 '유기'의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벽을 뚫어서 공간을 만들고 앞뒤로 여닫이문을 단 형태인 베이비박스는 집 밖에서 손잡이를 당겨 문을 열고 아기를 안에 넣어두면 집안에서 벨소리를 듣고는 아기를 데려올 수 있게끔 설계된 상자로 옆에는 '불가피하게 아이를 돌보지 못할 처지에 있는 미혼모의 아기와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기를 버리지 말고 여기에 넣어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우리는 지난 60년 동안 국내외로 입양된 아동들이 자신의 출생 기원을 알 권리를 박탈당해왔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재작년 기준 15만4612명에 달하는 엄청난 해외입양 아동들이 친생모(부) 인지가 가능한 상황임에도 기아나 고아로 일가 창립해 해외로 보내졌다. 그리고 많은 경우 기록이 멸실, 오기, 조작, 위조돼 해마다 수천 명의 해외 입양인들이 모국을 직접 찾아 가족 찾기를 시도한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다르면, 국내입양아동 숫자는 7만6000여 명인데, 그 가운데 7만 명이 조금 넘는 이들이 자신의 입양 가정의 친생자로 등록이 돼 친생모(부) 기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개정 입양특례법은 국제 기준이라 할 수 있는 가정법원 허가제를 도입했고, 여기에 아동 신원 정보를 법적으로 확보함으로써 입양인들이 자신의 출생 기원을 알 권리를 보장했다. 현행 입양특례법은 이에 따라 재작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지지를 받았고, 지난해에는 유엔인권이사회의 한국인권문제 정례검토회의(UPR)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아울러 이 법은 한국이 2~3년 안에 가입하려고 하는 '국제 간의 아동입양에 관한 헤이그협약' 정신에도 전면 부합한다. 따라서 입양특례법을 또다시 개정해 입양인 출생 기원을 은폐할 수 있는 퇴행적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한국이 지난 20여 년 동안 국제사회로부터 권고받아온 헤이그협약 가입은 물 건너가게 된다.

만약 아동 출생 기원을 국가가 보장해줄 수 없다면, 한국은 1991년에 가입한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탈퇴하는 것이 논리상 맞다. 현재 유엔회원국 가운데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는 아동 권리에 관한 한 세계적 후진국으로 평가받는 미국과 소말리아뿐이다. 한국도 이 두 나라의 반열에 명예롭게 참여하고 싶은가?

입양특례법 개정 주장 논리를 요약하면, 베이비박스에 아동 유기가 증가하고 있으니 까다로워진 입양 제도를 느슨하게 만들어 참혹한 아동 유기를 줄여보잔 것이다. 그러나 베이비박스와 입양 제도는 본질적으로 같은 일이다. 단지 베이비박스는 불법이고 입양 제도는 합법이라는 점만 다를 뿐, 결국엔 사회적 낙인이나 경제적 곤경 때문에 아기를 양육하기 어려운 엄마가 자신으로부터 아기를 떼어놓는 일을 돕는 시스템이라는 점은 동일하단 얘기다. 또 유기되거나 부탁받은 아기가 입양을 통해서 보호되고, 아기를 맡겨두고 떠나는 엄마의 절망과 슬픔,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는 시스템이란 점도 다르지 않다. 쉽게 말해, 아기는 건지고 엄마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버려두는 시스템이란 게다.

베이비박스나 입양은 모두 고귀한 생명으로 태어난 아기와 벼랑 끝에 내몰린 엄마를 분리하는 일종의 분리대응책이다. 이를 '제도'라는 틀에서 보면, 일종의 분리수거함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고이 놓고 떠나는 엄마들을 막무가내로 비난할 수는 없다. 이는 도리가 아니다. 우리는 이 엄마와 아기가 처한 상황을 피눈물로 함께 아파해야 한다. 또 그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우리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따라서 아동 유기 증가 문제의 대안은 입양특례법 재개정이 아니다. 입양 절차를 과거처럼 느슨하게 만든다고 해서 아동 유기 증가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분리 위기에 처한 아기와 엄마를 함께 보듬는 사회적 안전망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한국은 1985년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에 가입했다. 이 협약을 보면, 여성은 신분이나 결혼 여부에 상관없이 임신, 출산, 수유 기간에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여기에 국가가 나서서 여성과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을 분리하라는 조항은 없다. 엄마는 어둠 속으로 돌려보내고 아기만 구원하라는 권고도 없다.

지금 중요한 건 아동 유기에까지 내몰린 엄마들을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어떻게 도울까를 고민하는 일이다. 경제적 곤경과 사회적 낙인으로 두려움이 커진 여성들, 특히 미혼모들에게 그들이 누구인지를 묻지 않는 '임신출산여성 긴급지원센터' 등을 설립하는 게 대안이지 않을까. 아동 유기와 입양에 관한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바꿀 때가 됐다.

개인의 안전과 존엄을 보호하는 일은 국가의 의무다. 만약 국가가 만든 기록이 개인에게 아픔과 곤경이 된다면, 즉 여성이 자신이 출산한 아기를 유기해야 한다면, 국가는 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시민 보호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어 기록 체계를 잠정적으로 유보하는 방식이야말로 여성과 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대안이다.

이에 우리는 베이비박스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으로 제3지대 임신출산여성 긴급지원센터를 잠정 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여성이 익명성을 보장받으며 아동을 양육하고 보호할 수 있는 제3지대를 설립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관의 정신은 아래와 같이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당분간 함께 지내요. 홀연히 떠나도 괜찮아요. 신분을 드러내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가명으로 도착하셔도 돼요. 그냥 같이 살아요. 용기가 나면 출생신고도 하고 자립을 꿈꾸고 그렇게 해요. 너무 일찍 떠나진 마세요. 그러나 키우다가 아이 두고 홀연히 떠나시면, 그 아이 기아라는 이름을 얻겠지만, 일가 창립해서 입양 보낼 수도 있어요. 아무튼, 당분간 그냥 같이 살아요. 우리나라가 조인한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은, 온 세상의 모든 여성은 임신과 출산과 수유의 기간 동안 따뜻하게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래요. 맞아요. 우리 힘내요.

물론 이렇게 말하면 입양기관들은 우리가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입양기관들은 입양을 '전제'로 미혼모 시설을 운영한다. 미혼모가 사회적 이슈가 되자 우리도 미혼모를 위한 사업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설은 태생적으로 미혼모와 아동을 함께 품어내려는 사회안전망과 시스템에 대한 철학적 꿈을 꾼 적이 없다.

그래서 지난해 4월 개정된 '한부모가족지원법'에 의해 입양기관은 미혼모시설을 오는 2015년 7월 1일부터 더는 운영하지 못하도록 법제화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제는 광역지방자치단체가 나설 필요가 있다. 광역자치단체별로 한두 개 혹은 두세 개의 임신출산여성 긴급지원센터를 설립해 여성과 아동을 하나의 통합된 사회안전망으로 품어 안아야 한다.

입양기관은 어디까지나 민간복지기관이다. 민간복지기관은 개인별 복지서비스 제공에 대한 사항을 국가에 보고하고, 그 보고에 기초해서 국가지원금을 받는다. 민간기관이 익명을 부탁하는 미혼모들을 문전에서 되돌려 보내고, 이것이 결국 미혼모로 하여금 아동 유기라는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리는 이유가 된다. 아기와 엄마를 분리해서 대응하는 입양이 더는 한 사회의 보편적 아동양육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예외가 상례가 돼서는 안 되고, 모리스 블랑쇼가 말한 것처럼 재난이 일상이 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