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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날 위한다고 말하지 마! 내 말을 들어!"

[기고] 나쁜 교사들 저질 행위, 그들만 처벌하면 끝인가?

"<도가니>의 배경이 됐던 인화학교 실제 사건은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잔인하다"

소설가 공지영의 말이다.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을까? 영화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고 사람들은 분노에 휩싸여 있는데, 이보다 더하다는 작가의 말에 어떤 상상을 할까?

며칠 전 평일 늦은 오후 시간 영화 <도가니>를 봤다. 이유를 딱히 설명할 수 없지만 영화를 보는 것이 불편하기도 했고 마음 깊은 곳에서 선뜻 내키지 않아, 세상이 온통 <도가니>이야기로 난무해도 영화관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날 저녁 도가니의 배경이 되었던 <인화학교 사건 관련 집담회>에 참여하기로 했는데, 질문지가 영화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어 영화를 보지 않고는 얘기 할 수가 없었다.

지난 10월 2일 장애·인권·노동·시민사회단체 등 32개 단체가 모여「광주인화학교사건해결과사회복지사업법개정을위한도가니대책위원회」(이하 '도가니대책위')를 구성했고, '이제 정말 중요한 관련 법 전면개정에 힘을 쏟으면 그만이지' 하고 생각했지만, 여하튼 관련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내키든 내키지 않던 영화를 봐야만 했다.

▲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도가니>

인권위 권고, 대한민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화 <도가니>는 한마디로 '공포영화'였다. 내내 가슴이 떨렸지만 머릿속에서는 2006년 국가인권위 조사 때 민간조사원으로 참여하면서 만난 아이들과 학부모, 그리고 관련자들이 떠올라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사무실에 돌아와 그 때 당시 썼던 보고서와 아이들 설문지, 인터뷰 내용들을 다시 살펴보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이들의 진술은 너무나 분명했고 영화 속 내용보다 더 무섭고 참혹한 상황을 내뱉고 있었다.

당시 국가인권위는 A4 17페이지나 되는 장문의 결정문을 통해 이렇게 문제점을 정리하고 있었다. ▲성폭력 관련자들을 검찰총장에게 고발하고 ▲광주광역시장에게는 사회복지법인 우석의 모든 이사진을 해임 조치하고, 공익성과 전문성을 갖춘 인사들로 임원진을 재구성할 것을 '권고'하며 ▲피해학생들을 대상으로 전문적 치유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성폭력 전문상담시스템을 갖추도록 '권고'하고 ▲청각장애특수학교 교사들 중 수화통역사 자격증을 소지한 교사의 비율을 높이고 교육권 확보를 위한 대책을 강구할 것 등을 '권고'하는 대책을 제안했다.

모두 '권고조치'다. 당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기 전이었고, 인권위의 권한은 '권고조치'가 전부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는, 이 또 다른 국가기관의 '권고'를 어느 곳에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는 온통 <도가니> 열풍이다. 시민들의 흥분된 반응이야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으니 분노할 수 있다 하더라도 언론과 정치권의 반응은 좀 의외다. 아니 도리어 참을 수 없는 역겨움과 슬픔으로 다가온다.

2007년 시설인권연대 등 장애인권단체들이 「사회복지사업법」전면 개정안을 국회에 올렸을 때 한나라당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강한 어조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발 더 나아가 윤석용 장애인위원장은 "개방형 이사제는 사회주의적 사고로 특정 정파나 특정 정권에 의해 획일화된 가치를 사회복지시설을 통해서 달성하려는 포퓰리즘적, 반헌법적인 발상"이라며 반대했었다. 여기에 시설을 운영하던 기독교단체들의 저항 또한 거셌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종교의 이름'을 내걸며 직접적으로 "시설 운영에 간섭하지 말라"고 정치권에 주문했다.

사회복지시설은 100% 국민의 혈세로 운영하는 공공의 재산이다. 처음 자비를 털어 법인 설립에 필요한 요건을 갖추었다고 해도 이후 운영은 거의 전액을 국가 보조금에 의지하고 있다. 거기에 일반 후원금과 수익사업 등을 통해 재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일체의 법인전입금이라는 것은 투입되지 않는다. 따라서 법인이 운영 주체라 해도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책임이 있으며, 이에 따라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사학 재단과 마찬가지로 '사적재산' 운운하며 '장애인과 같은 소수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인권의 문제를 사회주의 운운하며 '좌, 우의 문제'로 몰아가 쟁점을 흐려놓았다. 지금 정부와 한나라당이 서둘러 내놓는 개정안과 대책을 반갑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정부의 대책 마련 호들갑, 그러나 내용이 없다

게다가 국무총리실에서 발표한 일명 도가니 대책에도 역시 '내용'이 없다. 뭔가 분주히 움직이는 듯 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건질만한 알맹이가 하나도 없다.

정부는 ▲가해자 처벌 강화 ▲인화학교, 인화원 법인 취소 ▲피해자 보호 확대 ▲법인 시설의 공공성 확보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고 발표했다.

매번 되풀이되던 대책 안이다. 게다가 핵심 문제인 '공공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빠져 있다. 공공성 확보는 운영위원회 구성과 공익 이사 구성으로 가능하다.
국가가 사회적 약자의 복지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시설을 설립했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어 참여해야 하며, 지역과 함께 미래를 설계하는 방식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설 운영의 최고 결정권한을 갖고 있는 이사회에 외부 인사들의 참여 보장으로 투명하고 민주적인 방식의 운영이 보장되어야 한다. 현재 정부나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사진의 1/4 외부 인사 추천 정도로는 절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이 밖에도 정부는 <도가니>를 계기로 ▲관계부처 합동 점검단을 구성하여 기숙사가 설치된 특수학교(41개교, '11.10)부터 그 외 모든 특수학교(114개교, '11.11)에 대한 운영실태 점검, ▲민·관 합동조사팀을 구성하여 미신고 및 개인운영 사회복지시설(119개소, '11.10) 대상으로 실태 점검, ▲위법사례에 따른 관련자 형사고발, 시설 폐쇄 등 행정제재도 병행한 조치 및 후속대책 마련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특히, 지난 10월 6일부터 진행된 미신고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1단계 실태점검을 통해 폭행(신체, 언어), 성폭력(성추행·성폭행 등), 가혹행위(감금·학대), 이용 장애인 금전관리(수당·연금 등) 및 회계관리, 자기결정권 보장실태 등 문제 사례 발견 시 즉시 격리 조치 및 심층면담을 진행하겠다고 했지만... "글쎄올시다..."란 말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법 개정과 공무원 의지 없는 한 <도가니>는 해결되지 않는다

지난 2010년 전국의 22개 미신고시설의 거주인 인권상황과 운영 실태를 조사한 후, 민간조사원들은 "대부분의 시설이 폐쇄되어야 한다"고 제안했었다. 하지만 복지부는 민간의 의견을 거의 수용하지 않았다. 민간조사에 대한 타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눈에 보이는 결박, 폭력, 성폭력 등이 발견되었을 시에만 폐쇄의견을 받아들였을 뿐, 시설의 열악함과 운영의 불투명성으로 오는 일상적인 방임, 방치의 문제는 인권침해로 간주하지도 않았다. 정부 당국이 '인권 불감증'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구조의 문제에서 오는 인권침해가 반복될 것임이 분명함에도 정부당국과 지자체는 그 상황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폐쇄와 전원조지 등이 모두 지자체의 책임이고 일이기 때문이다. 시설장들이 떼로 몰려와 항의하고 욕설을 퍼붓고, 폐쇄를 하면 당연히 소송에 휘말려 일이 커지고 많아진다. 게다가 작은 지역 사회에서 그동안 이런 시설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기 때문에 그 전부터 알고 지내며 알음알음 봐줘왔는데, 갑자기 민간조사원들과 들이닥쳐 '폐쇄'운운하니, 그동안 자신들의 처신에 대해 난감한 것이다. 분명한 직무유기 앞에서 그들의 태도가 확고할 수 없는 이유다.

지자체 공무원들은 이런 유착관계 때문에 복지부 공무원이 설명하고 설득해도 그저 난감해하며, "시설장이 반대하는 데 어떻게 해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어느 한 시설에서는 시설장의 완강한 반대로 밤늦게까지 조사를 시행하지 못해 다음 날 다시 방문했지만, 지자체, 복지부 공무원들은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밖에 서서 팔짱만 낀 채 안에서 민간조사원들과 시설장이 다투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당신들이 나서서 문제해결을 해야 하지 않냐!"는 말에 하는 수 없이 들어와서도 그저 시설장의 악다구니만 듣고 있을 뿐 아무 권한도 행사하지 못했다.

조사 후, 민간조사원의 폐쇄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아 자정을 넘겨 겨우 전원조치(거주인들이 다른 시설로 임시 거주지를 옮기는 일)와 폐쇄를 한 경우도 있었다.

이렇듯, 합동조사를 나가 폐쇄할 것이냐 말것이냐의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지부와 지자체의 의지'다. 그들은 공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다. 조사를 나간 사람들이 조사결과에 대해 함께 평가하고 내 논 의견은 대부분 인권의 관점에서 지속적인 운영이 가능하냐 마냐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조사원들이 함께 합당한 근거와 타당성을 밝혀내면 자신들의 힘으로 책임을 다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이지 몰라 난처해했고' 시설장의 항의에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민간의 의견은 배제하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에서 거주인들과 하루 종일 인터뷰를 하고 현실의 참담함에 기운이 다 빠져 있는데도 민간조사원들은 다시 공무원들과 싸우느라 진을 빼기 일쑤였다.

게다가 이번 조사대상 시설에 「사회복지법인」산하의 시설은 모두 빠져있다. 규모가 큰 곳은 건드리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작고 힘없는 시설만 슬쩍~ 건드리겠다는 속셈이다. "앞으로 계획을 가질 것이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순서가 바뀐 조사에서 '누구를 위한 어떤 조사'가 될 지 기대하기 힘들다.

복지부는 시설에서 인권침해 문제가 터질 때 마다 "실태조사를 한다, 「사회복지법인 투명성인권강화위원회」를 구성해 대책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그 결과는 늘 조사로 끝났고, 이런 대책과 요식 행위는 과거 시설에서 인권 문제가 터질 때마다 있어 왔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민간단체(시설인권연대 등)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고, 뾰족한 대책이 나온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분노의 <도가니>만 어떻게든 수습해보겠다는 심사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게다가 이번에는 아예 그때의 그 민간단체를 배제한 채 조사하겠다고 한다. 그 민간단체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설에 대해 많은 노하우를 갖고 있는 인권 활동가들이기도 하고, 지금 「도가니 대책위」를 구성해 법률 개정운동을 하고 있다. 준비된 내용이 있고 할 말도 많다. 그런 「도가니 대책위」는 제외한 채, 국가 지원을 받는 법인 중심의 장애인단체들로만 구성해 논의되는 구조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되지 않을 만한 획기적인 대책이라는 것이 과연 나올 수 있을까?

조사지와 조사방법에 대해 알려달라고 슬쩍 개인 활동가들을 접촉하고 있는 복지부의 행태가 참 씁쓸한 요즘이다.

도가니로 불거진 시설의 문제, 그리고 우리의 요구

하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에 '시설 문제'를 이야기하고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우리들의 역할임은 분명하다. 시급히 구성된 「도가니대책위」는 일단 대국민선전전과 법 개정을 위한 10만인 청원운동에 돌입했고, 법률팀은 다각적인 접근을 시도하며 「사회복지사업법」개정안을 마련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사회복지법인 및 시설의 공적 책임과 시설거주인 인권보장, '탈시설-자립생활' 권리실현을 기념이념과 원칙으로 천명하고, △사회복지법인 및 시설의 공공성, 투명성, 민주성 강화하고, △사회복지서비스 신청제도의 실효성 확보하고, △시설에 우선하여 '탈시설-자립생활' 권리실현을 위한 지원정책을 마련하고, △시설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정책을 보완하고, △장애인 권리옹호제도(Protection & Advocacy)를 도입하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탈시설-자립생활>로의 방향전환을 위한 정책 마련을 중요한 내용으로 잡고 있다. 시설조사를 다닐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시설에서의 인권침해는 매우 심각하고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시설'이란 구조 자체가 가져오는 집단성과 권력 관계 때문에 인간다운 삶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설'은 함께 모여 의지하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절대 아니다. 누군가 직접 지배하는 권력 구조이고 개인의 선택과 자유보다 집단의 이익이 우선시 되는 공간이다. 비용과 효율의 잣대로, 보호와 봉사의 논리로, '사람'을 가둬두고 대상화하는 곳에 지나지 않는다.

인화원 아이들의 증언 "갑자기 이불 속에 들어와 키스하고 3만원 줬다"

2006년 당시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인화학교, 인화원을 조사했을 당시 아이들에게서 나온 증언들이다.

"00교회. 모든 아이들이 00교회만 다녀야 했다. 그곳에서 박00 전도사가 쫒겨 났는데, 성추행을 일삼았던 박00 전도사가 인화원에 들어와 아이들을 통제했다"
"pc에서 다운받은 야한 영화를 같이 보자고 했다. 더러운 느낌이었다."
"갑자기 이불 속으로 들어와 키스하고 돈 3만원을 줬다"
"엄마가 좋아? 선생님이 좋아? 물은 후 엄마가 좋다고 하니까, 선생님을 더 좋아해야지...하면서 강제로 키스하고..키스 방법 알려준다고 말하며, 혀를 넣으면 더 맛있다고 했다"
"여러 학생들이 있는 가운데서도 키스하고 엉덩이를 만졌다"
"말 안들을 때는 이렇게 하면 된다며, 라이터 불을 켜 성기 쪽에 불을 붙이는 행동을 하고, 학부모들 앞에서 그걸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래야 말을 듣는다고"
"남학생은 체벌, 여학생 체벌은 뽀뽀"
"술 취한 채 막걸리 병으로 아이들을 때리고, 흘러내린 술 때문에 아이들 몸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하고"


왜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몇몇 나쁜 교사들의 저질스러운 행위로만 치부되어야 할까? 그들만 처벌 받으면 끝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지, 이제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시설에서 살게 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당시 아이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 누구하나 그건 "잘못이고 나쁜 일이야"라고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하나 들어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부모도 수화를 모르고 시설 직원과 교사도 수화를 모르니 아이들의 교육권 침해는 물론이고 폐쇄적 환경 속에서 철저히 고립돼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결코 모르지 않는다. 다만 누구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거다. 속이 썩은 것 같다고 했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했고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던 지적장애가 있는 친구를 불쌍하다고 했다. 마음 속에 숨어있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다들 얘기를 안 한다고 했다. 전학을 간 한 친구는 다른 학교 가니까 그런 행위 자체가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화가 난다고 했다.

조사 당시 수업참관을 했는데, 고등학생이 문장, 단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수준이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설사 단어와 문장을 안다고 해도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그건 수화로 여러 가지 부연 설명을 해야 인지될 수 있는데 교사가 수화를 모르니 그냥 빈칸 속에 들어가야 할 말을 칠판에 적어주면 끝이었다. 영어나 수학 수업은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었고, 학생들은 잠을 자거나 딴 짓을 하고 있었다.

어느 교사는 "오전에 참관하시는 줄 알고 관련 수화를 조금 익혔는데, 오후에 오시니까 당혹스럽네요"라고 뻔뻔하게 말하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교사가 교육을 못하고 있음에도 그들에겐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2006년 당시 500여명의 청각장애인 특수학교 교사 중 30명 내외만 수화를 할 수 있는 현실이 바로 대한민국 청각장애인의 교육권 수준이다. 구화교육을 중심으로 한다고 해도, 청각장애인들의 또 하나의 언어인 수화가 배제된 채 진행되는 교육...그게 교육일까?

청각장애인들은 수화를 또 하나의 언어라고 말한다. 장애인권리조약에서도 '언어'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언어란 의사소통의 문제임과 동시에 사회 전반에 존재를 인정받는다는 의미다.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그들의 언어인 수화를 모르는 교사가 대부분이란 것은 교육권 침해만이 아니라 소통의 부재, 그로 인한 존재감 상실이란 결과를 가져오는 심각한 배제와 차별이다.

낮에는 학교에서, 나머지 시간은 인화원이란 시설에서 지내던 아이들의 울부짖는 손짓은, 모두의 외면과 차별 속에서 그리고 국가의 정책부재 속에서 허공을 떠다니며 드러나지 않았다. 드러난 후에도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교육청과 시, 구는 책임을 회피했고, 법인은 이런 문제에 대해 단 한번도 회의를 한 적이 없다. 왜 이런 침묵의 카르텔이 존재하는 걸까.

시설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1970년대 미국에서는 시설거주인의 인권침해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사회 문제화 되었다. 또 1995년 장애가 있는 두 여성이 지역사회에 나가 살고 싶다고 하자, 시설이 반대해 주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국가 재정을 문제로 자기결정권을 무시하고 시설에 격리하고자 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일명 '옴스테드 판결'을 통해 '시설에서 지역사회로의 전환'이 시행 되었다.

아무리 장애가 심하다 하더라도 자립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정부에 필요한 서비스를 요구하고 정부는 그걸 받아들여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 후 미국 많은 주정부에는 <탈시설 전환국>이라는 담당 행정부서가 생기기도 했다. 관련 법과 행정의 재정비로 <시설에서 지역사회로>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시설을 당연시 하며, 저비용 고효율이란 관점에서 '시설'문제를 바라봐왔다. 그래서 인권침해가 발생해도 가해자를 처벌하는 수준에서 끝나고 구조를 보지 못한 채 "그럼 어떡하란 말이야? 가난하고 가족들이 힘들다는 데 어떻게 나와 살아?"하며, 나경원 후보처럼 시끌벅적한 시설 방문 봉사를 용인해왔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그게 착한 일이라고 자기위안에 그친 것이다.

지역에서 함께 살기 위해 장벽이 되는 것들, 차별적 요소를 없애기보다, '그곳'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대상화해 왔다.

국가 재정. 중요한 문제지만 '사람'의 문제는 효율과 비용의 문제로 해결할 수 없다. 아니 결코 그렇게 바라봐서는 인권의 가치를 지켜내기 어렵다. 봉사활동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있는 봉사는 소통과 공감이 중요하지만 자기 위안에 취해 있으면 안된다. 자기 멋에 들떠 있으면 반드시 상대에게 전해지고 모르는 사이에 권력관계가 발생해 한 쪽은 상처를 받게 된다.

이제, 시설은 무엇인가, 왜 그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나,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물음들이 사람들 속에 자리하기를 바란다.

일명 <도가니 사건>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것, 아니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폐쇄적 구조에서 발생한 심각한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이다. 책임을 방기한 국가범죄이자 어쩌면 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책임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중 정유미가 공유에게 쓴 이메일에 아이들의 변화된 모습을 언급한 부분을 보면, 아이들은 이 사건을 통해 "우리도 똑같이 소중한 사람이다"라는 것을 느꼈다고 전하고 있다. 존재의미를 되새기며 한 인간으로서 온전히 품위있고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홍보 포스터에 적혀 있는 말이다.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내 말을 들어!"
이제, 시설과 시설 안에 갇혀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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