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창으로 본 과학기술
최근에 나온 김환석 교수(국민대)의 <과학사회학의 쟁점들>(문학과지성사 펴냄)은 오늘날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키워드인 과학기술을 둘러싼 다양한 이론적, 실천적 쟁점들을 사회학자의 예리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책이다. 김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선구적으로 개척한 학자라고 할 수 있다.
|
그는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과학적 연구가 여전히 박정희식의 개발주의, 성장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경제학, 경영학적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던 1980년대부터 과학기술을 경제성장의 도구나 생산성 향상의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는 대신 과학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던져주는 함의에 대해 숙고할 것을 주장해 왔다.
그의 이런 주장은 국내에서는 새로운 것이었지만, 서구의 경우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러한 논의가 전개되어 왔다. 서구에서는 이미 1960년대부터 대학을 중심으로 하여 과학기술과 사회의 다양한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과학-기술-사회(STS :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라는 교육 및 연구 프로그램이 널리 확산되고 있었다.
과학기술의 무분별한 발전에 따른 환경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자각, 베트남 전쟁을 통해 확인된 과학기술이 대량 살상 무기로 이용되는 데 대한 반성, 핵 재앙의 공포감 등이 1960년대부터 확산되면서 과학기술을 진보로 믿었던 전통적인 과학기술관은 혁명적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 결과 과학기술의 사회적 영향과 의미, 과학기술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주제가 STS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새로운 학문적, 실천적 관심으로 떠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김 교수는 이처럼 서구에서 발전하고 있던 STS 문제의식을 한국 사회에 남보다 앞서 적극적으로 제기했던 선구자 중의 한 명이었다.
1996년도에 차후 한국 사회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인문·사회과학적인 연구와 토론의 구심체 중의 하나로 부상하게 되는 'STS연구회'가 만들어지고, 그 다음 해에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모토로 내건 과학기술 시민단체 '과학기술 민주화를 위한 모임'(현 시민과학센터)이 참여연대 산하에 건설되는 데에 그의 역할은 가히 결정적인 것이었다.
과학기술사회학 개척자의 10년 집대성
이 책에는 이러한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에 대한 그의 학문적, 실천적 관심, 경험 그리고 문제의식이 녹아 있다. 지난 10년 동안 다양한 지면을 통해 발표되었던 글 중에서 엄선된 11편의 논문들로 구성된 이 책은 모두 4부로 나뉘어 있다.
먼저 과학기술사회학의 이론을 다루는 제1부에서는 오늘날 과학기술사회학의 전반적인 흐름을 사회적 구성주의(social constructivism) 접근을 중심으로 다루고, 이와는 약간 다른 맥락에서 갈등론적 과학사회학의 관점을 제시했던 피에르 부르디외의 접근을 추가로 소개하고 있다. 또 STS의 다양한 접근 중에서도 최근 큰 주목을 받고 있는 '행위자-연결망 이론'의 특징과 잠재력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제2부에서는 STS와 과학사회학의 관점을 과학기술의 윤리 및 민주화라는 실천적 문제에 연결시키고 있다. 먼저 과학기술의 민주화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 그리고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를 논의한 뒤, 과학기술 시대의 윤리적 문제를 전통적 윤리학의 관점이 아닌 STS의 참신한 관점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또 생명공학의 위험이 지배하는 과학기술 사회에서 떠오르는 책임윤리의 내용과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이어서 제3부와 제4부에서는 오늘날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과학기술이며 사회적 영향이 큰 정보기술과 생명공학 분야의 쟁점들에 대해 각각 살펴보고 있다. 먼저 제3부에서는 정보기술과 정보사회에 대한 기존의 이론적 관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우리나라에서 바람직한 정보사회를 위해 요구되는 사회 제도적 개혁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토론한다.
마지막으로 제4부에서는 먼저 과학 문화와 인문 문화 사이의 갈등을 의미하는 '두 문화' 문제를 국내 생명윤리법 논쟁의 사례에 적용하여 분석해 보고, 이어서 지난 해 말부터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 준 '황우석 사태'에 대한 사회학적 원인을 분석하고 이 사태가 과학기술 민주화에 던져주는 함의를 성찰하고 있다.
미래의 과학기술 달라질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본적으로 이 책은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주제들을 다루었던 독립적인 논문들을 모아 엮어낸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은 여기에 수록된 11편의 논문들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문제의식이 있음을 쉽사리 눈치 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과학기술에 대한 성찰과 민주화라는 개념으로 요약된다. 그의 다음과 같은 진술이 이를 잘 보여준다.
"결코 과학기술의 빠른 발전 자체가 유토피아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선진국이 된다'는 단순한 과학기술 만능주의 신화는 제2, 제3의 황우석 사태가 생길 위험을 재생산하는 토대가 될 뿐이다. 인권과 생명윤리, 그리고 민주주의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침해하지 않도록 새로운 과학기술을 조심스럽게 선별하고 그 영향에 대해 성찰하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 민주적으로 통제하지 않는 한 과학기술 사회는 무서운 괴물 또는 악몽으로 변할 수 있다."
과연 과학기술이 지금과 같이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과학기술시대에 과학기술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김 교수는 이에 대한 이론적 답을 과학사회학의 구성주의에서 찾는다. 구성주의 과학사회학은 과학기술을 보편 합리성의 산물이라고 전제하지 않고 과학기술도 가치 개입적인 인간 상호작용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이런 시각은 절대화되어 인간 위에 군림하는 기존의 과학기술에 대한 탈신비화(이를 '암흑상자 열기'라고 한다)를 가능하게 해줄 뿐 아니라, 보다 바람직한 가치-인간적이고 환경친화적인-에 봉사하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재구성 가능성을 시사해주기 때문이다. 즉 구성주의에 따르면 과학기술의 발전은 미리 정해진 어떤 경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과학기술적, 사회문화적인 요인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특정한 방향과 내용이 구성되는 것이므로 시민사회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결국 과학기술에 대한 민주적 통제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과학기술 민주화 이끄는 시민 참여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김 교수는 이에 대한 실천적 답을 과학기술 관련 의사결정에 대한 시민 대중의 참여에서 찾는다. 과학기술에 대한 의사결정을 과거처럼 소수의 파워 엘리트와 전문가에게만 맡기지 말고 다양한 가치와 이해관계를 지닌 시민대중도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과학기술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이루게 되면 궁극적으로 보다 안전하고 바람직한 과학기술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 대중이 참여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그가 현재 소장으로 있는 시민과학센터에서 지난 10년 동안 세 번에 걸쳐 그간 전문가들에 의해 독점되었던 과학기술적 이슈들(유전자변형식품, 생명복제기술,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토론 과정에 일반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의견을 발표할 수 있도록 하는 '합의회의'를 개최해 왔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과학기술 이슈에 대한 논의과정에 일반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합의회의와 같은 시민참여 방식들은 아직은 비록 미약하기는 하지만 과학기술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향한 먼 길을 내딛는 첫걸음으로서의 의미는 충분하다 할 것이다.
요컨대 이 책은 우리 사회가 그간의 민주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유독 과학기술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경제성장이나 생산성 향상의 도구로만 보는 '박정희 패러다임'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못했음을 통렬하고 비판하고 독자들에게 과학기술이 우리의 삶과 사회에 던지는 함의에 대해 성찰하고 과학기술의 민주화 문제를 고민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하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물론 이 책에서 개진되는 주장들 중에는 차후 보다 엄밀한 경험적인 연구들에 의해 검증되고 보완되어야 할 부분도 적지 않게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의 후속 연구를 기대하면서 나는 이 책을 온 나라를 뒤흔든 황우석 사태를 거치면서 과학기술과 정치, 과학기술과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많은 이들에게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적극 추천하고 싶다.



전체댓글 0